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와 합의, 아직도 어려운 과정
참여와 합의, 아직도 어려운 과정
  • 박종훈 기자
  • 승인 2018.08.16 10:07
  • 수정 2018.08.16 10:0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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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 개정 후폭풍, 사회적대화에 영향 미칠까?

[커버스토리] 최저임금으로 보는 한국사회 쟁점 

2019년 최저임금이 시급 8,350원으로 정해졌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올해 최저임금 결정 과정 역시 논란의 연속이었다. 전년 대비 10.9% 인상 수준이다.

매년 최저임금 결정 논의는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의 첨예한 대립 가운데, 공익위원들의 손을 빌어(?) 간신히 결정되었다. 시한이 임박해 마라톤 회의를 계속하거나 기한을 넘기는 경우도 있었다.

결정 과정에 대한 항의로 노-사 최임위원이 집단 행동에 나선 경우도 있다. 올해의 논의 역시 사용자위원과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의 퇴장 속에 결정됐다.

소득주도 성장 공약을 내세운 문재인 정권 두 번째 최저임금 논의는 인상수준과 함께 산입범위 결정 등의 내용을 포함한 법 개정 과정이 논란이었다. 과연 어떤 내용들이 거론되었나?

그동안 반복해서 거론되었지만, 올해는 최저임금의 결정 과정과 함께 제도개선 논의가 주목을 끌었다. 2017년 하반기부터 진행되어 온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는 특히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관련한 쟁점이 대두되었다.

제도개선 TF에서 국회로 넘어간 공

최저임금 제도개선 논의는 새 정부의 출범과 함께 어느 정도 예상된 바이기도 하다. 정부는 국정과제에서 2020년 최저임금 1만원 실현과 임금격차해소(64번), 최저임금 인상 등 노무비 변동 시 납품단가 조정신청·협의 대상 포함(23번)을 약속한 바 있다.

또 2018년 최저임금을 7,530원으로 16.4% 인상하면서 최저임금을 둘러싼 제도개선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 전개되었다. 최저임금위원회에서 제도개선 논의는 크게 노사가 각자 제기한 3개(총 6개) 과제를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다.

노동계는 ①가구생계비 계측 및 반영방법, ②최저임금 인상이 소득분배 개선 및 저임금 해소에 미치는 영향 ③최저임금 준수율 제고를 요구했다. 경영계는 ④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선방안 ⑤업종·지역별 등 구분적용 방안 ⑥최저임금 결정구조·구성개편에 관한 제도개선을 요구하였다.

위원회는 노사·공익이 추천한 전문가 TF(이하 ‘제도개선 TF’)를 구성하여 제도개선 대안을 마련하고 위원회에서 대안 중심으로 논의하기로 하였다.

제도개선 TF는 최저임금위원회로부터 6개의 제도개선 과제에 대한 개별 연구, 공개토론회, 3차에 걸친 TF전원회의 등을 거쳐 2017년 12월 22일 정책 권고안을 마련하고 이를 제4차 제도개선위원회에서 보고하였다. 권고안은 대체로 6개 과제의 쟁점별 논의를 거쳐 공감대(합의 또는 대부분 동의)를 이룬 내용으로 이루어졌으나, TF에서 공감대를 이루지 못한 내용은 주요 대안을 ‘병렬적’으로 제시했으며, 찬반의견이 나뉘고 소수의견이 1/3 이상 차지한 경우에는 다수의견과 소수의견을 병기하는 방식으로 작성되었다.

6개 과제 중 위원회에서도 특히 논란이 된 것은 ④최저임금 산입범위 개선방안, ⑥최저임금 결정구조·구성개편, ③최저임금 준수율 제고 등인데, 위원회는 제도개선 소위원회에서 합의 도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했다. 지난 3월 6일 이후 현재까지 전체회의 또는 소위원회 회의가 개최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 단계적으로 포함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를 최저임금에 단계적으로 포함시키다가 2024년까지 완전히 산입하는 개정 최저임금법이 통과됐다.

최저임금법 개정안은 최저임금 제도개선 TF안중 정기상여금은 다수의견, 복리후생비는 복수안중 2안을 채택한 것과 가장 유사하다. 개정안은 정기상여금, 복리후생비중 각각 최저임금 월환산액의 25%, 7%를 산입하지 않도록 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정기상여금과 현금성 복리후생비의 일정부분을 최저임금 산입에서 제외하고 있어 노동자의 임금보호 측면에서 더 진전된 것이라고 밝혔다. 올해 최저임금 기준으로 연소득 약 2,500만 원 이하의 근로자들에 대해서는 다음연도 최저임금 인상 혜택이 최대한 보장되도록 하고 있다는 의미다.

