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 투쟁 끝낸 KTX 해고 승무원 ‘복직’
13년 투쟁 끝낸 KTX 해고 승무원 ‘복직’
  • 윤찬웅 기자
  • 승인 2018.08.16 10:19
  • 수정 2018.08.16 10:19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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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이 싸움으로 내몬 이들은 누구인가”

 

[인터뷰] 김승하 KTX승무지부 지부장

13년의 투쟁이 드디어 종지부를 찍었다. 지난 7월 21일 전국철도노조와 한국철도공사의 해고 승무원 문제 해결을 위한 합의에 따라 공사가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180여 명의 해고 승무원을 대상으로 경력직 특별채용을 하기로 결정해 13년을 끌어온 KTX 해고 승무원의 복직이 이뤄진 것. 7월 초 종교계의 중재로 마련된 테이블은 5차례에 걸친 협상 끝에 13년 만의 투쟁 종결이라는 성과를 냈다. 20대에 투쟁을 시작한 조합원들이 어느덧 불혹을 바라보는 나이가 됐다. 참여와혁신이 긴 투쟁을 끝낸 김승하 철도노조 KTX승무지부 지부장을 만나 긴 세월의 감회를 들어봤다.

김승하 지부장은 복직이 결정된 뒤에도 정신이 없다고 했다. 각종 매체와의 인터뷰를 비롯해 다른 투쟁사업장 연대에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사망에 이르기까지 여러가지 일이 있었다며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밝혔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체제 사법부의 재판 거래 의혹이 처음으로 밝혀진 5, 6월까지만 하더라도 KTX 해고 승무원들의 복직은 한 치 앞을 전망하기 어려웠다. KTX 해고 승무원들의 대법원 판결이 박근혜 정부와의 관계 설정을 위해 이용됐다는 보도가 쏟아졌음에도 공사는 묵묵부답이었다. 종교계 중재에 따라 6월 초 면담이 성사됐으나 상황에 진전은 없었다. 당시 오영식 철도공사 사장은 사태는 유감이나 관련 사태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등이 필요하다며 공사 차원에서의 직접 조치는 어렵다는 뜻을 비쳤다. 당시 김 지부장은 “대법원 사태 이후에 공사의 입장이 분명히 변했을 것이라 생각하고 모든 문제의 시작인 철도공사가 해결책을 가져와야 한다고 봤다”며 “큰 기대를 가지고 면담에 임했으나 안타깝게도 사장님께서 기존 입장과 전혀 변함이 없었다”는 유감을 밝혔다.

복직을 끌어낸 이번 5차례의 교섭 상황에서도 종교계의 중재가 있었다. 그러나 어렵사리 마련된 교섭 역시 쉽게 결론을 내진 못했다. 김 지부장은 “애초 종교계 어르신들이 중재를 하시고 저희는 해고됐던 사람들이 다 같이 들어가야 한다는 이야기로 듣고 교섭에 들어간 건데 막상 교섭 자리에서 실무자들은 복직 명단에 제한을 두면서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이 안됐다”고 밝혔다. 교섭 초기 공사가 ‘너무 많다’, ‘33명만 받겠다’는 식으로 나오면서 논의가 2주 가량 공전했다고 한다. 조합원들 입장에서는 여태까지 함께 싸워온 사람들을 포함해서 철도공사의 ‘불법파견’으로 피해를 본 노동자들이 함께 복직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겼고 공사는 최대한 복직 대상에 제한을 두려한 것. 결국 마지막 이틀을 주기로 오전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이어지는 교섭을 연달아 진행한 끝에 21일 오전 복직 합의가 도출됐다.

공사와 철도노조는 이미 철도공사 자회사에 취업 경력이 있는 승무원을 제외하고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을 제기한 승무원 180여 명을 대상으로 경력직 특별 채용을 추진하는 데 합의했다. 다만 채용은 KTX 승무원 업무가 아직 자회사 업무로 남아있는 만큼 사무영업(역무) 분야 6급으로 시행키로 했다. 향후 KTX 승무업무를 철도공사가 직접 수행할 경우 전환배치가 있을 것으로 합의했다.

180여 명의 노동자는 올해부터 3차례에 걸쳐 채용될 예정이다. 먼저 1차로 33명이 11월 30일자로 채용될 예정이며 2019년 채용에 맞추어 2차는 80명, 3차로 남은 인원이 채용된다. 승무원들이 실질적인 업무에 복귀하기 위한 교육 훈련 계획도 잡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복직은 마무리됐지만 과제는 여전히 남아있다. 철도공사 자회사인 코레일관광개발 소속으로 되어있는 현직 KTX 승무원들의 공사 직접 고용 전환 문제다. 문재인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 정책과 맞물려 시민의 생명·안전을 담당하는 업무 수행자라면 직접고용해야 한다는 원칙 아래 지난해부터 승무원 직접 고용 전환 논의가 이어졌지만 공사의 노사전문가협의회는 아직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지난 6월 27일 외주 용역 노동자에 대한 전환 결정까지 내려졌지만 정작 내부 자회사 노동자들에 대한 전환 논의는 진전되지 못했다.

 

김 지부장은 “공사와 노조는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전문가들의 결정에 따르겠다고 하고 공식 입장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지만 아직 답이 나온 것은 없다”며 “전문가들을 노조가 개별 접촉했을 때는 승무 업무가 생명안전 업무가 맞다고는 하는데 공식 입장이 나오지 않은 만큼 변수가 없지는 않다”는 조심스러운 의견을 밝혔다.

