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이면 10년인데…” 여전히 아픈 사람들
“내년이면 10년인데…” 여전히 아픈 사람들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8.16 10:21
  • 수정 2018.08.16 10:24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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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권지영 심리치유센터 와락 대표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건강 연구 진행

지난 4월, 심리치유센터 ‘와락’과 김승섭 고려대학교 보건정책관리학부 교수 공동연구팀은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이후 10년의 실태조사를 매듭짓고 싶다”며 “2009년 옥쇄 파업 참여자 실태조사, 2015년 해고·복직노동자 실태조사에 이어 2018년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연구를 국가인권위원회 지원 사업으로 진행할 것”을 밝혔다.

2018년 연구는 140여 명의 해고·복직노동자와 70여 명의 해고노동자 가족들을 대상으로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실태조사에 함께한 권지영 와락 대표를 만나 연구 진행 상황과 실태조사 과정에서 만난 해고노동자들의 아픔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아픔을 ‘와락’ 껴안다

지난 2011년 10월 30일, 심리치유센터 와락이 만들어졌다. 와락은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라는 낙인에 고통받는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머물 수 있는 치유의 공간이다.

와락이 처음 세상에 나왔을 때만 해도 노동자를 상담하거나 치유하는 문화가 없었던 탓에 “투쟁이 중요하지 무슨 상담이냐”, “왜 투쟁하는 노동자를 환자 취급하는 것이냐”는 비난도 받았었다. 그랬던 와락이 열심히 활동한 지 어느덧 7년째다. 와락의 활동 덕분에 지금은 노동자의 정신적인 고통이나 트라우마를 어루만져 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권지영 대표에게 와락의 안부를 물었다.

“처음에는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을 치유하기 위한 공간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와락 치유단 상담사 선생님들과 치유 영역을 넓혀 가고 있어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외에도 다른 사업장 비정규직·해고노동자도 상담하고 있고, 평택 인근 사업장에 파견 상담을 가기도 하고요. 주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죠.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 어떻게 지내시는지 안부도 묻고, 최근에는 국가인원위원회 지원을 받아 노동자 건강 연구를 위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기도 했고요. 작년부터 ‘누군가를 돕는 사람을 돕자’를 와락의 모토로 삼았어요. 누군가를 돕는 사람을 도우면 그 사람이 더 많은 사람을 도울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활동가들 상담도 이어가고 있고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까 괜찮겠지… 하지만

지난 6월 27일, 고 김주중 조합원의 죽음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고통이 여전히 진행 중이라는 것이 드러났다. 29번째에서 그칠 것이라고 믿었던 죽음이 30번째에 이르렀다. 권 대표 역시 일주일에 몇 번씩 평택과 서울을 오가며 서울 대한문 앞 고 김주중 조합원 분향소를 지키고 있다. 이날 인터뷰에서도 고 김주중 조합원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그를 ‘형’이라고 부르는 권 대표의 얼굴에는 마지막 순간에 그를 지키지 못했다는 자책감이 서려 있었다.

“2009년 파업 당시 조합원 중에서도 선봉대 역할을 하셨던 분이었죠. 아내분도 가족대책위원회 활동을 열심히 하셨으니까 모두가 그 부부를 알았죠. 우리와 심리적 거리가 굉장히 가까운 사람이었어요. 돌아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처음에는 안 믿었어요. ‘무슨 소리야, 그 형이 왜?’ 형이 한동안 안 보이다가 언론 인터뷰도 하고, 경찰 인권침해 조사에도 응하는 모습을 보고 ‘요즘에는 마음이 좀 편안해지셔서 이야기도 하러 나오시는 구나.’ 저는 사정을 모르고 오히려 반대로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다들 충격적이었고 많이 속상해했죠.

형의 죽음이 무조건 해고 때문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어요. 다만, 형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었더라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복직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만 있었더라면 더 버텨볼 수 있었을 텐데, 이런 생각을 해요. 이건 쌍용자동차지부 지부장, 사무국장, 다른 간부들 다 마찬가지일 거예요. 지부는 조합원들에게 완벽한 희망을 만들어주지 못했다는 것. 저는 저대로 와락 만들어서 사람들 돌본다고 했지만 와락 만들고도 이런 일이 계속 있었으니까. ‘와락의 대표로서 그 소임을 충실히 하지 못한 게 아닐까?’ 이런 생각을 하죠. 우리 모두가 이 더운 여름날 대한문 앞에 분향소를 차리고 반성하고 있는 거죠. 형이 굉장히 힘들어하고 어려웠다는 걸 우리가 알았더라면, 우리가 신뢰를 줄 수 있었다면, 이야기하고 나눠볼 수 있었을 텐데. 우리도 역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죠.”

