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지엠 신설법인 설립은 제2의 공장폐쇄 초읽기?
한국지엠 신설법인 설립은 제2의 공장폐쇄 초읽기?
  • 이동희 기자
  • 승인 2018.10.05 11:50
  • 수정 2018.10.05 11:5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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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의서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끝나지 않은 한국지엠 사태

[리포트] 한국지엠 법인분리

GM이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를 발표한 것은 설날을 앞둔 지난 2월 13일이었다. 당시 군산공장은 휴업 중이었으며,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 발표 직전까지도 아무런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 결국 노동자들은 공장 폐쇄 소식을, 자신들의 구조조정 소식을 뉴스를 통해 확인해야 했다.

어느새 시간은 흘러 군산공장이 문을 닫은 지도 4개월이 지났다. 이번에는 추석을 앞두고 한국지엠 노사관계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한국지엠 사태 이후에도 노사갈등 여전

지난 2월 한국지엠 군산공장 폐쇄 발표를 시작으로 한국지엠 노동자들은 한 차례 열병을 앓았다. 경영난을 이유로 군산공장 폐쇄를 주장한 GM과 노동자들의 생존권을 지키기 위한 금속노조 한국지엠지부(지부장 임한택, 이하 한국지엠지부)의 지난한 싸움이 이어졌으나, 한국지엠 부도처리도 불사하겠다는 GM의 최후통첩에 모든 것이 GM 뜻대로 이루어질 수밖에 없었다. 결국 GM이 예고했던 대로 지난 5월 31일 군산공장은 문을 닫았다.

그뿐만이 아니다. GM은 2018년 한국지엠 노사 임단협 타결과 함께 정부의 지원을 손에 넣었다. 이렇게 올해 상반기 대한민국을 들썩이게 했던 ‘한국지엠 사태’는 이렇게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한국지엠 노사갈등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현 노사갈등의 전말은 GM이 한국지엠 투자계획으로 ‘신설법인 설립’을 발표하면서 시작됐다.

신설법인 설립은 제2의 공장 폐쇄 꼼수?

배리 앵글 GM 해외사업부문 사장은 지난 7월 20일 한국지엠 투자계획을 발표했다. 5,000만 달러 규모 신규투자와 수출물량 확대, 차세대 SUV 개발과 신규 엔지니어 100명 채용,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 한국 내 설립 등이 주요 내용이었다. 한국지엠지부는 이와 같은 투자계획에 환영과 지지 의사를 밝혔으나, 문제는 신설법인 설립에 있었다.

GM은 글로벌 제품 연구개발 업무를 집중적으로 담당할 신설법인 설립을 투자계획 중 하나로 보고 있으나, 한국지엠지부는 이를 군산공장 폐쇄에 이은 또 다른 공장 폐쇄 및 구조조정 음모가 아니냐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지엠지부는 신설법인 설립을 두고 “현재 단일 법인인 생산공장과 연구개발 기능을 2개 법인으로 분리하려는 것”이라며 “회사는 ‘법인신설’이라고 주장하지만 노조에서는 ‘법인분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정해철 한국지엠지부 정책기획실장은 “결국 회사는 법인분리를 통해 회사를 쪼갠 뒤 필요에 따라 생산법인을 폐쇄할 가능성이 높다”며 “그렇지 않다면 굳이 법인을 나눌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앞서 군산공장 폐쇄를 경험한 바 있기 때문에 법인분리로 인한 매각, 제2의 공장 폐쇄, 인적 구조조정 등을 우려하고 있는 것이다.

투자계획 발표 이후 약 한 달 뒤인 8월 17일, 회사의 ‘법인신설 설명회’가 개최됐지만 한국지엠지부는 설명회에서 회사가 한국지엠지부의 우려와 질문에 명확한 답변을 주지 못했다고 말했다. 설명회에 참석한 카허 카젬 한국지엠 사장이 준비한 내용만 읽고 이를 통역만 했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한국지엠지부는 “모든 설명회라는 자리에는 문서를 비롯한 자료가 제시되어야 하며 이를 바탕으로 한 설명이 이루어지는 것이 기본인데 이날 설명회에는 어떠한 자료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또한, 이후 ‘연구개발 법인신설(분리) 계획에 대한 질의서’를 공식적으로 회사에 발송해 답변을 받았지만 만족스럽지 않았다고 전했다. 정해철 정책기획실장은 “법인분리 시점부터 법인분리 이후 복리후생 등 28개 질의에 부속 질의 11개를 더해서 39개를 공문으로 보냈지만, 노조가 판단했을 때 만족스러운 답변은 아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러한 한국지엠지부의 우려와는 반대로 한국지엠은 신설법인 설립과 공장 폐쇄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반박하고 있다. 한국지엠 관계자는 “한국지엠은 글로벌 기업이기 때문에 한국에서 생산하고 판매하는 제품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 판매할 제품의 연구 및 디자인 개발이 필요하다”며 “이번 신설법인 설립은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부문 글로벌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경영정상화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이어서 “신설법인 설립과 관련된 노조, 산업은행 등 이해관계자들과는 대화를 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해나갈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또한, 철수설에 대해서는 “철수를 계획하고 있다면 투자계획을 발표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일축했다.

