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촛불’ 일렁이다
대한민국, ‘촛불’ 일렁이다
  • 성지은 기자
  • 승인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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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발한 민심 ‘광우병’은 계기일 뿐

2008년 5월, ‘미친소’로 시작해 어둠을 밝힌 거리가 ‘세상’으로 번지고 있다.


5월 한 달. 전국 각지에 촛불이 타올랐다. 차가운 시멘트 바닥에서, 이슬 맺힌 잔디 위에서 그들은 촛불을 켰다. 모포로 감싼 아들을 품에 안고 있는 아빠, 함께 촛불을 들고 있는 할아버지와 손녀. 집회 중간 중간 거울을 보며 앞머리를 매만지고 립글로스를 바르는 앳된 소녀. 서로 기대어 앉아 있는 젊은 연인.


어두운 밤을 밝힌 촛불은 정책의 허점을 고발했고 사회적인 여론을 형성했으며 전문가들이 국민 앞에서 논쟁하도록 만들었다.


쇠고기 협상 타결 시점부터 정부 발표와 토론, 청문회와 시사 프로그램 등을 통해 나온 정부 고위 관료들의 발언은 즉각적인 평가를 받았고, 거침없는 ‘비판’과 ‘지지’는 정부와 국회, 언론, 전문가들을 긴장시켰으며 그 어느 때보다 논리를 대동한 갑론을박이 활발했다.


‘참여’와 ‘소통’을 상징하며 대한민국을 밝히고 있는 촛불. 그들은 말한다.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함께 살고 싶다고.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미친소, 엉덩이에 ‘불’났다


그리고, 누렁이의 눈물

영화 ‘식객’의 한 장면. 도살장으로 걸어 들어가던 소가 고개를 돌려 주인을 바라본다. 큰 눈에 눈물이 맺혀있다. ‘최고의 육질’을 위해 공들여 여물을 먹이고 키우던 소를 도살장으로 들여보내는 주인공의 눈에도, 관객의 눈에도.

 

전남의 한 지방 축산 농가에 따르면 생후 6개월 된 송아지를 사서 고기소로 키우는 경우 연 평균 150여 만원이 든다고 한다. 이는 육질 1등급을 받기 위해서는 보리짚이 들어간 풀 사료를 먹여야 하는데 이 값이 비싸기 때문이다. 현재 거래되는 송아지는 수소가 230만~240만원, 암소는 200만~210만원에 거래된다.


이 소를 키워 고기소로 팔 때, 1등급의 경우  ㎏당 1만원 이상 받을 수 있으나, 1등급을 받지 못하면 ㎏당 평균 6천원 정도, 그보다 더 못 받을 수 있다. 생후 6개월이 된 소를 사서 고기소로 키울 경우 600kg이 됐을 때 판매하는데 거세한 수소는 생후 36개월, 거세하지 않은 수소는 26개월 가량 후에 고기소로 판매할 수 있다.


즉 거세한 수소를 고기소로 키우는 비용을 따져보면 송아지 240만원에 30개월 사료 약 375만원, 30개월 짚 약 50만원에 기타(약 등) 약 30~50만원으로 약 690만~710만원이 된다.


이 소가 1등급 받을 경우, 600㎏ × 1만원으로 600만원, 1등급을 받지 못할 경우는 600㎏ × 6000원으로 360만원을 받을 수 있다.

 

대학 등록금이며 노후 자금이고 고향 친구였던 대한민국의 누렁이는 깊은 한숨을 내쉬는 주인을 뒤돌아본다. 사람들은 ‘광우병’의 두려움에 떨고 우리 축산 농가는 빚더미 속을 헤매고 있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을 생각하는 마음이 갸륵하기 짝이 없습니다. 닭고기 못 먹고, 쇠고기 못 먹고, 이번 기회에 다이어트 확실히 해서 몸짱 대한민국 만들려나 봅니다.”

