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성과연봉제 두고 평행선 달리는 노정
공직사회 성과연봉제 두고 평행선 달리는 노정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8.16 10:50
  • 수정 2018.08.16 10:5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직사회 성과연봉제 두고 평행선 달리는 노정

[리포트] 공무원 성과연봉제

지난 박근혜 정부는 공공부문 개혁을 위한 핵심과제로 ‘성과연봉제’를 전면에 내세웠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은 평가 기준의 객관성과 공정성, 업무의 공공성 저해 등을 우려하며 거세게 반대했다.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지난해 6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는 1년 만에 사실상 폐기됐다. 기획재정부가 성과연봉제 도입을 유도하고자 뒀던 가점과 페널티를 없애고, 기관마다 자율적으로 제도의 도입 여부와 시기를 정하도록 입장을 바꾼 것이다. 당시 정부는 공공부문 성과주의를 전면 재검토할 뜻을 함께 밝혔다. 그러나 공공부문의 또 다른 큰 한 축인 공무원 조직에 대한 성과주의 폐지에 대한 논의는 여전히 제자리걸음이다.

IMF 이후 성과주의 본격화

한국사회에서 성과주의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1990년대 초 민간을 중심으로 시작됐다.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계기로 성과주의 인사시스템이 국제표준으로 여겨지면서 기업들이 앞다퉈 도입했다. 이 시기 정리해고제 시행과 함께 노동자들에게 평생직장이라는 개념이 사라졌는데, 기업들은 고용의 유연화를 가져가면서도 노동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기 위해 성과주의를 본격적으로 활용했다.

공무원 조직도 예외는 아니었다. 경쟁을 통해 가장 효율적인 결과를 낸다는 시장주의 원리가 공공부문에도 적용됐다. 일명 신공공관리론(New Public Management Theory, NPM)이다. 즉, 공직사회의 전통적 관료제 한계를 극복하고 행정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성과중심의 보수체계 등 민간영역의 경영기법을 도입해야한다는 것이 NPM이론의 핵심이다.

한국 공직사회에 처음 도입된 성과주의제도는 ‘특별상여수당’으로, 1995년 행정부 소속 4급 이하 공무원을 대상으로 시행됐다. 이 제도는 업무평가를 통해 상위 10% 이내 해당하는 공무원에게 월 기본급의 100%~50%에 해당하는 특별수당을 연 1회 지급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대상 공무원이 10% 수준에 머물러 그 효과가 크지 않았다.

IMF를 거치면서 국민의 정부는 공직사회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성과주의 제도를 100대 개혁과제 중 하나로 선정했다. 기존의 연공서열에 기반한 보수제도가 개인의 능력과 실적, 공헌도 등을 고려하지 않고, 동기부여라는 측면에서도 부족하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해 이를 개선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이로써 1999년 1월부터 국장급 이상 공무원에 대한 연봉제와, 과장급 이하 공무원에 대한 성과상여금제도가 본격적으로 적용됐다. 이때 연봉제는 크게 기본연봉과 전년도 업무 실적 평가 결과를 반영한 성과연봉으로 구성됐다.

이후 이 같은 공직사회의 성과주의제도는 지급대상을 확대하는 동시에, 가장 큰 부작용으로 제기된 공무원들 간의 협업 저해를 막기 위해 부서별 지급 방식, 다면평가 등을 반영했다. 현재 공무원들에게는 정무직공무원, 고위공무원단(과장급 이상 외무공무원), 5급 이상 과장급 공무원 등 대상에 따라 각각 고정급적연봉제, 직무성과급적연봉제, 성과(급적)연봉제가 적용되고 있다. 고정급적연봉제는 대상자의 직위에 따라 고정 연봉액을 지급하는 것이고, 직무성과급적연봉제는 기준급과 직무급으로 구성되는 기본연봉에 성과급 비중이 성과연봉제보다 높다. 성과연봉제는 기본연봉과 성과연봉으로 구성되는데, 성과연봉은 전년도 업무 실적에 따라 개인별로 차등 지급한다.

