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은 지금 안전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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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7.20 11:59
  • 수정 2018.07.20 10: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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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물질로부터 안전한 사회 만들기

 

 

[리포트]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2012년 9월, 경북 구미 4공단 한 공장에서 10톤가량의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5명의 노동자가 사망했고, 주민대피령은 사고가 터진 4시간 후에 이뤄졌다. 그 결과, 피해를 호소하는 지역 주민과 공장 노동자들이 2,000여 명에 이르렀고, 주변 일대 농작물도 말라 죽었다.

구미불산 누출사고를 통해 정부의 부실한 대응과 노동자들 문제 관련 법규의 한계뿐만 아니라 지역사회 알 권리 등 여러 가지 문제점을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문제 해결에 앞장서기 위해 2014년 3월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가 발족했다.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 알 권리 보장해야

구미 불산 누출사고 이후 그동안 숨겨졌던 문제가 속속 드러났다. 첫 번째는 사업장에서 무슨 물질을 쓰고 있는 지 아무도 몰랐다는 점이다. 당시 유해화학물질관리법에 의해 환경부에서 사업장 배출량과 통계조사 자료를 공개하고 있었다. 굴뚝을 통해 나오는 대기배출량은 전체 사업장 20%밖에 공개되지 않았다. 사고가 일어난 공장은 배출량 공개 사업장이 아니었기 때문에 불산을 다룬다는 사실조차 알지 못했다. 취급량과 보관량을 조사하는 통계조사의 경우 전면 비공개였다. 사업장에서 어떤 물질을 쓰는지 모르니 사전 예방이 불가능했고, 회사 자체적으로 예방하는 방법뿐이었다. 지자체나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없었다.

구미사고 이후 1년간 화학물질 관련 법안, 개선 대책 등 워크숍을 통해 감시 단체의 필요성이 절실해졌다. 사고가 일어나고 경각심이 높아졌지만 2013년부터 4년간 일어난 화학 사고는 평균 100건이었다. 이전보다 7~8배가 늘어난 수치였다. 화학사고 관련 법 개정과 대응체계 매뉴얼을 만들기 위해 노동, 환경, 소비자 22개 단체가 모여 화학물질감시네트워크가 탄생했다.

모범 사례로 미국의 ‘긴급계획 및 지역사회의 알 권리에 관한 법’이 있다. 1984년 인도의 한 미국기업 화학공장에서 급성 독성물질인 아이소사이안화 메틸 유독가스 40톤가량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다. 부실한 대응체계로 인해 사망자 수가 1만여 명에 이르렀고, 성장이 멈춘 어린이를 포함해 중경상자들도 50만 여 명이 됐다. 20세기 최대 산업재해라고 불리는 이 사고는 화학제품 생산하는데 있어 안전 인식을 재확인시켰다. 사고 2년 후 미국은 지역사회 알 권리 법을 제정했다. 유해물질을 취급하는 사업장에 모든 정보를 보고하도록 했고, 누구나 쉽게 정보를 이용할 수 있게 했다. 그 결과, 1년 후 텍사스 주에서 24톤가량 불산이 누출되자 20분 만에 800m 내 주민대피가 이루어졌다. 사망자 발생은 물론 인명피해도 없었다.

외국의 경우 지역 중심의 관리체계가 잘 형성돼 있다. 초기 컨트롤 타워 역할을 지역 소방서장이 맡고, 초반 대응 매뉴얼이 구성돼 있다. 화학물질 정보를 알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 해독을 어떻게 하는지. 주변에 있는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뿐만 아니라 그 지역 주민 비상 대피 매뉴얼가지 꼼꼼하게 구성돼 있다.

화학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소화하고 발 빠른 대응을 위해 지자체가 화학물질에 대해 알아야 하고, 지역 시민들도 정보를 공유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공감했다. 지자체, 기업, 시민 대표들이 항시 사전 예방적인 관리를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고 사후 매뉴얼까지 만들어야 함을 목표로 활동을 시작한 지 4년이 지났다.

비밀은 위험하다?

