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이어져 굴뚝 위로 올라갔다
마음이 이어져 굴뚝 위로 올라갔다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8.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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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파인텍 고공농성 크라우드 펀딩 기획자

노동운동을 응원하는 새로운 방법

“어떤 변화라고 하는 게 당장 우리가 원하는 대로 한두 달 후 눈에 띄거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 모든 사람들이 문제의식을 가지고 자기 자리에서 목소리를 낸다면 예상치 못한 어떤 순간에 변화나 혁명이라고 하는 것이 기습적으로 벌어질 수 있다”

책모임을 통해 3년 정도 알고 지낸 프리랜서 정소은 씨와 CBS 라디오 PD 김다은 씨는 파인텍 고공농성을 접하게 됐다. 이들은 자신만의 힘으로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크라우드 펀딩(온라인 플랫폼 등을 통해 불특정 다수 대중에게 자금을 모으는 방식) ‘마음은 굴뚝같지만’을 기획하게 됐다. 그리고 펀딩을 올린 지 10일 만에 목표금액을 달성했다.

파인텍 고공농성과 만나다

“노동 문제에 대해서 어렴풋이만 알고 있었지. 관심이 거의 없었다”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는 정소은 씨는 파인텍 고공농성을 접하기 전까지 노동 문제에 대해 아는 바가 없었다. CBS 라디오 PD로 활동 중인 김다은 씨는 “대학생 때 젠더나 소수자 인권에 관심이 있긴 했지만 운동권 활동을 하거나 개입한 적은 없었다. 라디오 프로그램도 음악보다는 시사 쪽으로 하고 싶었다. 사회 문제에는 어느 정도 관심이 있어서 노동문제에 대해 보통 수준 관심이 있었다”고 말했다.

김 PD가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연말을 맞아 사회에 현장을 연결하다가 파인텍 고공농성과 만나게 됐다. 김PD는 “고공 농성을 하고 있다는 것을 완벽하게 몰랐다는 사실 자체에 대해 큰 충격을 받았다. 굉장히 근거리에서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내가 몰랐을까’라는 사실에서 오는 생생한 충격이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김PD로부터 파인텍 고공농성과 만나게 된 정소은 씨는 “처음 들었던 궁금증은 ‘왜 굴뚝에서 하느냐’였다. 질문을 던지고 답을 들으면서 그들이 그 곳에 전선을 형성할 수밖에 없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인상을 받았다. 이상하기도 했고, 한편으로 호기심이 생기기도 했다”고 고공농성을 접한 소감을 설명했다.

이들은 조합원이 아닌 외부인으로서 도움을 주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노동조합 흐름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함께 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러던 중 나온 것이 ‘크라우드 펀딩’이었다. 김PD는 “젊은 세대들이 쉽게 들어올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이라는 장점과 상품 제작을 위한 돈을 모으기 위해 시민들이 도와줄 수 있는 방법을 충족시킬 수 있었던 게 크라우드 펀딩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소은 씨는 “사람들 시선을 끌어올 수 있을만한 매력적이고 눈에 띄는 방법이 필요했다. 부드러운 캠페인처럼 포장하는 전략을 통해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예산을 모으는 것을 모양새 있고 조직적으로 할 수 있을 것 같아 선택하게 됐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가능할까라는 두려움

펀딩을 기획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각자 고민을 품고 펀딩을 진행했다. 김PD는 “‘이걸로 될 수 있을까’라는 회의감과 냉소가 있었던 것 같다. 실제로 그 분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은데 ‘이거 가지고 뭐가 되겠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속에 자리 잡은 냉소적 절망을 외면하고 그렇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가는 것이 쉽지 않았다”라고 고백했다. 정소은 씨는 “손 편지를 쓸 수 있도록 행동을 유발하기 위한 우체통을 만드는 과정에서 시간이 너무 많이 들었다. 허투루 보이지 않기 위해 꼼꼼하게 신경을 쓰다 보니 굴뚝 위의 시간은 그 만큼 지나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딜레마가 있었다”고 답했다.

리워드(상품) 구성은 굴뚝 위 사람들에게 보내는 길쭉한 편지지와 굴뚝을 연상시키는 유리컵, 컵받침,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핸드북으로 이루어졌다. 고공 농성과 연관성 있는 상품을 떠올리는 것은 쉽지 않았다. “그저 예쁜 굿즈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진짜 우리가 말하고 싶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을 생각해내야 했다. 편지를 쓰는 행위와 굴뚝 농성 사이에 보이지 않지만 메시지적으로 연결돼 있다고 생각한다”고 편지지를 선정하게 된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면서 편지와 노동투쟁의 닮은 점을 설명했다. 먼저, 느리고 묵묵하게 걸어간다는 점, 상대의 마음을 생각하고 연결돼 있다는 점, 잇는다는 것. 김PD는 “편지를 쓸 때 상대방이 어떤 상황인지 생각을 해야 한 줄씩 쓸 수 있다는 점이 연대하는 마음과 닮아 있는 것 같다. 상대를 적극적으로 상상하는 행위가 연대로 이어지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편지로 이어지는 마음

본격적으로 손편지가 전달되지 않았지만, 영상편지를 통해 마음을 전해 온 사람들이 있다. 각자 가장 감명 깊었던 편지를 꼽았다.

