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교통공사 무인운전·무인역사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서울교통공사 무인운전·무인역사 논란, 무엇이 문제인가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8.16 10:12
  • 수정 2018.08.16 10: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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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성 담보로 관련 인사들 눈에 보이는 성과 쌓기 의혹?

 

[리포트] 서울교통공사 무인시스템 논란

서울교통공사와 서울교통공사노조 간의 갈등 국면이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승진 적체 관련 노사간 합의 미이행, 현장 노사 갈등 국면 조성 등에 노조가 반발하면서 시작된 서울시청 앞 천막농성이 7월 말 기준 50일째에 접어들었다. 특히 지난 6월에는 서울교통공사가 노동자 측과 상의 없이 ‘무인운전’, ‘무인역사’ 방식을 도입하려 하고 있다며 노조가 시민사회에 이를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열어 논란이 됐다. 기존의 노사 갈등 국면에서 사측의 일방적 ‘무인 시스템’ 도입이 갈등을 증폭시킨 형국이다.

노조는 무인시스템 안전 우려, 공사는 비용과 효율성 들어

공사는 노조가 무인운전·무인역사라 주장하는 사업은 역사 내 안전 시설을 보강하는 역사 운영환경 개선 사업이라는 설명을 내놓으며 무인 시스템에 대한 우려를 일축했지만 이어 노조와 시민단체, 지역사회단체 합동으로 기자회견이 열리는 등 시민사회의 반발은 되레 커졌다. 노조는 이미 2013년 서울시의 의뢰로 맥킨지와 삼일회계법인이 컨설팅보고서를 통해 세계 트렌드에 맞는 비용 감축 정책으로 무인운전을 제안한 바 있으나 이후 2016년 경제적 실익이 없고 적절치 않다는 서울시의 의견에 따라 이미 검토가 끝난 사업을 공사가 다시 들고 왔다고 주장하고 있다.

지하철 안전성과 대중교통의 공공성, 신기술 도입에 따른 막대한 비용 문제 등 다양한 반대 의견이 제시되고 있지만 노조 측이 주장하는 무인운전 반대 논리의 핵심은 현재 수도 서울에서 현실적으로 무인운전 도입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이다. 양명식 승무본부장은 “박원순 시장이나 김태호 공사 사장이나 4차 산업혁명을 이야기하면서 앞서 무인운전을 도입한 싱가포르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며 “그러나 싱가포르의 조건과 우리의 현실은 맞지 않는 부분이 더 많고 서울에서의 무인운전 여건이 조성되어 있지 않다는 게 현장의 솔직한 의견”이라고 밝혔다.

싱가포르 등 무인 지하철 선례, 서울과 달라

심도도 깊지 않고 작은 도시국가인데다가 평야지대에 역도 직선으로 설계되어 있고 편성당 열차 량수도 상대적으로 적은 싱가포르 사례와 달리 서울 지하철은 상대적으로 더 복잡한 지하철 구조를 갖고 있다. 평지보다는 언덕 등이 많아 지하철 노선의 높낮이가 제각각이고 무인운전 안정성의 중요 요소 중 하나인 장거리 직선 구간도 부재하며 곡선 구간으로 지어진 역이 많은 등 현실적으로 현재 기술력을 통해 무인운전을 도입하기 위해서 고민해야 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이렇게 지하철 운전에서 안전 담보를 위해 고려할 부분이 많다는 것은 곧 그만큼 안전을 지키는 데에 기관사 역할이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노조 측 주장. 안전성을 담보로 무리하게 서울이라는 대도시에 맞지 않는 기술을 도입할 순 없다는 것이다. 

특히 터널 중간에서 멈추더라도 곧장 문을 열고 대피할 비상구가 마련된 싱가포르 지하철 인프라와 달리 지어진지 오래된 1~8호선 구간에서 화재 등 유사 시 대피 선로나 비상구가 마련되어 있지 않다는 점도 현실적인 조건의 한계로 지적될 수 있다. 양 본부장은 “대구 지하철 참사를 돌아볼 때 화재 등 사고 시 대피 인프라도 갖춰져 있지 않은데다가 관제 등을 통해서 제대로 대피유도를 할 수나 있을지 의문”이라며 “무인운전의 경우 출입문 취급을 일정 횟수 이상 제대로 못하면 그자리에서 열차가 서도록 되어있는데 앞차를 뒷차가 추월할 선로도 추가적으로 없는 마당에 시도 때도 없이 서울 교통이 마비되는 건 불보듯 뻔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 모든 우려를 뒤로 하고 지하철이 제대로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데에 얼마나 많은 투자와 안전성을 담보로 한 시험이 필요할지 알 수 없다는 것.

또한 일 평균 800만 명이 이용하는 등 서울 지하철은 2천만 수도권 시민의 발을 자처하는 교통수단으로 서울은 이용 승객 수준에서 매년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도시이기도 하다. 서울 지하철의 혼잡도가 그만큼 높은 편이고 매년 지하철에서 인력 부족에 따른 안전 논란이 불거진다는 점을 고려할 때 무인 시스템 도입에는 많은 투자와 기술 발전이 선행될 필요성이 커보인다.

무인역사의 경우 노동자들의 위기감은 더 심각하다. 공사가 추진하는 ‘스마트 스테이션’ 정책은 역사에 상주하는 노동자를 빼고 종합관제를 통해 무인 관리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으로 현재 공사 내 기술 직무와 역무 직무가 통합되어 운영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즉 IT 기술을 통해 무인 관제 시스템을 구축해 고장, 안전사고 등 다양한 상황 발생에 따라 인력을 탄력적으로 투입하겠다는 정책인 것. 공사는 이를 위해 지난 3월부터 스마트 통신망 구축, 고화질 폐쇄회로카메라 도입 등 다양한 정보통신 기술 투자 계획을 이행하고 있다.