“국민을 바보로 아는 대통령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습니다.”
“정치보다는 게임이 좋고 나라에서 하는 일, 관심도 없던 학생입니다. 대통령이 불안에 떠는 국민을 똑똑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저는 고 3입니다. 지금 수능에 목 매 봐야 죽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지난 4월 18일, 미국이 한미 FTA의 전제조건으로 내걸었던 쇠고기 협상이 전격 타결됐다. 이 날 농림수산식품부가 발표한 수입 방안에 따르면, 1단계로 ‘30개월 미만’ 소에서 생산된 갈비 등 뼈를 포함한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고 미국이 앞으로 강화된 동물사료 조치를 공포할 경우 국제수역사무국(OIE) 기준에 따라 연령 제한을 없애기로 해 사실상 ‘전면개방’을 의미한다.

 

이 날 기사 댓글을 시작으로 ‘광우병’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인터넷 포털에서 ‘광우병’에 대한 글이 확산되고 인터넷 까페와 블로그들을 중심으로 여론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정부가 방침을 고수하며 ‘미국산 쇠고기는 안전하다’는 내용을 골자로 본격적인 홍보에 돌입하자 인터넷 상의 문제제기는 더욱 확산됐다. 산발적인 목소리가 결집되기 시작했고 온라인상에서 여론을 형성하던 1500여 개의 각종 모임과 단체가 모여 ‘광우병 반대 국민대책회의’를 결성했다. 그리고 촛불집회는 이제 ‘시스템’을 갖춰 움직이기 시작했다.

 

서울 대학로와 청계천, 시청, 여의도 앞에서 개최되며 큰 이슈를 불러일으켰던 촛불집회는 전국으로 확산됐다. 매일 20여 개, 많게는 100여 개 지역의 시내와 전철역, 광장, 공원에서 집회는 열리고 또 열렸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한편 반대 여론을 형성하던 인터넷 상에서는 ‘실제적인’ 행동이 시작됐다. 포털 사이트인 미디어 다음의 아고라에 올라온 ‘이명박 대통령 탄핵’ 서명운동은 5월 26일 현재 133만1560명을 기록하고 있으며 국회 민원을 통한 ‘탄핵’ 청원도 계속되고 있다. 또한 ‘광우병 괴담 등 허위사실 유포’를 처벌한다는 경찰청의 발표가 있자 ‘나도 잡아가라’는 네티즌들의 ‘자수 행렬’로 사이트가 마비되기도 했다.


지난 5월 14일 시청 앞 광장 촛불 집회에 참여했던 한 시민은 “다음 아고라를 통해 토론을 하다 생각이 맞는 사람들끼리 까페를 개설했는데, 우리가 생각하기에는 이래봤자 이명박 정권이 꿈쩍도 안할 것”이라며 “지난 주 대학로 광장에서 까페 회원들이 함께 가두 행진을 하며 광우병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를 홍보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시민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할 때가 됐다”며 “지금은 이것이 최선이기 때문에 함께 참여를 하고 있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을 모아 나갈 것”이라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지난 5월 24일 민주노총 전국 단위사업장노조 대표자 결의대회에 발언자로 나서기도 한 안티 이명박 까페 운영자인 대학생 이모씨(ID 나무도령)는 “사실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일에만 적극적으로 나서는 민주노총 대표자들에게 실망했다”며 “민영화나 쇠고기 수입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있는데 이 같은 각각의 이슈만 내세워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그는 “그 동안 국민들은 대통령의 무사 안일한 태도와 막가파식 정책을 지켜보며 참아왔지만 경찰이 시민을 폭행하고 여론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상황에서 더 이상 좌시할 수 없다”며 “한계는 없다. 언제까지도 없다. 이명박 대통령이 그 자리를 내놓을 때까지 설사 우리가 와해되고 좌절되더라도 끝까지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타오른 촛불, 거리로

광우병 반대 국민대책회의는 1500여 개의 각각 다른 단체가 모여 있다. 시민 사회단체를 비롯해 안티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위한 까페, 환경단체, 노동단체가 하나의 이슈로 모인 것이다. 그러다 보니 촛불집회에서는 여러 가지 구호와 다른 입장, 주장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모 씨는 “국민대책회의는 ‘상호 협조’를 해서 만들어 나가는 것이지 ‘주최’라고 볼 수는 없다”고 평가했다.


