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란영의 콕콕] 더 큰 원을 그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김란영의 콕콕] 더 큰 원을 그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 김란영 기자
  • 승인 2018.10.02 20:48
  • 수정 2018.10.03 01: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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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란영의 콕콕] ‘콕콕’은 야무지게 자꾸 찌르는 모양을 뜻하는 의태어입니다. 상식과 관행들에 물음표를 던져 콕콕 찔러보려 합니다.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김란영 기자 rykim@laborplus.co.kr

“우린 안 맞는 것 같아. 헤어져.”

연애 초반 입에 달고 살았던 말이다. 에드윈 마크햄의 <원>이라는 시(그는 원을 그려 나를 밖으로 밀어냈다. / 나에게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 그러나 나에게는 / 사랑과 극복할 수 있는 지혜가 있었다. / 나는 더 큰 원을 그려 그를 안으로 초대했다.)처럼 나는 원을 그린 뒤 그를 밖으로 밀었다. 온갖 비난을 퍼부으면서. 연애를 시작한 지 2주가 되던 날, 남자친구는 이 말을 처음 듣더니 당황해했다.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대신 더 큰 원을 그렸다. 그러더니 그 안으로 나를 초대했다. “벌써? 앞으로 서로 더 노력하면 돼지이~” 하며.

연애 3년 차. 고백하건데 나는 그와 의견이 어긋날 때마다 곧장 헤어져야할 이유로 단정하며 이별 통보를 남발해왔다. 반면 남자친구는 우리 관계가 더 좋아지고 있는 과정에 있는 거라며 토라진 나를 설득했다. 지칠 법도 한데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그래서 친구들은 입을 모아 말한다. 나만 잘하면 된다고. 내 편이 없다.

그런데 이러한 나의 태도가 감옥에 '계신' 두 전직 대통령들이 사회적 갈등을 규정했던 방식과 빼닮아있었다. 이승만, 박정희 군부독재는 물론 이명박, 박근혜 권위주의 정권은 갈등을 질서 위반 행위로 규정하고 감시하며 통제했다. 남자친구와의 갈등을 '없어야 좋은 것'으로 확신했던 나처럼. 그로 인해 사회적 갈등은 애초에 없었던 것처럼 은폐되었고 사회는 그 갈등을 일으키는 원인들에 논의할 수 있는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민주적인 정부는 다르다. 아니 달라야 한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의 정부라면 사회에 비판적인 목소리를 사회 발전의 원동력으로 삼는다. 첨예하게 부딪히는 안건들을 적극적으로 조율하고 최선책을 찾아가면서 사회악이었던 갈등과 대립을 생산적인 방향으로 전용한다. “무엇이 문제인지 얘기해줄래?”라고 묻던 남자친구의 따듯한 음성처럼 권위주의 정권에서는 골칫거리로만 여겨졌던 목소리를 진지하게 귀기울여야할 주인의 명령으로 전환해내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공무원이 되면 세 가지 권리가 제한된다. 노동기본권과 정치적 활동의 자유, 불복종 권리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법률 조항 밑바닥에는 과거 정권이 공무원을 ‘부당한 국가권력에도 저항하지 않는 신민으로서의 인간’, ‘상명하복식 하달에 철저히 순응하는 부하로서의 인간’으로 관리하고자 했던 의도가 고스란히 깔려있다. 이러한 구조 속에선 공무원이 부당한 상부의 지시에 저항하거나 비판하기 어렵다. 그리고 우리들은 그러한 공무원들만이 정답이라고 확신해왔다. 그 문화적 동조가 과거 국가 권력이 이들의 정치적 신념과 행동들을 합법적으로 묵살하는 폭력에 정당성을 더해왔다.

공무원이 국민 전체의 봉사자로서 그 업무의 공공성이 크다는 점을 감안하면 일견 이 법적 구속들이 타당해 보일지 모른다. "든든한 연금을 받는 공무원이니깐 그 정도 노고쯤을 감수할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식이다. 우리는 질문을 다시 던질 필요가 있다. 더 큰 사랑과 지혜로. 직업이 공무원이라는 이유 하나가 시민이었던 이들의 기본권 박탈을 정당화 할 만큼 타당하다고 확신할 수 있을까? 만일 그 직무의 특성으로 이들의 기본권 실현이 공익에 반할 여지가 있다면 작금의 법은 ‘공익’과 공무원 개인의 ‘행복추구권’의 양쪽 법익의 균형을 고려한 최선의 선택이었을까?

여기서 ‘공익’은 누구를 위한 공익이었을까, 또한 공무원의 노동조합과 정치적 활동이 언제나 공익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그것을 사회에 긍정적인 방향으로 전용할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듣기 싫은 여자친구 잔소리에 살수차를 동원하는 남자는 없지 않는가. 적어도 우리 사회의 갈등을 풀어내는 해법에 있어서는, 지지고 볶으며 살아내는 남자친구의 현명한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