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러시가 제조업 공동화 부른다
중국 러시가 제조업 공동화 부른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3.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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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력 있는 산업들도 중국행 봇물…제조업 지킬 대안 필요

정명기 교수 _ 한남대 중국·경제학부


IMF 외환위기 이후 몰아닥친 구조조정의 한파 속에서 노동시장의 구조변화가 가장 주목된다. 기업의 상시적 구조조정에 의한 정리해고의 일상화와 비정규직의 양산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이어지고, 임금상승과 기업 환경 악화를 이유로 제조업의 해외투자, 특히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이 급증하면서 산업공동화 현상과 함께 고용시장의 불안과 실업의 증가가 나타났기 때문이다.

 

제조업공동화는 세계경제의 글로벌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경제가 발전됨에 따라 여러 국가에서 나타나는 공통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그 결과가 가져온 사회경제적 결과를 면밀하게 인식하여 바람직하지 않고 피할 수 있는 변화에 대해서는 적극적인 대응책이 마련되어야 한다. 산업공동화가 심화된 이후에는 원상회복이 거의 불가능하고 사회적 비용이 과도하게 발생하기 때문에 이에 대한 철저한 대비가 최선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중국이 WTO에 가입하고 경제개혁과 개방속도가 빨라지면서 값싼 임금과 땅값 등의 생산요소 비용을 활용하기 위한 국내 제조업의 대중국 진출 역시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리적 인접성과 저렴한 생산요소 비용은 국제 경쟁력 약화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우리 기업들의 글로벌 경쟁력을 회복하는데 중요한 수단을 제공해 주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제조업의 해외이전이 제조업 활동을 위축시키고 제조업 기반을 붕괴시켜 고용불안을 야기할 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는 무역수지 악화와 경제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양면성을 지니고 있다.

 

경공업에 이어 중화학공업까지 중국으로
현재 우리나라에서 전개되는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은 선진국의 산업공동화 현상과는 사뭇 다르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우선 공동화의 속도가 매우 빠르게 이루어지면서 중국에 대한 투자가 보완투자 아닌 대체투자라는 점이다. 신발, 섬유의복 등 경공업 위주로 진행되어 온 투자가 최근에는 전자통신, 조립금속, 기계장비 등 중화학공업으로 빠르게 확산되면서 우리 경제의 자본축적을 둔화시키고 성장잠재력을 약화시켜 저성장 고실업구조를 지속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제조업공동화는 고용감소, 차세대 신기술산업 창출 기반 약화, 그로 인한 성장잠재력 감소 등의 악순환 고리로 이어질 우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중소제조업이 밀집한 지방공단의 몰락으로 지방경제의 침체를 야기할 수 있으며, 제조업 기반기술의 축적이 정체되어 차세대 신기술 창출 기반의 약화를 초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더욱이 제조업의 중국 러시로 나타난 고용감소가 서비스 산업이나 신산업에서의 고용창출로 보완되지 못함으로써 청년실업과 실질임금의 정체 등을 가져오기 때문에 국민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매우 크다고 하겠다.


우리나라의 대중투자는 1988년부터 시작되어 매우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특히 1992년 한·중 수교를 시작으로 한국 기업의 투자환경이 크게 개선되면서 1997년 외환위기 이전까지 급증세를 보였다. 1988년 1건, 1만 달러에 불과했던 대중국 투자는 외교수립을 계기로 1992년에는 170건, 1억4천만 달러를 기록하였고 외환위기 직후인 1996년에는 투자규모가 9억 달러를 상회하였다.

외환위기가 발생한 직후인 1997년, 1998년, 1999년에만 중국투자가 크게 위축되어 실질투자금액이 큰 폭으로 줄어들었지만 중국의 WTO 가입과 국내경기의 호전으로 2000년부터는 큰 폭으로 증가하기 시작했다.


이 같은 추세는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대중국투자 추이에서도 볼 수 있다. 외환위기의 직접적인 영향권에 들어선 중소기업들의 대중투자가 이 기간 동안 큰 폭으로 줄어든 반면 국내시장의 침체를 해외시장에서 찾으려는 대기업은 오히려 대중국 투자를 늘려갔다. 그러나 가혹한 구조조정기를 거친 중소기업들은 2000년 이후부터는 원가절감을 통한 경쟁력 확보를 위해 중국 진출이 다시 늘어나게 된다.

