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대한민국, 돈&술에 빠져들다
2007 대한민국, 돈&술에 빠져들다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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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살았소?”
“오랜만이네. 자주 좀 얼굴 보자고.”
인사말이 오가고 점심식사가 시작된다. 이런저런 안부이야기가 오가며 식사를 하는 중간, “오랜만에 봤는데 술 한 잔 해야지.”
직선, 대각선으로 술잔이 오가는 대화에서 ‘돈 버는’ 이야기가 떡하니 한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있다. 어느새 술 ‘한 잔’은 소주 5병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직장인이라면 익숙한 풍경이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만나면 술잔을 기울이고, 술잔을 기울이면서 돈 버는 이야기를 한다. ‘술’과 ‘돈’이 빠지면 이야기가 안 되는 대한민국. 우리는 지금 술과 돈을 지배하고 있을까, 지배당하고 있을까. 연말을 맞아 더욱 가까워진(?) 돈과 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 이야기 하나 -술

 

“다음에 만나면 술 한 잔 하자 그러고, 실제 만나면 술 한 잔 하는 거지.”


전날도 새벽 4~5까지 술을 마셨다는 김 씨는 “허참, 이놈이 또 들어가네”하면서 또다시 술잔을 기울인다. 사실 김 씨처럼 의례적인 인사가 현실이 되는 술자리가 많다. 계획된 자리보다는 계획되지 않은 자리가 더 많은 것이다.


공무원 신 씨는 “사람이 모였는데 술을 안 마시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고 말한다. 직장 동료들을 만나 운동을 하면 그게 또 술자리로 이어진다는 이야기다. 정 씨는 “술을 마시는 건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알콜중독자가 아니라도 사람을 만나면 습관적으로 술을 마신다는 것이다.


이야기를 듣자하니 남자들이 많은 직장은 군대식 문화가 남아있어 술자리가 많고, 여자 직장인들은 직장에 남자들이 많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마셔야 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여성들의 경우 “남자 직장동료와 차를 마시러가기는 힘들다”고 토로한다.


그렇다고 매번 술자리를 빠질 수도 없는 노릇이고, 술자리에서도 남자 동료들만큼 마시지 않으면 ‘여자’라는 꼬리표가 붙게 되니 “꿀리고 싶지 않아서” 힘들어도 술을 마신다는 여성 직장인들. 하지만 그런 노고는 술 잘 마신다는 오해를 낳기도 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다는 하소연이다.

 

술만한 게 없다?

옛날에 식량이 부족해 술을 못 만들게 했어도 몰래몰래 술을 만들어 마셨을 만큼 술은 우리 삶의 한부분이다. “죽겠다 죽겠다” 하면서도 오늘도 술잔을 부딪치고, 술을 들이붓는 사람들도 술의 ‘사회적 역할’에 대해서는 무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서먹서먹할 땐 마땅히 딴 것 할 것도 없고, 술 마시면 빨리 친해지니까 좋죠” 라며 “친한 친구들을 만나도 술 한 잔 마시면 더 유쾌하고 즐겁게 놀 수 있다”고 말하는 송 씨의 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술과 술자리가 인간관계에 윤활유가 되고 있음은 사실이다.


김 씨는 “스트레스 해소에도 술만한 것이 없다”고 한다. “일이 밤 10시나 돼서 끝나요. 그리고 다음날 아침에 출근해야 하고. 그러면 일하는 동안 받은 스트레스는 어떻게 해요. 술에 취해 잠들면 그때는 잊어버릴 수 있으니까 술 마시죠. 가장 빠른 시간에 스트레스를 해소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이 술이에요 술.”


이런 까닭 때문인지 일상이 된 ‘폭탄주’는 우리나라의 독특한 술문화가 되고 있다. 한때 각 소주회사들이 소주의 도수를 낮춘다고 했을 때 “도수가 낮아지면 취하기 위해 더 많이 마셔야 되는 것 아니냐”는 일부 사람들의 반발도 같은 맥락이다. 경쟁은 치열해지고, 노동강도는 높아지고, 여유시간은 줄어드는데 스트레스는 날로 높아지니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점점 술에 기대고 있는 것이다.