정소은 씨는 해남에서 보낸 젊은 여자 농부의 영상 편지를 소개했다. 해남에서 농사일을 하며 더운 여름, 일을 끝내고 저녁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내일을 준비하는 소소한 일상을 소개한다. 굴뚝 위에 있는 분들이 하루 빨리 다음 날 노동을 기약할 수 있는 일상이 돌아왔으면 좋겠다는 내용이다. “미사여구는 없지만 농사를 짓는 분이 그런 얘기를 하니까 마음이 이상했다.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상편지를 통해 안 건드려졌던 혈자리를 자극 받듯이 여러 가지 마음들이 올라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선정 이유를 설명했다.

김PD는 남해에서 보내준 편지를 꼽았다. 아기를 안고 찍은 영상이었는데, 옛날에 방영했던 ‘고향에서 온 편지’가 떠올라 정감이 갔다고 소개했다. 편지 속 주인공은 파인텍 고공농성에 대해 펀딩에 설명한 내용밖에 알지 못 하지만 더위 속에서 억울한 일을 알리기 위해 투쟁을 하고 있는데 그 분들을 돕지 않을 도리가 없다는 내용이다. “‘도리가 없다’는 말이 굉장히 와 닿았다. 우리들도 이 일을 알게 됐을 때 이미 도리가 없는 거다. 그 분들을 도울 수밖에 없었다.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졌는데 어떻게 피할 수 있겠나. 이게 우리 모두의 마음이라고 생각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남해 영상 편지를 접한 홍기탁 농성자는 직접 연락처를 전달 받아 파인텍 사태 설명과 영상 편지에 대한 고마움을 전했다. 예기치 않은 답장을 받은 편지 주인공은 펑펑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김PD는 “유명인들 중 누군가가 영상편지를 써 줘야 큰 힘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는데 아주 평범한 우리 이웃이 자신들의 싸움을 이해해주고 응원해주고 있다는 사실이 더 큰 감동이 있고, 여운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사람 사이에 보이지 않는 연결이 강력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들의 외침

파인텍 고공농성을 알게 되고 크라우드 펀딩을 기획하면서 보낸 6개월여의 시간 동안 변한 건 자기 스스로였다고 말한다.

정소은 씨는 약간 오지랖이 있는 사람이지만, 낯가림도 심하고 어떤 이슈가 있어도 적극적으로 표현하거나 행동으로 연결시키지 않는 평균치에 속하는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설명한다. 펀딩을 통해 “‘각자 저마다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구나’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농성장에서 본 조합원들은 내성적이고 알려지는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 그들이 노동운동 한 복판에 서 계신다. 뭔가 특별한 DNA를 가지고 있을 것 같았는데, 저마다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전략이 있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스스로를 과소평가하지 말고 무기력하게 생각하거나 누군가 따로 해 줄 거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김PD는 작년 여러 투쟁의 현장 속에 아무것도 하지 못한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이 많이 들었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펀딩을 기획하면서 마음 속 변화가 있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만들지 않는다’라는 말을 굉장히 좋아한다. 희망을 볼 수 있게 된 것 같다. 투쟁에 연대함으로써 당당하고 끝까지 할 수 있는 강한 사람들이 있다는 걸 옆에서 보면서 많이 배운 것 같다”고 말했다.

노동운동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고 했다. 멀게만 느껴지는 노동문제를 대중들이 쉽게 다가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정소은 씨는 “농성장을 찾아가기 전 공부를 하면서 복잡하고 어려운 내용 때문에 매번 좌절감에 빠졌다. 이런 점이 평범한 사람들과 노동운동의 거리를 멀게 만든 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면서 “핸드북을 만들면서 모든 내용이 들어갈 필요는 없다고 깨달았다. 어떤 정보를 요즘 사람들 호흡에 잘 도달하게끔 정보를 잘 정리하는 센스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PD는 사건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 집중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짚었다.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다면 그들이 겪고 있는 억울함을 더 적극적으로 호소해 응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핸드북 자료를 만들면서 “파인텍 조합원들의 여행 사진, 돈을 아끼기 위해 서로 이발해주는 사진을 보면서 마음이 이상했다. 이런 스토리텔링이 중요한 것 같다”며 그들이 우리랑 다르지 않다는 걸 알리는 게 필요하다고 밝혔다.

본격적인 시작을 앞두고

10일 만에 목표금액을 달성해 크라우드 펀딩이 성공했다. 하지만,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것이 이들의 설명이다. 모금된 금액으로 상품 제작에 들어가고 손편지를 올려 보내기 위한 예열시간에 들어간다. 계속 편지를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본격적인 캠페인 활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손편지를 써서 농성자들에게 보낼 수 있는 우체통은 대학로 이음책방, 망원시장 내 카페M 등에 설치되며 고공농성에 대한 소책자와 소식지 등이 같이 비치된다.

정소은 씨는 또 다른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된다면 “이슈에 따라 거기에 맞는 방법론을 떠올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크라우드 펀딩은 굴뚝 농성을 알리는 채널 중 하나였다”고 말했다.

김PD는 인터뷰를 마무리하며 “저마다 자신을 울리는 자기만의 현장이 있다고 생각한다. 마음이 움직인다면 그 곳에 찾아가 작은 거라도 해 보면 좋겠다. 우리 모두가 실패할 수 있더라도 같이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다는 믿음, 마음 속 강한 힘을 길렀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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