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 임금체계, 호봉제를 둘러싼 ‘공정’ 논란
공공부문 임금체계, 호봉제를 둘러싼 ‘공정’ 논란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5.14 09:23
  • 수정 2018.05.14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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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노동연구원 공공부문 임금체계 공개토론회 개최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이 발제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이 발제문을 발표하고 있다.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대규모 정규직 전환 앞두고 표준임금체계 필요성 대두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이 일자리 정책의 첫 번째 과제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했다. 이후 정규직 전환 정책과 더불어 일각에서 끊임없이 요구되었던 것이 공공부문의 표준적 임금체계의 설계다. 열악한 처우, 불안정한 고용 환경,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불공정한 차별 등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논리로 대두됐다면, 각종 수당이 난립하는 복잡한 임금 체계, 낮은 기본급, 호봉제에 대한 비판 등으로 표준적인 공공부문 임금체계 없이는 대규모 정규직 전환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목소리가 있었다.

한국노동연구원은 11일 여의도 CCMM빌딩에서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노동자 임금체계 마련을 위한 공개토론회’를 열고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선언 1주년을 기해 공공부문 정규직 전환에 따른 임금체계 표준화의 필요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발제를 맡은 오계택 한국노동연구원 임금직무혁신센터 소장은 과거 효율화를 기치로 아웃소싱 등을 통해 제각각으로 난립했던 임금체계가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훼손을 낳고 임금 격차를 심화시켰다며 새로운 시대에는 직무 중심의 임금체계 확립을 통해 노동자들의 처우 개선을 도모하고 임금 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2017년 7월 말 기준 공공부문 노동자는 약 217만명으로 이 중 19.2%인 약 41.6만명이 비정규직이고 여기에 약 21.1만명의 무기계약직이 존재한다. 이들이 실제로 적용받는 임금 체계, 임금 수준, 직무 등급체계는 제각각으로, 오 소장은 동일 직무를 담당하는 공공기관 내 노동자들의 임금격차 해소를 근거로 임금체계 표준화가 시급하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핵심 쟁점은 ‘호봉제’

발제자들의 논의 과정에서 쟁점으로 떠오른 것은 호봉제의 문제다. ‘전 세계 유일의 호봉제 임금체계 국가’로까지 지목된 현재의 우리나라 임금체계에 대해 일부 토론자들이 공통으로 지적한 것은 첫 호봉과 마지막 호봉 사이의 임금 차이가 크고 이마저도 기관별, 직별로 제각각이란 사실이다. 오 소장이 제시한 17개 시도 시설, 청소, 도로정비 분야의 호봉 테이블 자료를 보면 같은 분야라 할지라도 지역에 따라 최저치와 최고치의 차이가 극명하고, 최초 호봉과 최종 호봉의 차이 역시 큰 것으로 나타났다.

17개 시도 3개 직종 무기계약직 호봉 테이블.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17개 시도 3개 직종 무기계약직 호봉 테이블.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오 소장은 정규직 전환 인력 에 대한 체계적인 직무관리를 위해 인원 비중이 높고 직무가 잘 정의된 직종을 중심으로 임금체계 방안을 제시했다. 제시된 5개 주요 직종은 청소, 경비, 시설관리, 조리원, 사무보조로 각 직종별 2~3개 직무가 더해져 총 14직무로 구성됐다.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표준임금체계는 우선 직무분류 및 직무분석을 통해 주요 직종에 대한 직무별 과업, 요건 등을 분석하고, 각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평가하여 서열을 결정, 직무별로 등급을 매겨 이 등급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는 구조다.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와 공공부문 고용 및 임금 조사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직무등급.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고용노동부 고용형태별 근로실태조사와 공공부문 고용 및 임금 조사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 직무등급.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안.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안. 한국노동연구원 자료.

이에 따라 1등급 1단계 임금이 결정되면 나머지 임금이 자동적으로 결정되는 구조로 이 최소 기준임금의 설정이 중요한 쟁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토론에 참여한 류경희 고용노동부 공공노사정책관은 기준임금을 어떤 기준으로 설정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열려있다며 최저임금이든, 생활임금이든 전문가들의 논의를 통해 향후 다시 결정할 수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지난 1월 정부 공공부문 표준임금체계 모델안 발표에서 이 기준임금을 최저임금으로 설정해 노동계의 반발이 컸고, 이후 정부는 지난 4월 기준임금을 재논의하겠다는 입장으로 선회했다.

류 공공노사정책관은 “공공부문에서 앞으로 어떤 사람이든 182만원의 금액은 주면서 일을 시키는 게 제대로 사람 대우하는 최소치라고 보았다”며 그러나 “이것이 ‘플러스 50만원’ 등 적정 수준이면 괜찮은데 ‘플러스 100만원’, ‘150만원’이 되면 안된다”고 지적했다.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함에 있어서 무기계약직 도입에 호봉제 체계가 매우 가파른 임금 인상 구조를 보였기 때문에 이것이 공정하지 않고 또한 지속가능하지 않다는 것.