성과주의 확대 제동 건 노조들

박근혜 정부는 공직사회의 성과연봉제를 2017년까지 5급 전체로 확대한다는 계획을 밝히고 추진했다. 2015년 인사혁신처가 발표했던 ‘능력과 성과 중심의 인사관리 강화 방안’에는 “성과와 능력에 따라 우수한 공무원은 획기적으로 대우하고, 미흡한 공무원은 그에 상응하는 관리를 받도록 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이 같은 내용의 법률적 근거를 정비하기 위해 정부는 다음해 국회에 ‘국가공무원법 일부 개정법률안’을 제출했다. 개정안에는 성과연봉제와 관련한 직무성과평가 결과에 따라 역량이 부족하거나 성과가 매우 나쁜 공무원을 직위해제할 경우의 심사절차를 마련하고 있다. 그러나 공무원 노조들의 대대적인 집회와 농성 끝에 19대 국회에서 상정되지 못했다.

공무원 노조들은 박근혜 정부의 성과주의 확대 방침이 ‘성과(에 따른) 퇴출제’로 이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또 성과연봉제를 확대와 관련해 평가 기준과 방법 등에 대해 공무원들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정책을 밀어붙이기 식으로 추진하는 것에 대해서 강하게 비판했다.

현재 성과상여금은 성과연봉제 적용대상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공무원에게 적용되고 있다. 이로써 현재 정무직을 제외한 공무원 모두가 성과제의 적용받고 있는 셈이다. 공무원 노조들은 공직사회 성과제를 박근혜 정부의 적폐로 규정하고, 제도의 전면 폐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연대 투쟁을 벌여왔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이 드러나면서 촛불 시민들이 정권교체를 이뤄냈지만, 공직사회의 성과주의 제도에 대한 정부의 전향적인 태도 변화는 없는 실정이다. 지난해 말 대한민국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이 세종시 인사혁신처 앞에서 성과연봉제 폐지를 촉구하며 두 달 넘게 농성한 끝에 올 초 ‘공무원 성과·보수제도 논의기구 협의회(이하 협의회)’를 구성했다. 공직사회 개혁을 위한 승진제도와 성과보상체계, 인사제도 전반에 관한 내용을 다룰 협의회에는 공무원 노조 측 7명과 정부 측 6명, 전문가 4명이 참여하고 있다.

성과제도 협의회 구성에도 팽팽한 “폐지 VS 개선”

그러나 지난달 말까지 격주로 10여 차례 논의를 진행했음에도 불구하고 ‘폐지’와 ‘개선’으로 노정의 입장 차이가 갈리면서 논의는 공회전하고 있다. 정부는 지급격차를 최소화하는 등 제도의 개선을, 노조는 4급과 5급으로 확대 적용된 성과연봉제 우선 폐기 후 단계적으로 성과상여금제도 등 성과주의 제도 자체를 모두 없애야 한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협의회에서는 3월~5월까지 노사공동으로 여론을 수렴하고 6월까지 논의를 마무리 짓는 방향으로 나아가기로 했지만, 벌써 예정했던 기한을 한 달이나 넘긴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협의회는 최종합의점을 도출하기 전까지 구체적인 논의 내용을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공무원들의 임금은 국민의 세금이 직접적으로 투입되는 대표적인 영역으로, 협의회 논의 과정에서 확정되지 않은 내용이 알려질 경우 불필요하게 발생할 수 있는 여론의 동요를 최소화하기 위함이라는 것이 협의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협의회 노측 대표자로 참여 중인 안정섭 국가공무원노동조합 위원장은 “성과제 자체가 공직사회에 맞지 않다”며 “공직사회에 성과제를 적용하는 것은 경찰에겐 범칙금을 얼마나 많이 끊는지, 우정사업본부는 직원들이 보험 할당량을 얼마나 많이 채우는지, 국책연구기관들의 연구원들이 연구의 질보다 논문 수를 얼마나 많이 채우는지 등에 집중하게 만든다. 이것이 정녕 공직사회를 개혁하고 국민들을 위한 제도인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4급과 5급으로 확대 적용된 성과연봉제의 폐지를 시작으로 성과상여금도 단계적으로 폐지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한국 공직사회에 성과주의 제도를 도입한지 20년 가까이 돼가지만 ‘그 효과가 공직사회의 성과를 높이는 개혁으로 이어졌는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인식이 많다. 이에 대해 연구자들은 민간 기업에서 하는 사업과 공무원들이 하는 공적 업무의 근본적인 차이를 짚는다. 공공정책을 통해 제공하는 공공서비스는 빈곤과 사회적 배제, 차별, 바른 교육, 자주적 시민의식, 풀뿌리 민주주의, 마을공동체, 지역의 역사성, 생태환경, 기후변화 등 숫자로 가늠하기 어려운 내용일 뿐만 아니라, 1년이라는 단기간만으로 그 성과를 평가를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득보다 실이 많다면 “폐지가 답”

