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화, 어른들의 눈에 들다
만화, 어른들의 눈에 들다
  • 함지윤 기자
  • 승인 2008.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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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만 보는 만화? CEO들도 본다!
현대인의 감성을 지배하는 코드 ‘이야기’

어린 시절, 밖에서 놀다가도 오후 5시가 되면 뛰어 들어와 텔레비전 앞에서 만화가 시작되기를 초조하게 기다렸던 기억, 사방 빼곡히 만화책으로 둘러싸인 동네 만화방을 보며 꿈꾸었던 만화방 주인의 꿈, 수업시간에 친구들과 돌려가며 선생님 몰래 보았던 스릴 넘쳤던 순간. 보고 자란 만화는 서로 조금씩 다르지만 누구나 어린시절 만화에 얽힌 추억은 하나쯤은 가지고 있다. 어른이 되기 전 그때가 지금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웃고 순수하고 행복했다면 그 이유 중 하나는 만화 때문일 것이다.


나이를 한 살 한 살 더 먹으며 어른이 되어가면서 우리의 오감을 자극하는 것은 더 많아졌고, 우리는 그렇게 만화를 잊어갔다. 각박한 세상에 지친 어른들이 부른 향수일까, 마지막 비상구일까. 어른이 되면서 작별을 고했던 만화에 다시 어른들이 눈을 돌리고 있다. 만화는 어느새 비즈니스를 위한 또 다른 지침서가 되고 있다.

 

 

재미 말고 인생·경영 철학도 있다

일본만화 <미스터 초밥왕(데라사와 다이스케)>은 이미 많은 CEO들이 챙겨보는 만화로 정평이 나있다. 한 고등학생 소년이 최고의 초밥 요리사가 되기 위해 일본 전역으로 고수들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하고, 요리승부를 펼쳐 나가며 전국초밥대회에서 ‘초밥왕’으로 등극하기까지의 과정을 그리고 있다. 특별할 것 없는 이야기 구도지만 이 만화가 남녀노소를 구분하지 않고 많은 사람들로부터 사랑받는 까닭은 꿈을 이루기위한 주인공의 끊임없는 노력이 보는 이에게 자신의 삶의 태도를 돌아보게끔 한다. 국내 CEO들은 “음식을 만들 때 제일 중요한 건 먹는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이다” 등 경영의 기본원칙 등을 이 만화를 통해 배우고 있다고 말한다.


국내 만화로는 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허영만 화백의 <식객>도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식객> 또한 단순히 맛집을 소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재료에서부터 요리과정까지 전문성은 가히 전문요리책을 방불케 한다. 1편의 에피소드를 완성하기까지 대한민국 전역을 돌며 철저하게 사전조사를 한다고 하니 만화책이라고 얕잡아 볼 수준이 아니다.

 

비즈니즈 노하우도 만화 속에 있다

비즈니스에도 유행이 따른다. 한때 고급 양주는 최고의 선물로 여겨졌고, 중요한 비즈니스 자리에선 양주가 빠질 수 없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 자리를 와인이 차지하고 있다. 특히 세계화 시대가 되면서 와인은 비즈니스에서 빠질 수 없는 한 요소가 됐다. 하지만 격식도 까다롭고, 종류도 많고,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아 최근엔 와인 비즈니스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CEO를 비롯해 직장인들이 <신의 물방울(아기 다다시)>을 많이 보는 이유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각 와인의 특징을 비롯해 와인에 대한 기본상식까지 제공하고 있으니 까다롭게만 여겨지는 와인에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골프 비즈니스도 중요한 고객과의 자리에선 빠지지 않는 것이다. 박세리 선수로 인해 골프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많은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은 스포츠이다. 이런 골프 또한 만화로 만나면 좀더 쉬워진다. <공포의 외인구단> 등으로 우리에게 너무나 익숙한 이현세 화백의 <버디>가 바로 그것이다. 골프에 대한 상세한 설명은 골프를 처음 접하는 사람들에게 입문서로도 손색이 없으며, 비즈니스 대화의 소재로도 충분하다.

 

스토리텔링 시대, 이야기가 좋아

어른들 세계에서 만화가 다시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어른이 되고서도 배워야 하는 것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넘쳐나는 일을 처리하면서도 또 자기계발을 해야 하는 하루하루 속에서 좀처럼 여유를 찾기 힘들다. 잠시 쉬는 동안에도 경쟁자는 경계해야 하며, 혹시 경쟁에서 뒤떨어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불안감에 시달린다. 그러다보니 경영·자기계발 서적 한 권씩은 옆에 끼고 다니게 된다.


그런데 ‘~하라’고 가르치는 경영·자기계발 서적에 현대인들의 피로도는 오히려 높아진다. 그런 와중에 만나는 만화는 한줄기 단비 같다. 재미와 감동, 교훈을 얻을 수 있음은 물론이고 비즈니스에 필요한 전문적인 정보까지 얻을 수 있으니 말이다.


만화가 급부상하는 또 다른 이유는 바야흐로 이야기 시대, 스토리텔링(Storytelling) 시대가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하는 시대적 흐름은 광고계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상품의 이름과 기능 등 상품 그 자체에 초점을 맞추던 과거와는 달리 요즘 소비자들에게 주목을 끌고 있는 광고들은 대부분 이야기가 있다. 그런 ‘이야기’는 상품에 대한 직접적인 광고보다 오히려 소비자들에게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만화 또한 전형적인 ‘이야기’로, 경영·자기계발 서적과 같은 교훈을 이야기한다고 하더라고 더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렇게 만화의 수준이 높아지고, 만화를 읽는 어른들이 많아지면서 만화를 교육적 목적으로 활용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KB국민은행은 지난해 하반기에 펀드와 카드를 대상으로 한 만화책자를 제작한 데 이어, 올해 1월엔 사업자대출 관련 만화책자를 제작했다. 또 수원시는 법개정으로 인해 새해부터 달라지는 시민생활과 밀접한 법령을 알기 쉽게 만화로 만들어 시민들에게 배부한다고 밝혔다.


어른이 되어 다시 만화책을 집어든 어른들. 거기엔 각박한 세상살이 지친 어른들의 과거 어린시절에 대한 향수와 동경이 담겨져 있고, 웃음과 여유를 찾고자 하는 몸부림이 담겨져 있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하고, 내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현대인들의 외로움도 담겨져 있는 듯 하다. 오늘은 골치 아픈 서류뭉치는 밀어놓고 만화로 메마른 감성을 충전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