법 개정 논의에 참여한 국회 환노위원들 역시 정기상여금 25%와 복리후생비 7%라는 비율을 정한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25%·7%는 우선 2016년 중위임금 연 2,500만 원을 기준으로 잡고 올해 최저임금 월 157만 3,770원을 연 단위로 환산(1,888만 5,240원), 상여금 연 300%(월 39만 3,440원)를 대입해 얻은 수치다. 복리후생비 산입 비율은 2,500만 원에서 기본급과 상여금을 제외한 나머지 금액인 월 11만 6,160원, 최저임금 대비 7.38%에서 소수점 이하를 버림한 값(11만 160원)으로 추측된다.

일각에선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로 손실을 볼 수 있는 저임금 노동자를 위한 대책으로 근로장려세제(EITC) 확대도 거론되고 있다. EITC는 연소득이 일정 수준에 못 미치는 노동자들에게 이들이 낸 소득세보다 더 많은 금액을 환급해 주는 제도다.

비슷한 제도로 근로장려금·자녀장려금 제도가 시행 중이다. 정부는 근로장려금 신청자격 요건을 완화하고 지원금을 높이는 방향을 고민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노도 사도 불만인 과정, 해법은?

이와 같은 법 개정안이 과연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선 격론이 벌어지고 있다. 정기상여금과 복리후생비가 최저임금에 포함되면서 실질적으로는 최저임금이 인상되어도 ‘불이익’이란 주장이 있는가 하면, 연소득 2,500만 원 이하 수백만 명의 노동자들을 최대한 넓은 범위에서 보호하기 위한 방안이고 향후 사회보장제도나 노사 간 교섭을 통해 보완해 나가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의견이 엇갈리고 있는 가운데 또 많은 전문가들은 새 최저임금법이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 장기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어쨌든 이번 법 개정 논란과 함께 문재인 정권 출범 이후 긍정적인 국면을 보이고 있었던 노사정 사회적대화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격이 되었다.

민주노총의 경우, 이번 과정에서 보여진 정부와 여당의 모습은 그동안 주장했던 ‘노동존중’이 아니라 ‘노동 패싱’이라고 말하며, 처음부터 과연 진정성이 있었던 것인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번 법 개정 과정에 참여했던 환노위 위원은 “국회 논의 중단이 언급된 시점에서 이를 다시 최임위로 결정을 넘기는 방안도 고려되었는데 최임위 차원에서, 특히 공익위원들이 결정하기 어려운 점에 대해 언급했다”며 “최임위 차원에서 결론을 내리기 어려운 사안이니 노사정 대표자회의에서라도 무언가 결정이 되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특히 여야가 합의를 해나가는 국회 논의 과정에 대해 언급하며 “마지노선이라도 노사 간 기준이 마련되었으면 싶었지만 없었다”고도 덧붙였다.

새 집행부 들어 노사정 대표자회의에 김명환 위원장이 참석하며 사회적대화에 긍정적 사인을 보냈던 민주노총은 선을 그었다. 노사정 대표자회의는 새로운 사회적대화 기구를 어떻게 만들지에 국한해 논의하는 자리라는 것.

내년도 최저임금이 고시된 지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들은 인상폭에 대해 반발하고 있다. 현재 경제상황과 고용지표, 영세기업의 한계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은 내용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상률 10.9% 중 절반 가까이에 이르는 4.9%가 소득분배를 위한 인상 비중인데, 사회적 합의 절차를 외면하고 고율의 최저임금 인상을 강행하기 위한 무리수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그밖에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27명의 위원 중 과반을 겨우 넘긴 14명의 위원들이 수백만 명의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 사용자들의 이해가 걸린 중대한 사안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표명한 이도 있다. 사용자위원들과 함께 민주노총 추천 근로자위원들도 불참했다.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최임위원들의 집단 불참이 문제시된 것은 비단 올해의 일만은 아니기 때문에 위원회의 위상과 결정 방식에 대한 문제제기가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최종시한에 임박해 간신히(?) 결정되었던 최저임금. 이와 같은 모습은 매년 반복되고 있음에도 뾰족한 대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 국회로 넘겨 산입범위와 관련한 법 개정을 추진한 과정을 보아도 그렇다.

전문가들은 보다 폭 넓은 숙의가 가능하도록 현행 최저임금 결정 방식에 대한 본격적인 고민이 필요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논의와 결정의 책임을 갖는 당사자들이 회의를 보이콧하는 등의 현재 상황은 바람직하지 않다. 저임금 노동자들과 영세 사업주, 자영업자 등 수백만 명에 달하는 이들의 삶과 직결되는 중요한 논의와 합의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져야 할지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