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꼬인 임금 셈법, 민주노총 28일 총파업 예고
더 꼬인 임금 셈법, 민주노총 28일 총파업 예고
  • 성상영 기자
  • 승인 2018.05.25 17:48
  • 수정 2018.05.25 17:4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최저임금법 국회 본회의 통과 저지 초강수

상여금·복리후생비 포함, 취업규칙 특례 적용

연 2,500만 원 미만도 임금인상 무력화 논란

“최임위에서 논의하자” 국회에서 거부당해

최저임금제 취지 퇴색… “사상 최악의 개정안”

 

민주노총 임원 및 가맹조직 대표자들이 25일 중앙집행위 회의를 마치고 총파업 계획을 발표한 뒤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포함하는 내용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25일 새벽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를 통과함에 따라 민주노총(위원장 김명환)이 28일 총파업을 예고했다. 민주노총은 25일 오전 긴급 중앙집행위원회(중집)를 열고 총파업 투쟁방침을 만장일치로 의결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노정관계 파탄

민주노총은 중집 직후 가맹·산하조직에 공문을 보내 총파업 지침을 전달했다. 투쟁지침에 따르면 민주노총 전 조직은 오는 28일 오후 3시를 기해 ‘최저임금 개악 저지 총파업’을 전개한다. 각 조직은 이날 2시간 이상 총파업을 벌이는 한편 파업 집회를 지역별로 진행할 방침이다. 서울·경기·인천 등 수도권 조직은 서울 영등포구 국회 앞으로 모일 전망이다. 이후 계획은 차기 중집에서 정할 예정이다.

김명환 위원장은 “정부는 최저임금 1만 원을 공약했지만, 정치권과 재벌은 ‘만 원의 행복’을 ‘절망의 만 원’으로 만들었다”며 포문을 열었다. 김 위원장은 “최저임금제도와 관련해 최저임금위원회에서 매듭 짓는 것이 노사정 대화 정신 아니겠느냐고 했음에도 여당 원내대표라는 자가 나서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을 무시하고 노사정 대화에 찬물을 끼얹었다”고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비난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국회 여야 간 합의의 결과이긴 하지만, 현 정부로까지 비판의 화살이 쏟아졌다. 민주노총은 최저임금법 개정안 통과를 놓고 “1996년 정리해고법, 2006년 비정규직 개악법, 2010년 노조법 개악에 이어 문재인 정부는 사상 최악의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했다”고 규탄했다. 또 “문재인 정부 출범 1년 만에 총파업에 돌입하게 된 책임은 전적으로 정부와 집권여당에 있다”고 몰아붙였다.

민주노총은 이미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처음 환노위 고용노동소위에 상정됐던 지난 21일 한 차례 국회 안팎에서 실력행사에 나섰다. 김명환 위원장이 그 자리에서 “노사정 대표자회의를 비롯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참여를 재고하겠다고” 밝힌 뒤, 민주노총은 공식 입장을 내고 ‘사회적 대화 불참’을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민주노총을 향해 “1년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한 일이 무색해졌다.

김명환 민주노총 위원장이 25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13층 대회의실에서 오는 28일 총파업에 돌입하겠다고 선언하며 그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상여금·복리후생비 최저임금에 넣은 개정안, 문제는?

국회 환노위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상여금과, 현금으로 지급하는 복리후쟁적 임금(복리후생비)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시켰다. 최저임금 산입범위란 노동자가 받는 임금의 최저임금(2018년 시급 7,530원) 위반 여부를 가리기 위한 기준이다. 현재는 기본급과 상여금, 복리후생비 등 여러 임금항목 중에서 기본급만 최저임금액과 비교 대상이 된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내년부터 정기상여금 중 최저임금 대비 25%를 초과하는 부분과 식대·교통비·숙박비 등 복리후생비 중 최저임금 대비 7%를 초과하는 부분이 최저임금에 반영된다. 올해 월 환산 최저임금 157만 3,770원을 기준으로 계산하면 상여금은 최대 39만 3,443원, 복리후생비는 11만 164원까지 최저임금 산입범위로 인정된다.

