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52시간 노동 시대 개막
주 52시간 노동 시대 개막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7.20 11:59
  • 수정 2018.07.20 11: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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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로시간 단축 기업들 고민 엿보니…

[리포트] 주 52시간 노동 시대

7월 1일 근로기준법 개정 시행으로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에서 노동 시간이 최장 52시간으로 제한된다. 지난 2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관련 논의를 시작한지 5년만에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통과되면서 ‘주 52시간 노동시대’를 맞게 됐다.

OECD 최장에 가까운 노동시간의 오명을 벗게되면서 노동계를 비롯해 시민들의 낙관과 환영이 이어졌지만 한편으로 ‘부작용’을 우려하며 경제 주체들에 과부하가 있을 수 있다는 재계의 목소리도 함께 했다. 결국 노동자 300인 이상 사업장에서의 시행을 목전에 두고서도 고용노동부를 비롯한 경제 주체들의 노동시간 단축 준비가 전혀 안 되어 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지난 6월 20일 전국상공회의소와 한국능률협회컨설팅이 주관한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응방안’ 설명회에서는 그러한 기업들의 대책없는 상황이 고스란히 드러나기도 했다. 수많은 기업의 인사담당자들의 참석으로 진행된 설명회에서는 다양한 산업 현장이 당면한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고충에서부터 노동 환경 변화, 생산성 향상을 위한 새로운 체계 설계까지 기업의 입장에서 필요한 정보들이 소개됐다.

핵심은 주 40시간 소정근로일 노동에 연장근로 12시간, 휴일근로 16시간으로 구성된 68시간 노동 시간 제한이 주 40시간 소정근로일 노동에 연장근로 12시간으로 제한되고 휴일을 근로일에 포함, 주 7일이 모두 근로일로 정의됐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든 주 노동시간은 52시간 이내, 18세 미만 연소노동자는 소정 근로 주 35시간과 연장근로 주 5시간으로 주 40시간 이내라는 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는 관계자의 단호한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능률협회컨설팅에서 노동시간 단축 컨설팅을 진행하며 이번 설명회에서 강연을 맡은 정호성 한국능률협회컨설팅 노무사는 “일단 현장을 보니 두고 보겠다는 쪽이 많다”며 “1차적으로는 물리적인 노동시간 규제를 하겠다는 응답이 제일 많았다”고 밝혔다. 출퇴근 시간을 정해버리고 물리적으로 노동시간을 정해서 체크할 수 있는 사업장에서 기계적으로 규제하겠다는 기업이 많다는 것. PC를 퇴근 시간에 강제로 끄거나 사무실 전기를 내리는 무식한(?) 방법이 초기에는 의외로 효과가 있다는 의견이다.

이에 따라 등장하는 질문은 역시 다양한 활동에 대한 노동시간 인정 여부였다. 외근이 잦아 출퇴근 시간을 명확히 할 수 없는 경우나 업무 중간 휴게시간과 대기시간의 경계, 출장 등에 대한 노동 인정 등이 질문으로 나왔다. 정해진 출근 시간보다 먼저 출근해 모든 직원이 조회나 체조를 하는 경우 노동시간으로 인정되는지, 출장에서 비행기를 탈 경우 비행시간은 출장 시간에 어느 정도 포함하는지, 교육훈련 시간을 노동시간으로 인정할 수 있을지 등 현장이 토로하는 경계가 모호한 활동들이 그만큼 많다는 것.

원칙은 크게 사용자의 지시 여부, 업무 수행 의무의 정도, 참여 거부 시 불이익 여부, 머무는 장소 제한 등으로 요약된다. 예를 들어 대기시간에 노동자가 사용자의 지휘·감독을 벗어날 수 있다면 휴게시간이지만 업무 지시가 없을 것이란 보장이 없다면 근로시간으로 보아야 한다. 또한 독립적으로 휴식, 수면할 공간과 의지가 보장되지 못하는 경우, 업무가 줄곧 없다가도 사용자의 지시나 업무가 중간중간 발생할 수 있는 경우 노동시간으로 간주한다. 다만 원칙과 더불어 사안에 따라 세세하게 해석이 갈릴 수 있다.

유연근로시간제 제도 유형(고용노동부 자료)
유연근로시간제 제도 유형(고용노동부 자료)

물리적 노동 제한 다음으로는 유연근무제 도입 사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노무사는 “IT, 연구개발, 서비스 업종 등 전형적인 제조업이 아닌, 비전형적 유연성을 가진 업종들은 유연근로제 도입에 적극적”이라며 “다만 접객이 필요한, 상대방과 만나야 하는 일을 하는 업종들, 생산 시설이 계속 돌아야 하는 제조업 등은 유연근로제가 안 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더불어 정 노무사는 “결국 유연근무제 매뉴얼이 나오는 것은 노동시간을 측정해서 규제하는 게 기업 입장에서 쉽지가 않기 때문”이라며 “유연하게 풀어버려서 한계를 불분명하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는 조심스러운 입장을 밝혔다.

