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의 새로운 패러다임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09.06 18:02
  • 수정 2018.09.06 1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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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USR 헌장 선포한 LG전자노동조합

[커버스토리] 노동조합과 사회연대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 ②

LG전자노동조합(위원장 배상호, 이하 LG전자노조)은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Union Social Responsibility, 이하 USR)이라는 의제를 우리 사회에 처음으로 던진 노동조합이다. 지난 2010년 1월 27일, LG전자노조는 USR 선포식을 개최하고 국내 노동조합 최초로 USR 활동을 전개해 나갈 것을 밝혔다. 또한, 선포식 이후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USR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다양한 USR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노동조합 주변 조손가정 손자녀를 위한 사랑의 교복 전달식
노동조합 주변 조손가정 손자녀를 위한 사랑의 교복 전달식

 

USR의 방아쇠를 당기다

LG전자노조의 USR 선포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우리 사회에서 USR은 생소한 용어였다. LG전자노조의 USR 선포 이후 USR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면서 USR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그 답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이에 LG전자노조는 스스로의 사회적 책임을 “대기업노조로서 투명하고 윤리적인 노조활동을 기반으로 조합원들의 권익신장 및 경제, 사회, 환경 등 사회 전반에 걸쳐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을 다하는 LG전자노조의 미래 지향적 활동”이라고 정의했다. 기존 권리 찾기 중심, 내부 중심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사회적 책임 이행, 노동조합 역할 확대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또한, 이해관계자를 조합원에 한정하지 않고 협력업체, 계약직 노동자 등의 비정규직 노동자, 지역주민, 자영업자, 비조합원 등 LG전자노조의 노동운동 및 활동에 영향을 받는 모든 이들을 이해관계자로 확대했다. USR 선포 당시 LG전자노조 위원장을 지낸 박준수 위원장은 회사에 이 같은 내용을 전달하고 USR 설계에 들어갔다.

LG전자노조의 USR 도입은 당시 집행부가 노사관계에 문제의식을 가지면서 시작됐다. 대부분 노사관계가 그렇듯이 LG전자 역시 매년 임금 및 근로조건을 둘러싸고 대립적 노사관계를 이어온 곳 중 하나다. 이상걸 LG전자노조 사무처장은 “파업 등 소모적인 노동운동을 반복하면서 노동조합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것이 없다는 문제의식을 느낀 것”이라며 “USR 도입은 당시 집행부가 노동운동에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는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라고 설명했다.

고민 끝에 지금의 LG전자를 있게 한, LG전자노조를 지탱해준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 LG전자노조는 이에 대한 내용을 회사와 공유하고, 2008년부터 본격적인 USR 도입 준비기간을 가졌다.

탄탄한 준비 끝에 2010년 USR 선포식에서 “핵심적인 가치를 제공하여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노동조합”이라는 비전과 ▲기업의 경쟁력 제고 ▲근로자의 삶의 질 향상 ▲Global Community 공헌 등 세 가지 역할과 책임을 제시했다.

 

USR 2.0 선포

LG전자노조는 USR 실무협의회를 통해 지난 활동을 점검하고 향후 활동 계획을 수립한다. 동시에 6개 지부(평택1, 평택2, 청주/인천, 구미, 창원1, 창원2) 활동 방향을 확인하고 공유한다. 선포 첫해에는 USR 실행체계를 다지는 것에 집중했다면, 이후에는 조합투명성 확보, USR 실행력 제고, 해외법인 USR 전파 등을 통해 USR 활동의 내실을 강화하고 있다.

2015년에는 ‘USR 2.0’을 선포하고 이전 2010년부터 2014년까지의 활동인 ‘USR 1.0’보다 한걸음 더 나아간 USR 활동을 전개해나갈 것을 밝혔다. USR 2.0은 ▲지속가능 ▲자율참여 ▲가치제공 ▲사회공헌 4대 원칙을 바탕으로 ISO(국제표준화기구)에서 선정한 7대 영역별 과제(조직 지배구조, 인권, 노동, 환경, 공정관행, 소비자 이슈, 지역사회 참여 개발)를 추진한다. 특히, 지역사회 참여 개발의 경우 평택, 창원 등 지역에 위치한 6개 지부에서 각각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서 활발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회사도 노조의 USR 활동을 독려하고자 ‘USR 데이’를 만들었다. 조봉진 LG전자 노경기획팀 선임은 “USR 활동 참여율 증가를 위해 직원들에게 1년에 하루 USR 데이를 유급휴가로 제공하고 있다”며 “현장에서 직접 피드백을 받을 수 있는 독거노인 봉사활동, 사랑의 연탄나눔 등이 직원들에게 반응이 좋다”고 소개했다.

LG전자노조는 지속가능한 USR 활동을 이어가는 것이 USR 2.0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어느 영역의 과제든지 단발성 이벤트로 끝내지 않고 꾸준히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 지난해에는 ‘지속적이고 체계적인 감동(感動) 활동 전개’를 핵심 계획으로 선정하고 7대 영역별 과제를 수행했다. 이상걸 사무처장은 “올해는 미래세대 육성에 방점을 찍었다”며 “교복 및 장학금 지원 등 미래세대를 짊어질 청소년들에 대한 지원을 본부조합과 6개 지부의 공통 가치로 가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LG전자노조의 USR 활동도 어느덧 8년째다. 8년의 시간 동안 축적된 노하우를 바탕으로 한 USR 활동은 LG전자노조 고유의 문화, 정체성으로 자리 잡았다 . 김성건 한국외대 경영학 박사와 김중화 한국외대 글로벌경영대학 교수는 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관한 연구(2013)에서 “LG전자노조의 사회적 책임은 단순히 노동조합의 사회공헌 활동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을 의미한다”며 “따라서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활동의 파트너적인 역할이 아니라 노동조합의 독자적 영역이자 특화된 활동이라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LG전자노조의 USR은) LG전자노조의 브랜드 가치 제고를 위해서 수행되는 업무이자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중심으로 실행된다”며 “따라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겉핥기식 피하려면… “충분한 준비 필요”

우리 사회에는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존재한다. 그간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이 사업장 임금 및 근로조건 등 노사 현안에만 집중되어 국민들에게 노동조합은 제 밥그릇 지키기에만 급급한 조직으로 인식되어 왔기 때문이다. 최근 많은 노동조합들이 사회공헌 및 연대 활동에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노동조합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다. LG전자노조의 사례도 마찬가지다. LG전자노조의 USR 실천은 노동조합이 사회 구성요소 중 하나임을 강조하고, 노동조합을 향한 긍정적인 인식 제고와 지속가능한 노동운동의 패러다임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실제로 LG전자노조의 USR 사례를 벤치마킹하려는 노동조합들도 적지 않다. LG전자노조는 “많은 노동조합에서 USR 관련 컨설팅 요청이 들어오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LG전자노조를 시작으로 많은 노동조합들이 USR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환영할만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겉핥기식 USR은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냈다. LG전자노조는 USR 도입을 고민하면서 약 2년간의 준비기간을 가졌다. 이 기간 동안 노사가 수차례 논의를 거쳤으며, 사회적 책임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했다. 또한, 외부 의뢰를 통해 LG전자노조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비전과 추진방향을 설정했다.

LG전자노조는 기업의 경쟁력 약화를 고민하기 시작하면서 지금의 USR을 세상에 내놓았다. 충분한 고민과 논의, 체계화를 거쳐야 한다는 것이 LG전자노조의 조언이다. 이상걸 사무처장은 “우리 제품을 구매하는 고객들에게 보답할 수 있는,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노동조합의 사회적 책임”이라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