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다시 한 번 싸움 시작할 때
홈플러스, 다시 한 번 싸움 시작할 때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7.20 11:59
  • 수정 2018.07.20 10:58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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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츠’ 설립 두고 노사 갈등

 

 

[리포트] 홈플러스 리츠 설립

대형마트 점유율 2위를 차지하고 있는 홈플러스 20여 년 역사는 복잡하다. 경쟁사인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국내 기업 계열사로 시작해 안정적인 경영을 유지했지만, 홈플러스는 몇 차례 주인이 바뀌는 진통을 겪어야 했다.

홈플러스 최대주주인 MBK파트너스는 40여 개 매장을 기반으로 ‘리츠(REITs 부동산 투자회사)’ 설립 계획을 밝혔다. 웹툰 ‘송곳’과 영화 ‘카트’의 모델이 됐던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또 한 번의 싸움을 앞두고 있다. 홈플러스는 또 어떤 위험에 놓여있는 것일까.

까르푸에서 홈플러스까지, 혼돈의 20년사

홈플러스는 3개 자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기존 홈플러스 매장인 홈플러스 법인, 까르푸와 홈에버를 거쳐 인수한 홈플러스 스토어즈, 베이커리를 담당하는 아띠제로 구성돼 있다. 홈플러스 스토어즈는 3번이나 이름을 바꾸는 아픔을 겪었다.

시작은 ‘까르푸’였다. 이제는 이름조차 기억하는 사람이 많지 않지만, 프랑스의 세계적인 대형 할인점으로 한국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명성은 오래 가지 못 했다. 2006년, 까르푸는 매장 철수를 결정하고 이랜드에 매각했다. 새로운 이름은 ‘홈에버’였다. 다국적 기업인 까르푸를 인수한 이랜드는 매장을 운영하기에 충분한 상태가 되지 못 했다. 결국 2년을 넘기지 못 하고 2008년 마지막으로 ‘홈플러스’로 이름을 바꿨다.

홈플러스도 안정된 상태라고 말할 수 없었다. 1999년 삼성물산과 영국 기업 테스코 합작으로 시작됐다. 2011년 삼성이 모든 지분을 테스코에 매각하면서 외국계 기업으로 자리 잡은 듯 보였다. 테스코는 2015년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에 당시 국내 M&A 기준 최대 규모인 7조 2,000억 원에 홈플러스를 매각하면서 한국에서 철수했다. 인수하면서 2년간 1조 원 투자를 통한 성장을 약속했다. 최근 40여 개 매장을 기반으로 ‘리츠’를 설립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노조는 매각과 다름없다고 반대하고 나섰다.

‘리츠’는 다수의 투자자로부터 자금을 모아 부동산을 구입해 이를 통해 얻은 임대료나 매각 수익을 돌려주는 배당상품이다. 부동산투자회사법에 근거를 두고 투자자를 보호하는 수단이 마련돼 있다. 소액 투자자들의 시장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이나, 임대, 오피스 등 대규모 부동산 및 부동산 관련 증권 투자에 운용된다.

노조는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인수했을 때부터 매각 불안감을 지울 수 없었다고 밝혔다. 사모펀드는 투자자로부터 모은 자금을 주식이나 채권 등에 운용한다. 보통 자산가치가 저평가된 기업에 자본참여를 유도해 기업 가치를 높여 기업주식을 되파는 전략을 취한다. 이런 특징으로 인해 흔히 ‘먹튀자본’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붙는다. 전문 경영인을 통해 경영의 비효율적인 측면을 걷어내고 수익성을 개선한다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단기적 실적 개선 효과 이후 배당을 늘리는 등의 수법으로 투자금을 회수해 다시 매각을 한다는 점에서 불안감이 증폭될 수밖에 없었다. 이번 ‘리츠’ 설립 역시도 같은 맥락에서 인수 당시 금액을 회수하고 매각을 시도하려는 움직임으로 볼 수밖에 없다는 것이 노조의 입장이다.

