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 넘긴 하이닉스 비정규직 문제
복수노조 시대 ‘예고편’되나
해 넘긴 하이닉스 비정규직 문제
복수노조 시대 ‘예고편’되나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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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 다른 상급단체간 조정기능 ‘빵점’

조직적 이해관계, 불신이 대화 가로막아

 

잘 알지도 못하는 단체에서 왜 우리회사를 그렇게 무력으로 들어오려 하는지 또 매너도 없고 건방떨고 다니는 용역경비들이 우리 회사에서 설치는지 짜증이 납니다.
민노총집회에서 그 사람들은 한번 우리회사 찔러보고 갔지만 그걸 지켜보는 직원들 마음은 찢어집니다.
님들의 요구조건 이해는 합니다만...제발 저희가 용역경비들과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서 있게 하지 말아주세요...님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함께 살려온 회사 아닙니까...
(ID 하이닉스 노동자)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동안 원청의 노조는 무얼했단 말입니까??
우린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한노총이든.. 민노총이든.. 우리의 권리를 대변해줄 곳을 찾은 것 뿐이고..
한노총이 우릴 외면했기에 민노총을 찾은것 뿐이지
패싸움 하자는게 아닙니다!!  (ID 폭풍전야)

 

소속이 중요 하나여?
어떤 마음으로 노동조합을 믿고 따르는 것이 중요 한것이 아닐까여?
혹여, 투쟁으로 가는데, 따라가지 않을 조직 있을까여?
그맘, 그뜻, 끝까지...잃지 말고 갖고 있으되 한 가지, 신뢰를 가져 주셔여. (ID 주야)

 

지난 1월 12월 청주의 하이닉스 공장 앞에서 민주노총 주최로 열린 직장폐쇄, 집단해고 규탄 집회 이후 하이닉스, 매그너칩 사내하청 지회(민주노총 금속노조 소속) 홈페이지에 논쟁이 뜨거웠다. 집회를 두고 때 아닌 상급단체 논란이 일고 있는 것은 이 공장의 정규직, 비정규직 노조가 서로 다른 상급단체에 속해있기 때문이다. 


이 공장에서 비정규직노조가 처음 생긴 것은 지난 2004년 10월. 2004년 9월 하이닉스반도체로부터 분사된 하이닉스 매그나칩 청주공장에 들어와 있는 사내하청업체는 모두 30여개로 사내하청노조 결성에는 4개 업체의 하청노동자들이 참여했다. 하청노조는 결성과 동시에 민주노총 금속노조에 가입했다.


하청노조는 2004년 11월 불법파견 진정에 이어 12월 전면파업에 들어갔지만 회사는 직장폐쇄와 대체인력 투입 후 하청노조 결성에 가담한 비정규직 노동자 200명을 해고하고 협상 자체를 거부하고 있는 상태여서 사태가 점점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정규직 노조는 왜 침묵하는가?
표면적으로는 불법파견 문제가 이슈화되고 있는 다른 공장 사정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렇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정규직노조가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개입하고 있는 다른 기업들과 달리 하이닉스 매그너칩 정규직노조는 비정규직노조의 지원 요청에도 이렇다할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하이닉스 매그너칩 노동조합 김정기 정책국장은 “분사로 인해 하이닉스 노조로부터 독립된 후 내부 조직정비 등에 정신이 없는 와중에 사내하청노동자들이 노조를 설립, 도움을 요청해 왔기 때문에 적극적으로 지원하기 어려웠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정규직 노동조합이 한국노총 소속이기 때문에 민주노총 소속인 사내하청 노조를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었다.


사내하청 노조의 투쟁이 본격화 되면서 이런 우려는 단지 ‘의혹’에 그치지 않고 양대노총의 성명서를 통해 터져 나왔다.
사내하청지회가 쟁의행위에 돌입했던 지난 12월 6일, 한국노총 충북지역 본부는 성명서 발표를 통해 “정규직노조-비정규직노조-회사가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정규직노조의 상급단체인 금속노련 충북지역본부도 “사내하청노조의 투쟁에 적극 나서지 않는다고 하이닉스와 하이닉스-매그나칩 노조를 어용으로 매도하는 것은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의 무지함을 반영하는 것”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금속노조 대전충북지부도 같은 날 즉각 반박 성명을 냈다. 지부는 성명을 통해 “사내하청노조가 설립되고 50일이 지나도록 한 번도 지지와 연대의사를 표시하지 않다가 쟁의행위 돌입 시점에서 ‘쟁의행위를 그만두라’는 식의 성명을 낸 데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고 밝혔다.

