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노총 '실력'과 '실천' 양날개로, 모든 노동자 위한 활동해야
지난 21일 가석방된 한상균 전 민주노총 위원장이 문재인 정부의 노동존중 정책에 가장 우선이 돼야할 재벌 개혁이 빠져있다고 지적하며 “정부의 말과 실천이 달라질 경우 민심이 냉정해지는 시간은 그리 멀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한 전 위원장은 2015년 11월 민중총궐기를 비롯해 10여 건의 집회를 주도하면서 ‘집회 및 법시위에 관한 법률’ 등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징역 3년형을 받았다. 이후 노동자에서 민중으로 이어져 확대된 촛불 민심이 정권교체를 이뤄내는 과정을 감옥에서 지켜봐야 했다.
한국사회 불평등 해소 핵심 ‘재벌개혁’
한 전 위원장은 31일 오전 민주노총에서 열린 석방 기자간담회에서 “촛불 민심의 요구는 한국사회의 불평등문제를 해결해야한다는 것”이었다며 “그 핵심은 재벌 개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여러 가지 정책들을 내놓고 있지만, 시간이 흐르면 정권이 바뀜을 아는 재벌 스스로 다단계 착취구조를 해소하고, 비정규직과 중소사업장에까지 이익을 고르게 나누려고 하지 않을 것”이라며 “재벌 개혁은 몇 가지 법을 개정하고, 총수가 교체되는 차원의 것이 아니라, 이 문제 자체를 노동자의 시각으로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단계 착취 구조를 풀기 위해서 상시 고용하는 일자리를 직고용하는 것이 최종 종착점이어야 한다. 이를 위해 정부가 확실한 의지를 가져야 하는데, 정부의 정책 우선순위에 서 이 문제가 밀려나 있다. 지난 정권으로 회귀, 후퇴하고 있는 것”이라며 “(무노조경영을 내세워온) 삼성의 코가 걸리고, 사법 적폐가 드러나고 있는 지금은 남북관계를 개선시키는 것 못지 않게 그동안의 적폐를 해소할 수 있는 호기”라고 역설했다.
감옥에서 광장의 촛불 소식을 들으면서 금요일마다 주말의 날씨가 좋기만을 바랐다는 그는 “출소 후 이전보다 나아진 대한민국을 기대했지만 현실은 여전히 많은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며 “정부가 노동존중 정책기조를 가졌음에도 산업정책이 받침 되지 않은 채 노동자들은 비용으로 여겨지고 고통전가와 해고의 대상으로 본다. 저임금노동자들은 지금도 많은 것을 뺏기고, 국회의 노동자를 위한다는 노동개악에 고통 받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진단했다.
조합원 넘어 모든 노동자 위한 ‘민주노조’
이날 한 전 위원장이 새로운 노동운동의 방향과 민주노총의 역할에 대해 강조한 것은 ‘미조직 약한 노동자 끌어안기’였다. 여전히 조직노동자들이 사회변혁의 추진동력이며, 앞으로 사회의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 위해선 비조직노동자들이 노조로 조직돼 자신의 권리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한 전 위원장은 “제대로 목소리도 내지 못하고 억울하게 쫓겨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현실은 감옥에서 접한 가장 참담한 뉴스였다. 미조직노동자들이 지금 당장 분리되고, 억압받을 것이 두려워 상황을 극복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이들을 위한 언덕이 필요하다”며 “민주노조 운동을 이끌고 있는 민주노총에게 부여된 책임과 과제가 막중하다”고 말했다.
특히 “그동안은 공장 안에 조직된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는 것만 잘하면 민주노조라고 했다. 87년 노동운동이 만든 우리 노동운동의 방향성이었다”며 “2018년 후 노동운동의 방향성은 정의의 폭을 넓혀 사회의 가장 약자들을 위한 연대를 실천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지 않는 노동자, 노조는 민주노조라는 명칭을 써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민주노총이 현실을 비판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구체화하기 위해 고민하고, 실력과 실천이라는 양 날개로 권력과 자본에 투항하지 않고 투쟁해나가야 한다”며 “모든 노동자를 위한 활동을 보다 적극적이고 빠르게 해 나가야 한다”고 당부했다.
출소 이후 한 전 위원장은 구구조정에 맞서 200일 넘게 고공농성 중인 천막 제조업체 파인텍 노조원들을 찾았고, 지난 주말에는 고 백남기 농민이 잠든 망월동묘지를 참배했다. 그는 앞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노동자들을 두루 만나러 다닐 예정이라며 “배제된 노동자들 모두가 민주노총의 깃발 아래 단결될 수 있는 길을 찾는데 모든 역량을 다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한편 한 전 위원장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 사면될 것이라는 예측도 나왔지만, 형의 3분의 1을 넘긴 수감자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가석방을 통해 2년 6개월간의 감옥생활을 마쳤다. 이날 그는 “박근혜 정부에서 맞서서 몽둥이를 맞을 사람이 필요했다. 필요한 시기 필요한 행동을 하는 것은 저의 상식이었다. 어떤 후회나 아쉬움은 없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