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 해법은 없나
비정규직 해법은 없나
  • 하승립 기자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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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은 ‘후끈’ 정규직은 ‘냉담’ 노조는 ‘곤혹’

비정규직 노조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 해결 의지 보여야”

정규직 노조 “공감은 하지만 싸늘한 조합원 반응 난감”


비정규직이 ‘뜨거운 감자’가 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 정부가 ‘비정규직 보호 입법’을 추진하겠다고 나선 이후 이 문제는 노정 간의 첨예한 대립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이미 노동계는 정부가 현재의 법률안을 상정만 해도 총파업으로 맞서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하고 있는 상태다. 지난해 말 한차례 정면 충돌의 위기를 입법 연기로 봉합한 노정은 2월 임시 국회를 앞두고 다시 한 번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을 재연하고 있다.

 

이렇듯 표면적으로는 노정 갈등으로 나타나고 있지만 정작 작업 현장에서는 오히려 정규직-비정규직 간, 혹은 상급단체의 차이로 인한 갈등이 불거지고 있는 현실이다. 대표적인 사업장이라고 할 수 있는 현대자동차와 하이닉스의 경우가 그렇다. <참여와혁신>에서는 이들 현장에서 실제로 나타나고 있는 대립과 갈등 양상이 어떤 것인지, 그리고 대안은 없는지를 모색해 봤다. 단순한 구호로서의 ‘비정규직 해법’이 아니라 현실적 해결 방안에 대한 모색의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고요 속 긴장’ 현대자동차를 가다

지금 울산은 ‘곤혹’스럽다. 비정규직 해법을 둘러싼 ‘전국’의 눈이 울산으로 쏠리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이 지니는 한국 경제에서의 의미, 산업에서의 역할, 그리고 노동운동에서의 상징성은 남다른 데가 있다. 거대한 조선소가 들어서면서 중화학 공업의 상징처럼 자리매김했고, 제조업의 꽃이라고 불리는 자동차산업의 요람이 되었다.


그리고 2005년 현재, 제조업의 침체 속에서도 사상 최대의 호황을 이어가고 있는 자동차산업의 중심지이고, 대한민국 노사관계의 바로미터이자 대리전 양상이 일어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2005년 1월,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이 자리잡고 있는 울산시 북구 양정동 일대에는 묘한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올해 노사정 관계의 가장 예민한 쟁점 중 하나인 ‘비정규직’ 문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한 채 꼬이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부가 현대자동차 사내하청 127개 업체 9234명에 대해 불법파견이라는 판정을 내리면서 전국적인 관심이 집중되었지만 뚜렷한 해법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당연히 노동계와 비정규직 노조 등은 불법 파견 판정 인원 전원에 대한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고, 회사에서는 기존 생산 라인에 포함되어 있는 비정규직들을 철수시키고 일부 작업 라인을 합법적인 도급 형태로 전환하겠다는 대안을 내놓았다.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조 간 ‘입장 차이’
양측의 입장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가운데, 정작 대립점은 다른 데서 불거지고 있었다. 비정규직 노조와 정규직 노조, 그리고 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 대립과 갈등이 폭발 일보 직전에까지 이르고 있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찾은 1월 19일에 비정규직 노조는 5공장 탈의실에서 농성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에 앞선 15일, 대체인력 투입과 관련된 보고대회 때문에 1시간 남짓 일부 라인이 가동 중단되는 상황이 발생했고, 이와 관련해 대의원 한 사람이 해고되는 사건이 발생해 파업에 들어간 것이다.


실제로 18일에는 5공장 가동이 중단됐고, 다른 공장들도 가동과 중단을 반복했다. 이에 대해 비정규직 노조에서는 “비정규직들의 단결된 힘을 보여준 것으로 상당히 의미 있는 사건”으로 규정했다.
이같은 갈등이 빚어진 것은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조합이 함께 참여하고 있는 ‘연대회의’에서 1월 20일 잔업거부 투쟁을 진행할 것이라는 일정을 내놓은 것과 관련, 하청 업체들이 새로운 인력을 투입할 계획을 세웠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노조에서는 이런 움직임에 대해 “불법적인 대체근로 투입”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비정규직 노조 간부 A씨는 “이는 명백히 파업에 대비한 인력 투입용이기 때문에 용납할 수 없다”고 밝혔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정규직 노동조합과의 인식차이가 발생한 것.


