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기 무서운 학교급식실”…산안법 적용 왜 안 되나?
“일하기 무서운 학교급식실”…산안법 적용 왜 안 되나?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6.20 17:29
  • 수정 2018.06.20 17: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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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6년간 학교 급식 조리실 산재 보상건만 3,400여 건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급식실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을 촉구했다. ⓒ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이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급식실에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을 촉구했다. ⓒ 김민경 기자 mkkim@laborplus.co.kr

학교 단체급식 조리실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오는 1일 임기를 시작하는 17개 시·도교육감 당선인들에게 학교 급식실에 ‘산업안전보건법(이하 산안법)’이 전면 적용될 수 있도록 나서달라고 요청했다.

전국학교비정규직노조(이하 학비노조)는 2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학교 급식실의 높은 노동 강도와 위험요인에 대한 실상을 알리며 “산안법 전면 적용이 최선의 예방책”이라고 주장했다.

학교급식실은 ‘위험지대’

2018년 교육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전국 초‧중‧고‧특수학교 11,800곳에서 급식을 실시하고 있다. 1일 평균 급식 이용 학생은 574만 명에 달한다. 급식종사자는 ▲영양사(1만 169명) ▲조리사(1만 572명) ▲조리원(5만 478명) 등 총 7만 1,219명으로 한 학교당 평균 6명이 배치돼 있다. 이들 중 89.2%(6만 3,500명)는 비정규직노동자다.

단체급식 조리실의 특성상 조리종사자들은 끓는 물, 절단기, 분쇄기, 칼, 가위, 조리 시 발생하는 유해가스, 독한 청소세제 등 많은 위험요인에 노출된다.

특히 학교 급식 노동자들은 평균연령이 50.2세로 높고, 제조업과 공공기관 등 다른 단체급식 현장보다 배정된 조리 인원이 적다. 학비노조는 “학교급식종사자들은 근골격계 질환과 화상 등 각종 직업병과 안전사고에 시달리고 있다”며 “학교급식실은 말 그대로 위험지대”라고 표현했다.

14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일해 온 박화자 학비노조 경기지부 조합원은 “학교 급식실이 무섭다”고 말했다. “1,800명이 급식을 하는 중학교에서 14명의 조리 종사원이 일했다. 아이들이 500명으로 줄면서 인원도 4명까지 줄었다”며 “급식실과 식당의 면적, 기구 등이 그대로인 상황에서 하루 종일 종종거리며 일 해야 하고, 시간을 맞추기 위해 마시듯 먹는 점심으로 항상 위염을 달고 산다”는 것이다.

이어 “손가락이 절단되고 화상을 입고, 청소 중 높은 곳에서 떨어져 허리를 다쳐도 학교와 교육청 어디에서도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며 “산재가 발생하면 다친 나의 잘못이고, 학교에, 동료들에게 피해를 주는 사람이 돼 버린다”고 전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강병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국감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1년부터 2016년까지 최근 6년 동안 학교급식 현장에서 산업재해로 보상을 받은 이들만 3,326명에 달한다. 매년 554건의 산재가 발생하는 셈이다.

학비노조는 학교 현장에서 산재가 발생했을 때 산재신청을 기피하고 은폐하려는 분위기를 고려할 때, 실제 산재발생률은 더 높은 것으로 봐야한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16년 광주교육청이 산하 공립학교 1,828명의 조리종사자에 대한 근골격계질환 검진을 한 결과, 87%가 관리대상자 또는 질환의심자·질환자로 분류됐다.

2014년 우원식 위원실에서 발표한 ‘학교급식 조리노동자들의 건강권 실태와 작업환경 개선연구’자료집에서도, 학교 급식 노동자의 91.9%가 근골격계질환 통증을 호소하는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이는 철도정비원(86.8%)이나 중공업노동자(76.6%)보다 높고, 통증호소가 가장 높은 직종으로 알려진 속기사(91.6%)보다도 높은 수치였다.

“학교급식실 지금 당장 산안법 전면 적용해야”

이처럼 학교 급식 현장에서는 산재가 많이 발생했지만, 2017년 이전까지 산안법 적용대상이 아니었다. 법에서 예외로 두고 있는 ‘교육 서비스업’으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학교 현장에는 안전교육과 안전관리자·보건관리자 선임,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 산안법의 핵심조항 어느 하나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그러나 노동조합을 중심으로 현장에서 꾸준히 안전 문제를 제기하자, 2017년 2월 고용노동부는 산안법 적용범위 판단 지침을 통해 ‘학교급식(현장)을 산업안전보건법을 전면 적용하는 기관구내식당업으로 분류한다’고 변경했다.

이 같은 고용노동부의 해석에 미온적이던 교육부도 올해 3월 “급식실에 대한 산업안전보건법 전면 적용에 따라 산업안전보건위원회 설치 등 강화된 안전보건 조치를 하여야 한다”는 입장을 각 시·도 교육청에 전달했다.

문제는 고용노동부의 지침 변경과 교육부의 달라진 판단에도 불구하고 17개 시·도 교육청 어디에서도 학교 급식실의 안전 강화에 나서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학비노조는 “모든 교육청이 예산과 인력, 안전체계 구축 준비 부족 등을 핑계로 학교 급식실 산안 법 적용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며 “이는 명백한 산안법 위반이며, 전국 7만 학교급식종사자에 대한 최종 안전보건관리감독자인 교육감의 직무유기”라고 규탄했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노조가 산안법 적용을 제외한 곳이 너무 많아 문제가 심각하다며 시행령에서 전면 적용하는 것으로 개정해야한다고 요구하기 시작한 시기가 2011년이었다. 고용노동부와 교육부 간의 공방이 오가면서 통계로 집계된 경우로만 3,000명이 넘는 노동자들이 산재를 당한 것”이라며 “정부부처와 지자체, 공공기관 등은 선제적이고 모범적으로 산안법을 지키는 모습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학비노조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 따른 교육감 공백을 고려해 산안법 위반에 대한 법적 절차를 미뤄왔다”며 “새로운 교육감들은 임기 시작과 함꼐 학교 급식실에 산안법을 적용하기 위한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향후 진행 상황에 따라 교육감들을 산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하는 법적 조치도 불사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이와 관련해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 담당자는 “지난해 교육서비스업·공공행정업이라도 현업 업무를 하는 분들의 경우 산안법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을 각 지방청 감독관들에게 내려 보냈고, 이후 교육부와 법적 해석에 대한 검토를 진행했다”며 “산안법에 따른 안전보건체제를 갖추지 않으면 과태료를 부과할 수 있지만, 전국에 감독관은 400명 정도인 반면 학교 급식실은 수십만 개나 된다. 연 단위 계획을 수립한 뒤 현장 점검을 나가는데, 아직 구체적인 계획이 마련되지 못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편 산안법 31조에 따르면 법 적용 제외 사업장으로 분류된 곳은 ▲교육서비스업 ▲공공행정, 국방 및 사회보장 행정 ▲국제 및 외국기관 등이다. 지난해 고용노동부의 지침에 따라 법 적용 범위에 포함된 지자체 청소노동자들은 올해 3월 산안법 위반 혐의로 233개 지자체를 모두 고발해 현재 법적 절차가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