술로 풀려다 술로 얽힌다

문제는 술에 대한 너무 높은 의존도와 잘못된 술 문화다. 언제부턴가 우리 사회는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풀 다른 방법은 고민해보지 않고 ‘술’로 풀려고 한다. “술을 마셔야만 이야기가 된다” “술자리에서나 속내를 들을 수 있다”는 말들은 십분 이해가 가지만 곰곰이 생각하면 의아스럽기도 한 우리의 모습이다. 이러다보니 많은 직장인들이 “술자리도 회사생활의 연속”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음주능력은 업무능력으로 이해되는 경우도 있다. 일례로 “임원 자신도 술을 전혀 하지 못하면서도 ‘술 잘하는 놈이 일도 잘 한다’며 술을 못하는 부하직원을 싫어하더라”는 아이러니한 이야기는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풍류의 흥을 돋구어주고, 고단한 삶을 위로해주던 술이 이젠 ‘일’로 전락한 것이다.
잘못된 술 문화는 오히려 우리 삶을 피폐하게 한다. “죽겠다” “힘들다”고 하면서도 새벽까지 술을 마시는 사람들. 그러다보면 다음날 오전 업무는 제대로 하기 힘들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취재 중 만난 한 직장인은 “다음날 오전까지 속이 좋지 않아 업무시간 중에 화장실 가서 토하고 오면, 조금 있다가 선배가 토하고 오고, 그리고 점심때 같이 해장했던” 일화를 전했다. 마실 수 있을 만큼만 마시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 “직장생활에서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들만 할 뿐 혹시나 미움을 받지 않을까 싶어 실제 술자리에서 자신의 의사표현을 한다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밤업소·찜질방으로… 그리고 가정불화로

대한민국 술 문화의 특징 중 하나는 술이 술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술로 인해 성행하는 곳들이 밤업소와 찜질방, 대리운전 등이다. 특히 야심한 시각 찜질방엔 숙박비와 대리운전비를 아끼기 위해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는 직장인들이 많다. 이런 일이 잦아지면 당연히 가족들과의 관계는 소원해지게 되고, 가정불화로까지 이어지는 등 사회적 낭비도 커진다.


이런 악순환의 반복에 대해 취재 중 만난 사람들도 “알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도 과음을 하는 것도 다 “어쩔 수 없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절대적’으로 어쩔 수 없는 것만은 아닌 듯 하다.


예전에는 말술이었다는 안 씨는 “4~5달 동안 술을 안 마셨는데, 딱히 술 생각이 나지 않더라”고 전한다. 함께 술자리한 사람들의 “덕분에 우리도 술을 덜 마셨지”하는 표정에선 ‘다행이었다’는 안도감이 느껴졌다.

 

대한민국은 어느새 술술 넘어가는 술에 넘어가고 있다. 다른 사람과 어떻게 대화를 해야 할 지 몰라 술의 힘을 빌리고, 문제를 어떻게 풀지 몰라 또 술의 힘을 빌린다. 서로 어느 정도에서 끝내야할지 몰라 술자리는 2~3차까지 이어지고, 몸은 몸대로 상하고, 술값은 술값대로 나가고, 가족들과는 멀어지고 있다.


술잔을 기울이는 직장인들의 얼굴이 밝지 않다. 우리는 지금 술을 즐기지 못하고, 지배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 이야기 둘 - 돈

돌고 도는 ‘돈’에 돌다
돈은 이미 우리 사회의 권력

 

술자리가 무르익을 때면 어김없이 ‘돈’ 이야기가 나온다. 누가 주식을 샀는데 대박을 터뜨렸다더라, 누구는 쪽박 차게 생겼다더라. 어디에 집을 샀는데, 가격이 영 안 오른다 등등 대박을 터트린 사람과 쪽박 찬 사람의 이름만 달라질 뿐 어느 술자리에서나 나오는 돈 이야기의 패턴은 비슷비슷하다.

돈 이야기는 비단 술자리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두 사람 이상만 모이면 ‘돈 버는’ 이야기가 단골메뉴로 등장한다.


부자를 꿈꾸는 사람들

서점에 가면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가 무엇인지 알 수 있다. 재테크 열풍을 반영하듯 몇 년 전부터 ‘재테크 관련 서적’도 당당히 서점의 한 코너를 차지하고 있다. 재테크 서적의 상당수도 ‘누가 어떻게 몇 억을 벌었다’는 이야기다. 이를 통해 누구는 몇 억을 버는데 당신이라고 못하겠냐며 ‘당신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은근히 부추긴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책들만 그런 것이 아니다. 방송가에도 ‘재테크’ 열풍이 불고 있다. 국민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경제에 관심이 많았는지 오락프로그램에서도 경제를 다룬다.


이제 입사 1년차인 백 씨는 “처음 입사했을 땐 술자리에서 매번 재테크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았었다”고 회상한다. 회사와 업무에 대한 고민보다 ‘이제 돈을 벌기 시작했으니 어떻게 돈을 모을까’가 먼저라는 것이다.


‘돈 버는’ 이야기는 직장생활을 오래되고 가족이 생기면서 더해지는 듯 하다. 함께 술자리를 하게 된 40대 후반의 직장인들이 들려주는 ‘돈’ 이야기는 젊은 직장인들의 그것과는 수준이 달랐다. “저 사람 부자야. 어디어디에 아파트 사놨다지.” “그것 요즘 가격이 안 오르고 있는데 부자는 무슨.” “A는 월급타면 그걸로 다 ‘스포츠토토’ 하더니만 결국 28억인가 됐다면서.” 중장년층 직장인들의 돈 이야기는 어느새 ‘억’을 논하고 있었다.


