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려가 현실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태
우려가 현실로… 양승태 전 대법원장 사법농단 사태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7.20 10:17
  • 수정 2018.07.20 11: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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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노조 쌍용차·갑을오토텍·발레오만도·콜텍 판결 되짚기

[리포트] 금속노조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거래 의혹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재판거래 의혹이 불거졌다. 노동계는 대법원 재판거래의 가장 큰 피해자는 노동자라며 철저한 수사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대법관들의 사퇴를 요구하고 있다.

금속노조, “피해자 삶 원상회복하라”

“헌법과 양심에 따라 공정한 판결을 하라고 준 권한을 대법원 본인들 안위를 위해 사용했다는 게 드러났습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가지고 거래를 했다는 사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법관 사찰 및 재판거래 의혹 사건 수사가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전국금속노동조합(위원장 김호규, 이하 금속노조)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을 촉구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대법원의 재판거래 피해 사례로 쌍용자동차, 갑을오토텍, 발레오만도, 콜텍 판결을 지목하고 피해 원상복구를 주장하고 있다. 금속노조는 지난달 2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콜텍 판결, 쌍용자동차 판결, 갑을오토텍 판결, 발레오만도 판결 등으로 인한 피해자의 삶이 원상회복되지 않고서 이 땅에 사법 정의란 없고, 대법원 정상화는 없다”고 규탄했다.

우려가 현실로, 쌍용자동차 판결

지난 2009년 일어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은 많은 이들에게 강렬히 남아있는 사건 중 하나다. 정리해고 통보에 2,646명의 노동자들이 공장을 떠났고 이 과정에서 29명의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처럼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부당해고 소송 판결이 박근혜 정부에 ‘협조한 재판’ 의혹 사례에 포함되면서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줬다.

1심에서 법원은 회사의 손을 들어줬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심 재판부는 “회사가 노동자들을 해고할 만큼 긴박한 경영상의 이유가 없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국제금융위기 등을 이유로 회사의 정리해고는 정당하다며 해고 무효 판결을 내린 고등법원 판결을 파기 환송했다.

2015년 12월, 쌍용자동차 노사는 2017년 상반기까지 해고자 전원 복직을 위해 노력한다는 내용에 합의했지만 전원 복직은 아직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다. 지난해 12월에는 김득중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이 쌍용자동차 대주주 마힌드라그룹 회장을 만나 복직 문제를 담판 짓겠다며 53일간의 인도 원정투쟁을 나서기도 했다. 지금 복직을 기다리고 있는 해고자는 120명이다.

재판 거래 의혹이 수면 위로 드러나자 금속노조 쌍용자동차지부는 곧바로 성명서를 내고 “사람을 죽인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건에 대한 판결이 양승태 대법원과 박근혜 정권의 검은 뒷거래를 위한 제물로 바쳐졌다는 엄청난 사실 앞에 우리는 분노를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리고 지난 6월 27일, 더 이상 늘어나지 않을 것이라 믿었던 30 번째 희생자가 발생했다. 3일 쌍용자동차지부는 서울 대한문 앞에서 지난달 27일 생활고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주중 조합원을 추모하는 분향소를 설치했다. 김득중 지부장은 “회사가 복직 시한만이라도 알려줬더라면, 문재인 정부가 2009년 국가폭력 문제를 조금이라도 더 빨리 조사해 해결했더라면 김주중 조합원은 목숨을 끊지 않았을 것”이라며 “해고자 복직이라는 고인의 뜻을 받들어 싸우겠다”고 전했다.

2014년 대법원 판결 이후 4년이 지난 현재,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은 또다시 대법원 앞에 모였다. 이들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판결은 무효”라며 “우리는 보고서에 적시된 양승태 대법원장과 관련한 의혹들이 모두 빠짐없이 제대로 바로잡히도록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 것”을 밝히고 있다.

신의칙의 등장, 갑을오토텍 판결

2013년 당시 통상임금 관련 소송은 노동계와 재계의 최대 화두였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있었다. 2013년 대법원은 갑을오토텍 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을 전원합의체에 회부했다.

같은 해 12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3년 12월 18일 선고, 2012다89399)은 “야간·휴일·연장 근무 등 초과근로수당 산정 등의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이 되기 위해서는 초과근무를 하는 시점에서 판단해 보았을 때 근로계약에서 정한 근로의 대가로 지급될 어떤 항목의 임금이 일정한 주기에 따라 정기적으로 지급되고(정기성), ‘모든 근로자’나 ‘근로와 관련된 일정한 조건 또는 기준에 해당되는 모든 근로자’에게 일률적으로 지급되며(일률성), 그 지급 여부가 업종이나 성과 기타 추가적인 조건과 관계없이 사전에 이미 확적되어 있는 것(고정성)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요건을 갖추면 그 명칭과 관계없이 통상임금에 해당함”을 명시했다.

