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종환의 기습번트] 꽃보다, 아니 돈보다... 뭘까
[한종환의 기습번트] 꽃보다, 아니 돈보다... 뭘까
  • 한종환 기자
  • 승인 2018.09.28 21:40
  • 수정 2018.09.28 21:52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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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종환의 기습번트] 현재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기습번트다. 언젠가는 나만의 폼으로 역전만루홈런을 쏘아 올릴 때를 꿈꾸며 기습번트를 적시에 써보기로 한다.

 

ⓒ 한종환 기자 jhhan@laborplus.co.kr
한종환 기자 jhhan@laborplus.co.kr

직종마다 다르겠지만 내가 예전에 몸담았던 직종은 퇴근 시간이 무의미했다. 바쁠 때는 밤 12시, 새벽 1시 퇴근이 기본이었고 밤새는 때도 심심찮았다. 이런 기간이 닥치면 적어도 두 달 동안은 그래야만 했다. 야근해야만 하는 저녁과 새벽의 달은 서슬퍼랬고 출근해야만 하는 아침 해는 잔혹했다.

같이 일하던 차장 한 명은 아예 일주일에 3, 4일 이상 회사에서 잠을 잤다. 낚시를 좋아했던 그는 이번 주엔 낚시하러 가야지, 가야지 노래를 불렀지만 정작 주말마다 회사에서 일에 낚였다. 그렇게 일을 해도 일거리를 다 처리하지 못했고, 물속에서 헤엄치는 고기를 잡기는커녕 자신이 일 속에서 허우적댔다.

퇴근은 단어로만 존재하는 신기루였으며 낚시는 사막 어디엔가 존재한다는 소문만 들리는 신기루였다. 먹고살기 위해 일한다는 것은 삶 그 자체였다. 산다는 건 회사에서 일한다는 뜻이었다.

대부분 사람들은 돈이라는 이름 아래 지랄 맞은 직장생활도 버티는 수밖에 없었다. 출근은 조금이라도 늦으면 체크 당해 불이익을 당하지만 퇴근은 정시보다 늦는 것이 당연한 사회다. 땅에 뿌리박힌 나무가 한겨울을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겪는 것처럼 이 땅에 뿌리박은 노동자는 야근을 어쩔 수 없이 온몸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 겨울을 버티면 결국 봄이 온다는 믿음으로.

봄, 봄, 봄, 봄, 봄이 왔어요

일하는 시간 내내 의문이 든다.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지? 아니, 그 전에 이걸 왜 하는 거지? 아! 돈 때문이지. 평범한 직장인의 봄은 오직 돈을 받을 때뿐이다.

돈, 돈, 돈, 돈, 돈이 갔어요

밥 먹어 생명 연장하고, 술도 좀 마셔 스트레스도 풀고, 사람답게 살게 생필품도 좀 사고, 전기도 좀 쓰고, 물도 좀 쓰고. 순식간에 봄날은 간다.

은행이 나에게 사기를 치는 것만 같아 계좌조회를 해보면 은행은 언제나 정직하다. 돈을 벌기 위해 긴 시간을 참고 견디며 아등바등 일했는데, 돈은 가볍게 사라져서 공허했다. 왠지 인생을 도둑맞은 기분이었다.

퇴근하고 돌아갈 때 배와 가슴 사이가 뻥 뚫린 듯한 기분이 자주 들었다. 도저히 뭘 먹어도 채워지지 않을 거 같은 기분이었다. 내일 출근을 위해서 잠을 자야 하는데, 피곤해도 도저히 자기가 싫었다. 막연하게 술 생각이 나지만, 술맛을 알지 못하는 나는 어쩔 수 없이 맨정신으로 그 기분을 감당한다. 죽을 맛이었다.

말 그대로 나 홀로 오롯이 감당해야만 하는 밤들이었다. 뭐가 이렇게 허하고 무기력하고 짜증 나게 만들었을까. 이렇게 살아가다가 어느 순간 죽음을 맞이할 땐 어떤 기분이 들까. 끔찍해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분명한 것은 일하는 시간이 길수록 뭔가 도둑맞은 것도 많아졌다는 거다. 그리고 도둑이 소중한 무엇인가를 가져갈 때 내가 공조했다는 사실이다. 도둑과 나는, 나의 무엇인가를 도둑질하는 공범이었다.

많은 사람이 이처럼 무엇인가를 도둑맞고, 스스로 이 도둑질에 공조한다. 훔치고 도둑맞는 건 무엇인가. 또 자신이 하는 일은 스스로에게 어떤 의미와 가치를 지니는가. 현실은 무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