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의제 빠진 공무원 증원 논란
핵심 의제 빠진 공무원 증원 논란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6.15 18:35
  • 수정 2018.06.15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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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포트] 공무원 증원 논란

정확한 행정수요 예측, 장기 대책 마련해야

공무원 증원은 단순히 비용의 증가만 뜻하지 않는다. 대국민 행정서비스가 늘어난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러나 한국사회에서 공무원의 인력을 늘리는 것에는 늘 세금이 과도하게 투입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그동안 행정수요를 기반으로 공무원을 늘리기보다 정치적인 구호와 역학관계 속에서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현상이 반복돼 온 탓이다.

작년 말 국회 예산심의 과정에서 시작된 공무원 증원 규모를 둘러싼 여야의 공방이 지금까지 치열하게 이어지고 있다. 반면 미래 행정수요에 대한 정확한 예측과 진단, 이에 영향을 줄 변수, 시대 흐름에 따라 달라질 공무원의 역할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더디기만 하다.

공무원 12년 만에 최대 증원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다. 핵심은 공공부문에서의 일자리 창출이다. 지난 대선후보 시절 공공부문에서 81만 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중 17만 4,000개는 향후 5년(2018~2022년)동안 증원할 공무원 수였다.

문 대통령은 당시 한국의 공공부문 고용 비중이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이라는 수치를 들며 공공부문 고용을 늘려 일자리를 창출하고 공공서비스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 안전과 복지를 담당하는 공무원을 확충하겠다며, 소방관과 사회복지전담공무원, 교사, 경찰관, 부사관, 근로감독관 등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이 같은 공무원 증원 계획은 그대로 반영돼 발표됐다. 정부는 올해 국가직 공무원 1만 2,221명 뽑겠다고 밝혔고, 여당과 야당은 정부안을 두고 정면으로 충돌했다. 야당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포퓰리즘 정책이라며, ‘미래는 걱정 말고 현재를 즐기자’는 욜로(YOLO, You Only Live Once)를 붙여 ‘욜료 예산’이라고 비판했다. 여당은 증원될 공무원의 95%가 소방·치안 공무원 등 국민들의 삶과 밀접한 현장공무원이라며 ‘민생 예산’이라고 반박했다.

정치권은 지난해 말, 공무원 증원 규모를 두고 올해 예산안 법정 처리시한을 넘기면서까지 팽팽한 기 싸움을 벌였다. 논의 과정에서 국민의당은 9,000명을, 자유한국당은 7,000명을 제시했다. 이에 여당은 정부안에서 1,500명을 줄이는 절충안을 냈다. 여야 합의과정을 거쳐 예산안에 최종적으로 반영된 국가직 증원 규모는 애초 정부안보다 축소된 9,475명이다. ▲교사(국가직) ▲사회복지직 ▲소방직 등 지방자치단체 재원으로 충당하는 공무원은 정부안 그대로 1만 5,000명이 유지됐다.

행정안전부는 각 부처와 논의를 거처 원안에서 축소된 인원만큼 국가직 공무원 수를 조정했다. 헌법기관을 제외한 나머지 직렬의 인원이 애초보다 줄어들었다. 구체적인 직렬별 인원은 ▲군 부사관 2,960명 ▲경찰(파출소·지구대 순찰인력) 2,593명 ▲집배원 748명 ▲근로감독관 565명 ▲생활·안전 밀접분야 2,307명 ▲헌법기관 302명 등이다. 짧은 기간 동안 신규 인력 배정을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행정수요라는 부분에 대한 면밀한 검토가 이뤄졌을지 의문이 든다.

올해 국가직과 지방직을 합친 공무원 총 증원 수는 2만 4,475명으로, 12년 만에 최대 규모다. 행안부의 ‘2017 행정자치통계연보’에 따르면 공무원 증원 규모는 2006년 2만 6,187명 이후 매년 2만 명 이하였다. 2008년에는 6,328명을 줄였고, 2016년에는 8,191명을 늘렸다. 현재 공무원 수는 104만 2,782명(2017년 기준)이다.