복직 이후 조합원들의 마음의 문제도 우려가 있을 수 있는 지점이다. 13년에 가까운 시간을 끌어온 투쟁에서 조합원들은 승리의 기쁨을 이야기하기 이전에 그동안의 상처의 아픔이 너무 컸다. 김 지부장은 “끝나기는 끝났다지만 정말 딱 죽기전에 끝난 느낌이고 온전히 기쁨을 느낄 수가 없는 처참한 상태라는 생각도 든다”며 “우리에게 수많은 악플이 쓰여지고 이미 다른 자회사로 간 이들에 대한 비난과 욕설가지 보게 되는 상황에서 잘 모르는 이야기라고 넘기려고 하지만 슬픔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최근 KTX 해고 승무원의 복직 소식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상에서는 일부 네티즌들의 비난이 이어지기도 했다. 논리는 다양하지만 비난에 대체적인 공통점이 있다면 ‘그동안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공채시험을 보지 않고 승무 업무가 아닌 역무 업무로 특별 채용되는 것은 불공정하다’는 것이다. 김 지부장은 말한다.

“우리는 피해자였다. 이 모든 것은 정규직 업무의 비정규직 노동자 사용이라는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과정이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피해를 받았건 받지 않았건 시험에 통과하지 않았으니 안돼’라는 식이다. 시험을 꼭 통과하고 자격을 얻어야만 권리를 얻을 수 있다는 논리다. 이 자본주의 경쟁사회에서의 논리가 ‘정의’로서 자리를 잡았기 때문에 거기에 빠져서 우리가 그동안 겪었던 과거의 맥락에 대해서 전혀 바라보지 않고 있다.”

애초 승무원들의 투쟁의 시작은 본사로의 직접고용 요구로 시작됐다. 철도공사의 ‘취업 사기’ 문제는 2004년 KTX 출범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승무원들은 KTX 출범과 맞물려 ‘땅 위의 스튜어디스’라는 홍보 아래 철도공사에서 일하게 되는 줄로만 알고 승무원 채용 과정에 임했다. 철도공사가 지분 100%를 소유하고 있는 홍익회 소속 ‘철도유통’ 소속이 됐지만 2년 후 공사 정규직으로 전환된다는 철도공사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버텼다. 2006년 철도공사가 승무 업무를 ‘KTX관광레저’로 다시 위탁한다는 말을 듣고서야 직접 고용 약속을 지키라고 거리에 나섰다. 승무원들에 돌아온 것은 해고였고 철도공사 직접고용을 내걸고 시작한 투쟁이 13년을 끈 것이다.

김 지부장은 “어떤 이들은 지금 상황에서도 ‘대법원 판결이 그렇게 났잖아’라고 하는데 그렇다면 양승태 사법부 판결이 옳았다는 것인가?”라며 “잘못된 과거의 고용 구조에 반대하고 나섰던 일이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로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그러한 구조가 KTX의 안전 문제에도 영향을 미치는데 그러한 여러 가지 사실은 잊히고 무조건 시험 통과, 자격 부여가 아니면 안 된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이어지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밝혔다.

KTX 해고 승무원이 낸 근로자 지위 확인 소송은 철도공사가 근로기준법상 책임 회피를 위해 위탁 고용 형식을 취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 핵심 쟁점이었다. 정규직 열차팀장과 같은 열차 안에서 근무하며 지휘 감독을 받는 만큼 공사와 묵시적 근로계약 관계가 있다는 것.

2015년 양승태 대법원 체제에서 대법원은 “코레일 소속 열차팀장과 원고의 업무협조가 없지는 않지만 각 업무 영역은 구분돼 있고, 업무를 위탁받은 철도유통 등은 공사와 독립적”이라는 판결을 냈고 대법원의 판결이 양승태 사법부의 재판 거래 대상의 하나로 지목되면서 상황이 비로소 달라졌다.

노조는 20량 열차에 열차팀장과 승무원 2명이 탑승하는 상황에서 이 3명의 노동자 중 KTX 승객의 안전 고려 의무에서 자유로운 노동자가 과연 한 명이라도 있을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해 왔다. 당시에도 논란이 컸던 대법원의 판결 뒤집기가 사실상 행정부와의 거래를 위한 사법부의 계획이었다면 승무원들이 안전 업무 대상자가 아니라는 당시 판결 논리에 대한 의문도 커질 수밖에 없다.

해고 승무원들이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특별채용이라는 형식이 사용된 것은 KTX승무업무가 본사로 이관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KTX 승무 업무가 과연 자회사 위탁 대상 업무인지를 판단하는 것이 해고 승무원의 복직을 위한 특별채용의 온당함을 결정하는 데 가장 중요한 기준인 만큼 과거 맥락을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김 지부장의 생각.

김 지부장은 “영화 ‘헝거 게임’을 보면 그 여자 주인공이 설치된 카메라를 향해서 활을 쏘면서 ‘진짜 적이 누군지 보라’는 말을 한다. 이 모든 걸 세팅해놓은 자들은 누구인가. 자본주의의 경쟁 논리를 통해 우리끼리 싸우도록 만들어 놓은 게 있는데, 이 단순한 싸움만을 볼 게 아니라 우리를 이 싸움으로 내몬 사람들에 대해 인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복직을 비난하는 논리들 가운데에서 해고 승무원들이 받았을 상처는 그렇게 단순치 않아 보였다.

철도노조 KTX승무지부는 해산할 예정이다. 철도노조 조합원으로서 KTX승무 업무 직접 고용 전환이 있을 때까지는 역무 쪽 조합원으로 조직된다. 다만 김 지부장은 사법 농단 피해자로서 향후 함께 문제 해결에 나설 수 있는 다른 단체가 필요할 것 같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 지부장은 “이제부터 시작”이라며 “다른 피해자인 전교조, 쌍용차노조 등과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회의기구를 꾸렸고 당장 단기적으로 잡아나가기보다 중장기적으로 현행법상 한계를 넘어 개선해나갈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