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은 변신중…
임금은 변신중…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1.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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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공급-직능급-연봉제-다음 역은?

연공급이 지배적이던 우리기업의 임금제도가 한창 변신을 꾀하고 있다.

2004년 노동부 실태 조사에 따르면 전국 100인 이상 사업장 5908 곳을 대상으로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 운영실태’를 조사한 결과 응답 업체의 41.9%가 연봉제를, 28.8%가 성과배분제를 도입한 것으로 나타났다.

2000년 조사에서 23%에 그쳤던 연봉제 도입 사업장은 2003년 37.5%까지 꾸준히 늘어났다. 이밖에도 기업들은 직무성과제나 이익배분제, 임금피크제, 생산성협약제 등 새로운 임금제도를 두루 도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90년대 들면서 경제성장과 노동시장의 변화에 따라 임금제도의 변화 필요성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지만 한국의 기업 풍토와 노동시장, 노사 관계 환경에 맞는 임금제도를 찾아가는 ‘여정’은 여전히 험로다.

 

연공급, 현해탄 건너 한국 상륙

노동자의 성과나 능력, 직무의 내용보다는 근속년수를 기준으로 삼는 연공호봉제는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만 나타나는 임금제도로, 일본으로부터 유입된 것이다.

하지만 일본에서도 처음부터 연공급 제도를 사용하지는 않았다. 일본의 산업화가 진행된 메이지 유신 초기에는 생산성에 따라 임금을 지급하는 업적급이나 능률급이 적용됐다. 그러던 것이 다이쇼(大正) 민주화시대에 노동자를 위한 안정적 임금제도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변화를 겪는다.

1910년대부터 생활급을 보장하는 연공급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40년대부터는 정기승급제가 기업들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기에 이른 것이다.


2차대전 이후에 들어서는 기준 임금 중 약 70%를 가족급, 본인급을 포함한 생활보장급으로 채우고, 연령을 기준으로 하는 호봉제와 기준 외 노동임금으로 각종 수당을 설치한 이른바 전산형 임금체계(전기산업노조가 요구해 채택됐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가 확산되기 시작하게 된다.

현재 우리나라 임금제도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연공호봉제는 이러한 형태가 거의 그대로 유입된 것이다. 이는 한 사람의 노동자가 가정을 꾸리고 자녀를 두는 과정에서 점차 늘어나는 생계비를 기업이 뒷받침해주는 ‘생애임금’ 체계로 평생직장 개념과도 맞닿아 있다.


이러한 일본의 임금 체계가 우리나라에 도입된 것은 저임금 고도성장기의 요구와 맞물렸기 때문이다. 이러한 시기에는 임금인상과 비례하는 경제성장이 이루어지고 초기임금 또한 높지 않아 기업의 입장에서도 정기승급에 따른 부담이 그다지 크지 않다. 

 

90년대 초반 임금제도 개편 ‘물꼬’

산업화 이후 20년 가까이 유지되던 연공급에 대한 재검토 목소리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90년대 초반에 들어서다. 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임금 인상률이 상대적으로 높아진데다 고도성장기가 끝나면서 기업들의 임금부담은 높아진 반면 생산성은 예전보다 느린 상승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많은 기업에서 노동자들의 능력에 따른 임금보상과 인사관리의 필요성이 떠오르면서 일본에서 직능급 제도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최초로 직능급제를 도입한 삼성그룹은 계열사인 제일합섬을 시범사로 선정해 93년에 직능급제를 실시하고 96년부터는 전 계열사로 확대됐다. 직능급을 도입하면서 6~8단계이던 직급 수는 10~11단계로 세분화됐고, ‘참위’, ‘참사’, ‘전사’등의 기묘한 직급 호칭이 함께 수입됐다. 하지만 직능급의 수입은 시도에만 그쳤을 뿐 크게 확산되지는 못했다.


능력주의 인사가 ‘노동 강도를 강화하고 노동시장을 분할통치하기 위한 전략’이라는 노동계의 반발은 넘지 못한 것. 연공급이 뿌리 깊은 상태에서 다양한 직급을 설계하고 공정한 평가기준을 만들기 위해 인사시스템을 완전히 뜯어 고쳐야 하는 것도 부담이 됐다. 일부 기업에서의 직능급 도입은 향후 임금제도 개편을 위한 포문을 연 ‘실험’에 그쳤다.

 

우리 실정에 맞는 ‘새옷’ 찾자

1997년 IMF 위기는 또 다시 임금체계 개편 논란을 불러왔다. 기업의 생존과 직원들의 능력 극대화가 최대의 과제로 부상하면서 연봉제를 도입하는 기업들이 빠르게 늘었다.


하지만 노동부 조사 결과 2004년까지 연봉제 및 성과배분제를 도입하고 있는 3088개 기업 중 호봉제가 완전히 폐지된 경우는 44.3%에 그쳐 여전히 연공적 요소가 기업들의 임금체계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호봉제를 기반으로 두면서 직능급이나 성과급 요소를 일부만 도입한 기업이 많다는 뜻이다.


노동부 임금정책과 임무송 과장은 “성과주의 임금제도가 확산되어가고 있지만 아직까지 공정한 평가시스템, 성과배분 기준 등 제도 운영상 개선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고 말했다.


임금제도 개선과 관련해서는 기업의 행보만 바빠진 것이 아니다. 최근 들어 임금문제에 있어서는 비교적 ‘보수적’인 입장을 취하고 있던 노동계에서도 임금체계 개편 필요성에 관한 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관련기사 44면>


IMF 이후 고용사정의 악화로 ‘고용의제’에만 집중하던 노동계에서 최근 비정규직 문제, 대-중소기업 간 임금격차 문제 등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면 ‘임금의제’가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것.


노동부도 한국노동연구원(원장 최영기) 산하에 ‘임금직무 혁신센터’를 설치하고 내년부터 우리나라의 경제, 노동시장 풍토에 맞는 임금-직무 모델 개발에 나서기로 했다.


최저임금위원회 최종태(서울대 경영학과 교수) 위원장은 “80년대 후반 연공급이 이미 한계를 맞이했지만 그간의 임금제도 개편 논의는 한국의 실정에 맞는 모델 개발보다는 외국의 모델 이식에 불과했다”며 “한국의 경제환경, 기업문화, 정서 등을 고려한 ‘새옷’ 찾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