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만 공무원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
이름만 공무원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8.16 10:56
  • 수정 2018.08.16 17:09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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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직사회 상시지속업무도 정규직 채용 원칙 세워야

[리포트] 비정규직 공무원

공무원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철밥통’이다. 적정 임금과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의 복지, 정년까지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된다는 인식 때문이다. 그러나 공무원들이 모두 정규직인 것은 아니다. 공직사회에도 비정규직과 다름없는 공무원들이 있다.

최대 5년 계약직 시간제 공무원?

공무원은 국가와 지방의 공공 사무를 수행한다. 보편적으로 일반 공무원이라고 하면 하루 8시간, 주 40시간을 일하며 정년을 보장받는다. 공무의 범위에 따라 국가공무원과 지방공무원으로 나뉘는데, 업무의 특성과 방법에 따라 다양한 직렬이 있다.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은 통상적인 공무원과 다르다. 말 그대로 ‘시간선택제공무원’과 ‘임기제공무원’의 성격이 겹치는 유형의 공무원이다. 시간선택제는 하루 3시간 이상‧주당 최대 30시간을 일하는 공무원을, 임기제는 임무를 맡는 기간을 정한 공무원을 뜻한다. 시간선택제임기제는 시간제로 일한다는 점에서 시간선택제‘채용’공무원, 시간선택제‘전환’공무원과 같지만,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다는 점에선 다르다.

시간선택제임기제의 출발점은 1974년 시작된 계약직공무원이다. 당시 계약직공무원들은 일반공무원들이 담당하기 힘든 전문성이 필요한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채용됐다. 조사와 연구, 시험, 검사, 제조, 의료 및 특수설비의 관리와 조작 등이 그 예다. 애초에 이들의 계약기간은 3년이었지만, 계약 재연장을 통해 계속 일할 수 있었다. 2004년 계약기간이 5년으로 제한됐고, 2013년에는 명칭이 ‘계약직’공무원에서 ‘임기제’공무원으로 변경됐다. 2002년에는 육아휴직 대상자들을 위해 시간제공무원이 도입됐고, 이후 이를 확대 적용하는 과정에서 2013년 지방공무원임용령 개정에 따라 최종 ‘시간선택제임기제’로 이름이 바꿔 자리를 잡았다.

공직사회의 복잡한 공무원 유형에서 벗어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을 한마디로 설명하면 “시간제로 일하는 정년이 보장되지 않는 계약직 공무원”이다. 우리는 흔히 일자리의 속성에 대해 상용직과 계약직, 전일제와 임시직을 대비해 단기간 노동과 시간제 노동을 상대적으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긴다. 필연적으로 고용불안과 저임금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시간선택제임기제는 비정규직이라고 표현하는 나쁜 일자리의 속성을 모두 담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왜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을 뽑아왔을까. 행정안전부는 2014년 인사운영 매뉴얼에서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에 대해 “한시적인 사업 수행 또는 (일반공무원에서) 시간선택제 전환자의 업무 대체를 위해 일시적으로 채용되는 공무원”이라며 “1일 최소 3시간 이상, 주당 15~35시간 근무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은 5년의 범위 내에서 해당 사업을 수행하기 위해 필요한 기간 동안 근무토록 하는데, 사업이 지속되거나 부득이한 경우 최장 5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비정규직 회피 위한 꼼수 지적 잇따라

공무원은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한다. 공무의 특성에 따라 효율적이고 유연한 업무형태를 두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제도가 애초의 취지와 다르게 활용되고 있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공공부문의 일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자리라는 차원을 넘어선다. 공무원의 일은 궁극적으로 국민들에게 제공되는 공공서비스의 질로 연결되고, 정부 고용정책이 가장 직접적으로 나타나는 영역이라는 점에서 민간의 고용과 일자리에도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시간선택제임기제가 현실에서 그 취지대로 잘 운영되고 있는지 살펴보기 위해 기자가 직접 만나거나 통화한 ▲사회적경제 관련 행정직 A씨 ▲주차단속원 B씨 ▲수도검침원 C씨는 하나같이 “시간선택제임기제 폐지”를 주장했다. 실제로 이들이 하는 일은 ‘상시적으로 지속되는 일’이어서 정부가 전일제 공무원을 뽑는 것이 오히려 더 적확해보였다.

