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 검침원 자회사 정규직 전환 합의 후 논란 여전
한전 검침원 자회사 정규직 전환 합의 후 논란 여전
  • 김민경 기자
  • 승인 2018.09.07 09:51
  • 수정 2018.09.07 09:51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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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정책에 휘둘리는 공공부문 일자리 이대로 괜찮나?

[리포트] 한전 검침원 정규직 전환

공공부문 일자리는 민간부문 일자리에 비해 상대적으로 고용이 안정적이고, 연봉도 높은 편이다. 그러나 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손바닥 뒤집듯이 바뀌는 일자리 정책의 직격탄을 피하지 못한다.

IMF경제위기 이후 정권들은 정도의 차이는 있었지만, 공공부문의 개혁과 효율성 제고를 앞세워 시장경쟁 논리를 도입하고 민영화를 추진해 왔다. 그런데 지난해 조기 대선으로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공공부문에서는 좋은 일자리 만들기가 화두다. 정부 정책 방향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하기에 앞서, 아무리 공공부문이라고 해도 이렇게 직접적으로 일자리가 정부에 휘둘려도 정녕 괜찮은가.

자회사 전환 합의, 직고용 원하는 조합원들 반발

지난 7월 30일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의 위탁업체에 고용돼 검침업무를 해온 노동자 5,200명이 자회사를 통한 정규직 전환에 합의했다. 6개 업체에 소속돼 있는 이들은 현 정부의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 전환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전국전기검침연대(이하 검침연대)를 결성했고, 지난 12월부터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전환방식을 결정하기 위해 10여 차례 논의를 해왔다.

노사가 합의한 내용의 핵심은 ‘한전이 전액 출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는 자회사에 검침노동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하는 것이다. 노사 협약서에는 자회사를 두고 검침노동자들을 고용함으로써 절감되는 용역수수료는 전환자들의 임금과 복리후생을 포함한 근로조건 개선을 위해 사용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자회사 설립을 목표 시점은 오는 12월이다. 노사는 향후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 자회사 설립과 임금 설계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논의해 나가기로 했다.

이 같은 합의 내용이 알려지자, 현장 조합원들 일부가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검침연대가 한전 직고용을 원하는 조합원들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6개 업체 중 한 곳인 새서울산업의 노조가 한전 직고용과 자회사 전환 방식에 대해 조합원 총투표를 실시한 결과, 전체 약 1,070명 중 91%가 직고용을 원했다.

김상균 검침연대 의장(제이비씨노조 위원장)은 연대체에서 각 사업장별 의견은 지부장들의 투표로 전체 의견을 수렴하기로 정했다며, 곤혹스럽다는 입장이다. 그는 “한전 직고용을 원하지 않는 노조 간부들이 있었겠느냐”며 “전환과 관련해 실타래처럼 얽혀있는 복잡한 조건들 전부를 조합원들에게 일일이 설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직접고용이라면 그에 걸맞은 신분상승과 복지상승이 있어야 한다. 빛 좋은 개살구가 돼선 안 된다”고 덧붙였다.

검침연대가 자회사 전환에 합의 이유

김 의장은 검침연대가 자회사 전환 방식에 합의했던 것은 세 가지 원칙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 세 가지는 ▲검침노동자 5,200명 전원 전환할 것 ▲급여가 현 수준에서 저하되지 않을 것 ▲지능형 전력계량시스템(AMI) 구축에 따른 고용안정(대체업무) 확보 등이다.

김 의장은 “전환 과정에서 누락되는 사람이 생기면 안 된다는 것이 제1원칙이었다”며 “한전 직고용 방식으론 전환인원이 3,000명 수준이라는 이야기가 나왔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전 급여체계를 고려해 직고용 시 임금은 6직급 1호봉(초봉 2,200)에 경력 3호봉을 인정하는 정도였다. 이는 현재 임금의 절반 수준”이라고 말했다.

정규직 전환 논의 과정에서 한전의 AMI 보급 사업은 민감한 이슈였다. AMI는 정부가 추진하는 스마트 그리드(Smart Grid, 전력망 전보통신기술) 구현을 위한 핵심 인프라로, 국정과제에 포함된 내용이다. 한전은 2010년부터 단계적으로 AMI을 확대해 오고 있으며, 오는 2020년까지 전국 2,250만호에 보급을 완료할 계획이다.

이를 두고 노사전문가협의회에서는 기재부의 인력과 예산 통제를 받아야하는 한전의 상황 상 AMI에 따른 일자리 감소를 대체할 업무로 고용을 연계하기 위해서는 자회사 방식이 직고용보다 여력이 있을 것이라고 논의가 오갔다. 이에 대해선 김 의장도 “아버지(한전)가 자식(직고용 노동자)에게 일거리를 주는 것은 안 되고, 조카(자회사)에게 주는 것은 된다는 해괴망측한 논리는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지 따져물었다”며 “자회사의 경우 사업비로 충당이 가능하다고 하더라”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검침연대 차원에서 치열하게 고민을 했다는 해명에도 현장 조합원들은 내부 소통 부재와 성급한 합의 결정에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 없다. 특히 현장에서는 정년을 앞둔 검침노동자들이 전환에서 배제되더라도 ‘직고용’ 원칙을 고수해야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이 같은 의견에는 매해 꾸준히 250여 명의 자연 퇴직자가 발생해 오는 2025년에는 그 수가 2,000명에 달한다는 배경이 있다.

한전 검침 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을 단순히 노동자들 간의 갈등으로 치부해선 안 된다. 이들이 하는 업무가 원래는 10급 기능직 공무원들의 업무였고, 이후 한전으로 흡수되면서 지금 논란이 일고 있는 한전 전액출자 자회사(한전산업개발)로 옮겨갔다. 그러나 현재 한전산업개발에 남아 있는 한전 지분은 29%로 낮아져 용역업체로 전락했다는 것이 현장 노동자들의 말이다.

한전 검침노동자들의 정규직 전환 논의 과정에서 정부와 한전 관계자들은 공공연하게, 직고용 을 해도 경영효율성을 앞세우는 정권이 들어서면 아웃소싱을 해야 할 수도 있고, 100% 출자 자회사를 해도 이후 그 지분이 어떻게 관리될지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두 가지 방법 모두 일장일단이 있다는 설명을 하면서 나온 말이라지만, 직고용 방식과 자회사 방식 그 어느 것도 현 정권 이후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는, 공공부문 일자리는 정부의 정책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이 이미 기정사실이라는 냉소적인 자기 고백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