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미친소 운송 거부
노조의 사회적 책임과 미친소 운송 거부
  • 참여와혁신
  • 승인 2008.06.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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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 이익과 국민 전체 이익은 배타적이지 않다

정호희
전국운수산업노동조합 정책기획실장
청소년들이 주축이던 촛불문화제가 이제는 다양한 계급·계층과 세대, 집단들이 결합하며 역동적인 드라마를 연출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시작된 지난 5월 2일 발표된 운수노조의 ‘미국 쇠고기 입항저지 및 운송거부’ 성명은 이 과정에서 여러 가지로 영향을 미쳤다.

 

 

운수노조, 운송 거부 통해 사회적 관심 촉발시켜

 

첫째, 촛불의 중심에 서있던 네티즌들의 뜨거운 반응이었다. 운수노조 성명에 대한 지지글로 운수노조 홈페이지는 서버가 다운되고, 자발적으로 성금을 모으는 등의 움직임도 일어났다.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뜨거운 교류와 소통이 시작된 것이다.

둘째, 금속노조를 비롯한 주요 산별노조 혹은 연맹들이 앞다퉈 각자 산업과 사업장 특성에 맞는 사업과 투쟁을 결의하고 집행하고 있다.

 

셋째, 실질적으로 수입 재개를 저지하고 있다. 15일로 예정됐던 장관고시가 두 번, 세 번 연기되고 있는 것이다.

 

넷째, 다양한 계층과 집단이 ‘자기의 방식으로’ 이 운동에 결합하고 있다. 학자와 공무원의 양심선언이 이어지고, 여성단체들이 자발적으로 보관창고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은 이미 장외투쟁을 진행하고 있고, 보수야당들도 “기꺼이 촛불의 배후가 되겠다”며 장관고시 강행시 장외투쟁 불사를 선언하고 나섰다. ‘원더걸스 소동’으로 욕을 먹던 서울대생들은 동맹휴업 찬반투표를 하고 있다.

 

다섯째, 쇠고기 문제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사회적 의제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과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대운하 건설 문제와 교육, 의료보험 민영화, 기름값 문제 등 현재 우리 사회의 이슈가 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국민적 관심과 참여가 높아지고 있다.

 

여섯째, 운동의 방식이 다변화되고 빠르게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촛불을 든 의사표현에서 시작해 가두시위로 이어지고, 서울에서 시작돼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부 성급한 사람들이 ‘항쟁’을 예고할 정도로 변화와 진행 속도는 빠르다.

 

 

 

 

노동조합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반응 달라진 까닭 고민해봐야


물론 이 모든 것이 운수노조의 성명 하나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짧은 성명과 그것을 설명하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식으로 쇠고기 국면을 확대시키고 이어갔다. 예컨대 막연한 정치적·정책적 문제로만 보였던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실제로 그것을 하역하고 운송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들과 그들의 집단인 노동조합의 존재를 발견하고 확인시킴으로써 대국민적인 문제로 확대시켰다. 

물론 이 모든 것이 운수노조의 성명 하나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짧은 성명과 그것을 설명하는 인터넷 매체의 기사는 대단히 효과적인 방식으로 쇠고기 국면을 확대시키고 이어갔다. 예컨대 막연한 정치적·정책적 문제로만 보였던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를 실제로 그것을 하역하고 운송하는 사람들, 즉 노동자들과 그들의 집단인 노동조합의 존재를 발견하고 확인시킴으로써 대국민적인 문제로 확대시켰다. 

 

그리고 그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필수공익사업장, 업무개시명령제, ‘떼법’ 엄단 등 여러 가지 제약을 안고 있다는 것, 임금손실과 해고, 구속 등 예견되는 피해에도 불구하고 투쟁에 나서겠다는 진정성 있는 자세가 시민사회와 노동조합의 전격적인 결합을 이루어낸 것은 아닌가 생각한다.

 

노동조합 입장에서도 국민들의 반응에 처음에는 얼떨떨했다. 예전에 늘 해왔던 일인데, 이번에 유독 이렇게 뜨거운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까?

 

철도노동자들은 ‘철도의 공공성’을 가지고 파업을 했고, 현대자동차는 ‘한미 FTA 반대 정치파업’을 감행했었다. 노동조합, 특히 산별노조의 경우 항상 정치적·사회적 의제를 내걸고 다양한 활동을 해왔음에도 유독 쇠고기 문제를 통해 높은 결합력과 시너지 효과를 낸 것에 대해서 노동운동은 깊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할 것이다.

 

노동자의 이익과 국민 전체의 이익이 배타적이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고 생존권적 요구와 사회적 의제를 결합할 때에만 목표에 도달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 이번 과정의 중요한 교훈일 것이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주창하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기조는 심각하게 재검토되지 않으면 안 된다. 쇠고기 국면이 점점 더 첨예한 대결로 가고 있는 지금, 고유가 문제가 또 하나의 국가적인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이 절묘한 지점에 운수노조가 서 있다.

 

미국 쇠고기 운송거부가 정치적인 문제라면 화물연대를 비롯한 운수노동자들에게 유가문제는 생존권의 문제이다. 정치적 이슈와 생존권 투쟁이 맞물리면서 너무도 자연스럽게 미국 쇠고기의 운송은 중단될지도 모를 일이다. 이명박 정부가 정책기조를 바꾸지 않으면 ‘얼리덕(얼리버드+레임덕)’의 위기보다 더한 위기가 닥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