A씨는 모 시청 사회적경제 분야를 담당하는 팀에서 행정직으로 일하고 있다. A씨가 소속된 팀이 하는 업무는 해당 시청이 처음에는 위탁을 줬던 업무다. 그러나 사회적경제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전문성을 키우며 관련 사업을 지속하기 위해 시는 사업 전부를 직영으로 전환했다. A씨는 “이로써 사업의 지속성이 분명해졌지만 고용 형태의 문제에 대해 관리자에게 물어불 수 없었다”며 “계약 연장을 염두에 둬야하는 우리는 11개월 기간제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A씨 있는 시청에서는 시간제임기지공무원을 2년, 2년, 1년 단위로 재계약하는 것이 공식화돼 있었다.

모 시청에서 주차단속업무를 하고 있는 B씨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B씨는 같은 과에서 똑같은 업무를 9년째 하고 있다. 최장 계약이 가능한 5년을 넘긴 후에는 신규 계약을 맺어야 했다. 5년 동안 일하면서 경력에 따라 성과급이라는 이름으로 조금씩 반영돼 기본급이 125만 원까지 올랐었는데, 채용시험과 면접 등을 통해 신규 채용되면서 기본급은 다시 95만 원 떨어졌다. 똑같은 일을 하는 B씨가 왜 갑자기 약 30만 원 가량이 깎인 임금을 받아야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B씨는 주 29시간 일한다. 아침·오후·저녁 세타임으로 나뉘는 근무시간은 한 달을 주기로 바뀐다. 근무시간 배정에 따라 어떤 달은 내내 오후 6시부터 일하는 경우도 있지만, 야간 수당은 없다. 근무시간에 상관없이 늘 주말근무를 하지만 휴일수당도 없다. 연봉제 계약을 맺기 때문이다. B씨는 현재 32명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동료들과 함께 일하고 있다.

과거 주차단속 업무는 공무원들이 하던 일이다. 지금은 없어진 기능직공무원들이 맡았었다. B씨는 “불법 주차 차량에 과태료를 부과하는 일은 공무원들이 꺼리는 소위 말하는 ‘기피업무’”라며 “기능직이 일반직으로 전환되면서 주차단속은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들이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행법상 단속 업무는 공무원만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기간을 정한 시간제 공무원을 고용함으로써 비용을 절감하고, 나쁜 일자리인 비정규직 채용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려는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주차단속 업무는 B씨가 일하고 있는 시청 외 많은 곳에서도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을 채용해 수행하는 대표적인 업무로 꼽힌다.

수도검침을 하는 C씨는 시간제임기제공무원을 “명칭만 공무원”이라며 “기간제로 들어와 공무직(무기계약직)이 된 사람들보다 더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고 말했다. “처음 들어올 때는 계약서상 수도검침 할당량을 정했지만 명분일 뿐이었다”며 “일반공무원과 공무직(무기계약직)에 비해 낮은 임금을 주려고 적은 시간 일하게 하지만, 실제로는 주 40시간 일하는 이들보다 더 많은 검침 전 수를 하면서, 더 적은 임금을 받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요금 부과와 이어지는 수도검침 업무는 검침원이 자주 바뀌면 민원 발생도 더 많을 수밖에 없어, 지속 고용이 필요한 공적 업무라고 강조했다.

현재 C씨가 속해 있는 시의 수도과 인원은 30명이다. 이중 일반공무원 9명, 공무직 16명, 시간선택제임기제 5명, 공무원 병가 가에 따른 단기기간제근로자 1명 함께 일하고 있다. C씨는 “업무의 난이도 차이가 다소 있지만, 사람마다 느끼는 바가 다르다”며 “터줏대감으로 같은 지역을 오래 맡은 이들은 상대적으로 일이 쉽고, 시간선택제공무원들의 경우 계속 새로운 업무를 맡아야 하는 상황이지만 고용이 안정적이지 못해 어떤 의견도 낼 수 없다”며 동일한 일을 하면서도 입직경로의 차이를 이유로 공직사회에서 노동자들이 임금·수당과 업무, 복지 등에서 차별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직사회 상시지속업무 “단시간 채용 안 돼”