공공부문 고용 국가 간 비교 ‘한계’

현재 한국의 공무원 수는 적정한가.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공무원 인력에 대한 논의는 규모를 줄어야한다거나 늘려야한다는 식의 찬반으로 의견이 극명하게 갈리면서 공회전해왔다. 국민들의 행정서비스 수요가 복지 분야를 중심으로 커지고 있는데 이를 감당할 공무원 수는 충분하지 않아 증원해야 한다는 의견과, 세금이 투입되는 공무원 인력의 확대는 억제해야 한다는 측의 대립이었다.

이런 배경에서 새롭게 등장하는 정권들은 행정수요를 적절하게 충족시킨다는 측면보다 정치적인 개혁 수단으로 공무원 수를 줄여온 경향이 있다. 한국행정연구원의 2017년 ‘행정수요의 변화에 따른 정부인력 규모의 비교분석 및 적정화에 관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김영삼, 김대중, 이명박 정부의 경우 초반기에는 작은 정부를 기치로 내걸고 공무원 인력을 감축했지만, 중반기 이후에는 증가했다”며 특히 ”김대중 정부는 IMF 경제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적 정부개혁수단으로서 공무원 감축 목표를 정하고 이를 맞춰나가 목표와 수단이 전도되기까지 했다”고 분석했다.

이에 대해 김윤권 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가 부도라는 시대적 상황에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그동안 한국사회에서 공무원 증원에 대한 명확한 기준, 충분한 논의는 없었다”며 “정치 과잉이 문제다”고 지적했다. 정부별로 공무원 인력 운영 방향과 방식은 다소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인력 규모를 증원하는 데 전략적인 접근은 부족했다는 것이다.

공무원 증원을 강조하는 정부도 행정수요에 대한 면밀한 예측에 따른 논의를 했다기보다 다른 국가와의 공공부문 인력 규모를 절대적으로 비교하는 것에 머물렀다. 작년 조기대선 과정에서 대선후보들 간에 공공부문 일자리 공약과 관련한 설전을 주고받으며 공무원 규모의 적정 기준을 찾으려는 시도는 있었지만, 또다시 공공부문 총 취업자 수 대비 공공부문 일자리 비율을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하는 수준에 그쳤다.

행정 연구가들은 이 같은 접근방식의 한계에 대해 말한다. 우선 기본적으로 국가마다 정부인력(공공부문 인력)의 분류가 다르다. 한국에서 정부인력이라면 단순히 ‘공무원’만을 말한다. 공무원법상의 공무원인 중앙정부 공무원,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국공립교원, 경찰공무원, 소방공무원 등이 해당된다. 반면 통상적으로 OECD 자료에서 말하는 정부인력은 ‘일반정부 종사자’다. 중앙·지방 정부를 비롯해 사회보장기금, 공공비영리기관 노동자들을 아우른다. 최근에는 이에 공기업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국제적 지표는 그 범위가 확대되는 추세다.

각 나라별 기준을 통일해도 문제는 남는다. 국가 간 정부인력 규모를 절대적 수치로 비교하는 것은 정부인력 규모에 영향을 미치는 국가별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국가발전단계와 정치이념, 사회구조, 역사적·문화적 가치 등에 따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정부의 기능과 역할은 달라지는데, 이는 정부인력 규모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장기 행정수요· 효율적 인력 운영 고려해야

조세현 한국행정연구원 정부혁신연구실장은 “환경변화가 행정수요를 변화시키고 행정수요는 다시 정부인력 규모의 증감에 영향을 미친다. 단순히 수치를 비교하는 것은 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국민들의 행정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구성된 정부의 기능과 행정수요의 특성에 대한 분석 없이 인력을 늘리거나 줄이는 것은 인력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국민의 행정서비스에 대한 정부의 대응성을 저해 한다”며 “현 정부가 늘린 경찰과 소방관, 근로감독관 등은 충원돼야하는 현업직 공무원이라고 보이지만, 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정부 인력규모를 적정 수준에서 관리하기 위해선 중장기 수준에서 정부의 기능별 행정수요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체계적인 수급 정책을 세워야 한다”고 설명했다.

행정안전부는 2005년부터 5개년 중기인력운영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행안부 관계자는 “효율적인 인력운영을 위해 5년 단위로 총 정원 증감 방향을 설정하고 매년 정부인력 관리 시 참고한다”며 “이는 고정된 계획이 아니라 매해 수정 보완해 나가는 롤링플랜이다. 5년 보다 장기적인 관점으로 인력 수요를 살펴보진 않고 있다”고 말했다.