이방무 행정안전부 자치분권과 과장은 지방자치단체에서는 임금제가 한번 결정되면 바뀌기 어려운 점을 들어 호봉제를 그대로 두고 전환 결정을 내리기를 꺼려한다며 전환 결정이 더딘 이유 가운데 결정적인 요인이 바로 임금체계에 관한 문제라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기존의 공무직은 이미 호봉제 체계인데 새로 정규직 전환되는 이들만 직무급을 적용할 경우 이중적인 임금 구조가 된다는 점에서 정부의 통일적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이 자치단체의 공통적인 의견이라고 밝혔다. 현재 제기되고 있는 정규직 전환 과정의 지연 논란 역시 표준임금체계 마련을 통해서 해결할 수 있다는 입장.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임금 수준과 향후 임금체계 조정에 대한 우려

결국 임금체계 구축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많은 이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으나 임금 수준과 이러한 임금체계의 조정에 관한 불확실성이 크다는 점이 논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또 다른 발제자인 정승국 중앙승가대 교수는 독일의 연방 및 기초지자체 소속 공공부문 단체협약과 영국의 지방공무원 임금체계를 소개하며 각 체계가 노사관계의 차이, 직무 평가 방법의 차이, 승급 방식, 단계의 개수, 전국협약에서 합의한 임금체계의 구속성 정도의 차이를 갖고 있으나 공통적으로 화이트칼라와 블루칼라 임금체계의 통일, 남녀 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단일임률이 아닌 범위임률 등의 특징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다양한 방식의 표준임금체계 도출이 가능하나 표준 체계를 통해 구현할 가치의 방향성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

정문주 한국노총 정책본부장은 “정부의 표준임금체계 구성에 있어서 절차상의 문제가 있었고 한국노총, 민주노총 등 노동계와 의견을 함께 할 필요가 있다”며 “독일, 영국의 사례는 베르디, 유니슨이라는 강력한 산별노조와 함께 만들어진 직무급제로 지금처럼 단시간 용역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정부 정책에 의해서 일률적으로 정해진 임금체계에 노동자의 의견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면 현재 기업별 노조 성향이 강한 우리나라의 현실상 노동자의 교섭권 침해 등에 대한 우려가 있다는 것. 

정 정책본부장은 기준임금에 대해서도 “최저임금 기준으로 하면 입사하고 15년이 되어도 월급이 200만 원이 넘지 못하고 그 이후에는 정체된다”며 표준임금체계가 하향 평준화의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지적했다. 단계별 임금인상률이 1% 미만으로 설정된 것도 또 다른 차별이라는 것이 정 정책본부장의 주장. 

‘하향평준화’ 논란 속에 당사자 배제하면 제도 안착 어려워

노광표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소장은 “지난 20년간 정부가 모범 사용자로서 갖춰야 할 기본적 고용노사관계를 내팽겨친 결과를 된통 받고 있는 것으로 반성이 필요하다”며 “임금 공정성 문제에 대해 왜 이러한 임금체계가 저임금 노동자 5개 직종에게만 한정되어야 하는가에 대해 사회적 응답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정부가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외주화 등으로 비정규직을 양산하고 사회적 갈등을 유발했던 점을 우선 반성해야 하고, 직무급 도입 등 호봉제 폐지에 있어서도 낮은 교섭력을 지닌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불공정성이 논란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지적한 것.

노 소장은 “현재 논의는 임금체계의 문제와 임금수준의 문제가 교묘히 결합한 것”이라며 “이를 분리해서 해석하고 결정해야지 이런 식으로 표준임금체계를 제시하면 양대 노총의 하부 사업장에 대한 통제가 전혀 이뤄지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상시지속적 업무에 대한 직접고용 원칙이 가진 취지와 별개로 자회사로 고용이 될 경우 노동자들이 가지는 상대적인 박탈감, 미래에 대한 불안감 등이 실질적인 노동자의 정서적 문제인데, 이에 대한 고려가 없으면 노동자들의 경제적 보상심리, 투쟁 심리만 부추길 뿐이라는 지적도 이어졌다. 결국 직무급제 이상으로 동일가치노동의 동일임금 원칙을 보장할 제도는 없다는 데에 동의하지만 당사자와의 실질적인 합의나 그에 대한 고려 없이 위에서 표준적 체계를 하달하는 식으로 정책이 이행된다면 ‘판’은 깨질 수밖에 없다는 게 노 소장의 의견이다.

‘Why me?’ 공정한 잣대는 전체에 적용될 수 있어야 성립

한편 김동배 인천대 교수는 공공부문의 임금체계 수립에 있어 ‘내적 형평성’과 ‘외적 형평성’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개진했다. 김 교수는 “공무원의 경우 내적으로는 사무관의 초임이 고용노동부에서 일하든 어디에서 일하든 똑같고 외적으로는 민간이 100%라고 하면 공무원은 85% 정도에서 수렴하는 민관 대응성의 원칙이 있다”며 “대내적 형평성, 대외적 형평성의 균형은 공공기관에서도 유기적으로 적용되는 게 원칙”이라고 밝혔다. 

공무원의 임금이 어디에서든 똑같은데 공공기관에서는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차이가 난다는 점은 내적 형평성의 훼손이며, 임금 수준의 결정은 민관 대응성의 원칙에 의해 이뤄져야 하는데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임금체계 수립을 통해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이 동시에 필요한 상황에서 기존 공무원 임금의 민관 대응성 원칙을 그대로 적용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것.

이어 김 교수는 “만약 ‘왜 우리만 직무급이냐, 당신들도 다 직무평가하자’는 이야기를 한다면 이것은 정당한 문제제기가 될 것”이라며 “차별받지 않겠다는 정당한 권리를 두고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보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호봉제가 사회 전체 임금체계의 골간으로 자리한 상황에서 5개 저임금 노동자에 대한 직무급 전환 시도가 역으로 불공정 논란을 낳을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한 것. 이러한 관점에서는 현재 ‘하향 평준화’ 문제와 더불어 공무원연금 등 다양한 처우 차별에 대한 논란도 예상해볼 수 있다.

김 교수는 “정부가 사고를 쳐도 대단한 사고를 친 것 같다”며 “정당한 요구, 공정한 요구에 대해서 제대로 고민해 저임금 부분 노동자에 대한 임금체계 질서를 잡고 이것이 민간에 파급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