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연대노조 “사업장 담 넘어 지역과 함께!”
희망연대노조 “사업장 담 넘어 지역과 함께!”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9.06 18:02
  • 수정 2018.09.07 11:5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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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불어 사는 삶, 아래로 향하는 운동

[커버스토리-노동조합과 사회연대] 노조와 지역사회의 연대

‘더불어 사는 희망연대노동조합(이하 희망연대노조)’이라는 이름 안에 노조가 지향하는 가치가 모두 담겨 있다. 지난 2009년 지역사회운동노조를 내세운 노조활동가들이 중심이 돼 민주노총 서울지역본부에 지역일반노조인 희망연대노조를 만들었다.

“지역사회와 연대하고 나누는 활동은 노조가 지금까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이다.”

노조 설립 10년차, 지난달 9일 서울 광진구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윤진영 희망연대노조 교선국장은 여전히 확신에 차있었고, 그의 말은 명료했다. 2012년 노조 활동을 시작한 윤 교선국장은 희망연대노조 전 위원장이기도 하다.

지역사회에 뿌리 내린 노조

희망연대노조에는 다른 노조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국(局)이 있다. 노조가 지향하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만든 지역연대국, 나눔연대국, 생활문화연대국, 행복한삶국, 더불어삶국 등이 그것인데, 마치 시민사회단체 안에 존재하는 조직들 같다. 담당하는 영역을 나눠뒀지만 실제로 각 사업들은 모두 이어진다.

희망연대노조는 사업장 안에서 조합원들이 겪는 문제 못지않게 삶 속 조합원들의 일상에 관심을 많이 둔다. 궁극적으로 조합원들의 행복한 삶에 대해 고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일터에서 조합원들이 노동자의 권리와 평등을 보장받기 위해 아무리 열심히 투쟁을 해도, 일상생활로 돌아가 사교육 열풍과 재테크, 자본의 경쟁논리 등에 휘둘린다면 진정 행복한 삶을 산다고 할 순 없다고 지적했다.

조합원들의 삶을 바꾸기 위한 답을 희망연대노조는 지역에서 찾았다. 자본에 매몰된 조합원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조합원들이 지역에서 일상적으로 관계를 맺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작은 것부터 바꿔내려는 실천이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노조에서 이를 시도할 방법이 바로 사회연대사업이었다.

희망연대노조는 아동청소년 사업으로 사회연대공헌사업을 처음 시작했다. 노조가 아동사업에 주목한 이유는 조합원 대부분이 자녀를 키우는 부모들이었고, 아이들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만큼 지역사회 공통의 노력이 필요한 일이 없다고 봤기 때문이다. 노조는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는 지역 아동과 청소년들을 위한 지원 사업을 추진하면서 지역과 다양하게 만났다. 위기 아동의 심리상담 지원으로 물꼬를 튼 사업은 아이들의 먹는 음식에 대해 고민에서 과일나눔사업으로, 아이들이 살고 있는 환경에 대한 관심에서 집수리 사업으로 점차 확대됐다.

사회공헌기금서 사단법인 희망씨까지

희망연대노조가 지금까지 꾸준히 사회연대사업을 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것이 옳은 길이라는 구성원들의 믿음뿐만 아니라, 노사사회공헌기금이 있었다. 2011년 씨앤엠지부(현 딜라이브지부)가 임단협 요구안으로 사회공헌기금 출연을 요청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씨앤앰지부는 기금 조성을 요청한 해 1억 5천만 원을 확보했고, ‘회사는 노조가 지정하는 곳에 재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을 구체적으로 담았다. 그 다음 해 기금은 3억 원으로 늘었다. 이외에도 이후 노조는 하루주점을 여는 등 사회연대사업 기금 확보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왔다.

이후 희망연대노조는 노사 사회공헌기금의 한계를 극복하고, 보다 주체적으로 지역사회와 변화를 만들어내는 연대를 하기 위해 ‘더불어 사는 삶 사단법인 희망씨(이하 희망씨)’를 만들었다. 2013년 조합원 총회를 통해 관련 내용을 의결했지만, 누구도 사단법인 설립과 운영의 경험을 해보지 못한 상황에서 일의 추진은 쉽지 않았다. 다행스러운 건 과정이 어려워질수록, 지역주민과 노동자가 주체가 돼 나눔과 연대를 실천하는 법인을 만들자는 명제는 명확해졌다는 것이다. 희망연대노조는 그 해 11월 내부적으로 희망씨의 설립총회를 열었고, 이듬해 2월 서울시로부터 최종 인가를 받았다.