산업은행, 주주총회 개최 금지 가처분 신청

한편, 한국지엠 법인신설 설립 발표가 전해지자 한국지엠 지분의 17%를 보유하고 있는 2대 주주 산업은행이 나섰다.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은 GM의 신설법인 설립 발표 이후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신설법인 설립은 산업은행과의 한국지엠이 체결한 기본합의서에 거론되지 않았던 내용이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지엠이 이사회 개최 및 주주총회 소집 등 절차에 속도를 내자 신설법인 설립에 대한 충분한 사전 설명이 없었다며 주주총회 개최 금지를 목적으로 법원에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제동을 걸었다.

한국지엠지부는 지난 8월 30일 여의도 산업은행 앞에서 산업은행의 비토권 행사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한국지엠지부는 “산업은행이 2대 주주이며 감시자인 만큼 법인분리 계획에 대응해 이사회의 반대와 주주총회 반대의견을 분명하게 제시해야 한다”며 “사측이 법인분리를 강행하려 한다면 비토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산업은행이 신설법인 설립에 대한 비토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산업은행의 비토권 행사 범위가 양도, 매각 등 실질적인 철수에만 한정되어 있어 신설법인 설립을 막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우며, 산업은행이 이를 무리하게 밀고 나갈 시에는 지나친 시장 개입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지적도 따른다.

급한 불 껐다고 안심해서는 안돼

이런 상황에서 한국지엠지부는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신설법인 설립을 막겠다는 입장이다. 법인분리 반대 서명 운동을 시작으로 올해 국정감사에서도 이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힘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지난달 5일과 6일 이틀간 87차 임시대의원대회를 개최하고 회사에 특별단체교섭을 요청할 것을 결의했다. 특별단체교섭 요구안의 핵심은 한국지엠의 연구개발, 생산, 판매, 정비부품 등 현재의 단일한 법인유지를 기본으로 하여 조합원의 고용안정을 도모하고, 회사의 각 부문별 역할을 확대하는 ‘지속가능한 미래를 위한 노사협약체결’이다. 정해철 정책기획실장은 “법인 분리를 하는 순간 대표이사, 각종 재무, 노무 인사 등 인원을 늘려야 한다”며 “비용이나 효율성 측면에서 이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추진한다는 것은 회사를 쪼갠 이후 회사의 필요에 의해 생산공장을 폐쇄할 가능성이 크다”고 강조했다.

 

지난 한국지엠 사태 당시, 대다수 전문가들은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더라도 GM 본사의 전략에 따라 한국지엠이 정부 지원을 다시 요청하거나, 결국에는 한국에서 철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경고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이번 신설법인 설립을 둘러싼 한국지엠지부의 의심이 합리적이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김현철 군산대 교수는 “현재 GM이 한국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생산공장이 아닌 연구개발이기 때문에 신설법인 설립은 생산공장을 없애기 위한 준비 작업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한지원 노동자연구소 연구원은 “한국지엠은 경영정상화보다 다운사이징에 집중해 한국지엠 철수를 연착륙하려는 것으로 판단된다”며 “노조는 지금처럼 신설법인 설립을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나가는 한편, 앞으로 계속 제기될 한국지엠 철수를 막을 수 있는 사회적 프로세스를 함께 마련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불과 5개월 전, 한국 정부는 GM의 자금지원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GM의 철수를 대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GM에 휘둘리는 것은 한 번으로 충분하다. 지난 한국지엠 사태와는 다르다는 것을 못 박아야 한다. 김현철 교수는 “한국 정부가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지난 사태에서 보여줬어야 했는데, 지난 협상이 너무 쉬웠던 것”이라며 “이번에는 정부가 얼마나 냉정하게 이 문제를 풀고자 하는지 의지를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한지원 연구원 역시 정부가 급한 불을 껐다고 안심할 것이 아니라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연구원은 “노조가 한국지엠 경영 감시를 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어주거나 고용이나 설비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할지 등을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프로세스 역시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