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의 새로운 발견
‘청소’의 새로운 발견
  • 김종휘_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7.12.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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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심·협력심 배우는 소중한 의무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이번은 다섯 번째 글입니다. 연재글이기 때문에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할 때마다 지난 글의 핵심을 요약합니다.

 

첫 번째, 성적 이외의 것으로 자녀를 칭찬하라. 그러기 위해 부모는 내 자녀가 성적 말고 어떤 것을 잘하고 좋아하며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한다. 두 번째, 의외로 학교 공부를 잘하는 모범생이나 순종적인 아이가 정작 자신이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세 번째, 부모에게 순종하고 학교 공부는 잘 했으나 뭘 하고 싶은지 모르고 자란 아이가 일본에서는 은둔형 외톨이가 되는 일이 잦고, 우리 사회에서도 그런 징후가 많이 나타나고 있다. 네 번째, 그런 은둔형 외톨이의 가능성이 있는 내 아이에게 부모는 진짜 일을 시켜야 한다. 그 중 한 가지가 집안 식구들의 식사와 직결되는 장보기 같은 일이다.

 

독자들께서는 지난 글과 이번의 새로운 글을 연결해서 생각하시면 좋겠습니다. 예고한 대로 이번에는 장보기 외에 내 아이에게 시키면 좋을 일을 하나 더 예로 들겠다고 했었지요. 그 일은 ‘청소’입니다.

 

 

청소는 하기 싫고 귀찮다?


아, 청소 그러면 아이들이 얼마나 싫어할까 하는 생각부터 드시지요. 부모님 세대가 학교를 다닐 때 청소는 하기 좋은 일이 아니었습니다. 심지어 잘못을 저질러 벌을 받을 때 청소하라는 소리를 들었지요. 현명한 선생님이었다면 벌로 청소를 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교실 청소를 아이들에게만 맡겨두고 나중에 와서 검사하는 것을 선생 노릇으로 삼지도 않았을 겁니다. 현명한 선생님이라면 아이들과 같이 손수 청소를 하면서 그 일이 얼마나 뜻 깊고 신나는 일인지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을 겁니다.

 

요즘 아이들은 더하겠지요. 시험 공부하기도 바빠 죽겠는데 선생님이 청소의 의미를 설명하고 다 같이 남아서 청소하자고 하면 달가워할 학생이 몇이나 될까 싶네요. 그러니 집에서는 오죽 할까요. 행여나 아이가 집안 청소라도 할라치면 부모는 청소하지 말고 공부만 열심히 하라고 말리지 않을까 싶네요.

 

혹시라도 제 앞가림은 스스로 하도록 버릇을 들이자는 생각으로 자녀에게 청소를 맡기는 부모라도 아마 자녀가 쓰는 자기 방에만 국한해서 맡기기 쉽겠지요. 이래저래 청소는 학교 교실에서도 집안에서도 우리 청소년들에게는 무의미한 일이며, 하게 된다 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벌로 하거나 내 방 청소는 엄마가 안 해주니까, 내 방 청소 안 하면 용돈 안 준다고 했으니까 하는 식으로 귀찮은 일입니다.

 

 

구속으로 깨닫는 자립과 협력의 가치


결론부터 먼저 말하지요. 집안 일 중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아이들이 어른들과 함께 뒤섞여 제 몫을 했던 두 가지 일이 있다면, 그것은 음식 장만과 청소입니다. 아이들이 대신 하지 못했던 일은 부모들이 감당하는 밥벌이와 육아였고요.

 

근대의 학교가 탄생하기 전까지 아이들은 집에서 동네 친구들과 놀고 집에서는 음식 장만과 청소를 같이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이들은 당장은 자기가 하기 싫은 일이라도 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게 되었고, 그것은 곧 자신이 바라는 욕구의 한계를 배우는 것이었지요.

 

이는 달리 말해 구속입니다. 알다시피 자유란 방종이나 변덕이 아니기 때문에, 어떤 구속을 받으면서 내 자신의 자유가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자유를 만들기 위해 감수하는 법을 배우게 되는 것이지요.

 

그런데 그 구속은 알고 보면, 자기 자신을 비롯해서 온 식구가 같이 살기 위한 최소한의 기본적인 구속입니다. 그러니 어느 순간부터 아이는 음식 장만과 집안 청소에 참여하는 일을 달리 느끼게 됩니다.

 

하기 싫은 일이 아니라 해야 하는 일로, 나아가 자신과 가족의 생존을 위해 즐겁게 하게 되는 일로 넘어가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아이가 갖게 되는 자립심이고  어느 정도 자신의 부담과 희생을 감수하면서 경험하게 되는 협력심의 가치입니다.

 

이 자립심과 협력심을 기른 아이는 온갖 유혹과 배반과 좌절과 환상이 뒤범벅이 된 세상 속에 내던져져도 자기 한 몫을 하면서 인생의 항해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반면 그 두 가지 마음을 기르지 못하고 세상에 나온 아이는 어리둥절해서 방안에 틀어박히게 되는 것이고요.

 

 

‘진짜 일’은 자녀와 함께 해야 


다시 처음으로 돌아오면, 부모가 하라는 대로 학교 공부 잘했던 아이, 다른 일은 일절 해보지 못한 채 오직 성적만 올리는 데 골몰하며 그걸 최고로 알았던 아이에게 진짜 일이 무엇인지 겪어보게 해야 합니다. 그 일은 앞서 말한 대로 조금만 제대로 하지 않으면 티가 나고 가족에게 피해를 주고 자신도 불편해지게 되는 음식 장만이나 청소 같은 것이고요. 이런 일을 자녀에게 시켜야 합니다. “네가 하고 싶은 것만 해라”라고 말하는 부모는 언뜻 개방적이고 세련된 부모 같지만 아이를 당장의 자기 욕구밖에 모르는 응석받이로 만드는 것입니다. “오직 공부만 해라, 다른 건 다 대학 간 다음에 해라”라고 하는 부모도 아이를 독에 가둬두고 더 이상 크지 못하게 하는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청소를 시키세요. 매일 같이 하는 청소는 정리 정돈일 겁니다. 주말에 하는 청소는 집안 곳곳을 깨끗이 닦고 환기시키는 일이겠지요. 계절이 바뀌는 환절기에는 장롱을 열고 불필요한 물건과 써야 할 물건을 구분하고 재배치하는 대청소를 하겠네요.

 

연말에 가족회의를 열어서 거실과 부엌과 안방과 자녀방의 위치를 대대적으로 바꾸고 새로 조성하는 계획을 세워보시는 것도 청소입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청소라는 것이 단지 청결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라는 작은 공동체의 생활을 위한 소중한 의무라는 것을 알게 되고, 나아가 자기 생각과 감정을 정리 정돈하고 때마다 청소하면서 새롭게 갈무리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리라 생각합니다.

이건 ‘진짜 일’입니다. 내 자녀가 지금 알아야 할 ‘진짜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