희망씨의 목적은 ‘아동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을 위해 지역사회에서 노동자 중심의 나눔문화를 확산하고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는 생활문화 운동을 전개하는 것’이다. 희망씨 사업은 크게 나눔사업, 소통사업, 인권 사업으로 나뉜다. 이중 지역과 연대하는 대표적인 사업은 조합원들이 지역사회와 함께 진행하는 ‘과일나눔’, ‘희망의 집수리’, ‘레인보우 힐링, 어깨동무 캠프’, ‘취약계층 아동청소년 지원사업(희망울타리)’ 등이다.

희망연대노조 조합원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이 함께 만든 희망씨는 회원들의 회비로 기본적인 운영을 한다. 아우러 딜라이브지부의 사회공헌기금 일부를 특정 사업에 사용한다. 현재 희망씨 회원은 약 600명인데, 이중 조합원과 비조합원의 비율은 6:4 정도이다.

노동자가 지역과 만나는 다양한 방법

용산의 동자동 사랑방과 안양의 인생나자작업장은 희망연대노조가 과일나눔 사업을 하는 곳이다. 용산 사랑방 활동에 참여하는 조합원들은 자율적으로 점심식사를 제공하는 공동체 ‘식도락’과 함께 매월 둘째 넷째 주 금요일 점심시간에 배식과 과일 나눔을 한다. 반면 안양 인상나자작업장에서는 조합원들이 중심이 되는데, 5월에서 10월 약 6개월간 셋째 주 금요일 오후 8시부터 밤 10시까지 청소년들을 만나 과일을 전달한다.

김호규 희망씨 노동인권사업국장은 “과일나눔 사업은 큰 규모의 사업은 아니다”며 “소수의 조합원이 참여하는데, 한 번 경험하면 이후에도 꾸준히 활동하는 편”이라고 말했다. 과일나눔을 위한 과일은 희망씨 회원들의 일상 활동 중 하나인 저금통모으기를 통해 확보한 기금 일부로 구매한다. 지난해에는 약 295만 원이 저금통모으기로 모였다.

희망씨는 강동, 강서지역에서 다양한 지역단체와 집수리 사업도 이어오고 있다. 지역의 시민사회단체가 구청 또는 보건소와 연계해 도움이 필요한 지원 대상을 선정하면, 조합원들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과 봉사활동 나온 학생들과 함께 현장으로 나간다. 집 수리라고 하지만 아주 거창한 작업은 아니다. 화장실과 부엌 등에 새 칠을 하거나 창문 교체, 가구 배치, 도배 등이 주이다. 케이블을 연결하고 해체하는 작업을 일상적으로 하는 케이블방송업계 노동자들인 조합원들은 항상 필요한 공구들을 가지고 다니며, 가장 기본이 되는 전선 정리에 있어서 실력을 드러낸다.

4년 넘게 집수리 활동을 해온 구상두 딜라이브지부 조합원은 “주 5일제 근무가 정착돼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하는 집수리 활동에 꾸준히 참여하고 있다”며 “사실 어떻게 보면 저도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다. 넉넉하진 않지만 서로 돕는다는 것 자체가 참 좋은 것 같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활동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에 대해 묻자 “지원 대상자들은 장애가 있거나, 생계를 이어가기 힘든 상황에 처해 있는 분들인 경우가 많다. 그런데 집을 조금만 손봐도 ‘아 새집 됐다!’고 하면서 굉장히 기뻐하시는 분들이 있다”며 “또 날씨가 더운 여름에는 작업을 하기가 어려운데, 일하는 사람들에게 뭐라도 챙겨주려고 음료를 내오거나 수박을 썰어주고, 국수를 해주신 경우도 있다. 도움을 받는 그분들도 하실 수 있는 만큼 베풀어주시는 것”이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공동체가 약해지고, 사람들 간의 교류가 잦아들어 고독사와 같은 단절이 사회문제가 되는 지금 사회 구성원들이 서로 관심과 도움을 주고 받는 활동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밝혔다.

김은선 희망씨 상임이사는 희망연대노조의 의미 있는 사회연대사업으로 ‘레인보우 힐링, 어깨동무 캠프(이하 레인보우캠프)’를 꼽았다. 레인보우캠프는 남양주에서 5년 째 진행 중인데, 발달장애인 가족과 다문화 가족, 조합원 가족 등 각자의 특성이 있는 세 단위 가족들이 참여해 1박2일 일정을 같이하는 활동이다. 처음 만난 가족들은 굉장히 어색해하지만, 짧지만 길기도 한 시간을 동고동락하면서 서로를 알게 되고 아픔을 나누며 가까워진다.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위로하며, 격려한다. 캠프를 통해 함께 스트레스를 풀어내면서 각자가 겪고 있는 어려움을 견뎌낼 힘도 얻는다.

