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업 전야] 이 밤 가슴 위로 무엇을 들이 붓는가
[파업 전야] 이 밤 가슴 위로 무엇을 들이 붓는가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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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화물 공동파업전야제에서의 5시간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겨울초입에 들어선 11월의 밤바람은 차가웠다. 점퍼를 목까지 채워도 어디론가 파고드는 바람은  따뜻한 이불 속을 간절히 생각나게 했다. ‘이런 날씨에 사람이 얼마나 모일 수 있을까?’
철도노조와 화물연대가 11월 16일 공동총파업에 앞서 여는 파업전야제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추위와 의구심이 잔뜩 들러붙어 있었다. 

 

용산역에서 만난 큰 배낭을 들쳐 멘 사람들. 배낭을 멘 그들의 모습은 흡사 죽음을 각오하고 에베레스트 정상을 탈환하고 말겠다며 세찬 눈보라 속으로 발을 내딛는 산악인의 모습과 같았다. 이미 짙게 깔린 어둠 속에서 그들의 커다란 뒷모습을 따라 전야제 장소인 용산차량기지 안으로 향했다.

 

점점 가까워지는 밤을 깨우는 소리, 전야제에 도착한 순간 그때까지 무겁게 발에 매달려 있던 의구심이 날아갔다. 용산차량기지 안을 가득 메운 빨간 머리띠를 두른 단단한 얼굴들. 철도노조 조합원들과 화물연대 조합원들은 한데 어울려 어두운 밤을 밝히고 있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밤을 밝히는 그들만의 이유

밤이슬을 머금은 잔디 위에 얇은 돗자리 하나 깔고 앉은 철도·화물 노동자들은 ‘철도공공성 강화, 물류제도 개혁, 생존권 쟁취’를 외쳤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속속들이 전야제 장소로 모여드는 그들은 악수하며, 어깨 두드리며 그렇게 동료를 맞고,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와 맞섰다.

 

자정이 넘자 하루 일과에 지친 철도·화물 노동자들은 침낭이나 모포도 없이 빙 둘러싼 동료들의 체온을 이불삼아 웅크리고 잠을 청하기도 했다. 밤은 새벽을 향해 가고, 공기는 더욱 차가워지지만 자리를 뜰 생각은 없어 보이는 철도·화물 노동자들. 그들은 왜 여기 모여 있는가.

 

 

“퇴근 후 광주에서 바로 올라왔습니다. 철도노조원이니까 노조 집행부가 정하는 입장이 내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직장에 오래 다니고 싶어서 나왔습니다. 여기 그런 사람 많아요.”
“집행부에서 참가하라고 해서 왔는데요.”
“철도 공공성 강화, 약자 대변, 비정규직 해결, 이런 문제를 알리려고 모였습니다.”
“파업 이유요? 철도 구조조정 반대, 해고자 복직을 위해서죠.”
“우리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이 정도는 해야죠. 다른 동지들과 다 같이 있으니까 별로 춥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노동조합의 뜻이고, 나는 조합원이니 따를 뿐입니다.”

 

ⓒ 함지윤 기자 jyham@laborplus.co.kr

 

끝은 어디인가

노동자들 옆을 지키고 있는 노동자들의 덩치만한 커다란 배낭. 배낭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 수 없으나 머나먼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 같다. 아예 며칠 동안은 집에 들어가지 않을 생각인건가.

 

“언제까지? 요구사항이 관철될 때까지.”
“우리도 파업하는 거 싫어요. 가능한 파업 안 하도록 협상이 잘 마무리 되면 좋겠어요.”
“2~3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안 되면 1주일 정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미래를 위한 중요한 갈림길입니다. 지도부 지침에 따라 끝까지 갈 겁니다.”
“당연히 집행부가 철도파업을 끝내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할 때까지죠. 그때까지 파업에 동참할 겁니다.”

 

따스한 집과 사랑하는 가족을 남겨둔 채 삶의 무게만큼 큰 배낭을 짊어지고 밤거리로 나가는 가장을 배웅했을 가족들. 그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다시 일터로 … 오늘 이 밤이 남긴 것은?

철도·화물 노동자들이 자신들의 이해를 위해 “시민의 발을 묶었다”고 말하는 언론과, 철도와 화물이 하나 되어 “이왕에 할 거면 제대로 대한민국의 발을 묶어보자”는 노동자들. 자정이 넘어 연대파업이 성사될지 성공할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그들이 파업을 통해 남기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노동의 가치를 느낄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이 대선정국인데 이번 기회에 노동자 정신을 되살려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선출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가진 자만이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잖아요. 그리고 필수공익사업장 확대로 노동3권이 보장받기 어려워지게 생겼고요. 이번 파업이 이런 상황을 헤쳐 나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으면 합니다.”

 

전국 다섯 곳에서 파업전야제가 진행되는 동안 철도노조와 철도공사는 막바지 교섭을 진행했다. 하지만 자정을 넘어서까지 교섭은 진척을 이루지 못했고, 철도·화물 공동투쟁본부는 ‘교섭중단, 파업유보’를 결정했다.

 

집행부의 결정에 따라 커다란 배낭에 지는 해를 짊어지고 모였던 철도·화물 노동자들은 다시 일터로, 집으로 향했다. 노동자들이 짊어지고 왔던 배낭의 무게도 그대로이고, 삶의 무게 또한 그대로이다. 그리고 노동자들이 떠난 자리에는 이 밤 그들의 체온을 지키며 노동자들과 함께 했던 돗자리만이 새벽이슬을 맞고 있었다.  

 

다음날 일제히 언론에서 떠들어 댄 것처럼 16일 아침 물류대란은 없었다. 시민의 발도 묶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러면 된 것일까. ‘잘 된’ 것일까.
“경찰들이 눈에 불을 켜고 돌아다니는 것은 못 봤나.”

전야제조차도 막기 위해 나선 경찰과 그로 인해 전야제 장소를 변경해야 했던 노동자들, 세상과 노동자 사이에 또 하나의 마음에 벽이 생긴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밤 노동자들 마음에 남은 것은 비단 이것 뿐일까.
다시 가정과 일터로 떠나는 그들이 가는 길은 여전히 칠흑 같은 어둠 속에 묻혀있다. 그들의 뒷모습을 보며 다시 묻는다. 그들이 오늘 왜 여기에 모인 것일까. 무엇을 남기고 싶은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