첫 번째 활동은 국민의 알 권리를 보장하는 것이었다. 사업장에서 어떤 화학물질을 취급하는지 알아야 사고에 대비하고 비상대응까지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화학물질 정보공개 청구단을 만들어 배출량과 통계조사 전면 공개를 요구했다. 기업이 영업비이기 때문에 공개하지 못 하겠다고 하자 소송운동까지 진행됐다.

두 번째 활동은 지역 사회 알 권리법 제정 운동이었다. 미국뿐 아니라 유럽도 화학물질 정보를 지역사회가 자세히 알고 있다. 캐나다의 경우 세탁소 화학물질 정보까지 정기적으로 지역 주민에게 알려준다. 2016년 5월 지역사회 알 권리 법이 화학물질관리법 조항으로 들어가는 법 개정이 이루어졌다. ‘화학물질관리법 7조의2’에 의해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화학사고 대비·대응 위한 계획 또는 시책 수립·시행 ▲심의·자문 위원회 구성·운영 ▲화학물질 정보 제공 등에 대한 조례를 둘 수 있게 됐다. 배출량 공개범위는 변화가 없었지만, 전면 비공개였던 통계조사에 변화가 생겼다. 화학물질정보공개심의위원회의 심사를 통해 영업비밀 사유가 타당하다면 비공개를 유지할 수 있지만, 타당하지 않다면 공개할 수 있게 됐다. 심사 신청 기간 3개월을 뒀지만, 신청한 사업장은 5%에 불과했다. 자연스럽게 나머지 95% 사업장 화학물질 취급량이 공개됐다.

4년간 활동 중 가장 큰 성과는 ‘우리 동네 위험지도’ 어플리케이션 제작이었다. 화학물질 누출사고로 위험성 인지는 높아졌으나 정작 어떤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정보공개 청구단 소송을 통해 얻게 된 20% 배출량 정보를 가지고 어플리케이션 제작에 돌입했다. 어떤 물질이 배출되고, 어떤 독성을 가지고 있는지 정보를 추가 가공했다. 현 위치를 기반으로 500m, 2km, 5km 안에 있는 배출량 정보를 공개한 사업장이 점으로 표시됐다. 이렇게 ‘우리 동네 위험지도 1.0’이 시민에게 알려졌다. 20% 정보만으로 화학물질에 대한 궁금증을 온전히 풀어주지 못 했다. 실제로 서울에는 3곳의 사업장만 공개됐다. 이후 취급량 정보가 95% 공개되면서 업그레이드 제작에 들어갔다. 화학물질을 쓰는 업체, 자동차 정비소까지 연간 취급량에 대해 알 수 있게 됐다. ‘우리 동네 위험지도 2.0’은 보다 많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했다. 서울 시내에도 화학물질 사업장을 알리는 빨간 점으로 가득 찼다.

 

알았으면 행동하라!

화학물질 관리법이 개정되면서 본격적으로 전국 지자체에 조례를 만들기 위한 움직임이 시작됐다. 그 결과, 광역시 10개, 기초단위 27개 총 37개 지자체에 ‘화학물질 안전관리 및 지역사회 알 권리’ 조례가 제정됐다. 각 지역에 화학물질관리위원회를 두고 노동단체 대표와 민간시민단체 대표가 구성원으로 포함됐다. 구성원은 항시적으로 모여 평소에 사업장을 관리하고 감시한다.

조례 제정을 위해 지자체를 설득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자발적으로 나서지 않으면 조례가 만들어져도 실효성이 없었다. 화학물질 사업에 대해 충분히 공감하고 자기 일처럼 나설 수 있도록 설득하는 과정이 어려움 중 하나였다고 고백했다. 사고의 위험성을 알리며 지역의 공감을 얻는 게 쉽지 않았다. 개선대책을 세우기 위해 시민들을 모은다고 해도 동력이 쉽게 붙지 않아 난항을 겪었다고 한다. 실제 조례를 만든 37곳 대부분이 사고가 일어난 경험이 있다. 사고 당시 주민 여론이 들끓고 시민 사회단체에서 적극적으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미리 준비해놓은 조례를 가지고 지자체와 시의원, 도의원과 대화가 가능했다.