20년 역사 중동점, 역사 속으로

홈플러스 일반노조에게 중동점은 의미 있는 곳이다. 까르푸가 한국에 처음 설립한 1호 매장이자 노조의 2대 위원장을 배출했다. 드라마로도 방영 되면서 많은 네티즌들의 찬사를 받은 웹툰 ‘송곳’은 2003년 까르푸 중동점 노조투쟁을 배경으로 만들어졌다. 웹툰 속 주인공도 김경욱 전 위원장을 모델로 만들어졌다. 장기간 점거 농성을 했던 월드컵점에 이어 상징성이 강한 곳이다. 월드컵점에서 있었던 여성노동자들의 510일 파업의 내용도 영화 ‘카트’를 통해 소개된 바 있다.

지난 4월 18일 회사는 중동점 매각과 함께 오는 11월 매장 폐점을 발표했다. 직원들이 매각시도 징후를 몰랐던 바는 아니다. 현장에서 눈 여겨 본 직원들이 조합에 걱정을 표했다. 매각이 이뤄진 중동점에는 49층 주상복합 오피스텔 두 건물이 올라설 예정이다. 큰 건물 설립이 적합한 지 확인하기 위한 토양검사를 하는 모습이 직원들 눈에 심심찮게 발견됐다. 대다수 직원이 지역주민이기 때문에 2017년 말부터 각종 부동산 정보를 통해서 중동점 매각과 관련된 내용이 들려왔다고 전했다.

노조는 회사에 질의서를 보내 우려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으나 일관되게 그럴 일은 없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매각 발표 직후 이종성 위원장은 회사와 대화를 가졌다. 그 동안 회피하며 발뺌한 이유를 듣고자 함이었다. 회사에서는 “노조가 반발해 생기는 우려 사항을 모두 감안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지속경영을 위해 숨길 수밖에 없었다”고 발언 했다고 전했다. 매각 사실이 알려질 경우 계약이 성사되지 않을 때 회사에 상당한 리스크가 작용한다는 이유였다. 노조는 중동점이 먼저 매각이 결정된 이유는 가장 번화가에 위치해 있어 매각 금액이 상당하기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이 위원장은 중동점 매각이 이미 결정 났기 때문에 뒤엎을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직원 110명 가운데 60여 명이 조합원이기 때문에 고용안정을 보장받을 수 있는 협상을 진행 중이다. 매각 결정 이후 회사는 기존 직원들을 인근 5개 점포로 이동하는 방침을 세웠다. 홈플러스 스토어즈 법인 매장은 단 한 곳뿐이고, 나머지는 홈플러스 법인이었다. 노조는 협상을 통해 조합원들이 원한다면 전국에 있는 매장을 모두 열고, 연고지가 있다면 옮길 수 있도록 배려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회사는 노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남은 문제는 조합원 신분 보장이다. 다른 법인 홈플러스는 임금구조가 다르고, 단체협약을 적용하는 문제도 있다. 법적인 문제가 얽혀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19일, 홈플러스 일반노조는 올 11월 폐점이 결정된 중동점을 추억하는 ‘월드컵 문화제’를 열었다. 문화제를 통해 김용임 중동지부 지부장은 “22년간 일하면서 동료들 얼굴만 봐도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떤 아픔이 있는지 알 수 있다. 오랜 시간 얼굴을 본 고객과도 정든 분이 많이 있었다”며 “중동점에서 일하는 60% 직원들이 걸어서 출근하는데, 이제 폐점이 되면 전부 흩어져 1~2시간을 차를 타고 움직여 낯선 곳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과 일을 하며 어색한 분위기에 적응해야 한다는 현실이 참담하다”고 중동점 폐점 소감을 밝혔다. 이어 “중동점은 아직 힘이 있고, 어디를 가든 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어려울 때마다 하나로 뭉치는 노동조합이 있기에 걱정하지 않는다”며 조합원들을 위로했다.

 

홈플러스, 지속 경영 가능할까?