재테크 열풍으로 재테크 방법도 과거에 비해 다양해졌다. 옛날에는 은행 ‘적금’이나 ‘부동산’이 주요 돈을 모으는 방법이었지만, 이제는 적립식 펀드는 기본이요 주식이나 해외펀드에 대한 이야기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다. 더불어 ‘로또’나 ‘스포츠토토’는 물론 경마나 경륜 등을 통해 ‘한 방’을 꿈꾸는 사람들도 많다.


매일 주가 확인하는 ‘보통’ 사람들

은행원 오 씨는 회사에 출근하면 가장 먼저 주식시세를 확인한다. 조금이라도 오르면 그날은 왠지 모든 일이 잘 풀릴 것 같고, 반대로 주가가 떨어졌으면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질 않는다고 한다. 가정의 여유자금을 펀드에 투자한 주부 양 씨도 마찬가지다. 혹시 원금이 손실되지 않을까 불안해하며 매일매일 확인하는 게 일상이 됐다고 한다.


중소기업에 다니는 한 씨는 “월급만으로 생활하기가 어려워서 재테크를 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미래에 대해 확신할 수 없기 때문에 지금 돈을 벌고 있을 때 한 푼이라도 재테크를 통해 불리고자 하는 것”이라는 거다. 이런 분위기는 지난 98년 IMF 때 대량해고가 이뤄지면서 심해졌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일반적인 분석이다.


따라서 주식에 투자하는 직장인들이 급증했고 업무시간에 주가변동을 확인하는 직장인들이 늘어나 대기업에서는 일부 주식 관련 인터넷 사이트의 접속을 차단하기도 했다. 한 씨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그러나 여전히 인터넷을 차단하지 않은 중소기업에서 업무시간에도 주가를 확인하는 사람이 많으며 주변 친구들 중엔 인터넷이 차단되면 모바일로 확인한다고 전한다.


하지만 책 제목처럼 모두가 부자가 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러다보니 회사 돈이나 친구들에게서 돈을 빌려 주식이나 부동산에 투자했다가 횡령죄 등으로 처벌받는 직장인들의 이야기도 자주 들을 수 있다.


돈 때문에 곤혹을 치르는 것은 비단 일반 국민들뿐만이 아니다. 정치인들과 주요 기업총수들은 정치자금, 비자금, 주가조작 등으로 매번 곤혹을 치르고 있다. 대선을 앞두고 논란이 되고 있는 BBK 주가조작 사건도 그렇고, 삼성그룹의 비자금 의혹 등 돈 때문에 ‘돌아버릴 것’ 같은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돈으로 만들어진 원 안에 갇힌 우리

최근 경기지역에서 근무하다 근무지를 지방으로 옮긴 신 씨는 “서울·경기 지역의 사람들이 재테크에 더 많은 관심을 보이더라”고 한다. 그 이유는 “서울·경기 지역은 월급만으로 집을 살 수 없고, 지방은 그 문제에서 좀 더 자유롭기 때문인 것 같다”고 분석했다. 좁은 대한민국 땅덩어리 안에서도 지역에 따라 돈의 가치가 다른 것이다.


돈의 가치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말해주는 씁쓸한 일화들은 주위에서 쉽게 들을 수 있다. 4~5살난 어린애도 천원 짜리는 안 받더라는 건 이제 흔한 이야기다. 한때 ‘천원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맛있는 ○○○○ 햄버거를 드실 수 있습니다’는 광고는 역으로 천원으로 할 수 있는 것을 찾기 힘들어진 우리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다. 또 최근 결정된 고액권 발행을 둘러싼 논란도 돈의 가치가 하락했음을 보여준다.

 

돈은 교환을 편하게 함으로써 인간이 편해지기 위해 인간이 만든 것이다. 그런데 이 돈이 몸집이 커지면서 인간을 마구잡이로 삼키고 있다. 삶의 가치와 목표가 ‘부자가 되는 것’으로 전락해가고 있는 사회, ‘뭐니뭐니 해도 머니가 최고다’며 돈만 있으면 안 되는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회. 꿈이나 열정만큼이 아닌 가진 돈만큼 살 수 있는 현실에서 돈으로부터 자유로워지라는 말은 아무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수십만 명의 직원을 책임지고 있는 대기업 총수도, 국가와 민족만을 위한다는 정치인도, 사회적 연대에 손 내밀어야 할 노동조합도, 보너스달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직장인들도 모두 ‘돈’에 매달려 살아가고 있다.


결국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가장 무서운 권력이 바로 돈이 된 것이다. 지금 돈이 아닌 또 다른 삶의 가치는 대체 어디에 있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