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 산별교섭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금속 산별교섭 어떻게 준비되고 있나?
  • 박석모 기자
  • 승인 2008.03.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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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별교섭준비위 긴장 속에 출발
노는 밀어붙이고 사는 준비 안 돼

ⓒ 전국금속노동조합

 

 

2월 20일 오후 2시30분 삼성동 무역센터빌딩 51층 회의실. 하나 둘 모여드는 발걸음들에는 긴장감이 팽팽하다. 미리 회의실을 정돈하는 금속노조 실무자들의 손길에서도 긴장감이 읽힌다. 서로 인사를 주고받는 참석자들의 표정에도 긴장감이 묻어난다.

 

 

오후 3시. 금속노조 조건준 단체교섭실장의 사회로 금속노사 산별교섭준비위 상견례가 시작됐다. 완성차4사 노사 대표들이 마주보고 앉았다. 사측에서는 현대자동차 박재준 이사, 기아자동차 홍근선 이사, GM대우자동차 김형식 상무, 쌍용자동차 박언주 상무가 참석했고, 노측에서는 금속노조 최용규 사무처장을 중심으로 현대자동차지부 정창봉 부지부장, 기아자동차지부 박영길 부지부장, GM대우자동차지부 정인주 부지부장, 쌍용자동차지부 이홍섭 수석부지부장이 자리했다.

 

작년 금속노사 산별교섭은 완성차업체들이 참가하지 않아 맥 빠진 교섭이 진행됐다. 금속노조 내에서 완성차4사 조합원들이 차지하는 비중은 절반을 넘는다. 때문에 완성차업체들이 참가하지 않은 산별교섭은 반쪽짜리 교섭을 벗어나지 못했다.

 

금속노조는 완성차업체들로부터 2008년 교섭에는 참가하도록 노력하겠다는 확약서를 받고 교섭을 마무리했다. 이날 상견례 자리는 당시 완성차업체들이 제출한 확약서에 따라 실무협의를 거쳐 마련됐다.

 

어색한 첫 만남

 

서로 인사를 나누는 시간. 사측 대표들은 되도록 말을 아낀다. 간단한 소개와 의례적인 인사말만 남기고 자리에 앉는다. 노측 대표들의 인사말도 길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올해는 반드시 완성차가 참여하는 명실상부한 산별교섭이 될 수 있게 노력하자는 말이 붙긴 했지만. 노사 모두 처음 가 보는 생소한 길이라서 그런지 부담을 느끼는 듯이 보인다.

 

금속노조를 대표해 참석한 최용규 사무처장은 인사말을 통해 “작년에 사측이 제출한 확약서는 산별교섭 참가를 전제로 한 것이었다”는 점을 상기시켰다. 이어 “올해 중앙교섭은 노사관계를 원만하게 할 것인가 아니면 어렵게 할 것인가의 분수령이며, 어떻게든 사측이 파국을 막는 노력을 보여달라”고 주문했다.

 

금속노조에서 준비한 경과보고 동영상이 스크린에 비친다. 작년 확약서 제출부터 이날 상견례 자리에 이르기까지 과정이 보고 되는 동안 자리는 무겁게 가라앉는다.

 

“산별 갈 수 있겠습니까?”

 

인사를 마치고 운영계획을 이야기하는 동안 참관인들은 모두 배제됐다. 노사 양측 참관인들은 회의실 옆 작은 방에 삼삼오오 모여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무거운 분위기를 애써 털어내려는 듯 이야기꽃을 피우지만 모두들 신경은 닫힌 회의실 안쪽으로 쏠려 있다. 과연 어떤 이야기들이 오고가는 것일까?

 

이날 임원을 수행해 사측 실무자로 참석한 한 간부가 올해 산별교섭에 대해 조심스런 전망을 내놓는다.

 

“과연 산별교섭이 제대로 갈 수 있겠습니까? 우선 각 회사마다 처한 현실이 다른데요. 노측에서는 어떨지 모르지만 회사 입장에서 보면 타사는 경쟁상대일 뿐입니다. 경쟁상대가 한 자리에 앉아 입장을 조율한다는 것이 가능하겠습니까? 솔직히 그런 경험도 없고요.”

 

“회사들마다 격차도 상당히 커요. 그 차이를 하나의 틀로 맞춘다는 것이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기업의 지불능력은 성과에 따라 모두 다른 것 아닙니까?”

 

다른 회사에서 온 사측 간부도 같은 의견이다.

 

“준비위는 구성해서 상견례 자리까지 왔지만, 본교섭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기업의 리더들은 산별이 뭔지 잘 모르고 관심도 사실 없습니다. 노조에서 밀어붙이니까 어쩔 수 없이 따라가기는 하지만 사실 저도 산별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처음 이야기를 꺼낸 간부의 말이다.

 

“산별이 실무자한테는 좋은 핑계거리가 되죠. 개별기업에서 받을 수 없는 요구도 산별노조에서 요구하더라고 말하면 되니까요. 이런 말도 있습니다. 산별노조로 가면 노무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일이에요. 밥그릇이 많아지니까. 농담 삼아 일자리 창출 면에서는 산별만한 게 없다고들 이야기해요.”

 

외국의 사례를 들어 산별이 어려울 거라고 전망하는 이도 있다.

 

“사실 금속노조가 모델로 삼고 있는 게 독일의 IG메탈 아닙니까? 그런데 IG메탈이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건 아니잖습니까? 오랜 세월 동안 노사간에 밀고 당기기를 반복하면서 하나씩 제도로 만들어진 거죠. 그걸 한 순간에 모두 따라가려고 하는 건 욕심이라고 봅니다. 산별이 가능하려면 산별로 가서 좋아질 거라는 전망을 보여줘야 갈 게 아닙니까? 그런 메리트도 없는데 밀어붙인다고 산별이 되겠어요?”

 

“지금 유럽의 산별노조들은 오히려 산별교섭에서 기업별교섭으로 바뀌고 있죠. 산별교섭으로 가야한다고 주장하는 건 우리나라 환경에는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올해 산별교섭의 성사여부가 노사관계의 핵심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하는 관계자들이 많다. 금속노조와 노동계는 올해 반드시 산별교섭을 성사시키겠다고 벼르고 있다. 반면 사측 당사자들은 아직 혼란의 와중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구나 금속노사의 산별교섭 성사여부가 노동계의 산별전환 속도를 가늠하는 바로미터가 되고 있어 부담이 더하다. 지금 노사의 이목이 금속노사의 산별교섭에 쏠리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