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과 보람 맛보는 ‘진짜 일’
책임과 보람 맛보는 ‘진짜 일’
  • 김종휘_하자센터 기획부장
  • 승인 2008.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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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로 배울 수 없는 창의력과 경험
자녀의 문제해결능력을 키워라

김종휘 하자센터 기획부장
inude@haja.or.kr
새해입니다. 그리고 여섯 번째 글이네요. 지금까지 제 연재 글은 이렇게 흘러왔습니다. 1. 성적 말고 다른 것으로 자녀를 칭찬하자, 그러자면 내 자녀가 무엇을 잘 하고 좋아하며 하고 싶어 하는지 알아야 한다. 2. 학교 모범생이나 순종형 자녀들 중에 의외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게 뭔지 모르는 경우가 적지 않다. 3. 그런 아이는 나중에 은둔형 외톨이가 되거나 직장에 다녀도 일에서 의미를 찾거나 자기를 계발할 줄 모르게 된다. 4. 해법은 청소년 시기에 공부 외에 진짜 일을 경험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중 하나는 집안 음식 장만을 위한 장보기 같은 것이다. 5. 또 다른 하나는 청소이다. 장보기나 청소는 청소년이 집안에서 겪어볼 수 있는 진짜 일들이다.


 

진짜 일이란 무엇일까?

그런데 무엇이 진짜 일일까요. 진짜 일은 고통이 따르더라도 행위의 즐거움이 솟아나고 자발적인 학습이 뒤따릅니다. 이런 효과는 억지로 하는 일, 당장의 쓸모가 없는 일을 통해서는 만들 수 없지요.

 

한 마디로 이 질문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의 일과 삶 그리고 교육에 관한 철학적인 관점을 담고 있습니다. 하지만 부모님들은 이렇게 물어볼 수 있지요. 현실적으로 청소년들에게 학교 공부 외에 그보다 더 중요한 일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장보기나 청소 같은 일을 하느라고 하루 한두 시간을 허비하다 보면 1~2점 차이로 등급이 갈리고 대학 당락이 좌우되는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는 것은 뻔한 이치 아닌가? 그 보상을 누가 할 수 있는가? 머리가 아주 좋거나 다른 특기가 뛰어난 게 아니라면 공부해서 대학가고 취직하고, 그 길 말고 무엇이 있단 말인가?

 

좀 다르게 질문을 해볼까요. 이런 겁니다. 만약 청소년들이 하루의 대다수를 교과서와 참고서만 붙들고 보낸다면, 살면서 스스로 헤쳐 나가야 할 인생의 많은 일들은 과연 어떻게 배울 수 있을까?

 

부모님들은 이렇게 생각하실 겁니다. 현실적으로 그런 건 대학 가고 나서 해도 된다고. 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대학은 기본이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할 때까지 부모인 내가 뒷바라지하면 된다고. 그러니 지금은 제발 공부만 잘 하라고, 조금이라도 더 좋은 대학에 가라고. 요즘엔 논술의 비중이 크다 보니 이렇게 말할 수도 있을 겁니다. 교과서와 참고서 외에 좋은 책들을 많이 읽으면 된다고, 장보러 다니고 청소하느라 시간 쓰는 것보다 청소년기에는 책을 많이 보는 게 훨씬 유익하다고.

 

몸으로, 관계하며 맺는 경험이 진짜 일

학교 공부를 잘 하는 것, 책을 많이 보는 것에서도 분명 유익함을 얻을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장보기의 모든 것>이나 <청소에 대한 101가지> 같은 책들이 있고 거기에 모든 정보와 지식이 다 담겨있다 치고, 그걸 보면 과연 되는 걸까요. 장보기에 관한 진짜 일들을, 청소에 관한 진짜 일들을 배우는 것일까요. 진짜 일은, 물론 공부나 독서 같은 보조 도구가 필수겠지만 자신의 몸으로 직접 하는 경험이 아니면, 사람과 사물과 사건을 접하면서 맺는 관계의 경험이 빠지면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제가 지난 번 글에서 진짜 일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자립심과 협력심이라고 했는데, 이건 대학 간 다음에 익혀도 되거나 독서로 대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님들은 뼈저리게 느끼실 겁니다.

 

이 사회의 어른들은 현재 공부 말고는 아무 것도 할 일이 없어진 사람(자녀들에게 권장하는 미래)과, 하루하루 힘든 일을 하느라 공부를 한 지가 까마득한 옛날 추억이 되어버린 사람(자녀들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은 과거)으로 나뉘어 있지요. 대학 나오고 관리직에 종사하는 사람은 종일 수치를 다루거나 기획서를 쓰거나 하는 게 일의 전부가 되었고, 그렇지 못하고 생산직이나 영업직에 있는 사람은 종일 물건을 만들어 내거나 그 물건을 팔러 다니는 게 일의 전부가 되어 있습니다. 일과 공부가 분리된 지난 시대의 산물이지요. 그래도 세상은 그럭저럭 돌아갔지만, 이제는 그런 원리가 더 이상 제대로 작동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다양한 진짜 일을 경험해야

알다시피 경제가 성장해도 고용은 계속 줄어들고, 설령 간신히 취업을 했어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대학 나오고서도 다시 고3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입니다. 모두가 불안하지요. 요즘 대학생들은 그 어떤 시대의 대학생들보다 공부를 매우 많이 합니다. 학점은 기본이고, 어학 연수, 토익과 토플 점수, 각종 자격증, 인턴십 경험 등 요즘 대학생들이 내는 이력서를 한번 보세요. 요즘 부모님들 세대가 과거 청년기에 그렇게 공부를 많이 했었는지요. 사회적 평균값을 내면 비교가 되지 않을 겁니다. 그런데도 취직을 못하는 대학생들에게 이 사회는 “좀 더 노력하지 않아서 그렇다”거나 “눈높이를 낮춰라”는 말밖에 할 줄 모르는 것 같습니다. 
 

기업들은, 대학은 또 뭐라고 말하는지요. 창의력이 중요하다고, 자기 주도적인 문제해결능력이 핵심이라고 하잖아요. 그런 능력은 청소년기에 다양한 진짜 일들을 경험하고 거기에서 무엇을 배우고 익힐지 보조 도구인 독서나 공부를 결합하는 과정이 아니면 안 생기지요. 학교 공부 죽어라 하는 것이나 책 많이 읽는 것으로는 길러지지 않는 능력입니다. 그래서 예전엔 없던 역설이 생겨나는 것 같습니다. 학교 성적은 중하위권이라 하더라도 제 손으로 알바를 해서 약간의 돈을 벌어보고, 이 사회의 다양한 관계를 겪어보고, 진짜 일 속에 들어가 책임감과 보람을 맛보며 성장한 청소년에게 우리 사회는 장차 더 많은 일을 맡기게 될 것이라는. 다음에 계속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