다만 정기상여금의 경우 통상임금 지급으로 기업에게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을 초래하거나 기업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는 경우에는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을 적용해 소급분을 주지 않을 수 있다는 단서를 붙였다. 당시 전원합의체는 신의칙을 적용해 미지급 임금을 회사에 청구할 수 없다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노동계와 재계를 뒤흔들어 놓았으며, 판결 이후 노동 사건에서도 신의칙 적용이 중요해졌다. 지난해 8월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에서 많은 이들이 정기상여금, 중식대, 일비 등의 임금 항목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는지 보다 신의칙 적용 여부를 주목한 것도 이 때문이다.

이대희 갑을오토텍지회 지회장은 “당시 양승태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은 자본가들이 요구했던 입장과 그 이해를 철저하게 반영하기 위해, 통상임금 소송을 완전히 무력화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듣도 보도 못한 신의칙을 이용했다”며 “이로 인해 노동자들이 피해를 고스란히 떠안은 것이 갑을오토텍 통상임금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산별노조 붕괴 의도였나, 발레오만도 판결

현재 재판거래 의혹을 받고 있는 대다수 사건들의 공통점이 있다. 바로 1심과 2심의 판결이 대법원에서 뒤집혔다는 것이다. 발레오만도(옛 발레오전장) 판결도 마찬가지였다.

2016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가 총회를 통해 기업별노조 전환을 결의한 것을 합법이라고 판결했다. 1심과 2심 판결을 파기 환송한 판결이었다. 2011년 1심 재판부는 “지회는 독자적인 단체교섭·단체협약 체결 능력이 있는 독립된 노조가 아니므로 조직형태 변경 결의는 무효”라고 판결했으며, 2012년 2심 역시 같은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은 산별노조 산하 하부조직이 정관, 임원 등 일정 요건을 갖추고 있다면 총회만으로 기업별노조로 조직형태 변경이 가능하다는 것으로, 당시 노동계는 “산별노조로의 전환을 용이하게 하려는 취지로 만들어진 노조법상 조직형태 변경 제도를 대법원이 부정했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금속노조 역시 “노조법도, 노조의 규약도 죄다 무시하며 산별노조 붕괴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냈다”며 비난했다.

지난달 12일 금속노조 발레오만도지회는 발레오만도 공장 북문 앞에서 결의대회를 열고 재판거래의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발레오만도지회는 “발레오만도 사건은 산별노조로부터 집단 탈퇴를 용인하며 궁극적으로는 산별노조 운동 자체를 무력화하는 길을 열어준 판결이었다”며 “양승태 구속 수사와 함께 관련자들 모두 철저한 수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래에 도래할 경영위기에 문 닫은 공장, 콜텍 판결

콜텍에서 통기타를 만드는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2006년에 노조를 설립했다. 하지만 노조 설립 1년 만에 회사는 경영위기를 이유로 폐업을 선언, 국내 생산 공장을 폐쇄한 후 생산 공장을 인도네시아로 옮겼다.

갑작스러운 해고에 콜텍 해고 노동자들은 근로기준법 24조인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의 제한’을 위반한 해고라며 해고무효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1심 재판부는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지만, 2심에서 판결이 뒤집혔다. 2009년 서울고등법원은 콜텍이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매년 60억 원 이상 상당한 액수의 당기 순이익을 낸 점, 특히 2006년에는 76억 원의 당기 순이익을 낸 점, 2006년 9.1%의 임금인상안에 합의하는 과정에서 주문량이 회복되고 있다고 밝힌 점 등을 근거로 정당한 이유가 없는 ‘무효의 해고’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대법원은 원고 패소취지로 서울고등법원으로 파기 환송했으며, 파기 환송심 판결에서 “현재는 흑자라 하더라도 장래에 올 지도 모를 경영위기에 미리 대처하기 위한 정리해고는 존중되어야 한다”면서 회사의 손을 들어줬다. 당시 노동계는 이 같은 대법원 판결에 “미래에 도래할 경영 위기를 해고 이유로 든다면 우리나라에서 정리해고 못 할 사업장이 어디 있겠냐”며 황당함을 드러냈다.

이인근 콜텍지회 지회장은 “너무 분해서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며 당시 대법원 판결을 회상했다. 이 지회장은 “자본의 부당한 정리해고와 사법농단의 피해로 12년째 길거리에서 투쟁을 진행하고 있다”며 “힘없는 노동자들에게는 기울어진 운동장조차 존재하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이어서 “이 나라의 법이 노동자를 힘들게 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법이라면 거부하겠다”며 “국민의 세금으로 권력과 자본의 하수인 역할을 하는 법은 없어져야 한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