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노동자 위한 딱 맞는 노동조합 옷은?
봉제노동자 위한 딱 맞는 노동조합 옷은?
  • 강은영 기자
  • 승인 2018.09.07 09:55
  • 수정 2018.09.07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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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조합+공제회 새로운 모델 제시

[리포트] 서울봉제인, 노동조합 창립 위한 정책토론회

 

옷은 생활하는 데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물품 중 하나다. 옷을 만드는 봉제노동자들이 가장 많이 있는 곳은 서울이다. 노동운동의 상징인 전태일 역시 봉제노동자였다. 하지만, 서울 봉제노동자들은 여전히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다. 화섬식품노조와 전태일재단, 서울권익노동운동센터는 29일 서울시의회회관에서 봉제 노동자들의 노동조합 창립을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었다.

목소리 낼 수 있는 창구 마련해야

서울시 제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전체 종사자 중 5%내외다. 그 중 봉제노동자들은 9만 여명으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경기도 봉제노동자 수가 2만 여명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압도적인 수가 서울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서울시 내 제조업 사업체 대부분이 10인 이하 영세업체이며, 전국 최소 부지면적에서 근무하는 소규모 업체이다. 가장 큰 문제는 2010년 이후 봉제 사업체 수는 꾸준히 증가한 반면, 노동자 수에는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이는 사업체가 파편화됐다는 것을 나타낸다. 열악한 노동환경이 더욱 더 열악해져 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장에서 근무하는 봉제노동자들도 노동환경에 문제점이 많다는 조사결과가 나왔다. 지난 2015년 서울노동권익센터는 서울시 봉제노동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를 발표했다. 봉제노동자들 중 59%는 30~59세 여성 노동자다. 또한, 88.9%가 10인 미만 사업장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들이 꼽은 노동환경의 문제점으로 장시간 노동과 많은 작업량 열악한 작업환경, 낮은 임금 등이 심각하다고 답했다. 업무 중 식사를 위해 작업장 내부에서 해결하며 이중 64.6%는 별도의 공간 없이 미싱테이블에서 해결하고 있다는 결과가 나왔다. 매일 2시간 이상 앉아서 하는 작업으로 인해 팔, 허리, 무릎 등에 근골격계질환을 호소하기도 한다고 밝혔다. 고용, 연금 등 4대 보험에 대한 미가입률은 적게는 67%에서 많게는 83%에 달한다는 결과가 나왔다. 화섬식품노조가 2017년 진행한 FGI(심층면접) 결과에서도 장시간 근로와 낮은 임금, 4대 보험 미가입 등이 가장 큰 문제라고 응답했다.

토론회에 참석했던 강명자 봉제노동자는 30년간 미싱사로 근무했다. 하지만, 과거에 비해 열악한 노동환경의 변화를 쉽게 찾아볼 수 없다고 말했다. 그녀가 근무하는 금천구의 경우는 대기업들의 고가 브랜드를 적은 수량 생산해 백화점에 납품한다. “옷 하나를 만들기 위해 많은 노동자들이 필요하다. 옷을 제대로 만들 수 있도록 지원이 이루어진다면 수많은 일자리 창출이 가능할 것이다”라며 “많은 노동자들이 문제에 대해 공감을 하면서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하청에 하청 구조이다 보니 가장 밑에서 일하는 봉제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뿐만 아니라 저임금의 문제를 겪을 수밖에 없다”며 “동료들끼리 대화를 할 때도 방법을 못 찾아 힘든 점이 많았는데 노동조합을 통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창구가 만들어졌으면 좋겠다”고 소망을 드러냈다.

해본 적 없기에 보인 가능성

화섬식품노조는 2017년부터 봉제사업단을 구성하고 봉제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사업을 진행해 왔다. FGI(심층면접) 조사에서 높은 연령대로 구성된 노동자들은 청년들의 취업경로가 부족하다며 봉제산업의 지속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나타냈다. 옷은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한 제품이지만 정작 옷을 만드는 노동자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없다는 것을 문제 삼았다. 봉제노동자들의 이해와 요구를 대변할 수 있는 기구가 없다며 조직이 필요하다는 요구도 나왔다. 실제 노동부 자료에 따르면 100인 미만 사업장 중 노동조합 조직률은 1%내외로 매우 미미한 수준이다. 토론회에 참여했던 김학진 정책국장은 “가능한가에 대한 우려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봉제노동자들이 한데 뭉쳐서 해 본적이 없다는 것에서 변화 가능성을 보았다”고 말했다.