정규직 노조 간부 B씨는 “대체인력 투입을 위한 방안으로 의심할 여지는 충분하지만, 현재 이 인력들에 대해서 하청 업체들이 정식 계약서를 작성한 상태다. 따라서 법률적으로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며 “이런 가운데 ‘쟁의행위 시 대체인력이 투입되는 것’에 대해서는 노동조합이 나서 강력하게 저지하겠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막을 명분이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비정규직 노조 간부 A씨의 생각은 다르다. 정규직 노조측이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막아 줘야 하는데 분명한 입장을 보이고 있지 않다는 불만이다.
여기서 알 수 있듯이 정규직을 대표하고 있는 현대자동차 노동조합과 비정규직 노동조합 사이에는 미묘한 입장의 차이가 존재한다. 비정규직 노동조합 안기호 위원장은 노노 갈등으로 비춰지지 않기를 바란다는 전제를 단 후 “그렇지만 회사와의 관계보다 정규직 노조와의 입장을 조율하는 것이 솔직히 더 힘들다”고 고백한다.


정규직 노동조합도 할 말이 많다. 노동조합 활동가 C씨는 “어떻게 하더라도 정규직 노동조합이 욕먹을 수밖에 없는 구도로 가고 있다”며 “비정규직 노조가 이런 방식으로 정규직 노조를 몰아붙이는 것은 양측 모두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정규직 노동조합 고립 상황 오나
현재 정규직 노동조합 집행부를 비롯한 활동가들은 비정규직 노조의 투쟁 방식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다. 정규직 조합원들이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냉담한 상태에서 지금과 같은 상황이 지속되면 정규직 노동조합이 완전히 고립될 수도 있다는 우려다. 현장조직 활동가 D씨는 “최악의 경우 정규직 노동자들이 정규직 노동조합을 외면하고, 비정규직 노조와는 갈등 국면을 맞을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즉 정규직 노조의 입장에서는 내부에서는 자신들의 조합원들로부터 외면당하고, 비정규직 노조와는 대립 국면을 맞게 된다는 것. 여기에 더해 외부적으로는 정규직의 이기주의, 귀족노조 논란 등을 통해 완전히 고립될 것이라는 고민이다.


정규직 노동자들의 외면은 현장에서 쉽게 느낄 수 있었다. 비정규직 노조가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하루가 지나면서 대부분의 라인이 정상화되었다. 비정규직 노조는 ‘파업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지만 오히려 ‘고립 농성’이 되어 버린 셈이다. 이와 관련 비정규직 노조의 한 간부는 “솔직히 지금의 파업이 (파업 효과를 거두지 못하는) ‘식물 파업’이 되고 있다”고 고백했다.


식당이나 작업장 입구 등에서 만난 정규직 노동자들은 상당수가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특히 그 불만은 대부분 정규직 노동조합을 향하고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노동자는 “정규직 노조가 누구를 대표하는지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왜 비정규직들한테 끌려다니고 있나”고 목소리를 높였다.


E 대의원은 “답답한 심정”이라고 밝혔다. “현장 노동자들의 정서는 비정규직 처우개선에는 동의하지만 정규직화는 반대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정규직 노동자들이 직접적인 표현은 삼가지만 불만을 가지고 있다는 것.


이같은 정규직 노동자들의 반응에 대해 현장조직 활동가 F씨는 “두 가지 측면이 혼재돼 있다”고 분석했다. 우선은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이 가지고 있는 ‘아픈 기억’ 때문이라는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IMF 경제 위기 때 1만 명에 가까운 정리해고 및 희망퇴직을 경험한 바 있다. 이른바 ‘노란 봉투의 악몽’이 생생한 이들로서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요구가 자신들의 동료들 자리를 대신 차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


또다른 측면은 정규직의 이기주의도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다. F씨는 “내수 부진 장기화, 환율 문제 등으로 인해 언제 고용불안이 재현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갖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자신들을 불안하게 만들 수 있다는 걱정을 갖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스타렉스를 주로 생산하고 있는 4공장의 경우 물량 부족으로 고용불안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현장 반장을 맡고 있는 G씨는 “작업자들이 여럿 모여 있을 때는 직접 표현을 하지 않지만 개인적으로 얘기할 때는 너도나도 불만을 얘기한다”면서 “현재의 비정규직들은 하청 업체들이 자신들의 기준에 맞게 뽑았는데, 만약 정규직을 뽑는다면 새로운 기준에 따라서 뽑아야 하는 거 아니냐는 생각들을 갖고 있다”고 밝혔다.

 

“잘린 동료들 자리 대신 차지하는 것 아니냐”
결국 정규직 노동조합의 고민은 점점 깊어갈 수밖에 없다. 노동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비정규직 문제를 외면할 수도 없고, 적극적으로 나서자니 조합원들을 설득하기가 쉽지 않다는 현실에 맞닥뜨리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면서 직접적인 대립 양상은 정규직 노조와 비정규직 노조 사이에서 나타나고 있다. 비정규직 노조로서는 정규직 노조가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데 대해 강한 불만을 나타내고 있고, 정규직 노조는 정규직 노조대로 비정규직 노조가 합의된 일정을 진행하지 않은 채 독자노선을 걸으면서 정규직 노조를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고 볼멘소리다.


