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체협약, ‘국경’ 못 넘는다
단체협약, ‘국경’ 못 넘는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8.04.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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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사법재판소 판결 “현지 국가 법규 있어야만 권리 있어”
유럽노동조합연맹, ‘임금 덤핑’ 우려 … 지침 개정 논의 촉발

타국에서 파견된 근로자와 관련한 노동조합의 쟁의행위가 정당한 것인가 여부를 둘러싼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이 향후의 ‘임금 덤핑’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해석되는 등 논란이 일고 있다. 

 

스웨덴 스톡홀롬 근처의 학교 리노베이션 공사 공개입찰을 딴 라트비아(Latvia) 회사인 라발(Laval)사는 14명의 근로자를 스웨덴으로 파견했다.

이 14명은 다른 스웨덴의 근로자보다 40% 적은 임금이 지급됐고 이것이 스웨덴 건설노동자의 입지를 위협할 수 있다고 판단한 스웨덴 노동조합은 라발사에 현지 단체협상에 의해 규정된 근로조건을 지킬 것을 요구했다.

 

‘국경’이 제한하는 단체협약


2004년 11월 라발사는 노동조합측의 요구를 거절했다. 이에 스웨덴 노동조합은 라발측 공사현장에서 현장을 봉쇄하는 시위를 벌였고, 라발측은 스웨덴노동법원에 이러한 행동이 불법이라고 고소했다.

 

 

노동조합측은 스웨덴 법에 따르면, 노동조합은 고용주가 어디에 본사를 두고 있던지 간에, 현지에서 체결된 단체협상을 고용주에게 강제할 수 있도록 쟁의행위를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재 스웨덴은 산별노조 체제로 산별협약이 관련 산업 전체에 효력을 갖는 시스템을 갖고 있다.

 

이에 대해 스웨덴 노동법원은 유럽사법재판소에 노동조합측의 행위가 ‘서비스 제공이라는 틀 내에서의 파견근로자’와 관련한 EU 법(유럽위원회 지침 96/71/EC)을 위반한 것인지에 대해 해석을 요청했다.

 

2007년 5월 공개된 유럽사법재판소 법률자문관 8명 중의 한 명인 Paolo Mengozzi의 자문 의견은 스웨덴 노동조합의 입장을 지지하는 것으로 스웨덴 노동조합의 행위가 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Paolo Mengozzi 법률 자문관은 ▲노동조합의 행위는 EU법 관할 범주에 해당함에 따라 노동조합은 상기법에서 규정한 사업자의 서비스를 제공할 권리를 존중해야 함 ▲ 고용조건을 스웨덴 노사정이 협상하는 것은 법을 위배하는 것이 아님 ▲노동조합의 현장봉쇄는 노동자의 권익보호와 사회적 덤핑 방지와 같은 공공이익을 위한 행동이고, 또한 그 목적달성에 비해 수단이 과도하지 하지 않았으므로 수용 가능함 등의 이유를 들어 노동조합의 손을 들었다. 이 입장은 유럽노동조합들에 의해 크게 환영받았으며, 특히 유럽의회의 사회당 당수인 Poul Nyrup Rasmussen은 “유럽단체협약에 매달려있던 칼을 제거하는 것이며, 일자리를 찾아서 다른 나라로 이동하는 근로자들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하지만 2007년 말에 내려진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이 의견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으로 라트비아(Latvia) 회사인 라발(Laval)사가 스웨덴에 파견한 노동자들과 관련된 판결에서 스웨덴 건설노동자 단체협약에 구속될 필요가 없다고 판결했다.

 

 

  

법이 인정하는 ‘범주’ 지켜야


이러한 최종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했지만, 스웨덴 노동조합의 행동은 사업자의 서비스를 제공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러한 최종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인정했지만, 스웨덴 노동조합의 행동은 사업자의 서비스를 제공할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노동조합의 단체행동은 EU법 하에서만 이루어질 수 있으며 EU법은 합법적인 목적과 공공이익(public interests)이라는 결정적인 이유들(overriding reasons)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인데, 스웨덴 노동조합의 행위는 스웨덴 노동시장 내 사회적 덤핑과 싸우려고 한 것이긴 하나, ‘공공이익’을 증진하려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재판소는 EU 지침에 의해 규정된 것처럼, 파견근로자 근무 국가 내에 임금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이 있는 경우, 사업자가 파견근로자에 대한 동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지 않을 경우는 쟁의행위가 가능하지만 스웨덴의 경우에는 이러한 최소한의 규정이 없는 상태이므로, 외국 사업자에게 이를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적정성의 원칙’(principle of proportionality)에 위배된다고 판결했다.


이에 따라 다른 국가에서 설립된 사업자에게 최소한의 임금에 대한 정확한 사업자의 의무를 규정하는 현지 국가의 법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단체행동을 하는 것은 허락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경영계 ‘환영’ 노동계 ‘우려’


이번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은 유럽경제사회위원회(EESC)가 지칭하는 소위 ‘역동적인 타협’(Dynamic Compromise)에 해당하는 것이다. 재판소는 노동조합의 단체행동권을 배제하지 않았으며, 이것은 유럽연합 시민들의 기본적인 권리로 인정했지만 이러한 행위는 EU 법이 인정하는 범주를 지킬 필요가 있다고 보았다. 

유럽 경영계는 재판소의 판결을 ‘균형된 판단’ 혹은 파견근로자 관련 EU 지침에 대한 ‘명확한 판단’이라고 환영하면서, 이러한 판결이 유럽연합 단일시장의 발전을 앞당길 것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유럽노동조합측은 이러한 판결이 사회적 덤핑을 심화시킬 것으로 보았고, 유럽노동조합연맹(ETUC)은 파견근로자 지침에 대한 협소한 해석은 ‘평등대우’와 ‘국적과 무관한 근로자 권리보호’라는 원칙을 증진하려는 노동조합의 노력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비난했다.

 

이러한 논쟁은 향후 이러한 지침의 개정에 대한 논의를 불러올 것으로 보이며 스웨덴정부도 임금 관련 협상에 대한 법안을 보완 및 강화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            

 

정리_ 국제노동협력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