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된 솜방망이 '남녀고용평등법', 너무 뒤탈 없어서 탈!
30년 된 솜방망이 '남녀고용평등법', 너무 뒤탈 없어서 탈!
  • 유문선 기자
  • 승인 2018.07.18 08:20
  • 수정 2018.07.29 19:1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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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채용비리로 밝혀진 남녀고용차별 진단과 개선방향 논의 토론회
한국노총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국회의원회관에서 남녀고용차별 근절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한국노총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이 국회의원회관에서 남녀고용차별 근절을 위한 토론회를 주최했다 ⓒ유문선 기자 msyoo@laborplus.co.kr 


전문가들은 '남녀고용평등법'의 강제력을 강화해야 한다며 입을 모았다. 정부의 입김이 강하게 미치는 공공기관 위주의 대책이나 금융업계의 자정 노력은 법적 구속력을 강화하는 것보다 실효성이 적다는 것에 참석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위원장 김주영, 이하 한국노총)과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실이 공동주최한 ‘금융권 성차별 채용 비리를 통해 본 남녀고용차별 개선과제’ 토론회가 국회의원회관 제9간담회실에서 열렸다.

오늘 토론회는 금융권 채용 비리로 드러난 남녀고용차별의 실태를 점검하고, 더 나아가 성별·연령·학력 등 구조화된 각종 차별 개선 방안을 탐구하는 자리로 노동계, 학계, 정계의 전문가들이 모였다.

노동계에서는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 위원장, 김순희 한국노총 여성본부 본부장이 참석했고 정계에서는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자리했다. 학계에서는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끝으로 김엘림 한국방송통신대학교 교수가 좌장으로 토론회 진행과 정리를 맡았다. 또한 김효순 고용노동부 여성고용정책과장이 입석해 토론회에 효용적 의미를 더했다.

금융권 성차별 채용비리 실태 및 문제점

"성차별의  문제는  비단  금융권에  그치는  것이  아니다. 걸리지  않았을  뿐 다른  업계도 마찬가지다."

첫 번째 발제는 최우미 금융산업노조 부위원장이 맡았다. 최 부위원장은 “금융권 채용비리 사태는 취업준비생에게 분노와 허탈감을 주었다”며 성차별채용 사실이 밝혀지자 남성이 기득권층임을 명백히 드러내게 되었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여성이라는 이유로 떨어졌다는 현실이 오늘 토론회의 주제이기도 하다. 금융노조가 여성 할당제를 주장하면 남성들이 역차별이라는 논리로 대응했는데 이번 채용비리로 드러났다”라고 말하며 남성들의 소위 ‘역차별’ 주장은 억지 논리임을 지적했다.

최 부위원장은 KEB하나은행과 신한금융, KB국민은행 채용비리 사건을 특히, 서류전형부터 성차별적 채용을 고의적으로 추진한 사례로 구분했다. 즉, 남녀 채용비율을 미리 정한 상태에서 채용을 한 것이기에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서류전형 기회를 박탈한 것과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만약 여성이 뽑힌다고 해도 부지점장 등 관리자 직급까지 승진할 확률은 적다. 성별을 기준으로 업무를 배분하는데 여성에게는 높은 직급에서 수행하는 업무가 가지 않기 때문이다. 남성 사원에게는 관리직에서도 활용되는 여신과 외환 업무가 맡겨지는 반면 여성 사원에게는 예금, 고객관리, 수신업무 등 승진가능성이 낮은 업무가 할당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유리천장에 갇히게 되어버린다.

그래서 최우미 부위원장은 은행 측의 변명을 믿지 않는다. 은행은 '성차별적인 고용과 승진 체계를 유지하는 것 아니냐'라는 물음에 대리/행원의 성비를 보여주며 여성 비율이 비교적 높다고 주장하지만 이 주장은 '사기'라는 것이다. 성차별적인 정체 현상, 그게 전부라고 최 부위원장은 주장했다.

이와 더불어 금융계의 구조적 차별 문제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IMF 이전에 정규직이었던 직원들이 외환위기 사태 이후, 재취업을 통해 동일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으로 일하게 되었는데 법적인 문제가 생기자 이들을 ‘2차 정규직’, ‘준 정규직’과 같은 변종 직군에 포함시키는 일이 발생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게 생긴 변종 직군의 대표 주자로 '텔러'가 있다. 은행 창구의 제반업무 수행을 담당하고 상담을 통해 문제해결을 돕는 ‘텔러’는 일을 일부러 단순 업무로 구성해 정규직과는 다른 승진 체계를 구성하고 임금은 정규직의 60~80%을 받는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직군의 여성화가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다. 최 부위원장은 ‘여성의 하위직군화’라는 구조적인 차별 문제 해결을 위해 ‘2차 정규직’으로 부르는 비정규직을 철폐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금융산업노조 측은 정부의 대응책과 은행의 채용절차 모범기준 마련안을 환영했다. 그리고 다양한 은행권의 성차별문제 해결을 위해 ▲최초 지원자 성비,단계별 합격자 성비 공개 ▲여성 임원 할당제 ▲남성 육아휴직 의무화 ▲남녀고용평등법 구속력 강화의 방안을 제시했다.

고용상 성차별 해소를 위한 법제도 정비방안

"남녀고용평등법은  1987년  12월  4일  공포되었고 , 그후  30년이  흘렀지만  아직도  성차별은  진행중이다. "

두 번째 순서로는 박선영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선임연구원이 ‘고용상 성차별 해소를 위한 법제도 정비방안’에 대한 발제를 진행했다.

박선영 선임연구원은 현재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의 실효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고용의 입구에서 발생하는 차별은 다른 노동조건보다 선제적일뿐더러 노동할 권리와 생존권을 위협함에도 법적 구속력이 미약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박 선임연구원은 모집·채용 단계에서부터 성차별적 채용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여 징역형까지 고려해야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그리고 블라인드 채용은 ▲직무중심의 채용과정 보편화 ▲구직서류의 반환을 통한 재활용 ▲구직서류의 전자접수 ▲면접 가이드라인 제작 등을 통해 개선될 수 있으며 공정성을 확보하고 구직자의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박선영 선임연구원은 “권력 분배가 어떻게 이루어질 건지 새로운 발상이 필요하다. 이것을 해소하지 않고는 유리천장을 깰 수 없다. 외국처럼 남녀할당제를 시행해서 법률로 규제한다면 제일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남녀고용평등법 위반에 대해 형사처벌 방식의 법률은 작용하고 있지 않다. 지방노동청에 진정, 고소·고발을 진행해도 기관의 성인지적 감수성과 전문성 부재로 다수의 안건의 유야무야 마무리된다"며 남녀할당제 같은 강력한 제재를 통해 남녀평등을 이루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남녀고용평등법을 일·가족·돌봄 지원법과 분리하여 형사처벌 방식을 강화해야 하고 노동위원회 등 유관기관이 성인지적 감수성을 통해 노동의 성차별 문제를 전향적인 방식으로 해결해 줄 것을 촉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