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리앗 삼성에 맞서는 다윗
골리앗 삼성에 맞서는 다윗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8.16 10:36
  • 수정 2018.08.16 10: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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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김연두 CS모터스 분회장

삼성에 부는 노조 바람

80년 무노조 역사 삼성은 지난 4월 17일 막을 내렸다.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전자서비스지회와 회사는 협력업체 직원들을 직접고용하고 노동조합을 인정하기로 합의했다. 삼성전자서비스지회를 비롯한 전국금속노동조합 삼성지회, 삼성웰스토리지회,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삼성에스원노조는 삼성 내 노조 조직화를 위한 대표단을 결성했다.

6월 26일 삼성에 새로운 노동조합이 설립됐다. 에버랜드에서 차량운행을 담당하고 있는 CS모터스다. IMF로 인해 에버랜드에서 분사된 사업장이다. 70여명이 근무하고 있으며, 현재 조합원은 김연두 분회장을 포함해 6명이다. 김연두 분회장은 회사가 분사되기 전 1996년 입사해 22년 동안 근무하고 있는 에버랜드 내 가장 오래된 운전기사다.

에버랜드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남녀노소 불문하고 애용하는 에버랜드를 보다 편리하고 재미있게 도와주는 분들이 있다. CS모터스 운전기사는 에버랜드 내 모든 차량을 관리하고 있다. 주차장에서 입구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부터 시작해 사파리, 로스트밸리 등 고객과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 있다. 일반적인 버스 운전기사와 달리 고객과 소통하기 위한 멘트를 해야 하는 것이 에버랜드 운전기사의 차별점이다.

운전과 함께 고객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이 어려워 장기 근속자도 많지 않다. 에버랜드 운전기사는 3개월 인턴 기간을 거쳐 고객과 호흡이 많은 사파리에서부터 본격적인 근무에 들어가게 된다. 외워야 할 매뉴얼이 많다 보니 버티지 못 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김 분회장은 “멘트를 하면서 고객과 가까워지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좋은 질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주요 업무다. 셔틀버스 기사는 에버랜드 방문 고객을 가장 먼저 만나 첫 이미지를 심어주기 때문에 그 역할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에버랜드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사파리다. “각 동물들의 이름을 외워야 하는 것이 중요하다. 곰 같은 경우 재주를 부리기 때문에 고객에게 인기 있는 동물이다. 운전기사를 통해 곰이 재주를 부리고 고객에게 전달되는 삼위일체 멘트를 할 때 즐거운 사파리를 제공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운전기사는 에버랜드 고객의 처음과 끝을 함께 한다. 좋은 이미지를 생성해 다시 오게끔 만들어줘야 하는 게 중요하다. 재방문 해 알아주는 고객이 있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다양한 고객을 만나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경우가 있다. 김 분회장이 사파리 근무 할 때였다. “보통 사파리 관람 시간은 15분 이내다. 어느 날 한 고객이 관람을 마무리하는 데 ‘벌써 끝이냐, 너무 짧다’고 푸념을 했다. 그 때 ‘제가 사파리 사장이 되면 시간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그러자 고객이 ‘진짜요? 그럼 그 때 꼭 오겠다’고 대답했다. 농담처럼 한 대화였지만 고객과 한 약속을 지켜야겠다는 생각이 오랫동안 남아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버스 기사 자유는 어디 있나요?

운전만으로도 피로감이 쌓이는데, 고객에게 멘트까지 해야 하는 에버랜드 운전기사의 피로감은 만만치 않다. 한 시간 근무 후 한 시간 휴식시간을 갖는 것이 규칙이다. 하지만, 인원이 부족해 두 시간 이상 근무를 해야 하는 일이 심심찮게 발생한다. 김 분회장은 “충분한 휴식을 취해야 더 좋은 서비스를 고객에게 제공할 수 있다. 휴식 시간에 다른 업무를 시키거나 추가적 근무를 하게 되면 육체적인 피로와 더불어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쌓인다. 그러다보면 고객들에게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다”고 휴식시간에 대한 문제점을지적하며 운전기사 인원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끝이 없다. 부족한 인원으로 인해 주 5일 근무를 해야 함에도 6일 근무는 다반사라고 한다. 성수기 시즌에는 휴일 없이 일주일 내내 일을 해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쌓여 있는 휴무를 본인들이 쓰고 싶을 때 써야 하는데 회사가 일방적으로 지시해 쉬어야 하는게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 특히나 성수기 때는 피곤함이 더 크니 충분한 휴식을 쉬어야 더 좋은 서비스로 보답할 수 있는데, 휴식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다보니 힘들어하는 기사가 많다”고 설명했다. 휴일 없이 일한 뒤 추가 근무수당은 잘 지급받고 있을까? 이 또한 문제가 있었다. “기사들도 정확한 계산법에 의해 나오는지 모르고 있다. 명세서에 적힌 특근이 맞는 지 의문을 제기하는 기사도 있다. 세부적으로 정확하게 수당을 명시해야 하는데 그런 점이 없다”고 설명했다.

