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많던 눈은 누가 치웠을까?
그 많던 눈은 누가 치웠을까?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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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 위, 눈과의 사투 현장을 가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1. 여기는 상황실
한국도로공사 대관령지사를 찾은 지난 1월 21일 저녁 7시. CCTV를 지켜보는 도로공사 상황실 근무자들의 얼굴에는 긴장감이 역력하다. 전날 내린 눈은 가까스로 치웠지만 여전히 대설주의보가 내려져 있는 상황이다. 게다가 많이 잦아들었다고는 하지만 아직 밖에는 눈발이 날리고 있다.
2㎞ 간격으로 설치된 CCTV가 시시각각 변하는 도로 상황을 보여주고 있다. CCTV에 잡히지 않는 지역은 순찰팀이 순회하며 감시하고 있다. 상황실과 수시로 교신을 주고받으며 지사가 관리하는 70여㎞ 구간을 24시간 체크한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2. 제설작업 현장
진부IC에서 횡계 방면으로 5㎞ 정도 떨어진 지점. 주간에 갓길 쪽으로 밀어냈던 눈을 도로 밖으로 불어내는 블로윙(blowing) 작업이 한창이다. 산더미처럼 쌓인 눈을 불어내자니 속도는 더디기만 하다. 눈이 치워진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들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속도로 찬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간다.
다행히 모든 작업이 장비를 통해 이루어져 사고 위험은 줄었다. 하지만 쌩쌩 달리는 자동차들 옆에서 빠르게 걷는 정도의 속도로 진행되는 작업은 위태롭게만 보인다.

 


365일 소통 중


해마다 겨울이면 고속도로에서는 전쟁이 벌어진다. 쏟아지는 눈과의 전쟁이 그것. 고속도로 제설작업은 언제나 군사작전처럼 긴박하게 이뤄진다. 눈이 내려도 지난 20일처럼 한꺼번에 쏟아지지 않는 한 고속도로는 항상 차가 다니기 때문에 잘 쌓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제설작업을 소홀히 할 수는 없다. 고속도로는 한시도 막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고속도로를 관리하는 한국도로공사는 매년 11월 15일부터 다음 해 3월 15일까지를 겨울철 자연재난 대책기간으로 설정하고 눈과의 전쟁을 준비한다. 평소 근무 인원 외에 각 지사별로 적정한 수의 계약직 직원을 투입한다. 눈이 많은 강원 지역의 지사는 그 인원도 다른 지역보다 많다. 이들은 정해진 매뉴얼에 따라 조를 나누어 비상대기를 한다.

 

수작업은 사라졌지만


눈이 내릴 거라는 기상예보가 나오는 순간부터 제설작업은 시작된다. 가장 먼저 하는 작업은 습염(염화칼슘을 녹인 물)과 소금을 섞어 살포하는 것. 눈이 와도 도로가 얼지 않도록 미리 준비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살포기가 동원된다. 소금과 습염이 살포기에서 섞이면서 도로에 살포된다.


눈이 내려 도로 위에 쌓이면 리무빙(removing) 작업이 시작된다. 도로 위에 쌓인 눈을 안쪽 차선부터 순차적으로 갓길 쪽으로 밀어내는 작업. 차량 앞에 비스듬히 삽날을 달고 있는 차량이 동원된다. 도로공사에서는 이를 종합장비라 부른다. 리무빙 작업 외에도 부착하는 장비에 따라 여러 기능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혹시 도로가 얼어있을 경우에는 그레이더가 투입된다. 그레이더는 삽날이 노면과 밀착돼 얼음을 긁어내며 작업할 수 있는 장비다.


리무빙 작업을 마치고 나면 블로윙 작업이 기다리고 있다. 갓길 쪽으로 밀어낸 눈을 방치하면 눈 녹은 물이 도로로 흘러들어 얼어버릴 수 있기 때문에 도로 밖으로 불어내야 한다. 이 작업에는 블로워가 동원된다. 쌓인 눈이 많으면 페이로더(살포기에 소금을 싣는 장비)나 굴삭기가 동원되기도 한다.
제설작업의 마지막은 잔설제거. 도로에 아직 남아있는 눈을 모아서 소형 블로워로 불어낸다.

 

운전자들의 양보와 협조 절실


낮 시간 동안 힘들게 눈을 치운 작업자들은 고속도로 한쪽에 마련된 제설장비 보관창고로 모여든다.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간이 시설이 창고 옆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다른 작업조가 교대로 작업하는 동안 이들은 짧은 휴식을 취한다.