 

근거 없는 추측이 대화 가로막아
하지만 상급단체들의 이런 움직임은 문서상의 공방에 그쳤을 뿐,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이닉스 매그너칩 사내하청노조는 결성 이후 단 한번도 회사와 교섭을 하고 있지 못한 상태다. 회사가 ‘원청은 하청노조의 교섭대상이 아니므로 교섭을 하려면 계약업체와 하라’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


원칙적으로 맞는 얘기 같아 보이지만 문제는 그렇게 간단치 않다. 하청노조가 계약업체와 교섭을 한다고 해도 원청기업이 해당업체와의 계약을 해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원청의 정규직 노사가 하청노동자 문제 해결에 어떤 식으로든 개입될 수밖에 없다.


금속산업연맹 송보석 비정규사업국장은 “비정규직노조의 독자적 투쟁도 중요하지만 사실상 원-하청간의 연대를 통해 풀지 않으면 현재의 불법파견 문제는 해결하기 어렵다”면서 원청노조의 연대가 없는 것을 아쉬워했다. 하지만 송 국장은 “하이닉스의 비정규직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불법적 비정규직 사용의 문제로 보아야지 노-노간 갈등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이런 우려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현장에서는 상급단체가 다른 문제로 인해 상호간에 근거 없는 불신과 대화 단절 분위기가 있다는 게 관계자들의 말이다.
하이닉스 노동조합의 한 간부는 “지난 12일 민주노총 집회로 청주 공장 앞에서 충돌이 있은 후 정규직 조합원들 사이에서는 비정규직 노조에 대한 불만 여론이 높다”고 전했다.


복수노조 시대의 ‘예고편’
청주공장의 비정규직 문제가 해를 넘기고도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양대노총의 산별연맹 모두 이 문제가 상급조직간 또는 노동자간 갈등으로 비춰지는 것에 대해 극도로 우려감을 표시했다.


하지만 문제는 노노 간의 갈등으로 ‘비춰진다’는 정도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상급조직이 다른 원-하청 노조가 공동으로 대응하지 못하면서 협상력 저하와 노사 간 조정기능이 약해지고 있다.


최근 청주공장에서는 사내하청 지회에 참여하고 있던 네 개 업체 중 한개 업체 소속 노동자들이 노조를 탈퇴하고 현장으로 복귀했다. 이 업체 소속의 비정규직 노동자 한종길(54·가명)씨는 “함께 싸웠던 사람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있지만 우리처럼 하루벌이로 먹고 사는 사람들에게 몇 개월을 넘기는 투쟁은 무리”라면서 “조직이야 어디에 속해 있든 하청노동자에게는 생존권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상급단체 간의 조정기능 상실도 문제로 지적된다. 단위 사업장 노조끼리 대화조차 시작하고 있지 못하지만 서로 다른 총연맹 소속 산별연맹도 이들을 중재하거나 대화의 장을 만들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한국노총 금속노련 김만재 부위원장은 “양조직의 상급단체가 서로의 취약한 점을 인정하고  교섭·대화 창구를 만드는데 주력해야 하는 데도 조직적 이해관계와 근거 없는 추측에 매여 눈치만 보고 있는 실정이 안타깝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한 사업장내의 정규직노조와 비정규직노조가 서로 다른 상급단체에 속해 있는 경우가 드물지만 복수노조가 허용되는 2007년이 되면 하이닉스 매그너칩 사업장과 같은 사례가 더욱 늘 것이라는 게 노사관계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특히 사업장별 복수노조 시대가 오면 노동계 내부에서도 주도권을 잡기위한 경쟁이 치열해 질 것으로 보인다.


이번 문제의 해결은 단순히 비정규직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향후 노동계의 지각 변동이 불러올 갈등의 ‘예고편’일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