 

중소기업의 대중국 진출이 늘어나면서 중소기업의 투자규모가 2001년부터는 대기업의 투자규모를 상회하기 시작하였다. 특히 국내경기가 회복될 기미가 좀처럼 보이지 않자 중국 러시는 열풍으로 번져 작년에는 하루에 10건 이상의 대중국 투자가 이루어질 정도였다. 


대중투자의 증대에 따라 우리나라 전체 해외투자에서 대중국투자가 차지하는 비중도 총투자액 기준으로 2000년 13.5%에서 2004년에는 37.7%로 크게 증가하였다. 우리나라 전체 중소기업의 해외투자 중에서 대중투자가 차지하는 비중은 전체 중소기업 투자건수와 투자액의 각각 64.6%, 57.2%로 높게 나타나고 있으며, 우리나라 전체 대중국투자건수의 52.1%, 대중국투자액의 60.4%가 중소기업의 몫으로 중소기업 대중국투자의 높은 위상을 보여주고 있다. 

 

비용줄이기 넘어서 중국 내수 시장 겨냥
중국진출 동기가 인건비 절감이나 노동력 확보와 같은 요소지향적 성격이 강하다는 것은 중국 지역별 투자현황을 보면 알 수 있다.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한 비용추구형 투자가 주류를 이루고 있던 초기에는 지리적으로 근접한 지역과 현지 적응비용을 최소화하기 위해 조선족의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인 산동성과 동북 3성 지역에 대한 투자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그러나 최근 들어 비교적 내수기반이 강한 상해, 강소, 절강 등과 같은 중국의 화동지역과 북경 등에 대한 투자가 증대하고 있다.


그렇다고 투자지역의 다변화가 비용추구형 투자에서 내수시장 확보형 투자로 패턴이 변화했다고 속단하기는 이른 감이 든다. 화동지역에 대한 투자와 환발해 지역에 대한 투자가 큰 폭으로 늘고 동북3성에 대한 비중이 줄어든 것은 그동안 우리나라 기업들이 학습과정을 거쳐 중국현지의 사정을 숙지함으로써 조선족에 대한 의존도가 낮아지고 중국시장의 개방속도가 빨라지면서 인프라가 좋은 지역으로 투자가 집중되고 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특히 투자업종이 노동집약적인 경공업부문에서 자본기술집약적인 중화학공업부문으로 무게가 이동하면서 이런 경향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제조업의 대중국투자를 업종별로 보면 외환위기 이전에는 경공업부문이 28.8%를 차지하였으나 1998년부터 2004년까지는 그 비중이 16.0%로 크게 낮아지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러나 중화학공업부문에 대한 투자비중은 1988~1998년 66.7%에서 1998~2004년 70.5%로 크게 증가하였다. 특히 우리나라 산업의 성장동력인 전자통신장비와 수송기계부문의 대중국 투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그 비중도 19.1%, 7.4%에서 27.3%, 12.0%로 각각 상승하였다. 


이상의 분석에서 대중국 투자의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대중국 투자패턴이 중소제조업 위주로 구성되어 있고, 그 투자 속도가 선진국들에 비해 매우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산업발전정도가 선진국보다 낮은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중소제조업의 대중국 진출에 따른 제조업공동화 현상이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둘째, 비교열위산업인 경공업부문의 대중국투자비중이 상대적으로 축소되는 반면에 중화학공업부문의 투자비중이 커지는 것은 무역지향적 투자에서 시장지향적 투자로의 이행을 의미한다. 이러한 해외투자의 방향전환은 저임노동력이나 원자재 이용에 의한 비용극소화보다는 시장지배력을 강화하기 위해 기술·자본집약도가 높은 비교우위산업의 해외이전을 의미하는 것으로, 경쟁력 있는 국내제조업의 생산기반을 약화시킬 수 있는 가능성이 예상되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이 잠재되어 있는 셈이다.


셋째, 중국진출 동기가 인건비 절감이나 노동력 확보와 같은 요소지향적 성격이 강하다는 특징 때문에 투자지역이 지리적 근접성과 현지 적응비용이 상대적으로 낮은 동북3성에 집중되었으나 최근 들어 내수시장 확보를 위한 투자가 증대하면서 투자의 지역적 분산이 조금씩 나타나기 시작하였다는 점이다. 