화섬식품노조를 비롯해 전태일재단과 서울노동권익센터는 2018년 5월, 9만 봉제노동자를 위한 서울봉제지회와 봉제공제회 공동준비위원회를 구성했다. 이들은 오는 11월 27일 봉제노조 창립을 목표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기존 사업장에 비해 봉제 사업장은 다른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사업장 단위 교섭을 통해 지불능력 여부에 따라 성과를 얻는 기존의 노동조합에 비해 봉제 사업장은 자본력이 취약하고 지불능력이 떨어진다는 특징이 있다. 또한, 열악한 노동환경으로 인해 한 사업장에서 정착 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사업장으로 이동하며 노동을 하고 있기 때문에 노조 조직률이 미미하다. 노사관계 역시 기존의 사업장과 차이가 있다. 사용자와 직원이 함께 노동하고 생활하기 때문에 그 관계가 긴밀하다. 사용자들을 상대로 임금 인상을 요구하면서 투쟁을 하는 것에 대해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기존의 노동자와 사용자 구도를 가지고 조직화나 투쟁전략을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다른 접근을 통한 조직화가 필요했다.

봉제노동자를 대상으로 새로운 조직화 전략을 마련했다. 우선 이들에게 ‘노조 할 권리’를 말하기 보다는 ‘노조 해야 할 이유’를 알리는 것이 중요했다. 10인 미만 사업장의 영세사업주를 살펴보면 노동자와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거나 오히려 임금이 낮은 경우도 적지 않다. 때문에 영세사업주를 포함하는 조직을 형성하는 전략을 만들었다. 이미 건설노조와 공공운수노조의 화물연대 등에서 부분적으로 실현하고 있기 때문에 선례를 활용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교섭구조에 있어서 사업장에 환경 개선이나 임금 문제를 요구해도 들어줄 수 없기 때문에 정부나 지자체 등 사회적 대화를 통한 교섭을 염두하고 있다고 밝혔다.

새로운 모델로서 주목받고 있는 것은 노동조합과 공제회를 함께 조직하고 있다는 점이다. 노동조합의 공제사업은 조합원이 공동으로 적립한 부금을 통해 공제금을 교부하여 돕는 사업으로 보험과 유사한 역할을 한다. 김 정책국장은 공제회 회원은 곧 조합원으로 하는 공동멤버십이지만 노조와 별도 기구로 전문성 있게 운영해 조합원 상호부조를 실현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봉제공제회 TF팀을 별도로 구성해 매주 회의를 진행하며 방향에 대한 논의를 진행 중이다. 노동조합이 해야 할 공제사업부터 전문가의 손길이 필요한 서비스 설계와 법적기반 문제도 논의 내용 중 하나다. 돈이 들어가는 사업인 만큼 공정한 운영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고민도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신환섭 화섬식품노조 위원장은 “노동조합과 공제회라는 새로운 형태의 모델을 진행하는 만큼 어떻게 진행해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항을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들어보아야 한다”며 “새로운 방향을 제시하고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좋은 모델을 만들었으면 한다”고 바램을 나타냈다.

김 정책국장은 노동조합 창립을 통해 열악한 노동환경 처우 개선과 지속가능한 일자리뿐만 아니라 신규 인력을 배치하는 것이 첫 번째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서 공제회를 통한 복지사업으로 자주적 상호부조를 만들어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봉제노동자 삶의 질 개선 이루어질 수있도록

김묵한 박사는 실태조사를 통해 노동집약적인 특성을 가진 봉제 산업에 숙련공이 부족하고, 인프라도 부족하다고 문제 삼았다. 그러면서 “기존의 시장이 줄어들고 있고, 앞으로 어떻게 새로운 시장과 접촉을 늘릴 수 있는지 고민해야 한다”고 당부하며 신규시장 개척을 위해 기술변화가 아닌 새로운 시장을 찾기 위한 대비와 준비할 수 있는 틀이 없어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공동으로 해결할 수 있는 팀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소공인 애로 사항을 통해 마련한 지원방향으로 공동 브랜드 런칭 등의 판로지원과 숙련공을 양성하고 젊은 층의 인력 유입을 위한 교육·인력 양성을 제시했다. 또한, 공동장비실, 촬영실 등 공공인프라를 조성하고, 공공에서 주도적으로 지원 할 수 있는 시스템 구축 등을 제시했다.

올 초 서울시에서 발표한 서울미래 혁신성장 프로젝트 내용도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도심제조 활력도시’를 첫 번째 프로젝트로 잡은 것은 최근 10년간 이례적인 일이라고 밝혔다. 서울시에 제조업을 배제하지 않고 활용하는 방법을 고민하고 공동작업장 등 인프라를 지원하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설명했다.

화섬식품노조는 강사단을 조직해 밀집지역을 중심으로 찾아가 노동조합 교육을 진행할 예정이다. 또한, 봉제인들과 함께 하는 공동캠페인이나 상담사업 등 다양한 사업 등을 전개한다. 오는 11월 봉제 노동조합이 성공적으로 창립되면 봉제공제회 TF팀을 추진단으로 전환해 설립준비위를 구성하고 2019년 노동절에 공제회를 설립하는 것을 목표로 활동할 것이라고 밝혔다.

강명자 봉제노동자는 “4대 보험도 없고, 퇴직금도 없이 은퇴한 봉제노동자 문제는 사회 문제로 되돌아 올 수밖에 없다”며 “노동자들의 삶의 질을 개선해 노후에도 미래를 그릴 수 있도록 만들어 달라”고 당부하며 현장의 목소리가 반영될 수 있다면 노동조합 조직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