환경부와 네트워크는 지역 화학사고 예방·대비·대응을 위한 ‘화학사고 지역대비체계구축 사업’도 진행 중에 있다. 2016년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여수, 수원, 평택, 화성 등 총 10곳에서 구축사업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를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조례 제정과 조례이행을 위한 세부계획 수립 ▲거버넌스 구축 및 운영 ▲고위험지역에 대한 지역비상계획수립 등을 수행한다. 사업을 통해 지역과 산업의 특성에 맞게 지역대비체계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앞으로의 계획은 드러나게 된 화학물질 정보를 가지고 ‘알았으면 행동하라’는 캠페인을 하고 있다. 전국을 영남, 전남, 전북, 충남, 충북, 수도권 6개 지역으로 나눠 전국 감시체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다. ‘건강과 생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이름으로 평택과 전남에서 주민감시단이 운영되고 있다. 이들은 ▲온라인/오프라인 ▲화학물질 교육프로그램 ▲사안별 공동행동 ▲사업장 현장점검 및 감시활동 캠페인 활동을 하고 있다.

정부나 지자체, 기업 주도만이 아닌 주민의 알 권리와 참여가 보장 되는 지역 중심의 관리체계가 만들어져야 화학사고의 예방과 대응이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노동자의 알 권리, 힘주어 나가야 할 때

30년 전인 1988년 온도계에 수은을 주입하던 15살 문송면 군이 수은 중독으로 사망했다. 같은 해 원진레이온에서는 노동자 1,000여 명이 이황화탄소에 중독 피해가 발생한 국내 최대 직업병 사건이 일어났다. 우리나라 노동안전보건운동에 중요한 투쟁이라고 말하지만, 현재 얼마나 큰 변화가 이루어졌을까?

지난 2016년 핸드폰 부품을 생산하는 한 사업장에서 메탄올 중독사고로 20~30대 청년이 실명하는 등 급성중독 사고가 발생했다. 현재순 네트워크 사무국장은 “안전보건운동의 현 주소를 보여주고 있다”며 “최저임금 1만원 문제와 임단협 등에 비해 많이 뒤쳐진 상태”라고 진단했다.

현장노동자들이 죽지 않고,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게 사업주를 규제하는 산업안전보건법 41조에는 화학물질과 관련된 보건법이 명시돼 있다. 일하는 노동자에게 화학물질과 관련된 정보를 근로자가 보기 쉬운 장소에 게시·비치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물질안전보건자료라고 불리는 MSDS를 제대로 비치해야 함에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문제 삼았다. 일련의 안전사고들은 독성 물질이라는 것을 어느 누구도 가르쳐 주지 않았기 때문에 일어났다고 지적했다.

현 사무국장은 노동자 안전보건문제 개선이 더딘 것에 대해 “노동자 생명에 대한 경시 풍조가 우리 사회에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라고 밝혔다. 가습기 살균제 사태 당시 소비자 입장에서 크게 주목 받았지만, 실제 살균제를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노동자에 대한 이야기는 한마디도 없었다고 꼬집었다.

네트워크는 화학물질 알 권리 법 개정 운동과 함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 운동도 해 왔다. MSDS의 영업비밀률은 67%다. 아무리 보기 좋게 게시됐다고 해도 내용의 구성성분 옆에 영업비밀로 쓰여 있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위험성을 온전히 인지할 수 없고, 제대로 게시하지 않은 경우도 많으니 무방비 상태에 놓여 있다고 한탄했다. 물질안전보건자료 작성 시에도 사전 심사 제도를 넣는 법 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문송면·원진노동자 산재사망 30주기를 맞아 산재사망자 추모와 안전보건에 대한 사회전반 인식을 확대하는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7월 한 달간 합동추모제를 시작으로, 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이 함께 하는 추모 문화제를 계획했다. 각 주마다 사진전, 뮤지컬 공연, 대토론회가 계획돼 있다. 노동운동의 시초가 됐던 전태일처럼 산업안전운동 시초로 문송면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현 사무국장은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직업병 인정 투쟁만 알게 되도 노동자들은 충분히 각성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권리를 찾기 위해서는 권리를 가진 쪽에서 직접 움직여야 한다”며 “사업장은 요구하지 않으면 자발적으로 행동하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고 지역 사회와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요구하며 행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