가령 하루 8시간, 주 5일 일해 월 200만 원을 받는 노동자의 급여명세표가 기본급 140만 원과 상여금 50만 원, 식대 20만 원으로 구성됐다고 치자. 지금대로라면 기본급이 월 환산 최저임금(157만 3,770원)보다 낮아 법 위반이 된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기본급(140만 원) 이외에 상여금 중 11만 원(50만-37만=11만 원)과 식대 중 9만 원(20만-11만=9만 원) 등 총 160만 원 가량이 최저임금으로 인정돼 법 위반이 아니다. 사용자가 기본급을 한 푼도 안 올리고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피해갈 수 있어 ‘최저임금 무력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환노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상여금 중 최저임금의 25%에 해당하는 부분만 포함키로 한 데 대해 “중위소득에 해당하는 연 2,500만 원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상여금 300%를 받는 일반적인 경우를 기준으로 이를 12개월로 나눠 25%라는 수치가 나왔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제한 단서는 향후 단계적으로 비율이 올라가 오는 2024년에는 상여금과 복리후생비 전액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하게 된다.

한편 환노위는 2개월마다 또는 분기·반기별 등 1개월을 넘어선 주기로 지급하던 상여금을 매월 지급하는 방식으로 취업규칙을 바꾸더라도 노동자의 의견을 청취했다면 불이익 변경에 해당하지 않도록 특례를 적용했다. 근로기준법 제94조 제1항에 따르면 사용자는 취업규칙을 노동자에게 불이익한 내용으로 변경할 때 노동자의 과반수가 가입한 노동조합의 동의를 구하거나, 노조가 없을 경우 노동자 과반수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최저임금만큼은 예외로 두겠다는 것이다.

25일 새벽 국회 환노위의 최저임금법 개정안 의결을 앞두고 이를 저지하기 위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경찰 병력과 대치하고 있다. ⓒ 성상영 기자 syseong@laborplus.co.kr

최임위 제도개선TF 권고안 반영, 시기 놓친 노동계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의는 지난해 최저임금위원회(최임위)에서 시작됐다. 노·사·공익위원은 최저임금제도 개선을 위해 전문가TF를 구성하고 산입범위 확대 여부를 포함한 6개 과제를 검토했다. 최저임금 제도개선TF는 지난해 말 각 과제에 대한 권고안을 내놨다.

TF 권고안에는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1개월을 초과하여 지급하는 상여금을 포함하기로 전제하고, 복리후생비에 대해 3가지 방안을 내놨다. ▲1안은 기존대로 모든 복리후생적 금품을 제외 ▲2안은 매월 일률적으로 지급되는 현금성 임금은 산입 ▲3안은 현금성 임금과 더불어 현물로 제공되는 금품도 산입 등이다.

노·사·공익위원은 논의를 거듭했지만 결론을 도출하는 데 실패했다. 국회에서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를 담은 법안이 줄줄이 발의됐다. 노사 간 합의와 법제화 사이에서 결국 국회가 최저임금 제도를 손질하는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다. 노동계는 11기 최임위가 새로 구성돼 산입범위 확대 논의를 다시 최임위로 가져오자고 주장했으나, 국회는 속도전에 들어가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회 환노위의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 법안 처리 소식에 민주노총은 국회 앞에서 수일 동안 밤샘 집회 및 농성을 이어갔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이 환노위 문턱을 넘어 본회의 표결을 앞둔 상황에서 민주노총은 문재인 정부 첫 총파업이라는 마지막 승부수를 띄웠다.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등 민주노총 산하 대공장 정규직 노조도 ‘저임금 노동자와의 연대’를 명분으로 28일 1시 30분부터 2시간 파업에 동참한다.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정책협약을 맺었던 한국노총도 연일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23일 결의대회를 열고 대통령과의 단독 면담을 요구했다. 25일에는 긴급 성명을 내고 “환노위가 통상임금 범위는 손대지 않고 최저임금 산입범위만 확대해 사용자들은 앞으로 기본급을 그대로 둔 채 최저임금 산입범위에 포함되는 복리후생비만 늘리는 등 임금체계를 더욱 복잡하게 할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국노총은 오는 28일 중집을 열고 대응계획을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