 

지난해만 4만개 일자리 중국으로 떠나
대중국 직접투자가 국내 생산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투자의 형태에 따라 달라진다. 일반적으로 높은 인건비 상승 등으로 경쟁력이 약화된 비교열위 부문만 해외로 이전되는 경우 단기적으로는 국내투자나 생산 및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고부가가치 산업으로의 구조조정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생산 및 고용이 확대되는 긍정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지만 비교우위 부문의 해외진출이 늘어날 경우 국내투자가 위축되고 생산 및 고용이 감소하는 부정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통계자료의 미비로 대중국 직접투자가 국내생산 및 고용에 미치는 영향을 정확하게 계량화하기는 어렵지만 투자한 금액을 국내 투자로 전환했을 때 얻을 수 있는 대략적인 고용효과를 계산함으로써 일자리 감소규모를 추정해 보면 작년에 대중국 투자로 약 4만1000개의 일자리가 국내에서 사라졌음을 알 수 있다.

 

반면에 대중국 투자법인이 현지에서 고용하고 있는 숫자는 2001년 기준으로 약 79만명에 달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산업자원부의 조사에 의하면 중국진출 중소기업의 절반에 가까운 44.6%가 향후 국내 생산비중을 축소하거나 중단할 계획인 반면, 현상유지는 39.1%, 확대하겠다는 계획은 1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결과적으로 중소기업의 중국진출 확대는 국내생산기반의 약화와 고용유발효과의 감소라는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는 셈이다.

 

서부개척시대의 골드러시를 연상케 하는 질풍노도와 같은 한국기업의 중국진출에 따른 제조업 공동화 현상은 우리 사회의 깊은 명암을 가져오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를 해결하기 위해 노·사·정 모두가 머리를 맞대기로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서로의 속내는 다른 것 같다. 사측은 중국으로의 생산기지 이전은 빠른 임금상승 등에 의한 생산비용 절감을 위해 불가피한 일이기 때문에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조가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듯 하고, 노측은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않고 중국카드로 노동운동을 탄압하려는 저의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정부도 혁신적 중소기업을 육성하고 지역클러스터를 통한 고용창출을 꾀하고 있지만 일부 부처의 제조업 공동화에 대한 부정적 시각과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불공정 관계, 비정규직 문제 등과 같은 경제현안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고 있어 노동계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제조업 공동화의 이해당사자 간의 이러한 동상이몽식 자세나 인식으로는 제조업 공동화에 따른 고용불안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이미 한계기업으로 국내에서 도저히 생존할 수 없는 기업에 대한 정부의 직무유기가 중국 러시를 부추기고 있음을 우리 모두 인정해야 한다.


그렇다고 한계기업을 무리하게 국내에 붙잡아 두자는 말은 아니다. 마지막 심정으로 중국으로 떠나는 한계기업들에게 진정 중국이 재기의 땅이 될 수 있도록 정부가 체계적으로 이들의 진출을 도와 이들에 대한 구조조정을 촉진하고 산업고도화를 실현하려는 의지를 확실히 해야 한다.

 

일자리 창출 위한 노사정의 적극적 노력 필요
그리고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국내에서의 혁신적인 생산활동을 장려하고 촉진할 수 있는 경제환경을 조성해 주어야 할 것이다. 국내 경쟁력 우위 산업이면서 시장지향적 투자를 하기 위해 해외로 진출하는 대기업들도 국내고용 위축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함께할 수 있는 노력을 보여 주어야 한다.

 

자본은 이윤을 창출하는 것만이 존재하는 이유가 아니다. 대규모 해외투자로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고용불안을 근본적으로 해소하기 위해서는 노·사·정 모두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실질적이고 실천적인 노력뿐만 아니라 적극적인 사회적 합의도 전제되어야 한다.


제조업 공동화는 누구 하나의 노력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는 결코 아니다. 제조업 공동화론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고부가가치의 서비스산업을 발전시키면 되고, 이는 경제의 성숙화 과정에서 나타나는 성장통과 같은 것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우리나라의 산업구조 특성상 제조업의 발전 없이는 우리 경제의 지속가능한 성장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제조업의 화려한 부활만이 성장잠재력을 마모시키는 양극화 현상을 근본적으로 치유함으로써 우리 경제의 건강한 발전을 보장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