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노동참여적 일터혁신을 말할 때
지금 노동참여적 일터혁신을 말할 때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7.20 11:59
  • 수정 2018.07.20 15: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노사 파트너십 구축의 전략적 의제

[커버스토리] 일터혁신을 찾아서 ② 이호창 노사발전재단 일터혁신본부장

4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기술 변화의 시대가 다가온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 일터라는 경계 자체가 모호해지고, 인간의 일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전망까지 나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호창 노사발전재단 일터혁신본부장은 ‘일터혁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기술 자체가 사회에 영향을 주지만, 사회가 그 기술을 어떻게 활용해나갈지 자율적으로 선택해 나갈 수 있다”며 “일터혁신이야말로 한국사회가 당면한 각종 노동현안을 풀어낼 연결고리이자, 분배갈등 중심의 노사관계 패러다임을 전환할 핵심”이라는 것이다.

*‘노동참여적 일터혁신’은 ‘역전앞(驛前앞)’이다.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냐고 갸우뚱하겠지만, 동어반복이라는 점에서 같다는 말이다. 한자와 고유어가 섞인 단어 ‘역전앞’에는 전(前)과 앞의 의미가 중복된다. 노동참여적 일터혁신도 그렇다. 일터혁신이라는 용어에 ‘노동자의 참여’, ‘노동의 인간화’가 내포돼 있기 때문이다. 이호창 일터혁신본부장은 노동을 배제하는 일터혁신까지 일터혁신으로 불리는 탓에 부득이 ‘노동참여적 일터혁신’이라는 표현을 쓴다고 밝혔다.

얽혀있는 노동현안 해결 위한 미시적 기초

한국사회에서 일터혁신은 ‘성과 높은 일터 만들기’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일터혁신의 정의를 내린다면?

일터혁신을 조직의 성과를 높이는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은 굉장히 일면적이고 왜곡된 인식이다. 일터혁신은 작업조직과 인적자원관리 개편 등을 통해 노동자가 일터혁신 활동에 적극적이고 효과적으로 참여하도록 함으로써 근로생활의 질을 개선하고, 조직의 성과 향상을 함께 추구하는 것이다.

이때 중요한 포인트는 ‘근로생활의 질 개선(QWL)’과 ‘조직성과’의 동시 추구다. 일터혁신의 목표는 분명하다. 근로생활의 질 향상 없이 조직의 성과는 높일 수 없다. 마찬가지로 조직의 성과 향상 없이 근로생활의 질 개선도 있을 수 없다. 두 가지 목표는 동전의 양면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노사관계 차원에서도 일터혁신은 참여와 협력 즉, 노사 파트너십이 발휘될 수 있는 부분이다.

개정 근로기준법에 따른 노동시간 단축의 시행에 대한 우려가 큰 시점에서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일터혁신의 중요성은 꾸준히 강조돼왔지만, 정작 노동현장에서는 화두가 되지 못하고 있는데?

현재 고용노동분야에는 쟁점 현안이 많다. 특히 작년부터 최저임금 인상,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에 이르기까지 큰 이슈들이 있었다. 이런 현안들로 인해 일터혁신이 전면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그러나 쟁점 문제들이 더 많이 제기되면 될수록 문제를 풀어나가기 위한 연결고리로서의 일터혁신은 외면할 수 없다. 일터혁신은 각 현안들이 연결되는 미시적인 기초로서 문제 해결을 위한 변화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다. 일터혁신에 더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한국사회서 왜곡된 일터혁신의 개념

현실에서 노사 모두 일터혁신이라는 의제는 불편하게 여기는데?

종종 일터혁신을 얘기할 때 조직의 성과향상은 중요하다고 하면서 노동자의 근로생활 질 향상은 상투적인 레토릭(미사여구)으로만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일터혁신을 기업의 생산성이나 영업이익을 높이는 차원으로만 인식하면서 고용과 근로생활의 질 개선이라는 부분을 간과, 외면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어느 한쪽만이 희생해야 한다면 공정한 타협과 협력을 통한 파트너십은 구축하기 힘들다. 역으로 이는 노동자를 위해 기업에게만 양보를 강조해도 똑같이 문제가 됨을 뜻한다.

일터혁신의 방법에도 주목해야 한다. 노동을 배제하는 일터혁신은 일터혁신이 아니다. 일터혁신은 직원들의 능력을 높여 이들이 적극적으로 생산과 활동에 참여토록 하는 것이 핵심이다. 노동자들의 능력을 개발하고 노동자들에게 동기를 부여해 성과를 높여야 한다. 그러니까 현실에서 흔히 일터혁신으로 표현되는 노동배제적 자동화와 아웃소싱, 구조조정 등은 진정한 의미의 일터혁신이라고 할 수 없다. ‘노동참여적 일터혁신’을 정립해 나가야한다.

현재 한국의 일터혁신 수준은?

한국의 일터혁신 수준은 전반적으로 매우 낮다. 최근 발표된 국내외 연구결과들을 보면, 한국의 일터혁신 수준은 외국에 비해 낮고 정체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특히 일터 혁신의 핵심영역이라고 할 수 있는 작업조직에서의 혁신은 매우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에서 일터혁신이 시작된 시기는 길게 보면, 신노사문화정책이 추진되었던 1990년대 후반, 본격적으로는 뉴패러다임센터가 설립된 2004년부터라고 할 수 있다. 유럽의 대표적인 혁신국가인 핀란드가 일터혁신을 1990년대 중반부터 추진했다는 점을 생각해 보면 시기적으로 별로 차이가 나지 않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재 두 나라의 일터혁신 수준은 차이가 크다.