임현석 서울교통공사노조 역무본부장은 “지역 관제 시스템을 통해서 주재역이 주변 여러 역을 관할 통제한다는 것인데 사고 발생 후 대응에 1분 1초가 급한 상황에서 주재역에서 사고역까지 이동하는 데에는 당연히 시간이 더 걸린다”며 “신기술로 포장된 스마트 스테이션 사업은 안전 대책을 가장한 김태호 사장의 경영 효율화 사업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보안 상황 파악 등 기본적인 중앙 관제는 기술 발전에 따라 관련 투자를 통해서 충분히 가능하다. 문제는 사후 대응이 얼마나 신속하게 이뤄질 수 있느냐다. 소방, 전기, 통신 등 다양한 관제 및 통신 기술이 관제를 가능하게 하더라도 안전 사고가 실제로 발생했을 경우 역사 내에 충분한 수의 노동자가 상주하지 않을 경우 대응이 늦을 수밖에 없다. 

 

시대 정신에 역행하는 정책 밀어붙이는 까닭은?

현실적으로 도입이 어렵다는 현장 지적이 끊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서울교통공사의 스마트 스테이션 사업 계획과 무인운전 시험은 계속되고 있다. 최근 이어진 시민 사회의 반발에 공사 측은 새로운 사업은 무인 시스템 도입이 아니라 안전성 제고 정책의 일환이라는 입장을 내놓고 있지만 무인운전 시험과 관제 시스템 확충을 안전 환경 조성이라 일컫는 공사의 해명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인력 감축의 의도가 다양한 측면에서 관측되는 상황에서 노조가 생각하는 무인시스템이 아니라는 식의 공사 해명이 우려를 불식시키기에는 충분치 못했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결국 무리한 시스템 도입은 김태호 공사 사장을 비롯한 공사 일부 관계자들의 ‘공적 세우기’ 논리에 근거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다른 어떤 정책보다도 외형적 변화가 있거나 신기술 도입 등에 따라 시스템이 크게 바뀌는 경우 관련 인사들의 공적이 확실하게 각인되는 효과가 있다. 일례로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 시절 도입한 버스 중앙차로 정책은 당시 여러 논란과 시민 사회의 문제제기에도 불구하고 현재 서울 버스 교통 체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3기 시정을 통해 ‘스마트시티 서울’이 4차 산업혁명을 선도토록 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사물인터넷,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으로 대표되는 신 기술 투자를 통해 교통, 상하수도, 에너지, 방재 등 공공 네트워크의 혁신을 가져오겠다는 것. 서울교통공사노조의 모 조합원은 “여당의 차기 유력 대선주자로 꼽히고 있는 박원순 서울시장 임기 내에서 서울메트로, 서울5678도시철도 사장을 역임하고 1~8호선 통합 이후 통합 공사 사장 자리에까지 앉은 인물이 바로 김태호 사장”이라며 “이러한 시정 기조에 따라 4차 산업혁명에 따른 기술 발전이라는 새로운 이슈에 편승해서 결과물을 만들어내고 이를 임기 내 성과로 각색하는 과정에서 공공교통에 필요한 공공성과 안전성이 경시되는 게 아니냐”는 지적을 내놓았다. 새로운 시스템의 도입에 따른 공공 시스템 변화가 누군가에게 정치적 자산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대중교통 안전성을 담보로 4차 산업 혁명이란 시대 이슈를 적절히 이용하는 게 아니냐는 비판.

한편 해외 기술 수출을 위한 시험으로서 공사가 반발을 무릅쓰고 어떻게든 일부 노선이라도 무인운전을 시행해보려고 하는 게 아니냐는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한 노조 관계자는 “지난 1월 서울교통공사가 베트남과 도시철도개발 업무 협약을 체결한 것도 그렇고 공사가 해외에 기술 수출을 하고 싶어하는데 국내에서 막상 해외 관계자들이 오면 너희가 무인운전 기술을 판다고 하면서 왜 직접 도입은 안하느냐는 지적을 받는다”며 “그렇다면 해외 바이어들에 뭔가 신기술이라고 하는 걸 팔기 위해서는 1호선부터 8호선까지 노선 중에 단 한 노선이라도 무인운전을 하고 있다는 걸 보여줄 필요가 있는 것이고 그걸 위해 그나마 가장 한적한 노선인 8호선을 붙잡고 이러는 게 아닌가 한다”고 지적했다. 공사가 해외 업무 협약 체결을 통한 도시철도 기술 수출을 위한 본보기로서 안전성 우려에도 불구하고 일부 노선을 무인화할 필요성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는 문제 제기.

노동자들은 2003년 대구 지하철 참사, 2015년 구의역 참사 등 지난 지하철 안전 사고의 교훈을 되새길 때라고 말한다. 기술 발전에 따른 무인화 바람은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새시대의 거스를 수 없는 흐름임은 분명하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기술 발전이 현재 우려되는 모든 안전 사고를 예방하고 대처할만큼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비용 절감, 효율화, 기술 수출 등의 명목으로 공공 장소라 할 수 있는 도시철도를 찾는 시민들을 담보 삼아 안전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것.

최근 노사는 갈등 기조 속에서도 어렵사리 3개월만에 열리는 정기 노사협의회 자리를 가졌으나 협의 결과는 서로 간의 의견차를 확인하는 선에 그쳤다. 노조 측 관계자는 “정말 이 정책에 자신이 있으면 교통공사가 노사민정이 함께하는 4자회담에라도 나와서 이야기해봤으면 한다”며 “시민 안전이 사회 화두인데 산업혁명이란 미명 아래 기술 발전이 사람을 배제해서는 안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