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노사가 함께 산업정책을 요구하다
[이탈리아]노사가 함께 산업정책을 요구하다
  • 참여와혁신
  • 승인 2005.03.10 00:00
  • 수정 0000.00.00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이탈리아 노사의 섬유산업 공동화 대응전략이 우리에게 주는 함의


이 글은 이탈리아에서 섬유산업 공동화에 대응하여 노사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를 살펴봄으로써 산업공동화의 문제를 안고 있는 우리의 노사에 주는 함의를 살펴보기 위한 것이다.

 

이탈리아 섬유·의류산업의 위기
이탈리아의 섬유, 의류 및 패션 산업은 제3의 이탈리아(The Third Italy)로 불리우는 북중부지역의 산업지역(Industrial districts)을 중심으로 중소기업들의 긴밀한 산업연계망(networks)를 구축하여 세계 섬유 및 패션산업에서 품질과 디자인을 선도해 나가며 경쟁력을 구축해 왔다.

 

이와 같이 중소기업에 기반을 둔 이탈리아 섬유, 의류, 패션, 가구, 피혁, 신발, 농업기계, 도자기를 생산하는 방식은 유연적 전문화(flexible specialization)방식이라고 불려졌다.

 

이탈리아 섬유, 의류 그리고 관련 산업은 제조업의 약 16%를 차지하고 있으며 98만1341명을 고용하고 있다. 여성들은 의류제조 부문에서 노동자들의 높은 비율(76%)을 차지하고 있다.


1990년대 이래 국제 섬유시장의 개방과 경쟁의 격화로 이탈리아의 섬유, 의류 그리고 패션산업은 상당한 영향을 받아 왔다. 지난 몇 년 동안 극동지역 특히 중국에서 저가품들의 대량생산으로 인해 세계시장에서 이들 제품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섬유 의류산업이 위기의 상황에 이를 정도로 해를 입었다. 그 외에도 국내 및 해외에서 싼 제품 쪽으로 향하고 있는 섬유 및 의류상품에 대한 수요의 변화가 섬유와 의류산업에 어려움을 주는 또 다른 요인이다.

 

이로 인해 매년 1만개의 일자리가 사라지고 있다. 2001년부터 2003년 사이에 이탈리아 섬유 의류산업에서 총매출액 감소 폭은 46억 유로나 되었고 일자리도 4만개가 줄어들었다.

 

섬유산업 공동화에 대응하는 노사의 공동전략
산업공동화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섬유와 의류회사들은 저가 저품질 제품, 노동집약적 생산(방적, 방직)을 개발도상국으로 이전하는 전략과 함께 고부가가치 생산활동은 국내에 유지하면서 혁신과 고품질을 위해 사용되는 섬유, 디자인 환경에 대한 존중, 각종 인증 로고와 마크 그리고 브랜드를 강화하는 전략을 추구했다.

 

또한 고부가가치, 고품질 전략의 일환으로 제품과 생산과정에 관한 혁신능력과 경쟁력을 강화할 목적으로 유연성을 강조했다.


이와 더불어 섬유산업의 노사파트너들은 산업의 위기에 대응하여 우선 이탈리아 섬유산업 노사가 단체협약을 통해 노사 공동으로 해결책을 마련하고, 다음으로 이탈리아 정부에 노사 공동으로 일정한 산업정책을 요구하고 있다.

 

2000년 섬유산업의 새로운 전국적 단체협약
노동시간 유연성은 생산을 수요의 계절적 변화에 맞출 수 있게 하고 예측하지 못한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특별히 중요하다고 여겨지고 있었다.

 

노동시간의 유연화를 위해서 2000년 3월 체결된 단체협약에서는 노동시간에 관해 혁신적인 조항을 담았다. 노동시간은행(hours bank -노동시간 계정제)의 도입과 회사 전체 노동자의 8%까지 시간제 노동의 사용 증가 그리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에서 유연한 노동시간제를 활용할 수 있도록 하였다.

 

▶ 기존 단체협약 1일 8시간씩 5일간 주 40시간
   ⇒ 시간적 유연성(timely flexibility)을 도입하여 주간노동시간 연장과 단축 가능

       - 정상 노동시간 초과 노동시간에는 21%의 할증률로 임금 지급
▶ 노동시간 은행제를 도입하여 1년에 개인 (노동시간)계좌에 32시간의 연장근로시간 저축 + 폐지된 과거의 공공휴일 대신 4일의 휴가를 필요에 따라 추가적 휴가시간으로 사용
▶ 정규직 노동자의 8% 수준에서 시간제 노동자의 사용

 

2004년 섬유·의류산업 단체협약
2004년 4월 체결된 섬유·의류산업의 단체협약에는 2003년 비아기(Marco Biagi) 노동시장개혁법들을 적용하고 있다.

 

비아기 교수는 이탈리아의 저명한 노동법, 노동경제, 노사관계학자로 중도우파인 이탈리아의 현 벨루스코니 수상을 도와 이탈리아 노동법를 수정하여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위한 고용과 노동시장에 관한 법을 입안했다.

 

이러한 시도에 대해 노동계에서 정치적, 조직적 분열을 뛰어넘어 반대하였는데 오랫동안 테러활동을 중단했던 이탈리아의 극좌파인 붉은 여단이 2002년 3월 19일 비아기 교수를 살해하여 이탈리아 정국에 충격을 주었다.

 

이 단체협약은 ① 2년에 걸쳐서 월 평균    87의 임금인상 ② 새로운 노사 공동기구의 수립 ③ 노동자들의 정보권과 협의권의 강화 ④ 새로운 형태의 고용을 사용하는 규칙 ⑤ 산전산후 휴가 개선 등을 담고 있다. 새로운 단체협약의 주요내용을 살펴보면 아래와 같다.

