그들이 머물면 비누냄새가 솔솔~
그들이 머물면 비누냄새가 솔솔~
  • 정유경 기자
  • 승인 2007.11.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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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손길로 시원한 목욕 선물 주는 대한도시가스노동조합 나눔회

분홍색 티셔츠를 입은 ‘아저씨’들이 하나 둘 들어서자 조용했던 경기도 하남시 소망의 집이 술렁이기 시작한다. 오늘은 대한도시가스노동조합 나눔회 아저씨들이 소망의 집 아이들을 깔끔하게 목욕 시켜주는 넷째 주 토요일. 도착하자마자 화장실에 자리를 잡은 나눔회 회원들은 소매와 바짓단을 걷어붙이고 목욕시킬 준비를 마친다.
 

소망의 집에서 생활하는 장애인들은 대부분 정신지체를 가지고 있는 장애인들이다. 그래서 목욕탕에 자리를 잡은 그들을 보고 먼저 목욕탕 앞으로 걸어오는 아이보다 멀뚱히 보고 있는 아이들이 더 많다. 하지만 매달 거르지 않고 와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아이들을 야속해 하기는커녕 먼저 다가가 웃으며 안부를 묻는 그들이다.

 

 

ⓒ 대한도시가스노동조합 나눔회

 

깔끔해진 아이들을 보면 피로가 말끔

오늘 모인 회원 6명 중 두 명이 화장실 안으로 들어가 아이들을 씻긴다. 화장실 앞에 대기하고 있는 두 명은 목욕을 끝낸 아이가 나오면 닦고 말리고 옷을 입힌다. 나머지 두 명은 방 청소를 하고 아이들을 운동시키는 등 알아서 척척 할 일을 찾아 자리를 잡는 모습이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들은 깨끗해지지만 회원들의 얼굴은 땀으로 범벅이 되고 있다. 선선한 가을 날씨인데도 목욕을 시키는 이교섭 총무부장의 이마에서는 땀이 뚝뚝 떨어진다. 다른 회원들도 마찬가지다. 이 방 저 방 힘주어 걸레질을 하고 있는 회원은 겉옷을 벗어 버린 지 오래다.


하지만 힘든 내색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이교섭 총무부장은 “깨끗하게 목욕을 하고 깔끔해진 아이들을 보면 피곤이 다 풀린다”며 “여기 모인 회원 모두 나와 똑같은 마음으로 아이들을 씻기고 돌보고 한다”고 흐르는 땀을 닦는다.


20여명의 목욕이 끝나고 한숨을 돌리는가 싶더니 이내 화장실 청소를 시작한다. 한참 동안 호스로 구석구석 청소를 하고 화장실 물기까지 걸레로 닦고 나서야 2시간 남짓한 목욕이 끝났다.  
 

이윽고 점심식사가 날라진다. 누워서 생활을 하거나 숟가락질을 하는 것이 힘든 아이들은 회원들이 떠먹여 준다. 혼자 먹는 것보다 누군가가 떠 먹여 주는 것이 좋은지 오물오물 씹는 모습에 신이 묻어난다. 아이가 신이 나니 떠먹여주는 이도 신이 나 싱글벙글이다.


회원들에게 뾰로통해있던 아이들도 목욕을 하고 밥을 먹고 나자 기분이 좋아졌는지 장난도 치고 회원들의 팔에 매달린다. 한쪽에서는 한 달 난 다운증후군에 걸린 갓난아기에게 젖병을 물리고 또 한쪽에서는 소망의 집 운영을 위해 판매하는 양말 포장을 하며 오늘의 나눔이 끝나가고 있다.


나눔의 열기에 행복 지수 ‘껑충’

ⓒ 대한도시가스노동조합 나눔회
같은 시각, 대한가스공사노동조합 나눔회의 다른 조는 천호동에 위치한 강동교회 무료급식소에서 식사준비를 한다. 그들은 활동으로 보여주는 도움뿐 아니라 기초생활 수급자 4세대와 다사랑 마을, 돌봄의 집, 이천시 방과 후 아카데미, 대한적십자사 강동구 무료급식소에 일정기간에 지속적으로 지원을 해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얼마 전에는 성남시 독거노인들을 대상으로 영정사진 촬영을 지원하는 등 꼭 필요한 곳에 나눔의 씨앗의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이렇게 많은 사람에게 나눔을 전달 할 수 있게 된 것은 대한도시가스 임직원의 정성이 모여 가능했다. 물론 자발적인 모금이다. 어려운 이웃을 돕고 싶어 하는 임직원은 신청을 통해 매달 급여통장에서 얼마간의 돈을 지원한다. 이교섭 총무부장은 “나눔회는 노동조합 소속이지만 조합원이 아닌 사람도 모금에 참여하고 활동에도 참여한다. 나누는 마음을 모으는데 조합원이냐 아니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김규민 과장은 조합원은 아니지만 특별한 일이 없으면 꼭 참여하는 성의를 보이는 듬직한 나눔회 회원이다. 그는 “나눔을 실천하게 되면서 삶의 활력소가 생겼다”며 “나눔을 실천하는 넷째 주 토요일이 기다려진다”고 할 만큼 열성적인 나눔 전도사다.


이교섭 총무부장도 “모금을 하는 방법처럼 나눔 활동을 하러 오는 회원들도 자발적으로 모인 사람들이다. 한번 나눔을 실천하면 가슴 한쪽이 따뜻해져서 돌아가기 때문에 한번에 그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참여한다”고 회원들의 나눔 활동에 대한 적극성을 이야기한다. 

 

소망의 집 박현숙 원장도 “단체로 도와주러 오는 경우는 보여주기 식일 때가 많다. 하지만 대한도시가스노조 나눔회 회원들은 순수하게 도움을 주려고 오는 사람들이다. 많은 사람들이 도와주러 오지만 이렇게 꾸준히 궂은 일 마다 않고 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심지어 아이들이 아프면 병원으로 병문안을 올 정도”라고 칭찬을 늘어놓는다.

 

하지만 이교섭 총무부장의 생각은 다르다. “여기서 사는 아이들은 몸이 불편하긴 하지만 우리의 이웃이다. 이웃이 입원을 하면 들여다보는 것이 당연하지 않냐”라며 칭찬받을 일이 아님을 강조한다.

 

그는 조심스레 노동조합 차원의 나눔 활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내보인다. “노동조합이라고 하면 덮어놓고 좋지 않는 시선으로 바라보는 사람이 많다. 그 인식을 바꾸는 것은 우리의 몫이다. 물론 쉽게 바뀌지 않겠지만 우리부터 움직이면 조금씩이나마 바뀌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노동조합이 나눔을 먼저 실천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한다.

 

나눔 활동을 하면서 서로에 대해 더 잘 알게 됐다는 회원들이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소망의 집 대문을 함께 나선다. 마음으로 그들의 온기를 느낀 아이들은 그들이 떠나고 난 후에야 현관문 앞으로 모였다. 몸이 불편해 말로 표현 할 수 없지만 대문 밖으로 사라지는 모습을 바라본 아이들의 눈에는 고마움과 아쉬움이 교차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