레인보우캠프 사업 주체단체는 희망씨와 새누리장애인부모연대, 그리고 남양주 외국인복지센터 세 곳이다. 백진우 남양주 외국인복지센터 팀장은 캠프를 시작단계부터 줄곧 관련 업무를 맡아왔다. 백 팀장은 “한국으로 온 외국인들은 여럿이 어울리는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회 구성원들과 연결되고자 바라는 부분이 있는 것”이라며 “레인보우캠프가 일반적인 다른 가족캠프와 다른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통합’으로 나아가는 캠프라는 점에서 다르다고 답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외국인 가정이 레인보우캠프를 통해 한국 사람이지만 장애 또는 비정규직으로 인해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힘든 상황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생각한다. 캠프가 끝날 무렵 마지막 인사를 할 때 가족들은 서로를 안아주면서 눈물을 쏟기도 하고, 그 인연은 캠프 후의 관계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백진우 팀장은 떨어져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들을 연결하는 다리가 된 희망연대노조의 역할도 강조했다. “희망연대노조는 기금을 단순히 주고 끝내지 않는다. 지역사회의 단체들이 연대를 강화하고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새누리장애인부모연대와도 레인보우캠프 이전에는 알지 못했다”며 “또한 지원하는 기금 자체도 비정규직 노조들이 힘겹게 투쟁해서 어렵게 확보한 것들이다. 귀하지 않은 기금이 어디 있겠느냐 만은, 희망연대노조의 기금이 들어오는 사업을 할 때는 정말 허투루 쓰지 않기 위해 몇 배로 신경쓰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터닝포인트 맞은 희망연대노조의 고민

노조가 지역과 연대하는 사업을 뜻을 가지고 지속해온 결과 구축한 네트워크는 일상에선 서로 돕는 공동체가, 노조가 투쟁국면에 접어들었을 땐 든든한 지원군이 됐다. 실제로 지난 2014년 희망연대노조의 케이블방송 3개 지부가 파업을 하고, 비정규직 노동자들 대량해고 위기에 내몰린 투쟁국면에서 지연 연대 단체들의 힘은 대단했다. 노동자들의 생존권 보장을 촉구하며 노동자들을 지지하는 시민사회단체의 기자회견이 잇따랐다. 이들은 ‘지역주민 뿔났다’는 현수막을 내걸고, 문제가 불거진 씨앤앰 본사에 가입해지를 선언했다. 이들에게 희망연대노조 조합원들은 그냥 노동자들이 아닌 살가운 이웃이었다. 이때 노동자들을 지지하고 나선 지역단위는 남양주, 강동, 송파, 성동, 광진, 노원, 강북, 성북, 마포, 서대문, 용산, 구로, 일산 등이었다.

김은선 희망씨 상임이사는 “희망연대노조가 지역사회와 활동하기 시작한 것이 2011년이니 벌써 8년이 지났다”며 “노조의 사회연대공헌사업으로 그동안 지역의 아동들이 달라지고, 노조에 대한 지역사회의 인식이 변화한 것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사실 조성한 기금이나 지원금의 규모에 있어서는 희망연대노조를 뛰어넘는 거대 노조들이 많다. 그러나 ‘어떻게’라는 측면에서 희망연대노조의 지역 연대활동은 주목할 만하다”며 “희망연대 노조는 단발적인 프로젝트성 사업이 아니라, 지역에 실질적으로 필요하며 계속 이어져야하는 사업을 지역과 함께 도모하고, 조합원들이 참여하도록 해 실제로 노동과 지역사회가 만나도록 하고 있다”고 짚었다.

올해는 희망연대노조에게 터닝포인트이다. 처음 약 300명도 채 안 되던 희망연대노조 조합원은 현재 약 5,200명으로 늘어났다. 규모가 커지면서 사업도 커지고 있다. 김 상임이사는 “사업은 사람이 한다. 사업을 이끌 주체들을 많이 양성하는 것이 갈수록 더 중요해 지고 있다”며 “노조의 가치를 깊이 공유하는 주체들이 현장으로 흩어져야 노조 안에서, 지역 안에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희망연대노조를 만든 취지를 사업으로 잘 이어가기위해 내부적으로 역량 강화 교육에 대한 고민과 시도를 많이 하고 있다”고 전했다. 희망연대노조는 사회연대공헌 활동을 하려는 많은 노조들로부터 교육을 해달라는 요청을 꾸준히 받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연대노조의 사회연대공헌활동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으로 보인다.

윤진영 교선국장은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도 희망연대노조가 사회연대활동을 더욱 확대하고자 이유를 ‘노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갈음한다. 윤 교선 국장은 “노조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공간에서 맺는 모든 관계를 수평적이고 민주적인 관계로, 연대할 수 있는 관계로 바꿔내는 조직”이라며 “기존의 노조활동이라고 하는 틀을 깨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관계를 재구성하며 노동자가 행복할 수 있는 사회변혁을 만들어가는 것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