이해관계로 모인 하나의 단체가 아니라 힘을 분산시키지 않기 위해 ‘상호 협조’하고 있으며 스스로 움직이는 여러 단체들이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경찰 측에서 ‘계획된, 조직적 움직임’이라고 말하는 산개 투쟁 역시 그 때 상황에 따라 ‘광화문’으로, ‘동대문’으로, ‘신촌’으로 가자는 그 자리에서의 ‘대의’가 결정하는 움직임이다. 시간과 장소를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지하고 네티즌들은 촛불 집회에서, 온라인에서 통성명을 하고 함께 토론하며 관계를 형성한다.

 

지난 24일, 25일 청계천 광장에서 집회에 참석했던 68명의 시민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검찰과 경찰은 집회가 불법 집회로 변질될 경우 엄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김경한 법무부 장관은 “평화적 시위는 보장하되 불법 집회는 주동자와 배후 조종자를 끝까지 검거하라”고 검찰에 지시했고, 어청수 경찰청장은 “사법처리 대상이 수백 명이 되더라도 반드시 처벌하겠다”고 말했다.

 

이 같은 발언은 상황을 악화시켰다. ‘미친소 반대’, ‘아직 15년 밖에 못 살았어요’라는 피켓을 들고 문화제에 참여하던 시민들은 27일 ‘고시 철회’와 ‘연행자 석방’의 구호를 외치며 서울 청계천에서 광화문 일대와 종로를 거쳐 가두시위를 벌이다 새벽에 강제 해산됐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벌써부터 온-오프라인의 논쟁은 뜨겁다. 혹자는 ‘참여파’, ‘진격파’, ‘강경파’ 등 평화 집회를 요구하는 측과 힘을 보여줘야 한다는 측으로 ‘파’를 나누기도 했다.

 

쇠고기 개방 논란 속 어록 등장

지난  7일 열렸던 쇠고기 청문회와 100분 토론을 둘러싸고 ‘어록’이 만들어지며 회자되고 있다. 청문회에서는 ‘승리의 조포스(조경태 의원)’ ‘강달프(강기갑 의원)’ ‘랩퍼영호(이영호 의원)등의 스타가 탄생하기도 했다.

 

■ 정운천  농수산식품부장관 = “광우병은 지구상에서 사라져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발생 안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 정인교  인하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광우병 걸린 수입 소를 먹을 확률은 로또 1등에 당첨이 되고 당장 은행에 바꾸러 가다가 벼락 맞아 죽는 두개의 일이 동시에 일어날 확률”


■ 황인구  시민논객 = “(이상길 단장님) 이번 쇠고기 협상에서 많이 힘드셨죠? 저희 국민들도 무척 힘듭니다.”


■ 조경태  통합민주당 의원 = “30개월 이상의 값싸고 질 좋은 소가 있습니까?” “장관은 30개월 이상 된 소 꼭 드세요. 내가 빚을 내서라도 사다줄 테니까.”


■ 양석우  100분 토론의 양 선생님 = “지금 대통령깨서는 국민들을 자기가 채용해 가지고 일 시키고 언제든지 자를 수 있는 그런 직원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거죠.” “차가 브레이크가 안 들어요. 이게 쇠고기 문제”


■ 강문일  국립수의과학검역 원장  = “광우병 소라도 의심되는 부분만 칼로 도려내면 생으로 먹어도 괜찮다.”


■ 이계진  한나라당 의원 = “찬 바닥에서 자서 소가 발이 저려 못 일어날 수도 있다.”


■ 김우남  통합민주당 의원 = “세계에서 가장 좋은 쇠고기가 수입됐다고 광고하는데 미 농무부 서울 출장소가 생긴 줄 알았어요.차라리 옆에다 경축이라고 쓰시지요?”


■ 이영호  통합민주당 의원 = “일본 OIE 기준 안 따르겠다고 했습니다. OIE 의장, 미국농림부 파견 공무원 맞죠? 이거 농림부 자료죠? 농림부 자료 아니라고 우길 겁니까? 여러분들의 세포에서 뇌가 송송 구멍 송송 보이는 것들입니다.”

