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한미 FTA’ 왜 서두르나
미국, ‘한미 FTA’ 왜 서두르나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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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최대 제조업협회, “한국과 FTA 먼저 하자”

제조업·서비스업 모두 손해 볼 것 없다는 계산 깔려

 

지난 몇 년간 미국의 자유무역협정(FTA) 추진 대상국에서 한국은 후순위에 속했다. 그러나 부시정부 2기 출범과 함께 한미 자유무역협정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2월 3일 서울에서 열린 ‘한미 FTA 사전 실무점검협의 제1차 회의’에서 양국은 올 상반기 중 타당성을 검토하는 사전협의를 2∼3차례 더 연 뒤 그 결과를 토대로 통상장관 회담에서 FTA 추진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한미 투자협정(BIT) 논의가 교착 상태에 빠진 가운데 양국이 갑작스럽게 자유무역협정 조속 추진으로 입장을 바꾼 배경이 주목되는 가운데 전미제조업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Manu factures)가 한국을 FTA 우선 체결국으로 선정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전미제조업협회는 주요 대기업을 비롯해 1만4천여 개의 회원사를 거느린 미국 최대의 업종단체로 이 단체의 정책 건의는 업계 공식입장으로 인정돼 미국 정부와 의회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

 

“한국의 무역 장벽을 제거하라”
전미제조업협회는 올 1월 ‘미국의 무역협상 의제’라는 문서를 통해 우리나라와 인도, 말레이시아, 이집트, 뉴질랜드 등 5개국을 FTA 우선 체결국으로 선정하고 부시 정부와 의회에 이들 나라와 FTA를 우선 추진할 것을 건의했다.


지난 2001년부터 본격적으로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한 미국에서 제조업단체가 구체적인 나라를 지목하면서 협정 체결을 요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이 건의서에서 협회는 각각의 국가와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미국 제조업계가 어떤 이익을 보는지 상세히 분석했다. 분석에 따르면 2010년까지 미국의 대(對)한 수출은 2003년의 2배 수준인 360억 달러로 늘 것으로 전망됐으며 한미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추가 수출증대 효과가 25%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의 제조업계가 FTA 체결에 적극 나서지 않았던 것은 무역장벽 제거로 인해 미국 제조업계도 적지 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가격경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오히려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해 왔다.


이번에 전미제조업협회가 중국, 일본, EU 등 무역규모가 큰 국가들과의 FTA에는 유보적인 태도를 보인 반면 한국, 인도 등 5개국을 상대로는 FTA를 시급히 추진할 것을 요구한 것은 이들 국가들과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돼도 미국 제조업체로서는 별로 손해 볼 것이 없다는 계산이 깔린 것으로 보인다.


특히 우리나라에 대한 미국의 무역적자가 지난해 198억 달러로 사상 최대를 기록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무역적자 증가율이 높은 나라 1위로 기록됐다. 현재 미국 제조업제품에 대한 우리나라의 평균관세율은 6.1%인 반면 우리 상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관세율은 2.3%로 격차가 있다.


전미제조업협회는 불합리한 관세율 격차가 없어진다면 수출 증가율이 수입 증가율을 웃돌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은 지적재산권 우선감시대상국
반면 전미제조업협회는 한국과의 FTA 추진 장애 요소로 한국정부의 일부 산업 보호정책과 지적재산권 보호 미흡 등을 강력하게 지적하고 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미주팀 나수엽 전문연구원은 “전미제조업협회의 건의로 민간부문의 한미 FTA 논의가 활발해지겠지만, 협상의 선결 요건으로 한국의 불공정무역관행의 시정을 지적하고 있어, 통상마찰이 심화될 우려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최근 무역 자유화에 대응하기 위해 지적재산권 보호 대책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 미국정부가 발표한 ‘STOP’ (조직적 해적행위 단속)전략이 대표적인 예. 이 전략은 자국의 민간기업들이 보유한 지적재산권을 보호하기 위해 각종 해적판과 모조품의 미국 내 유입을 완전 차단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대대적인 지재권 침해 단속계획으로 주된 단속 대상에 중국은 물론 우리나라도 포함됐다. 이 계획이 발표된 뒤 전미제조업협회 등 미국 재계는 일제히 환영의 성명을 발표했다.


전경련의 한 관계자는 “지적재산권 보호에 1차적 목표가 있겠지만 모조품의 미국 내 유입을 완전히 막겠다는 점을 유례없이 강조한 것으로 보아 자유무역협정 때 일종의 비관세 장벽을 치겠다는 전략도 엿보인다”고 분석했다.


현재 우리나라는 미 행정부가 지정하는 지적재산권 침해 우선감시대상국(PWL)에 포함돼 있다. 2003년까지 이보다 한 단계 낮은 감시대상국(WL)에 포함됐었으나 지난해 1월 우선감시대상국으로 경계수준이 강화된 뒤 아직 이전단계로 회복되지 않고 있다.


미국은 실리·명분 모두 챙기는데, 우리는?
미국이 지난 1998년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BIT 대신 FTA로 방향을 튼 것은 결국 미국제조업의 수출증대, 서비스시장 개방, 지적재산권 보호 등의 ‘실리’에 한반도 정세 안정이라는 ‘명분’까지 모두 챙길 수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한미 FTA의 실익과 피해에 대해 별다른 공론화 없이 ‘거대 경제권과의 FTA는 득이 된다’는 수준에서 실무협의가 시작되고 있어 또 다른 혼란과 갈등을 예고하고 있다.

<미니인터뷰> “한국 무역장벽·불공정 거래관행 해소해야”


전미제조업협회
제임스 버그(James Berges) 부회장


 

한국을 FTA 추진 추천국으로 선정했는데?
▷지난해 6월부터 한국, 유럽연합(EU), 일본, 인도 등 21개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체결 효과를 분석했다. 이번에는 실제 체결 타당성 및 효과가 높은 국가를 5개로 압축한 것이다. 당초 일본과 대만도 FTA 우선 협상국으로 고려했지만 일본은 업종별로 FTA 효과가 많이 엇갈리고, 대만은 중국의 입장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에 제외했다.

 

한국은 애초에는 우선 고려 대상국이 아니었다고 알고 있다.
▷우선순위가 조금 떨어졌던 것은 사실이지만 최근 한국 정부도 적극 나서고 있는 것으로 안다. 미국의 2004년 한국 수출액은 288억 달러로 수입액인 342억 달러보다 54억 달러나 적었다. 현재 미국상품에 대한 한국의 평균관세율은 6.1%지만 한국 상품에 대한 미국의 평균관세율은 2.3%밖에 안 되기 때문에 무역 장벽을 빨리 제거할 필요가 있다.

 

일부 업계와 노동계를 중심으로 거대 경제권과의 자유무역협정 추진에 대한 우려 목소리도 있다.
▷알고 있다. 미국 내에서도 어느 나라와 체결하는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업계별로 찬성과 반대가 공존한다. 제조업 내에서도 가격경쟁력이 취약한 중소 제조업체들은 오히려 보호무역조치를 강화해 줄 것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것은 자국의 산업정책으로 보호할 문제이지 자유무역협정 자체를 거부할 문제는 아니라고 본다.

 

한-미 FTA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정부의 보조금 등을 지적했는데?
▷일부 업종에 대한 정부 보호만 문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지적재산권 보호의 취약성 등 비관세장벽, 스크린쿼터 문제로 대표되는 문화·서비스 시장 개방, 농수산물 분야 등 양국이 이해를 조정하고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FTA의 실질 추진은 어렵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