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우본 소요인력산출 비판
“사람은 기계가 아니다”… 우본 소요인력산출 비판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8.16 10:22
  • 수정 2018.08.16 10:2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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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배원들 위한 현실적 대안 나와야할 때

 

[인터뷰] 우정노조 이순관 서대문우체국 지부장

이번 여름, 서울의 한낮 온도가 40도를 넘어섰다. 5분만 밖에 가만히 서있어도 금세 땀이 등줄기를 타고 흐른다. 불쾌지수도 높다. 행정안전부에서 폭염특보경보 발령을 알리며 ‘야외활동 자제’를 당부하는 안전안내 문자를 계속해서 보낸다. 온 종일 우편물과 소포 배달을 해야 하는 집배원들에겐 이런 안전안내 문자마저 야속하다. 아무리 더워도 일손을 놓을 순 없기 때문이다.

서대문우체국은 서울에 위치한 우체국 치곤 작은 국이다. 이곳에는 총 91명의 집배원이 있다. 이들과 계리원 등을 포함해 현재 우정노조 서대문우체국지부 조합원 수는 142명이다. 이순관 서대문우체국 지부장을 만나 우체국 노동자들의 현장 이야기를 들었다.

여름 뙤약볕 아래 속수무책인 집배원들

서대문구는 집배원들의 일이 많은 지역이다. 이순관 지부장은 “서울에서 학교기관이 가장 많다. 연세대와 이대, 명지대 등 규모가 작은 곳과 대학원까지 합치면 9곳 정도 된다. 이동인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서대문구 인구가 33만 명 정도인데, 이동인구가 10만 명에 달한다. 세브란스병원의 이동인구만 5만 명이다. 상경한 대학생들 중에는 주소를 이전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 충정로 근처엔 회사빌딩도 많다”고 말했다.

최악의 더위다. 날씨 탓에 집배원들의 우편, 배달 업무는 더 힘들다. 국가 공무원인 집배원들은 큰 과오가 없으면 정년이 보장된다. 우체국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현재 집배원들의 연령대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서대문우체국 물류과에서 일하는 이들 중 40%가 40대 중반 이상이다. 20대는 5명에 불과하다.

이 지부장은 “직원들이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어한다. 현재 우체국장의 재량으로 혹서기와 혹한기, 천재지변 등의 상황에서 집배원들의 현장 업무중지를 할 수 있다. 하지만 윗선인 청장과 본부장의 눈치를 봐야하는 상황에서 실제로 발령된 적은 없다”며 “설령 제때 업무중지 명령이 떨어진다고 해도 할당된 업무량이 조정되지 않는 한 집배원들은 일을 나갈 수밖에 없다. 밖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보다 명확한 지침 마련, 시행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무더위 속에서 일할 수밖에 없는 집배원들을 위해 노사도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 지부장은 “휴식시간을 보장해 주고 제빙기를 설치하는 등의 노력을 노사가 함께 하고 있다”면서도 “현실적으로 인력난에 시달리며 일해야 하는 상황에서 업무중지 뿐만 아니라 휴게시간도 별 소용이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올해 서울지방우정청과 교섭하며, 실질적으로 업무 중지를 내릴 수 있도록 관련 내용을 명문화했다.

 

업무효율화업무량감축 한계, 인력 충원이 핵심

이순관 지부장은 28년 차 집배원이다. 지금은 팀장이지만 지난 14년간 조장으로 팀을 이끌면서 현장 업무를 했다. 그는 “집배원들의 노동 조건과 강도가 옛날에 비해서는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나, 과거에 많았던 통상우편물은 줄어든 반면 이전보다 소포 물량이 많아졌다”며 “우본에서는 드론, 4륜 전기자동차 등을 도입하겠다고 하지만 현장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일축한다.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서대문구의 경우 특히 홍은동, 홍제동 등 산악지대가 많다. 집배원들은 오토바이도 세워두고 걸어 다녀야 한다. 아파트 단지와 골목 등 오토바이가 차지하는 주차공간과 4륜 차 주차를 위해 필요한 공간도 확실히 다르다. 전기차의 배터리가 얼마나 오래갈지도 관건이다. 안전성이라는 면에서 오토바이보다 더 낫겠지만, 업무를 수행하는데 있어서는 어려움이 크다”는 설명이다.

그러면서 인력 충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현재 우정사업본부(이하 우본)와 노조는 집배원들의 주 5일제 근무를 정책을 위해 물류지원단을 통해 주말 근무를 하는 위탁택배원을 뽑고 있다. 그러나 위탁택배원 정원이 한정돼 있고, 각자의 업무가 자리잡아가는 과정에서 여전히 집배원들의 업무 과중이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 지부장은 “집배원 한 사람이 하루 많게는 120개 소포를 배달해야하는 경우도 있다. 하루 맡은 통상등기 우편물은 또 따로 있다”고 덧붙였다.

지난해 집배원들의 과로사가 잇따랐다. 우본은 지난해 노동계·시민사회단체가 뽑은 최악의 살인기업 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그동안 노사 간 적정 인력 충원에 대한 이견이 컸다. 노조는 3,600명을 충원해야 한다고 요구했지만 우정사업본부는 보다 적은 인력으로도 충분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이 지부장은 “우본의 근거는 소요인력, 집배부하량 산출이었다”며 “통상우편문을 하나 꽂는데 1초, 등기우편물 배달에 27초, 이런 식이다”고 비판했다.

이어 “우리는 사람이지 기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 지부장의 목소리가 커졌다. “등기나 소포를 배달할 때, 고객이 부재중일 경우 전화해서 확인해야한다. 다른 곳에 맡겨 달라거나, 다음에 가져다 달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집배원들도 좀 쉬며 일해야 하지 않겠나”. 이 지부장은 집배원들의 인력 부족 문제해결을 위해 노사가 전문가와 함께 만든 ‘집배원 노동조건 개선 기획추진단’에서 합리적인 인력 충원 안이 나오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해 구성된 기획추진단에서 올해 6월 말까지 발표할 예정이었던 최종보고서는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다. 노사가 합의점을 도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우본 담당자는 늦어도 8월 초까지 최종안이 나올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