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 가까운 폭염, 가스검침원 노동 환경 위협
재난 가까운 폭염, 가스검침원 노동 환경 위협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8.03 08:16
  • 수정 2018.08.03 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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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운수노조 가스검침 노동자, 서울시에 대책 마련 촉구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 윤찬웅 기자 chanoi@laborplus.co.kr

사상 최악의 폭염 속에 서울시 도시가스 검침원들의 노동 환경이 위험 수준에 이르렀음에도 아무런 대책이 마련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공공운수노조 서울경인지역공공서비스지부는 2일 서울시청 앞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재난에 가까운 폭염 상황에 노출된 도시가스 검침원들의 노동환경 개선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폭염이 지속됨에도 도시가스 검침원들은 이와 관계없이 할당된 업무를 지속하고 있다. 검침, 가스 점검, 고지서 전달 등 업무를 위해 가구를 돌아다녀야 하는 검침원들 다수가 폭염 상황에서 구토, 어지럼증 등 온열 질환을 호소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윤수 서울도시가스분회 부분회장은 “냉방이 된 사무실은 그림의 떡이고, 잠깐 쉴 공간이라곤 계단 바닥 같은 곳뿐”이라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노동하면서도 고객이 퇴근 시간 이후에 검침이나 점검을 해줄 것을 요청하는 탓에 업무 시간 연장이 되는 건 일상”이라고 밝혔다.

가스사 원청도 고객센터 하청 업체도 책임 회피

검침원들은 서울 내 가스공급자인 5개 회사에서 업무를 위탁받은 70여 개의 고객센터 운영업체 소속으로 일하고 있다. 노조는 원청인 가스회사나 센터 측에 폭염 관련 대책 마련을 여러 번 요구했지만 모두 책임 회피로 일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현장 발언에 나선 김 부분회장 역시 실제 지난 7월 23일 온열 질환으로 쓰러져 병원으로 호송됐지만 사 측은 ‘병원비 지원은 안된다’, ‘중간중간 쉬어가면서 하면 되는데 왜 쓰러지느냐’는 식의 책임 회피로 일관했다고 주장했다.

검침원들은 서울 시민의 가스 안전 업무를 책임지고 있는 노동자인 만큼 이에 대한 대책 마련에 서울시가 적극적으로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 검침원은 “우리는 집에 들어가서 서울시민들 안전을 점검해주는 사람인데, 우리가 안전하지 않은데 안전한 검침이 가능하겠느냐”며 “적어도 업무량을 조금만 맞춰주는 것만으로도 우리가 어느 정도 책임감을 갖고 나서겠는데 현재 검침원 당 4800여 가구를 담당하는 상황에선 어렵다”고 밝혔다.

노조는 기자회견을 마친 뒤 도시가스 검침 점검 노동자들의 폭염 중 노동 상황에 대한 대책 마련을 촉구하며 서울시장과의 면담 요구서를 서울시청에 제출했다.

지난해 노조 결성 이후 노조 탄압 의혹도 제기돼

한편 노동자들은 과거 박원순 서울시장이 간담회 자리에서 노조 결성을 권유해 노동자들이 이 자리에 이르렀다며 박 시장이 사태 해결을 위해 책임감 있는 자세로 나설 것을 촉구하기도 했다. 김효영 예스코분회 분회장은 “박원순 시장이 작년 4월 간담회 자리에서 여러분이 노조 결성을 하시면 자신이 여러분의 든든한 뒷배가 되어 주겠다고 밝혀 용기를 내 노조를 만들었다”며 “그런데 노조 가입 후 돌아오는 건 이 폭염에서도 나가 쓰러질 때까지 일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2017년 4월 박 시장은 가스 검침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가스 검침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에 대한 의견을 청취하고 노조 결성을 권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노동자들은 노조 출범 이후 현장의 관리자들과 노조 조합원들과의 갈등 국면이 조성돼 아직 조직률이 낮은 노조가 크고 작은 탄압과 디테일한 노무 관리에 시달리며 이전보다 더 힘든 상황이 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예스코 소속 하청 센터에서 일하는 한 검침원은 “이제 한 시간에 한 번씩 검침 가구 수, 점검 가구 수, 고지서 송달 수를 세서 보고하게 한다”며 “센터 별로 노조 들어간 사람들 위주로 노무 관리가 심해지고 있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기상 관측 이래 최악의 폭염이라는 이례적인 재난까지 겹쳐 노조 조합원은 물론 서울시 전체 1,000여 명의 가스 검침원들의 노동 조건이 더욱 열악해지고 있는 가운데 서울시가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 상임활동가는 “서울시가 폭염 시 작업자에 대한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건설 노동자 등을 제외하면 택배노동자, 배달 노동자, 주차요원, 가로 청소 노동자 등 대부분의 길에서 일하는 노동자가 빠져있는 상황”이라며 “하루 평균 20,000걸음을 걷고 평균 14킬로미터를 이동한다는 가스 검침 업무 역시 마찬가지로 폭염이나 혹한 등의 환경이 노동 조건에 반영될 수 있도록 노조와 자세한 협의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더불어 최 상임활동가는 “단순히 원칙만 이야기하는 것으론 부족하고 꼼꼼한 정책이 필요하다”며 “할당 가구 수가 정해져 있는 검침원의 경우 폭염 시기에 긴급 인원을 투입하고 서울시 곳곳에 폭염을 피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는 등 서울시가 당장 시행할 수 있는 정책들을 마련해야 한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