“시간임기제공무원제도는 일반직공무원제도의 근간을 흔드는 잘못된 제도이다” 남우근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정책위원도 지자체들이 비정규직 문제를 회피하고, 저임금노동을 활용하는 수단으로 제도를 악용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시간선택제임기제는 일반직공무원이 시간선택제로 전환할 경우 대체인력으로 선발하거나 업무의 특성상 필요에 따라 채용해야하지만, 실제로 시간선택제전환 공무원이 없거나 상시지속적 업무에 반복적으로 교체해 뽑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은 매년 증가 추세다. 2016년 기준 국가직공무원은 43명, 지방직공무원은 6,320명이었다. 특히 지방직은 전년에 비해 923명(17.1%)이 늘어났는데, 2015년에는 그 전 해보다 1,142명(26.8%)이 더 증원됐다.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수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시였다. 서울시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규모는 2,569명으로 전체의 41% 비중을 차지했다. 2016년 기준 서울시에는 838명 채용돼 있었고, 서울시와 산하 자치구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인원 현황 자료에 따르면 매년 700~800명이 신규로 채용됐다. 노동존중시를 표방하며 정부의 노동정책을 선도하는 대표적인 지자체로 꼽혀왔다는 점에서 서울시의 시간선택제임기제 채용 규모는 역설적이다.

지자체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들은 안전담당관, 주차관리과, 건강증진과 등을 중심으로 다양한 부서에 소속돼 있다. 앞서 언급한 3명의 경우 외에도 숙련된 전문인력이 필요한 구청 일자리센터 산하 일자리상담사와 보건소 방문건강인력 등도 불필요하게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들로 채용하고 있는 것으로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남우근 정책위원은 “지자체의 경우 기간제노동자를 2년 사용한 후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하지 않기 위해 시간선택제임기제로 전환하는 경우도 발생하고 있다”며 “이들은 무기계약직보다 인건비도 낮고, 1년 단위 갱신심사를 하는 과정에서 고용을 조정하기도 쉽다. 또한 명목상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노동3권도 제한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이하 기간제법)이 규정대로 적용된다면 행정기관의 시간선택제공무원들은 이미 임기제여선 안 된다고 짚었다. 현행 기간제법 제4조에서는 “사용자는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 근로계약의 반복갱신 등의 경우에는 그 계속 근로한 총 기간이 2년을 초과하지 아니하는 범위 안에서) 기간제근로자를 사용할 수 있다”며 “2년을 초과해 기간제근로를 사용하는 경우에는 그 기간제근로자는 기간의 정함이 없는 근로계약을 체결한 근로자로 본다”고 정하고 있다.

이는 문재인 정부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제로화를 목표로 내걸고, 정규직 전환의 제1원칙으로 제시한 기준과도 맞닿는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대적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을 추진하면서 “연중 9개월 이상 계속되고, 향후 2년 이상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일”을 상시지속적 업무로 정의한 바 있다. 그러나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들은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전환자인지 논의의 대상에서조차 포함되지 못했다.

일자리 나눔 명분으로 양산하는 질 낮은 일자리

남우근 정책위원은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은 명백하게 공무원 조직 내의 비정규직”이라며 “공직사회의 정원 제약으로 인해 일반직공무원 증원이 어렵기 때문에 시간선택제임기제가 양산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공무원 신분인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은 행정기관의 기준인건비제도 대상에는 포함되지만, 정원 관리 대상 인력은 아니다. 이는 장의 판단에 따라 운용할 예산이 허락하는 한 인원수의 제한 없이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의 채용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최영주 행정안전부 지방인사제도과 사무관은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 정원의 상한선은 따로 정하고 있지 않다”며 “예산의 범위 내에서 통상적으로 짧은 기간에 근무를 하는 공무원을 임용할 수 있도록 지자체에 자율성을 주고 있다”고 말했다. 제도가 취지와 달리 악용되고 있다는 지적에 대해선 “해당 제도는 ‘일자리 나누기 차원’에서 처음 도입됐다. 현실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적합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사례가 나온 것 같다”며 “제도에 적합한 업무를 발굴하도록 각 기관에 계속 권고하며 노력하고 있다. 제도 폐지는 논의하고 있지 않다”고 답했다.

사실상 비정규직 공무원인 시간선택제임기제 공무원들의 현실은 당사자들이 적극적으로 문제를 제기할 수 없는 상황 때문에 사회적으로 알려지지 못했다. 임미영 전국공무원노동조합 서울본부 조직2국장은 “계약을 맺으면서 업무 방식에 이미 동의했고, 입직경로가 다르다는 이유로 시간선택제임기제공무원들이 처한 부당한 상황이 정당화되고 있다”며 “낮은 임금과 고용불안, 각종 차별에 시달리고 있는 비정규직 공무원들에 대한 사회적 공론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