이는 전국공무원노동조합이 작년 초, 5급 전체로 성과연봉제의 확대를 앞두고 5급 이상 공무원 1,500여 명의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그대로 확인된다. 설문에 참여한 10명 중 8명의 공무원이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했다. 앞서 실시한 성과연봉제가 공직사회에 끼친 영향으로 ‘평가의 주관성으로 불신과 갈등 증폭(53%)’ ‘장기적 조직발전 저해(24%)’ ‘협업체계 붕괴(16%)’ 등을 꼽았다. 또한 성과연봉제 도입이 공직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해 80%가 ‘성과 향상에 영향이 없다’며 부정적으로 답했다.

특히 안정섭 국공노 위원장은 “성과상여금과 성과연봉제의 차이를 분명히 구분해야한다”며 “성과연봉제의 핵심은 성과가산금이다. 성과상여금은 평가를 한번 낮게 받으면 그것으로 끝이지만, 성과연봉제는 한번 잘못 받으면 평생임금에 영향을 미친다.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의 임금은 계속 상승하지만, 나쁜 평가를 받는 사람의 임금은 계속 줄어들어 나중에 이 격차는 상당해 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울러 이 같은 성과연봉제는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상급자의 눈치를 보거나 좋은 평가를 보기 위해 줄서기가 만연해지는 부작용이 더 크게 나타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제도는 5급 이상에게 해당되지만 성과를 우선하는 상급자의 업무 처리는 고스란히 아래 직급의 공무원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덧붙였다.

이와 관련해 최상한 경상대 행정학과 교수도 언론 기고문에서 “성과급여제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공공관리 개혁 프로그램의 장기적인 관심사로 떠오르면서 OECD 회원국의 3분의 2 이상이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성과급제도는 동기부여를 위해 성과가 뛰어난 공무원이나 팀 단위 부서에 인센티브인 성과급을 상여금 형태로 지급하는 방식이지 인사혁신처처럼 성과급을 다음 연도 연봉에까지 누적시키면서 연봉의 차이가 나게 하는 방식은 아니다”라며 “성과연봉제보다 경쟁이 치열하지 않은 성과급제도의 경우 민간부문에서 동기부여에 효과가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오고 있지만, 공공부문의 성과급제도는 동기부여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결과가 지속적으로 보고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현실에서 공무원들은 여전히 무사안일주의의 대명사로 여겨지며 공직사회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많다는 지적에 대해 안 위원장은 “공무원에 대한 국민들의 부정적인 인식은 그동안 다양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지난 박근혜 정부에서 공무원연금을 개혁한다는 미명하에 공무원과 국민의 대립구도를 만든 것이 크다”며 “공무원들이 성과연봉제를 폐지하려고 하는 것은 사적이익 보다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국민을 위한 공무원이 되기 위함”이라고 강조했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원은 2016년 9월 발표한 110여 쪽에 달하는 공직사회 성과급제에 대한 이슈리포트에서 금전적 보상의 성과주의 한계를 분석했다. 그 결과는 자동차판매원과 같이 단일 지표인 판매 수로 모든 성과를 말할 수 있는, 목표가 단순하고 협력이 크게 요구되지 않는 직종을 제외하고는 성과주의의 효과는 거의 없고 오히려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인간 불신에 근거해 개인적인 사적이익을 자극하는 성과급제는 공직사회에서 구성원들의 내적동기를 잃게 하고, 장기적인 발전보다 단기적인 지표에 집중하게 만들며 협업 붕괴, 줄서기와 눈치 보기, 공직가치와의 충돌 등의 부작용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OECD는 공공부문의 혁신과제와 실천방안 수립과 관련해 “우선 사람에 집중하라”고 조언하면서 ‘직원 몰입도’에 대해 언급했다. 직원의 몰입도를 높이는 방법 중 주목할 만한 대목은 존중 모델이다. 사람은 존중받을 때 조직의 목표달성을 위해 업무에 더욱 몰입하고 성실하게 일한다는 것이 골자다.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는 “공직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선 공무원의 외재적 동기부여방식 대신 내재적 동기부여가 되는 조건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며 “개인의 자율성을 확대하고 열심히 일한 직원에 대한 노고를 돈이 아닌, 더 값진 ‘인정’으로 보상하기 위해 소통을 통한 코칭을 더 강화해야한다”고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