회사 눈치를 봐야 하는 것도 문제라고 꼽았다. 운전 중 일어나는 사고로 인한 징계방침이 모호하다는 점이 그 중 하나다. “징계를 내릴 때 회사에서 선호하는 직원에 따라 강도가 달라진다. 회사에 우호적인 직원을 만들기 위해 편을 가르며 이간질 시킨다. 이러한 상황을 아는 사람들은 아예 회사를 나가는 경우도 있었다”며 외부적으로 근무를 잘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부적으로 회사와 직원 관계를 원만하게 유지시키는 것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계란으로 바위 치기’ 일지라도

삼성의 무노조 경영 방침이 깨지자 CS모터스 내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다. 먼저, 퇴사자 수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70여명의 운전기사 중 15년 이상 장기근속자는 김 분회장을 포함해 10명도 되지 않는다. 전체 직원 3분의 1 정도는 입사와 퇴사를 반복한다. 하지만, 최근 들어 퇴직자 수가 급격히 준 것이 큰 변화라고 짚었다. “삼성에서 노조를 해 성과가 있다는 걸 알게 된 직원이 많고, 또 많이 놀란 직원도 있는 것 같다. 노동조합이 설립됐고 활동도 하니 동료들이 ‘좀 더 희망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것같다. 노조 목소리가 커지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 분회장은 지난 2017년 7월 삼성지회에 조합원으로 가입했다. 근속연수가 가장 길고 간부출신이었기 때문에 회사에서 받은 충격도 상당했다. 노조 가입을 알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전에 밥 한 번 같이 먹지 않았던 회사 간부가 찾아와 식사를 제안하고 긴 시간대화를 나눴다고 한다.

지난 6월 CS모터스 내 5명의 조합원이 추가되면서 삼성지회 CS모터스분회가 설립됐다. 김 분회장은 노조 가입을 독려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스스로 부당함을 느끼고 먼저 면담을 요청해왔다. 조합원들 대부분 입사한 지 오래되지 않은 2~3년차 운전기사였다. “현재부분회장이 회사의 부당한 방침에 힘들어하면서 대화를 요청해 왔다. 여러 가지 고민을 하고 있기에 금속노조에 가입해 그 힘을 통해 크게 일어설 수 있는 발판을 만들어 보자고 조언을 했다”고 말했다.

분회를 설립한 지도 한 달이 지났다. 아직까지 동료들은 여러 가지 반응으로 나뉜다. “회사 눈치도 보이고 승진도 달려있다 보니 아무래도 섣불리 가입을 하지 못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아직은 다들 지켜보는 분위기다. 노조가 어떻게 회사와 갈등을 풀어갈 것인지 궁금해 하고, 회사에 반응도 두고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물론 호의적이지 않은 동료도 있다. 회사에 노동조합 이야기를 전해주는 경우도 있다. 노조에서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오는 지에 따라 분위기에도 변화가 생기지 않을까”라고 김 분회장은 기대감을 드러냈다.

삼성이 노동조합을 인정했지만 아직까지도 노동조합을 바라보는 사측의 시선은 곱지 않다. 그럼에도 불모지였던 곳에서 노동조합 싹을 틔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김 분회장은 “삼성이라는 큰 대기업에서 나 혼자는 너무 나약하고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일부분도안 되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큰 힘을 얻기 위해 노조에 가입하길 잘 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회사는 날 배반했지만 노조는 날 배신하지 않았다. 앞으로 큰 힘이 되고 위안이 돼 발전하는 모습이 될 것이다. 마음 아픈 곳을 헤아려 줄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될 수있다고 생각한다”고 노조에 대한 믿음을 드러냈다.

또한, “진정 올바른 회사라면 진실성과 투명성이 보여야 하는데 지금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노조는 회사가 원만하게 나갈 수 있는 기틀을 만드는 장치”라고 노조를 만든 이유에 대해 설명했다.

물꼬 틀 방법 생각해야

분회는 회사와 오는 8월 8일 첫 교섭을 앞두고 있다. 이전부터 교섭을 지속적으로 요구했음에도 핑계를 대면서 뒤로 미루다 드디어 대화를 시작하게 됐다. “회사가 들어줄 수 있는 것과 들어주기 어려운 것을 분별해 지속적인 교섭이 이어지게 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목표”라며 “회사 발전을 위한 부분들을 요구 사항에 많이 넣었고 점차 근무환경 개선도 요구할 생각이다”라고 교섭을 준비하는 입장을 밝혔다.

김 분회장은 더 많은 조합원을 만들기 위해서 계기가 중요하다고 말했다.“열심히 한 명 한 명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한 번에 노조의 역할을 보여주고 가입을 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주면 된다고 생각한다”며 “계기를 찾기 위한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마치 지도를펼치고 숨겨진 보물찾기를 하는 기분”이라고 설명했다.

김 분회장은 최근 삼성 조직화를 위해 가평과 안성 골프장에 선전전을 다녀왔다. 곳곳에 팸플릿과 사진을 비치했다. “처음 회사에서 규제를 하면서 많은 다툼이 있었다. 자주 다니다 보니 이제는 보안실부터 가서 인사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분위기에서 선전전을 진행했다”며 “오랜만에 보는 동료들이 있어서 반가웠다. 아직까지도 노조 가입에 대해 반신반의해 하고 있는 직원들이 많은 것 같다”고 말했다.

삼성을 상대로 노동조합을 활동을 하는 김연두 분회장은 망설임이 없었다. “누군가 삼성이 무섭지 않냐고 물어봤다. 무서웠다면 결코 노조에 가입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결코 무섭지 않다. 내가 만약 잘못을 저질렀을 때 회사가 포용하고 안아줬으면했다. 하지만, 회사는 기대를 무너뜨리고 배반했다”며 “앞으로 작지만 회사 발전을 위해 열심히 일을 하고 노조 활동에도 최선을 다 할 것”이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