비정규직 노조 간부 H씨는 “(정규직 노조가) 의지를 갖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우리가 우리 일정을 가지고 가는 것에 대해서조차 제대로 지원하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에 반해 정규직 노조 간부 I씨는 “원하청 공동투쟁으로 가야 하는데 비정규직 노조측이 계속 일방적 일정을 잡고 있다. 투쟁은 일방적으로 하고 정리는 우리한테 하라는 것 때문에 갈등이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I씨는 “지금 상황에서 해결책은 총파업에 나서는 건데 현장 조직력이 전혀 안 되는 상황에서 그럴 수도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풀지 못할 매듭을 던져 놓은 셈”이라고 말했다.


물론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의 공식적 입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한다는 것이다. 다만 그 방법과 관련해서는 비정규직 노조와 ‘호흡’의 차이가 느껴진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 김태곤 수석부위원장은 “비정규직 문제 해결은 반드시 한다. 설득을 하든 빌어서든 조합원들을 움직이겠다. 정치적으로 살아남으려 하지 않겠다. 그러나 그 원칙은 ‘공동기획-공동투쟁-공동책임’이다. 지난해까지 교육에 집중했다면 올해는 실천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사실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으로서는 일종의 ‘원죄’를 지니고 있다. IMF의 상처가 채 가시기 전인 지난 2000년 현대자동차 노사는 비정규직과 관련해 “1997년 8월의 비정규직 규모(전체 인원의 16.9%) 이내로 관리한다”는 상한선 규제 합의를 한 바 있다. 이와 관련해 최근 현대자동차 노조 전현직 위원장 및 제조직 대표들이 공동기자회견을 갖고 당시 상황에 대해 “그동안 비정규직 노동자 불법파견 사용에 대해 근본적으로 저지하지 못하고, 때로는 방치하고 때로는 부분적인 합의를 해 준 사실을 국민 앞에 고백하고 깊이 반성한다”고 밝혔다. 이같은 ‘자기반성’은 상당히 의미 있는 결정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1월 24일 대의원대회에서 ‘불법파견 원·하청 연대회의’ 구성을 의결함에 따라 그간의 정규직-비정규직 간 갈등 양상이 공동 행보로 이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기업 단위’로는 해결 안 된다
그러나 이런 자기고백이나 공동 대응만으로 문제의 해결이 가능한 것은 아니다. 우선 노사 양측 모두가 현대자동차가 전국적 비정규직 문제의 대리전 양상을 띠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다. 회사로서도 재계의 눈초리 등으로 인해 쉽사리 행보를 결정할 수 없는 실정인 것이다.


현대자동차는 지난해 임단협 과정에서도 주5일제 문제를 놓고 노사 간 대리전 양상을 펼쳐 어려움을 겪은 바 있다. 기업 내부 상황보다는 전사회적인 ‘관심’ 속에서 팽팽한 힘겨루기를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노사 모두가 협상을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끌려 가는’ 형국이 되어 진땀을 뺐다.


회사 관계자 J씨는 “비정규직들이 정규직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회사가 자선단체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회사 입장으로서는 무한경쟁 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노동의 유연성이 필요하다. 따라서 노동조합에서도 무작정 정규직화를 요구할 것이 아니라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다른 회사 관계자 K씨는 “우리도 답답하다. 최근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상황이 낙관적이지만은 않은 상태에서 무조건 노조의 요구를 들어줄 수만도 없는 현실”이라며 “적어도 노조가 회사에 비용 지불을 요구한다면 노조로서도 뭔가 가시적인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K씨는 노조의 대안에 대해 “생산성 향상, 품질혁신 등을 위한 노력, 그리고 외부적 유연성이 힘들다면 내부적 노동유연성을 확대시키고 전환배치 등을 수용하겠다는 입장 표명이 필요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장활동가 L씨는 “궁극적으로는 노동계가 산업의 문제에 개입하고, 노사정이 함께 풀어가는 방식을 찾아야 한다. 비정규직 문제는 개별 사업장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회적, 전노동의 문제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사실 비정규직 문제 해결 대안이라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구나 지금처럼 대립 지점이 분명한 상황에서 누구도 선뜻 나서기에는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마냥 손놓고 있을 수도 없는 문제이다.


취재를 마치고 돌아온 직후인 1월 22일, 비정규직 노동자 최남선씨의 분신 소식이 들려왔다. 안타까운 일이다. 이번이 마지막이길 간절히 소망하면서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윈윈 해법’ 소식이 울산에서 들려오길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