행정수요의 증가가 반드시 공무원의 증원을 의미는 것만은 아니다. 일반 행정의 경우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사물인터넷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하면 업무가 간소화돼 인력대체효과가 나타난다. 정부의 인력 규모 자체 못지않게 효율적인 인력 운영 방안도 중요하다. 김윤권 한국행정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국내외 행정 환경이 변하고 국민들의 행정 수요와 정책문제가 복잡하고 다양해짐에 따라 정부 기능을 재조정하고, 이를 실질적으로 작동시키는 공무원들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앞으로의 정부의 운영은 과거보다 더 공공성을 중시하고 정보를 공개하며,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무원들의 칸막이 업무 형태를 개선하기 위한 법·제도적 정비와 함께 부처 간, 부서 간 유동적인 공무원들의 이동을 위한 통합정원제, 유동정원제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한다. 정부와 행정안전부, 기획재정부는 국민의 세금인 예산을 효율적이고 형평성에 맞게 각 기관에 배분하는 ‘가디언(Guardian, 수호자)’으로서의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정권이 바뀐다고 이전 정부의 공무원 인력 운영 방향과 정책을 배척할 것이 아니라, 참여정부의 조직진단센터와 박근혜 정부의 정부 3.0 등은 계승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공무원, ‘신뢰 회복’이 관건

지난달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에서 공무원 증원은 또다시 쟁점이 됐다. 정부가 청년 일자리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편성한 3조 9,000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심의하는 과정에서 국가부채에서 공무원 연금이 차지하는 비중에 대한 문제 제기가 잇따랐다.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이 국가 재정 악화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국가부채는 1,555조 8,000억 원 중 공무원·군인연금충당부채가 845조 8,000억 원으로 54.4%를 차지했다. 이에 대해 기획재정부는 저금리에 따른 재무적 요인이 88.7%(82조 6,000억 원)이며, 기존 공무원과 군인의 재직기간 증가 등에 따라 증가된 부분은 11.3%(10조 6,000억 원)에 불과하다고 분석결과를 내놨지만, 현 정부의 공무원 증원에 대한 비판은 여전하다.

이창희 대한민국공무원노총 사무총장은 “연금과 관련된 공무원 비용은 부채가 아닌 충당금으로 표현해야 한다”며 “공무원 채용 시 임금은 당장의 비용이지만, 국가와 공무원이 절반씩 내는 연금은 그 성격이 다르다”고 말했다. 또 “공무원 한 명을 채용하면서 30년 후에 지급할 연금은 빚으로 책정하면서 공무원이 하는 업무와 소비활동 등 사회적으로 환원하는 부분을 간과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 사무총장은 “과거 군사문화에서 한국의 공무원들은 지시가 내려온 것을 빠른 시간 내 처리하는 사람들이었고, 국민들과의 일체감도 별로 없었던 것이 사실”이라며 “공무원이 국민들의 신뢰를 얼마나 회복하느냐가 관건이다. 공무원이 국가의 지원을 국민들이 제대로 받을 수 있도록 공정한 사회시스템으로서의 역할을 해나감에 따라, 공무원 증원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윤권 선임연구원도 “공무원은 국민의 대리인인 정부를 구성하는 핵심요소로, 국민의 행정수요에 대한 충족, 행정서비스에 대한 전달, 정책문제에 대한 해결 등의 책임성과 책무성을 가진다”며 “정부인력의 규모에 대한 논쟁은 공무원이 왜 존재하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에서 비롯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OECD 발표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3개 조사 대상국가 가운데 국민의 정부 신뢰도가 29위로 가장 낮은 국가 중 하나다. 이에 대해 조세현 정부혁신연구실장은 “문제 해결을 위한 정부 역할에 대한 국민의 요구와 기대가 높다는 반증이기도 하다”며 “공무원이 속한 조직의 인력을 최대한 확보하고자하는 관료주의적인 행태는 정부의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이는 곧 정부의 신뢰하락으로 이어져왔다. 이를 경계해야하지만 행정적, 경제적, 인구사회적 요인 등 변화하는 미래 환경을 고려해 보다 합리적인 정부인력 운영을 해나가야 한다”고 전했다.

정부의 공무원 인력을 단순히 비용적인 부분만 부각해 재단해선 안 된다. 정부와 공무원의 역할을 되짚고, 정부인력의 규모와 운영방식에 대한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