 

▶ 섬유산업 노사공동의 전국관측소(observatory)와 노사공동 훈련기구의 설립 : 노사 대표가 운영하는 관측소에서는 단체교섭에 필요한 섬유산업에 관한 데이터와 경제, 생산시나리오 제공. 노사공동 전국훈련기구는 전국, 지방, 기업수준의 훈련 프로젝트를 정의하고 지역수준에서 설치하며 기회균등 목적의 특수한 훈련정책 촉진
▶ 적어도 60명의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들에서는 사업장의 노조 대표가 회사 정보(특히 해외이전가능성)에 대한 접근권을 가진다.
▶ 기간제 계약의 절차와 조건 : 서면계약 의무화, 70명 미만 기업에서는 기간제 근로자의 비율을 전체의 10%, 70명 이상 기업에서는 5%를 초과할 수 없으나 기업별 단체협약을 통한 비율 상향 조정 가능
▶ 기간제 파견노동자의 사용 : 12개월의 기간에 걸쳐서 파견노동자의 평균수가 정규직 노동자의 8%를 초과할 수 없고 회사의 기간제 노동자의 수를 초과할 수 없다.
▶ 작업/훈련계약으로 알려진 통합계약의 사용 : 통합계약은 29세 미만의 청년노동자 훈련, 장기실업자, 장애자, 고실업률 지역의 여성들을 노동시장에 재진입시키는데 사용


노사 공동의 대 정부 산업정책 요구
섬유산업에서 3개의 노조와 3개 사용자단체들이 2004년 10월 21일 노사가 서명을 한 “산업정책에 관한 노사공동 문서”를 통해 2005년 국가예산법에 섬유와 의류산업 지원과 산업공동화 방지를 위한 정책을 정부에 요구했다.

 

이 문서에는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위기 원인으로 ① 이탈리아 국내 섬유제품 가격의 하락 ② 유로와 달러간 환율의 불균형한 변화 ③ 새로 산업화되는 동아시아 국가들이 생산해내는 완제품 혹은 반제품들의 경쟁력을 지적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비추어 노사파트너들은 정부에 4가지 유형의 개입을 제안하고 있다.


▶ 이탈리아제 상표에 대한 지원 
① 생산물의 원산지를 나타내는 라벨과 원산지 추적가능성을 보장하는 제도의 강제적 도입
② 모조상품에 대한 더 강한 제재와 특허권법의 즉각 승인, 가짜제품, 사회적 덤핑 그리고 환경 침해를 막기 위한 캠페인의 촉진
③ 관련 당국의 국경통제와 세관검사 강화
▶ 노동비용과 해외이전에 대한 정책
① 공장의 해외이전을 막기 위해 임금수준을 유지하면서 노동비용의 감소 방안 제안
② 신제품 연구개발 담당 인력의 생산활동에 관한 지방세 감축, 저숙련, 저임금 노동자들에 대한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부담의 감축
▶ 노동, 고용, 훈련에 관한 섬유산업의 노사대표들의 주요 제안
① 도제들의 훈련내용의 정의에 관하여 의사결정 과정의 가속화
② 회사들이 직업훈련 부담 비용에 부과된 세금 감면, 훈련활동에 사용된 작업시간에 대해 세금과 사회보장기여금 감면제의 도입
③ 노동시간의 재조정, 근로자들의 일과 가정생활의 조화를 높이기 위한 조치와 같이 기업들의 경쟁력을 높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적극적인 행위에 소요되는 비용을 대주는 것
 

노사의 산업공동화 대응 노력이 주는 함의
우리 제조업의 공동화와 맥락은 매우 다르지만 산업공동화의 위기에 빠진 이탈리아 섬유산업에서 노사가 어떻게 공동으로 대응하고 있는가는 그 성공 여부를 떠나서 우리의 주목을 끌고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제2차 대전 이후 이탈리아의 정치적 지형을 반영하여 노동운동이 크게 세 갈래(구 공산당 계열의 CGIL과 기독교계 CISL, 사회당계 UIL) 정치이념적으로 분열되어 서로 대립해 왔다. 2002년 - 2003년 비아기(Biagi) 노동시장법안에 대해서도 처음에는 세 노조가 반대했으나 정부에서 일정한 양보를 하자 CISL과 UIL은 찬성으로 돌아선 반면, CGIL은 반대했다.


그러나 섬유산업의 공동화 위기에 대해서 구 공산당계인 CGIL까지 포함된 노조와 사용자측이 공동으로 산업의 요구와 고용보장을 조화시킨 단체협약을 체결하고 정부와 유럽연합에 대한 산업정책적 요구를 제출한 것은, 우리 노조의 산업공동화 저지 주장이나 우리 제조업 사용자들의 고민 없는 중국으로의 공장이전 정책과 대조적이다.


이탈리아 섬유산업의 노사는 변화하는 시장상황을 겨냥하여 한편으로는 단체협약을 통해 ‘규제된 유연성(regulated flexibility)’과 노사 공동기구 설립을 통해 훈련이라는 공공재 공급, 섬유산업의 변화하는 현실에 대한 정보파악과 대안정책 마련을 자율적으로 추구해 왔다.


노사가 섬유산업의 환경변화에 맞추어 스스로 할 수 있는 다양한 노력을 단체협약 내용의 변화와 혁신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또한 이탈리아 노사는 정부와 유럽연합에 실제로 실현가능한 구체적 정책적 제안과 요구를 제시하며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배 규 식 [한구노동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