촛불집회 주도 세력이 10대에서 20~30대로 변화했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이제 ‘정치적’인 조직화를 보이고 있다는 말도 보태졌다. 또는 24일 청계천 집회에서 ‘전교조’와 ‘공무원노조’가 촛불집회에 합류했다는 보도를 통해 ‘배후설’을 또 다시 등장시키기도 했다.

 

정부가 연기한 고시 강행 방침을 밝히고 있는 터라 혼란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지속적으로 집회에 참여했던 시민들 간, 그리고 정부와 시민 간 뜨거운 논쟁은 이어지고 있으며 통합민주당 등 ‘제도권’ 정치세력과 단체들이 투쟁을 선언하고 나선 가운데 ‘성난’ 시민들의 행보가 주목되고 있다.

 

촛불, 이제 어디로 가나

빛나는 미래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설레던 열아홉 살의 소년이 용서받을 수 없는 폭력배처럼 비난받게 된 것은 결코 온순한 소년이 포악한 청년으로 성장했기 때문이 아니라 이 시대가 ‘가장 온순한 인간들 중에서 가장 열렬한 투사를 만들어 내는 부정한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유신군사법정>에서 한 청년이 부르짖던 외침

    -<유신군사법정>에서 한 청년이 부르짖던 외침

 

이제 ‘광우병’에 대한 논란은 오히려 한 풀 꺾인 모습이다. 촛불 집회의 학생 주도가 화제로 떠오르고 집회가 거리로 격화되며 경찰청의 강력 대응 의지가 표명되자 인터넷에서는 5.18 당시 사진과 시민들의 참여에 대한 글이 회자되고 있다.


‘정치화’가 되었다는 그들. 과격한 폭력 집회를 일삼는다는 그들은 닌텐도를 사고 PC방에서 밤새 슈팅게임을 즐기기도 했을 것이다. 88만원 세대에 분노하지만 아직 취업보다는 친구들과 술을 마시는 것이 즐거웠을 것이며 때로는 참고서를 사기 위해 부모에게 거짓말을 하고 연예뉴스를 뒤적거리며 ‘성형 논란’에 참여했을지도 모른다. TV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을 즐겨보고 대선 때는 가족 소풍을 갔을 수도 있다.


혹자의 말대로, 이들은 혼란스러우며 다소 즉흥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들은 소통하고 논쟁하고 주장하며 ‘진실’을 찾고 ‘정의’를 외치며 4.19와 5.18이 학생들의 손에서 시작해 역사를 바꾼 것처럼, 이제 우리들이 세상을 바로잡겠다고 나섰다. 그들에게 “너희는 아직 공부나 할 때”라고 말해 줄 것인가. “그만하라”고 할 것인가. “함께 하자”고 할 것인가. 아니면 “뜻대로 하라”고 할 텐가.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지금, 2008년 5월의 촛불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 이현석 기자 hslee@laborplus.co.kr
지난 25일 민주노총 이석행 위원장과 민주노총 지도부가 장관 고시를 앞두고 청계천 광장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24일과 25일, 경찰과 촛불 집회에 참석하던 일부 시민들이 격돌한 그 시점에 청계천 광장에 누운 이석행 위원장의 발목을 잡아당긴 취객이 있었으니.


“이석행, 이 XX, 너 XX”
화들짝 놀란 노숙 농성장 뒤로 그 때까지 청계천 광장을 떠나지 않고 있던 학생들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아저씨, 왜 이래요?”
점점 시민들이 몰려오자 당황한 그는 도로 저 편으로 달아났고 그 뒤를 시민들이 쫓았다.

 

26일 오후의 뜨거운 땡볕 아래에 있던 이석행 위원장은 “자신들은 추위에 떨면서 이불을 주고 가기도 하고 오가며 건넨 음료수가 여기 저기 쌓여있다”며 “자신들을 위해 투쟁해 달라는 시민들, 절대 그만두지 말라는 학생들이 많다”고 전했다.

 

“이런 시민들의 반응을 연맹 위원장들도 함께 봐야 한다”고 말한 이석행 위원장. 내리쬐는 땡볕, 청계천 광장에 덩그렇게 놓여있는 돗자리 위에 앉아있지만 민주노총 지도부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 한껏 고무돼 있는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