노동계의 입장도 비슷하다. 지난 6월 26일 민주노총은 논평을 내고 고용노동부의 유연근로시간제 가이드 발표는 “‘기재부 2중대’, ‘자본의 노무 대리인’을 자처한 것”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민주노총은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경우 1일 8시간, 주 40시간 노동제와 관계없이 1일 12시간, 1주 주 64시간까지 가능하도록 만든 제도”라며 “처벌을 면해줄 방법을 찾는 게 아니라 노동시간 특례업종 전면 폐지, 엄격한 노동시간 관리·감독과 위반 사업주 처벌 등이 정부가 해야 할 일”이라고 비판했다.

특히 노조가 없거나 노동자와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기회를 현실적으로 갖기 어려운 경우도 많아 노동자의 입장에선 주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최근 간주근로시간제를 도입한 대기업 제조업체의 모 영업직 노동자는 “갑자기 회사가 법이 바뀌었다며 유연근무제 취업규칙 변경 동의서를 내밀었지만 현장에선 아무도 실제로 노동시간이 줄 것이라고 믿지는 않는다”며 “실적으로 승부를 해야 하는 영업직을 비롯해 정형화된 업무를 하지 않는 사람들은 법이 바뀌어도 별 변화가 없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결국 회사 내부 구조를 바꾸는 혁신적인 방향에 대한 고민이 없다면 주 52시간 노동 시대의 안착은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 노무사는 “결국 시스템적인 개혁이 없으면 노동시간 단축은 불가능하다”며 “처음에 물리적인 차원에서 전원을 내리는 식으로 억지로 줄이더라도 구조적인 개혁이 나중에 꼭 따라가야 한다”고 밝혔다.

정부가 시행을 열흘 앞두고 고위 당·정·청 회의를 통해 정부가 근로시간 단축에 6개월의 ‘계도’ 기간을 두기로 결정하면서 기업들은 시간을 벌게 됐다.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노동시간이 큰 폭으로 줄어들면서 이에 따라 산업 환경 변화가 계획성 있게 차근차근 이어져야 함에도 이를 담보할 어떤 움직임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정부의 노동시간 단축 지원 정책은 시행 직전이나 다름없는 5월 중순에서야 등장했고 재계의 전반적인 대응 역시 신속하지 못했다. 6월 중으로 나오기로 되어 있던 포괄임금제 가이드라인 발표도 늦춰지는 등 경제 주체들의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미뤄진 만큼 제대로 된 준비와 계획적인 이행이 이뤄져야 한다는 사실은 자명하다. 급하게 유연근로제를 대안으로 소개했지만 관련한 노동계의 염두에도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은 20일 성명을 통해 “전면시행이 마땅함에도 단계적 시행으로 이미 자본의 편의를 봐준 입법임에도 300인 이상 중견기업이 아직도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것은 허튼 핑계에 불과하다”며 지방선거 이후 첫 당·정·청 회의 결과가 지나치게 자본 편의적인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

임금삭감도 중요한 이슈 중 하나다. 노동계는 기대한 노동시간 단축이 현장에서 제대로 반영이 될 수 있을지 우려하면서도 노동시간 단축이 임금 감소로 이어지는 것 역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국노총은 7월 1일 자체 실태조사 결과 267개 응답 사업장 중 53.2%인 142개의 사업장에서 임금 감소 문제가 생긴다고 응답했다며 조사 대상은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들인 만큼 미조직 사업장의 경우 실 노동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손실 문제가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재계는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임금 감소는 일자리 늘리기를 위해서도 당연한 수순이란 입장을 내놓고 있으나 그 속내는 단순치 않은 것으로 보인다. 정 노무사는 “노동시간을 줄이는 방향으로 가려면 임금 감소가 필요하지만 한계 임금에 봉착한 노동자들이 있는데 이들에 대한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정 노무사는 “내심 기업들은 차라리 임금을 많이 주고 노동시간을 확보하는 걸 더 선호하는 편”이라며 “새로 사람을 뽑아서 교육하고 비용을 쓰느니 숙련 노동자에 더 시키는 게 이득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밝혔다.

근로기준법의 역사는 근로시간 단축의 역사라 불리기도 한다. 한국은 2016년 기준 세계 경제 규모 11위 국가임에도 연평균 2,000시간에 가까운 노동으로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긴 노동 시간을 기록하고 있다. 변화하는 글로벌 스탠다드의 흐름에 우리 사회가 좀 더 신속하게 보조를 맞출 필요도 있다. 지난 27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주최한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와의 특별 대담에서는 국제 표준에 뒤떨어진 우리 사회의 모습을 재확인하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다.

2008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크루그먼 교수는 곧 다가올 주 52시간 노동 제한 일률 적용이 무리가 아니겠냐는 질문에 정말 주 52시간이 맞냐고 재차 물으며 선진국인 한국의 노동시간이 그렇게 길다는 것을 믿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인 것. 크루그먼 교수는 지나치게 긴 노동시간이 인간적 삶을 유지하지 못하게 하는 만큼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설명도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