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단지역 신풍속도
“제조업, 빨리 손 터는 게 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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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조업, 빨리 손 터는 게 상책”
  • 승인 2005.0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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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도나도 ‘땅장사’ ‘딴장사’ 나서


국가산업단지로 조성된 일부 지방공단이 ‘월세단지’나 ‘잡화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인력난과 중국의 추격, 제조업 경기 추락 등으로 공장을 정리하고 임대업자로 전환하거나 아예 새로운 사업을 찾아나서는 일이 늘고 있는 것. 중소 제조업체들이 경영난으로 인해 공장을 쪼개 쓰는 일은 이미 오래 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공장만 나눠 쓰는 게 아니라 아예 제조업에서 손 털고 ‘땅장사’에 뛰어드는 업체가 급증하고 있다.

 

‘월세단지’ 된 부산 녹산공단
한국산업단지공단 부산지사에 따르면 2000년에 15건에 불과하던 공단 부지 임대가 3년만인 2003년 111건으로 훌쩍 늘었다가 지난해에는 200건을 넘어섰다. 산업단지공단 부산지사 경영지원팀 한원미 대리는 “이전에도 기업 구조조정 차원에서 최소 시설을 제외한 여유 공장터를 매각하는 일은 있었지만 최근 들어 멀쩡한 제조업체들이 임대사업 등 부동산 분야에 주력하는 일이 부쩍 늘어 가뜩이나 취약한 지방경제가 더욱 열악해질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부산 유일의 국가산업단지인 녹산공단에서 임대업자로 전환한 ‘왕년의’ 제조업체 사장을 만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때 녹산공단에서 직원 20여명 규모의 도금업체를 꾸려나가던 정완수(56)씨의 공장은 지난해부터 인근 철강공장의 창고로 쓰이고 있다. 정씨가 처음으로 공장 임대를 결심한 것은 2003년 초. 불경기 지속으로 공장 일부를 임대해 운영비라도 충당해볼 생각이었다. 당시만 해도 15년 이상 꾸려오던 도금 공장을 아예 접을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임대 전단을 뿌린 지 2개월만에 창고 용도나 가내수공업형 소기업들의 문의가 생각 외로 많았고 한 해 동안 꽤 쏠쏠한 임대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정씨는 공장 한쪽으로 몰아 놓았던 공구들을 모두 처분하고 아예 임대 전문업자로 변신했다. 이날도 정씨는 새로 나온 공장 매물을 보러 간다면서 외출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제조업, 그기 하면 할수록 나락으로만 빠진다 아입니까. 후회요? 안 합니다. 기름때 묻히면서 살았던 지난 세월이 한탄스럽지요” 정씨는 “해봐야 남는 것도 없고 전망도 불투명한데 누가 굳이 힘들게 공장을 가동하려 하겠냐”며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제조업 그만두고 공장터를 팔기를 너무 잘한 것 같다”고 말했다.

 

제조업 절반에도 못 미치는 고용창출 효과
한때 부산을 먹여 살리다 이제는 사양길로 접어든 신발, 목재 공장들에서는 이런 일이 더 많다. 녹산산단 내 D목재상사 터 입구에는 좁은 길을 사이에 두고 공장들이 빼곡히 들어선 들머리에 임대공장들을 안내하는 표지판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이 업체가 지난 94년 50억원에 분양받은 부지 9천평은 2003년부터 평당 월세 2만원과 월세의 10달치에 해당하는 보증금에 임대되고 있다. D목재상사는 모두 80억원을 들여 공장 39동을 건립, 2003년 11월 준공했고 현재 29개 업체에 공장을 임대하고 있다. 1개 공장 터에 수십 배에 해당하는 업체가 입주해 있는 셈이다.


산업단지공단 부산지사에 따르면 지난해 녹산산단 부지를 분양받은 업체 가운데 19곳이 부동산 임대업으로 업종을 변경했다. 분양받은 부지를 일부 쓰면서 나머지를 다른 업체에 임대해 주는 곳들도 많다. 산단에 입주한 업체 1천여 곳 가운데 20%가 넘는 239개사가 자체 공장이 아닌 임대공장을 쓰고 있다.


공장터를 분양받은 업체들이 임대업으로 업종을 변경하는 이유는 경기불황으로 투자여력이 없는 데다 경제 상황마저 불투명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산단 관계자의 진단이다. 


하지만 거액을 들여 공장을 임대하는 업체들은 다시 제조업으로 돌아오기 힘들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D목재 상사 대표는 “있는 돈 없는 돈 다 끌어 모아 임대공장을 지어 이제야 막 수익을 올리고 있는데 이제 와서 전망도 없는 제조업으로 돌아가기는 사실상 힘들다”고 말했다. 부동산업이 제조업에 비해 고용 창출 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문제다.


하지만 산단 입주업체들이 부동산임대업으로 업종 변경을 신청할 경우 막을 길도 없어 ‘탈제조업’, ‘임대업 전환’ 현상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영세기업은 더욱 나락으로
부산의 공업단지와 함께 동남권 경제의 주축을 이루고 있는 창원공단에서도 최근 2~3년간 제조업의 임대업 전환 현상이 두드러지고 있다. 창원산업단지 내 남성알미늄은 지난해에 사업목적에 ‘부동산임대업’을 추가했고 최근에는 ‘투우사업’ 진출도 준비하고 있다.


회사 관계자는 “부산에 알루미늄 새시 직판장을 개설하면서, 사무실도 임대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목적에 추가한 것일 뿐 임대업에 전적으로 매달릴 생각은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창원공단 내에서 비교적 큰 기업에 속하는 이 회사의 사업목적 추가를 곱게 바라보는 중소기업은 별로 없었다.


이 회사 옆에서 직원 30명의 소기업을 운영하는 윤남진(48)씨는“1000평의 공장을 가진 기업이 제조업에만 매달리면 적자를 면하는 것만 해도 감지덕지인데 임대를 하면 연간 3억원 이상의 수익은 거뜬하다”고 전했다. 평당 보증금 20만원에 월 임차료 2만원만 해도 연간 2억4천만원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윤씨는 “비교적 여력이 있는 기업들이 속속 임대업으로 전환을 하면서 공장을 임대해 쓰는 영세업체들은 부담만 늘어나는 격”이라고 불평했다.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주력 제조업들이 하나 둘 쓰러져가는 자리에 제대로 된 대체산업이 아니라 경기 부침이 심한 부동산업만이 ‘나홀로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러다가 지역 주력업종이 ‘부동산업’이 될 것이라는 냉소도 흘러나오고 있었다. 제조업의 ‘동맥’인 지방 공단에는 오늘도 ‘공장임대·부지매매’ 플래카드가 휘날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