이종성 홈플러스 일반노조 위원장은 리츠 설립에 대해 다음과 같이 비유했다. “MBK 파트너스 이전에 양옥집에서 살던 홈플러스가 이번 일로 노상으로 밀려나는 것과 다름없다”고 표현했다. 또한, 유형 자산을 매각해 경영 악화로 이어질 경우 리스크를 제거하기 위한 수단이며 철수 시 경영권과 브랜드만 매각시킬 것이라는 판단이다. 홈플러스는 2016년부터 일부 매장을 세일즈 앤 리스백(Sales & Lease Back 매장 임대 후 재임차)방식을 통해 6,000억 원의 자금을 확보한 바 있다.

MBK파트너스의 홈플러스 매각계획에 홈플러스 일반노조와 마트노조 홈플러스지부 양 노조는 ‘리츠’ 설립에 반대하기 위해 하나로 뭉쳤다. 지난 6월 7일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홈플러스 리츠 설립은 대규모 실업과 해고사태를 불러온다”며 “국토부가 설립 허가를 거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어 30일에는 양 노조를 비롯해 상급단체들과 금융전문가들이 홈플러스 매각 관련 국회토론회를 진행한다. 홈플러스는 리츠 설립 예비인가를 받았고, 국토부의 본 허가를 기다리는 중으로 7월 중 발표 예정이다.

회사와 노조 갈등은 성과급에서도 나타났다. 임일순 대표이사는 “지난해 주요 사업 계획상 성과에 도달하지 못해 전년대비 실적이 악화돼 성과급을 지급하지 않게 됐다”고 설명했다. 유통업계에서 20여 년간 관례상 지급하던 성과급을 지급할 수 없다는 것이다. 홈플러스는 2016년 3,200억 원의 매출이익을 냈지만, 2017년 2,400억 원으로 전년대비 이익이 감소했다. 하지만, 작년에도 차등 지급 문제가 있었다. 임원직에게는 최저 12%~30%까지 지급된 반면, 점장 이하 매장 직원에게는 연봉대비 일괄적으로 5%만 지급했다. 당시 노조가 성명을 통해 강력히 반발하자 투명하고 차등 없이 성과급을 지급하겠다는 약속을 받아냈다. 올해는 아예 지급하지 않겠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노조는 홈플러스가 리츠 법인으로 전환된다면 고용불안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까르푸부터 시작해 20여 년을 근무한 직원들은 향후 5년 안에 정년을 앞두고 있다. 그 수가 많아 신규 채용이 이루어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난 3년간 인력채용이 없었다고 주장했다. 회사가 여러 가지 사업들을 하겠다면서 인력을 충원하지 않으면 남아있는 직원들의 노동착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노조는 펀드화를 통해 지금보다 더 작은 사모펀드가 개입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해당사자가 많아지게 되면 노조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대화 창구가 없어진다고 설명했다. 대화의 책임을 떠넘길 수 있는 명분이 생기기 때문에 관계 당사자들이 많아지면 풀기 어려운 실타래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게 노조의 판단이다.

이종성 위원장은 “홈플러스 지속 경영을 위해 국내기업이 인수해 안정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며 “홈플러스가 매각이 반복됐던 이유도 그 시작이 외국 기업인 테스코였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마트와 롯데마트의 경우 계열사를 많이 거느리고 있는 국내 대기업들이기 때문에 지속 가능한 경영 체계를 가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여러 차례 싸움을 해 왔지만, 이번에는 어떤 각오를 하고 있나?

이종성 홈플러스 일반노조 위원장 일단 터널 속을 지나가는 느낌이다. 그 동안 싸움은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짧고 강하게 행동하면 답을 낼 수 있는 싸움이었다. 이번에는 기약 없는 싸움이라는 점이 차이가 있다. 가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성과가 없기 때문에 지도부도 지치지 않고, 조합원도 지지치 않는 싸움을 만들어 가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 금융 자본이 기업에 들어와 유동화라는 명목 하에 얼마나 많은 악행들을 저질렀는지는 우리뿐만 아니라 많은 중소기업들이 겪었다. 이들이 노동현장을 갉아먹고 근로환경을 피폐하게 만드는 상황들을 사회가 간과하고 넘어가는 것은 대기업들이 저지르는 갑질보다 더 큰 문제로 커질 거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