13년째 제설작업을 하고 있다는 52세의 작업자는 “이제 겨울만 되면 하는 작업이라 힘든 건 으레 그러려니 합니다. 하지만 작업하다 보면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아찔한 순간도 많습니다. 자기 먼저 가겠다고 통제에 따르지 않고 갓길로 질주하는 차량들도 문제고요, 작업을 하고 있는 구간이 있으면 속도를 좀 낮춰 서행을 해줬으면 좋겠어요. 덩치 큰 차들이 옆을 지나가면 몸이 휘청거릴 정도입니다. 예전에는 일일이 삽으로 모래를 뿌렸는데 그때에 비하면 그래도 안전한 편이기는 하죠”라며 운전자들의 양보가 절실하다고 말한다.
상황실에서도 마찬가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재난상황에서는 조금씩만 양보했으면 좋겠어요. 자신은 조금도 불편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작업자들의 고충은 생각하지 않죠. 리무빙 작업할 때 속도 느리다고 투덜대면서 갓길로 가는 사람들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앞쪽에서는 더 큰 정체가 발생하기도 하죠.”


“폭설 때문에 교통이 막히는 건 재난상황입니다. 인력으로 막을 도리가 없죠.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해 눈을 치웁니다. 조금씩만 양보하면 훨씬 수월할 텐데 너무들 성급해요. 속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도로공사 늑장대응이 어쩌고 해요. 그런 보도 접할 때마다 열심히 눈 치우면서도 욕을 먹으니 사기가 말이 아니죠.”

 

아픈 기억을 딛고


기상특보는 어떻게?
눈이 올 때 내려지는 기상특보는 대설주의보와 대설경보가 있다. 대설주의보는 내려지는 시점을 기준으로 해서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예상적설량이 5㎝ 이상일 때 내려진다. 이에 비해 대설경보는 앞으로 24시간 이내에 예상적설량이 20㎝ 이상일 때 내린다. 다만 산간지방은 예상적설량이 30㎝ 이상일 때 대설경보가 내려진다.

2004년 3월 충청도에 갑자기 쏟아진 폭설로 고속도로가 마비되는 일이 벌어졌다. 2005년 12월에는 호남에서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심지어 고속도로에 차량이 고립돼 차를 버리고 탈출하는 일까지 생겼다. 도로공사에는 항의전화가 빗발쳤다. 매년 눈이 많이 내리는 강원도 지역에 제설장비가 집중돼 있던 터라 피해는 더욱 컸다.


노동조합에 따르면 도로공사는 이때의 뼈아픈 기억이 두 번 다시 되풀이되지 않도록 그동안 많은 노력을 해왔다. 여러 차례의 모의훈련을 통해 대응능력을 높이고 장비와 인력운용을 강화하기 위한 체계를 보완하는 등 치밀한 대응을 했다. 그 결과 작년 12월 29일부터 4일간 호남지역에 내렸던 폭설에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눈이 왔을 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눈이 내린 지역은 울릉도. 1955년 1월 20일 하루 동안 150.9㎝가 내린 적이 있다. 섬이라는 지형적 영향 때문에 눈이 많은 지역이다. 섬을 제외하면 대관령에 1992년 1월 30일 92.0㎝가 최고 기록이다. 1969년 2월 20일 속초에 89.6㎝가 내렸고 1987년 2월 3일 태백에 70.2㎝가 내려 그 뒤를 잇고 있다. 강릉에는 1990년 1월 30일 67.9㎝가 내렸다.


적설량으로 따져도 2004년 충청도 폭설 당시의 49㎝, 2005년 호남 폭설 때의 47㎝를 넘어서는 55㎝의 눈이 쌓였지만 한 건의 교통통제도 없었다. 2004년 37시간, 2005년 19시간 동안 교통이 통제됐던 것에 비하면 눈 때문에 조금 불편했을지언정 완전히 막혀버리는 최악의 상황은 피한 것이다. 비록 고속도로 이용자들의 항의전화는 여전했지만.

 

고속도로 이용자에게 눈은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제설작업을 하는 이들에게 눈은 불편함 이상이다. 말 그대로 사투를 벌인다. 이들에겐 명절도 휴일도 따로 없다. 대다수 국민들이 기상이변 속에서도 안전하게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있도록 이들의 노력은 현재진행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