아픔은 이번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노동자 건강 연구 실태조사 과정에 또 한 번 드러났다. 140여 명의 해고·복직노동자와 70여 명의 가족들은 실태조사를 진행하면서 2009년 그날을 다시 떠올렸다.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 심층 인터뷰를 진행할 때, 와락 실무자들도 같이 인터뷰를 했어요. 이제 내년이면 10년이고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까 괜찮겠지, 이제는 그때를 떨어져서 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을 했죠. 근데 다시 이야기를 꺼내면서 다 같이 울었어요. 생각하니까 또 서럽고, 아직도 그 마음이 남아있는 거죠. ‘아, 우리가 이런데 해고노동자인 당사자들은 더 하겠구나. 가족들에게도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들이 분명히 있겠구나.’ 한국사회에서 중년 남성들이 자기 이야기를 쉽게 하지 않아요. 나는 괜찮다 이런 식이죠. 심층 인터뷰에서 그때서야 자기 이야기를 꺼내면서 극도로 불안했고, 공포스러웠다는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2009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기사에는 저주에 가까운 악성 댓글이 달려요. 물론 파업 과정에서 저희도 폭력적으로 저항했다는 사실을 부정하지는 않아요. 알고 있어요. 그렇기 때문에 법의 처벌을 받았지만 그것이 과하다는 생각, 우리 사회가 노동자의 파업을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처벌한다는 생각. 그게 이번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판거래 의혹에서 드러난 거죠.”

차별과 소외,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더 아픈 이유

지난 2015년 연구인 <해고자와 복직자의 건강 비교 :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사례를 중심으로>는 해고가 노동자와 그 가족의 삶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정리해고의 경우 단순히 직장이 없는 실업상태를 의미하지 않으며, 근로자 본인의 의사와 무관하게, 근로자의 귀책사유 없이, 회사의 요구로 인해 강제적으로 퇴출되는 실업”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2015년 연구는 해고노동자 187명과 복직노동자 45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으며, 연구 결과에서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가 복직노동자보다 건강 상태가 나쁜 요인을 크게 두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는 해고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 둘째는 차별과 소외 경험을 포함한 사회심리적 스트레스다. 권 대표는 지난 세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건강 악화를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사람 중 한 명이기도 하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한다고 하죠. 먼 노후설계까지는 아니더라도, 사람이 미래를 계획할 수 있으려면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는 안정적인 일자리가 있어야 해요. 그것을 어떻게 꾸리고 나아갈지를 고민하는 건 정말 중요한 문제예요. 2009년 당시 해고노동자들 평균 연령대가 3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이었어요. 지금은 40대 후반에서 50대 초반이죠. 그 연령대 가장들이 가정을 꾸려나가려면 어느 정도 이상의 수입이 있어야 하죠. 사실상 한국사회 노동자들이 정규직에서 밀려나면 동일한 일자리, 더 좋은 일자리로 갈 수가 없어요. 결국 해고노동자들이 선택하는 노동은 불안정한 노동이에요.”

특히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의 경우 77일간의 파업 이후 일반적인 정리해고를 경험한 노동자들과는 다른 특징이 나타났는데, 바로 차별과 소외였다. 2015년 연구 결과에 따르면 2009년 해고 이후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중 87.2%가 구직 과정에서 차별 경험을 경험했다고 답했다.

“10년이 가까이 지난 지금도 평택 지역에서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인 줄 알았으면 안 뽑았을 텐데’ 이런 말을 하는 사장님들이 있어요.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라는 게 낙인이 되는 거죠.”

소외와 관련된 인식 조사 결과를 살펴보면, 90%를 넘는 해고노동자가 해고 이후 “해고당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느끼고 있으며, 73%의 해고노동자가 “(해고당하지 않은)사람들과 함께 있는 자리가 내게 어울리지 않는 것 같고 부적절하게 느껴진다”고 답했다.

2015년 연구는 “쌍용자동차 정리해고가 단순히 실업을 넘어서, 사회적 고립으로 이어지는 역할을 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며 “해외 연구 또한 정리해고로 인해 실업자에 대한 낙인화가 이루어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이에 따라 실업자를 대상으로 좌절감과 소외감을 극복하고 재취업/재고용을 위한 신체적, 정신적 건강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사회적 분위기와 정책 또한 논의되어야 할 것”을 강조했다.

‘국가폭력’에 방점을 찍다

2018년 연구인 <해고, 국가폭력, 그리고 노동자의 몸>은 실태조사를 마친 후 결과 보고서를 작성 중이다. 공동연구팀은 “현재 실태조사 결과를 분석 중이며, 결과 발표 자리를 토론회 또는 발표회 방식으로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전 연구는 해고가 건강 상태에 미치는 영향을 주목했다면, 올해 연구는 국가폭력을 중심으로 하고 있어요. 파업 당시의 진압과정, 물리적이고 심리적인 폭력 등이 해고노동자와 그 가족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확인하려고 해요. 연구 결과를 통해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죠.”

특히 2018년 연구에서는 2015년 연구 당시 해고노동자였지만, 그 이후 복직한 노동자들의 건강상태 변화를 추적 관찰할 예정이다. 와락과 공동연구팀은 “이번 연구가 국가폭력을 경험하고 해고 후 10년의 시간을 아파한 해고노동자와 가족의 삶이 회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기회가 될 것”을 기대했다.

마지막으로 권 대표에게 우리 사회가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을 어떻게 바라보면 좋을지 물으며 인터뷰를 마쳤다.

“실제로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어떻게 연대하면 좋을까요? 많은 분들이 이런 질문을 해요. 다른 특별한 방식의 연대는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 우리를 그냥 평범한 사람으로 봐주셨으면 좋겠어요. 적당히 게으르고, 적당히 이기적이고, 또 적당히 성실하고, 적당히 착한, 그냥 대한민국 보통 평균에 근접한 사람으로 봐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