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절과 ‘임을 위한 행진곡’
노동절과 ‘임을 위한 행진곡’
  • 하승립 기자
  • 승인 2018.05.01 12:55
  • 수정 2018.05.11 09: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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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문수와 손경식의 몸짓은 달랐다
ⓒ 하승립 기자 lipha@laborplu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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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일, 서울 잠심올림픽주경기장은 아침 일찍부터 1만여 명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노동절을 맞아 한국노총이 주최한 마라톤대회가 열렸기 때문이다. 2006년부터 시작된 한국노총 노동절 마라톤대회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정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된 후 대규모 집회로 바뀌면서 중단됐다가 새 정부 출범 이후 5년 만에 재개됐다.

올해 대회는 5년 만이라는 점에 더해 지방선거를 앞둔 시기적 특성으로 선거 출마 후보자 등 수많은 인사들이 현장을 찾았다. 따라서 본행사가 진행된 단상에는 어느 해보다 많은 ‘내빈’들의 자리가 마련됐다.

단상의 맨 앞자리는 왼쪽부터 김문수(자유한국당 서울시장 후보), 이재명(더불어민주당 경기지사 후보), 박원순(서울시장), 문성현(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위원장), 김영주(고용노동부 장관), 손경식(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 김주영(한국노총 위원장), 정세균(국회의장), 추미애(더불어민주당 대표), 김성태(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장병완(민주평화당 원내대표), 이정미(정의당 대표), 조희연(서울시 교육감)의 순이었다.

이 배치를 보면서 만약 ‘민중의례’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게 된다면 이들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가 궁금해졌다. 하지만 ‘국기에 대한 경례’와 ‘노동열사에 대한 묵념’을 끝으로 의례는 마무리됐다.

그런데 식이 모두 끝나갈 무렵 사회자인 코미디언 배동성 씨가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다고 밝혔다. 노동운동가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 김영주 장관, 김성태 원내대표는 익숙하게 ‘팔뚝질’을 하면서 노래를 함께 불렀다. 진보정당 운동을 해온 이정미 대표나 전북 출신의 정세균 의장, 광주를 지역구로 둔 장병완 원내대표도 낯설지 않았다. 시민단체 활동을 한 박원순 시장이나 민주화를 위한 교수협의회 출신의 조희연 교육감, 민변 출신 이재명 후보도 마찬가지였다.

의외의 인물은 손경식 회장이었다. CJ의 회장을 맡고 있는 기업인 손 회장은 ‘임을 위한 행진곡’의 가사를 알 리 없어 보였지만 노동계가 주최하는 행사의 ‘손님’으로 와서 서툴게 팔을 휘두르며 분위기를 맞췄다.

또다른 의외의 인물은 김문수 후보였다. 김 후보는 ‘노동운동의 대부’로 불리기도 했고, 한 때는 민중당 노동위원장을 맡은 바 있다. 비록 지금은 이른바 ‘태극기 집회’에 단골로 참석하는 극우인사가 되었다고는 하지만, 그 곳은 자신의 ‘고향’과도 같은 곳이다. 그런데 김 후보는 노래가 시작되면서부터 끝나는 순간까지 부동자세로 몸을 움직이지 않았다.

128주년 노동절 행사가 열린 그곳에서 현직 재벌기업 총수와 전직 노동운동가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울려퍼지는 동안 전혀 다른 몸짓을 보였다. 이날 마라톤대회의 공식명칭은 ‘안전한 일터, 좋은 일자리 창출, 노동존중사회 실현 한국노총 2018 노동절 마라톤대회’였다. ‘노동’과 ‘존중’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