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가 아프면 누가?’ 병원 내 과로 위험수준
‘간호사가 아프면 누가?’ 병원 내 과로 위험수준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5.16 10:34
  • 수정 2018.05.16 10: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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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노련 실태조사, 10명 중 7명 이직 고려

1~2시간 연장근무는 일상… 수당 없어 ‘공짜노동’

‘휴게시간 40분 미만’이 절반, ‘없다’도 상당수

업무 많고 건강 나빠져 이직 고민, 인력확충 필요

 

한국노총 의료산업노련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2018 병원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한국노총 의료산업노련이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2018 병원노동자 노동조건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간호사와 의료기사 등 국내 의료노동자의 만성적 인력부족으로 인한 과로가 위험수준인 것으로 조사됐다. 전국의료산업노동조합연맹(위원장 이수진, 이하 ‘의료산업노련’) 실태조사에 따르면, 의료노동자 68.2%가 열악한 근무환경을 버티지 못하고 이직을 고려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의료산업노련이 올해 3월 전국 14개 종합병원 및 대학병원 조합원 1,400여 명을 대상으로 ‘노동조건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조사대상의 67.2%가 “연장근무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중 65.8%가 ‘일상적인 업무하중’과 ‘인수인계 등 업무준비’를 원인으로 꼽았다.

그러나 이들 중 대다수는 연장근로수당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연장근무를 하고도 시간외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응답자가 68.2%나 됐다. 이중 승진에서 불이익을 당할까 걱정 때문에 수당을 신청하지 않는 노동자가 52.4%로 가장 많았다. 불이익을 우려해 일상적인 ‘공짜노동’을 하는 셈이다.

특히 심각한 문제는 근무 중 제대로 식사를 하거나 쉴 수 없다는 점이다. 조사대상의 56.2%가 40분 미만의 휴게시간을 부여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휴게시간이 20분 미만이라는 응답도 35.7%나 됐으며, 심지어 아예 없다는 답변도 21%나 됐다. 직군별로 보면 사무행정의 75%가 1시간의 휴게시간을 부여받는 반면, 간호사는 휴게시간이 40분 미만이거나 아예 없다는 답변이 92%로 압도적이었다.

이수진 위원장은 개인 경험을 토대로 “호주의 중환자실에서는 간호사가 환자를 일대일로 돌보면서 보호자의 궁금증이 해소될 때까지 환자의 상태나 치료에 관해 설명해준다”며, 한국과 호주의 의료서비스 차이를 의료노동자들의 근무여건에서 찾았다. 그는 “대형 종합병원은 나은 편이지만 중소병원으로 갈수록 열악하다”면서 “이대로 간다면 숙련된 인력이 모두 떠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의료산업노련은 14일 병원 내 노동자들의 근무여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정책제안서를 원내 5당에 전달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의료산업노련은 14일 병원 내 노동자들의 근무여건 개선 등의 내용을 담은 정책제안서를 원내 5당에 전달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이 같은 우려는 현실로 나타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의료산업노련의 이번 실태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8.2%가 이직을 고려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이직을 고려한 가장 큰 이유로 “업무가 너무 힘들어서”(30.4%)를 꼽았다. “피로감 등 건강상태 때문”(27.1%)이라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환자를 지근거리에서 돌봐야 할 의료노동자들이 정작 과로를 호소하고 있었다.

이 때문에 현장의 의료인력 충원이 절실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다. 의료산업노련은 14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장시간노동은 엄격한 관리감독으로 통제가 가능하다”면서 “환자 대비 간호인력 수를 상향 조정함으로써 실질적 증원이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한편 의료산업노련은 오는 6.13 전국동시지방선거에 맞춰 의료노동자들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정책제안서를 마련해 원내 5당에 전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