일터혁신, 국가적 의제로 자리매김해야

두 국가의 현재 일터혁신 수준이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

사실 핀란드는 북유럽국가 중에서 일터혁신이나 노동의 인간화 등에 대한 관심이 뒤쳐진 국가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에 이르러서야 적극적으로 일터혁신 프로그램을 시작했다. 하지만 그것이 적극적이고 체계적으로 진행되었다. 2008년에는 위원회를 구성해 국가혁신전략을 구상하면서 일터혁신을 국가혁신정책의 미시적 기초로 자리매김했다. 일터혁신의 의미를 공론화하고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지 중장기적인 전략을 세웠다. 한국도 일터혁신정책이 추진되기 했지만, 중장기적 비전과 정책이 불분명했고, 정권의 성격에 따라 갈지자 행보를 하기도 했다.

일터혁신에 대한 정부의 인식이 낮아서 그런가?

핀란드의 경우 일터혁신에 대해 꾸준히 고민하고, 사회적인 이해 속에서 전략을 수립, 일관되게 발전시켜왔다. 한마디로 일터혁신에 대한 ‘축적의 시간’을 가져왔는데, 한국의 경우엔 이런 부분이 크게 부족했다. 일터혁신은 일회적이거나 단기간 투자로 뚝딱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중장기적인 사업의 방향과 내용, 운영 체계 등을 보완하고 강화해야 한다. 한국도 일터혁신을 국가적인 정책의제로 발전시킬 필요가 있다.

노사발전재단의 일터혁신 지원 컨설팅을 신청하는 기업수와 실제 지원을 받는 비율은?

올해 1,050개 영역의 컨설팅을 수행할 계획이다. 컨설팅 영역은 임금·평가체계, 장시간근로개선, 평생학습, 노사파트너십, 작업조직, 비정규직고용구조 개선, 고용문화개선, 일·가정양립, 장년고용안정 등 총 9개로 나뉘는데, 한 사업장에서 최대 3개 영역의 컨설팅을 받을 수 있다. 상시 접수를 받고 있고, 매월 심사해 컨설팅 사업장을 결정한다.

신청 대비 지원 비율은 영역마다 다르다. 임금·평가체계에 대한 요청이 가장 많은 편이며 요즘에는 장시간근로개선 영역에 대한 컨설팅의 인기가 많다. 평균 2.5: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이고 있다.

영역별로 컨설팅을 할 수 있는 비율이 정해져 있다. 이전에는 영역별 정해진 컨설팅 목표수대로 진행해야 했는데, 지금은 각 영역들 간의 호환성들이 인정되면서 약간의 유연성이 생겼다. 영역별 기본 비중은 존중하면서도 컨설팅의 유연성을 가져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일터혁신 좌우할 CEO의지·노사관계·인사담당자

많은 컨설팅을 하다보면 일터혁신이 잘되는 사업장의 공통점도 보일 텐데?

CEO의 의지가 굉장히 중요하다. 일터혁신 컨설팅은 사업장의 문제 진단을 넘어 실질적으로 개선해내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 담당자들이 그냥 한번 받아보자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후에 실행력이 떨어진다. CEO부터 혁신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직원과 함께 문제점을 개선하려는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한다.

노사관계의 신뢰도 무시할 수 없다. 일터혁신 컨설팅은 초기단계에 컨설턴트와 노사 구성원이 참여하는 디자인팀을 구성하고 함께 해법을 찾는다. 이때 서로 충분히 상의하며 컨설팅 방향을 잡아나간다. 그런데 노사 간의 신뢰가 낮은 사업장의 경우, 좋은 취지로 변화를 추진해도 노사 서로 간에 꿍꿍이가 있을 것이라고 의심한다. 이럴 경우 컨설팅 자체도 어려울 뿐더러, 컨설팅을 한다고 해도 구성원들의 수용성이 떨어지게 마련이다.

실무적인 차원에서 인사노무담당자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인사노무담당자들은 CEO와 노조, 직원들 간의 중요한 연결고리를 담당한다. 이분들이 얼마나 책임감을 갖고 열심히 해 주는지에 따라 컨설팅과 일터혁신의 성과가 달라진다.

일터혁신에서 노사관계가 상당히 중요해 보인다.

그렇다. 일터혁신이 제대로 되기 위해서는 노사파트너십이 매우 중요하다. 또한 역으로 일터혁신은 노사파트너십의 실질적 내용을 발전시키는 핵심적인 장치이기도 하다. 종종 노사 파트너십을 강조하면서도 무엇을 위한 협력인지, 그 뒷이야기가 모호한 경우가 많다. 노사가 협력하면 좋다고 당위론적으로만 말하는데, 전향적인 의제를 세우지 않으면 노사관계는 추상적으로 겉돌 수밖에 없다. 일터혁신이야말로 노사파트너십의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과제와 내용을 제시한다. 일터혁신은 노사관계의 패러다임을 분배갈등 중심에서 통합적인 협력과 교섭의 틀로 바꾸어나가는 핵심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

글로벌 경쟁과 4차산업혁명의 시대, 노사의 전략적 선택은 무엇인가. 노사가 상황을 직시하고 솔직히 대화하며 타협과 협력을 해 나갈 필요가 있다. 일터혁신이 전부일 순 없지만, 노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의제임은 확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