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고대죄’에는 말이 필요 없다
‘석고대죄’에는 말이 필요 없다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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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장 하승립
총체적 난국입니다. 가뜩이나 대기업 노동자에 대한 반감이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노동운동의 도덕성에 치명상을 줄 수 있는 사건이 터져나와 ‘반노조 정서’가 들끓고 있습니다.


물론 노동계로서는 억울한 심정도 있을 겝니다. 정황으로 볼 때 지역 정·관계는 물론이고 언론계에 이르기까지 이른바 ‘행세 깨나 한다는’ 사람들이 이래저래 연루돼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도 뭇매는 노동조합에 쏠리고 있습니다.


또 ‘일부’를 가지고 전체를 매도한다고 하소연 하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이번 사건이 노동운동의 ‘기 꺾기’나 판을 흔들어서 새로운 지형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개연성도 충분합니다.


그러나 잘못한 일은 잘못한 겁니다. 우리가 흔히 범하는 오류 중 하나가 ‘그렇지만’입니다. ‘내가 이걸 잘못한 건 맞는데, 그렇지만 누구도 어떤 잘못이 있지 않느냐’는 항변은, 일방적으로 당하는 쪽에서 볼 때는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정작 사과의 순수성을 의심받게 됩니다.


사태가 이 지경까지 이른 데는 노동계의 도덕 불감증, 기업의 땜질식 관계중심의 노무관리 관행 등이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은 다른 돌파구를 모색하기 보다는 정공법이 필요합니다.


잘못된 문제에 대해서는 석고대죄하는 심정으로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노동계가 무릎을 꿇는 대상은 정부나 기업, 언론이 아니라 국민들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국민들에게 용서를 구하는 것이 최우선입니다.


그런 다음 내부 시스템을 정비하고 기존의 관행을 하나하나 바로잡아 나가야 합니다. 계파 간의 정치적 이해관계 와중에 영향력을 강화하기 위해 비공식적 통로로 기업과 ‘주고 받은’ 일은 없는지 자기반성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기업에 대해서도 잘못된 노무관리 시스템을 개선하라고 요구해야 할 것입니다.


대공장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놓고 벌어지고 있는 갈등이나, 사회적 교섭 참여를 둘러싼 ‘작전’들도 유쾌한 장면은 아입니다. ‘정치판과 다를 바 없다’는 ‘치욕적’인 얘기는 더 이상 듣지 않아야 할 것 아닙니까.


차라리 잘 됐다고 생각합시다. 지금까지 덮어두었던 문제들을 모두 꺼내놓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으로 내부를 정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진심을 다한다면 언젠가는 통하는 법입니다.


<참여와혁신> 2월호는 채용 비리, 비정규직, 사회적 대화를 비롯한 현안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단지 문제의 나열이 아닌 장기적 해결책이 무엇인지 찾아보고자 합니다. 이 문제들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대안을 찾아나가야 할 사안들입니다.


아울러 1월호에서 제시했던 10대 기획도 지속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다루고자 합니다. FTA의 추이, 투기자본 문제,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방안, 임금체계 개편 등 만만치 않은 주제들입니다. 그래도 꾸준히 두드리다 보면 문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