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앞에서 피켓을 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와대 앞에서 피켓을 들다
  • 한종환 기자
  • 승인 2018.10.05 13:14
  • 수정 2018.10.05 13:14
  •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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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5사 간접고용 노동자들, 정규직 전환 요구

[커버스토리]-소통→참여→모색 ④

발전5사에서 일하는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조합원들이 교대로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이 1인 시위에 대해 당장 정부는 물론이고 주목하는 사람은 없어 보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일 1인 시위를 한다. 대체 왜 하는 것일까.

“이건 의지입니다”

발전5사에서 연료환경설비운전과 경상정비 업무를 하는 공공운수노조 한국발전기술지부 조합원들은 요일마다 사업장별로 번갈아가며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당일 비번이거나 타임오프제를 적용 받거나 비번일 때 서울로 와서 이 시위를 한다. 그들은 이 청와대 앞 1인 시위가 정부를 움직여 해결해주거나 파급력을 가지고 올 만한 효과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1인 시위를 하는 이유를 노훈민 분당 지회장에게 물었다.

“처음에는 저도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왜 하냐고 물었어요. 이걸 한다고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는 것도 아니고, 알 수가 없더라구요. 근데 말을 들어보니 이렇게 하는 자체가 의지의 표시더라구요. 전 그 말을 듣고 바로 수긍했어요.”

발전5사의 정규직 전환 문제는 언론에서도 많이 다뤘다고 했다. 그러나 해결되거나 진전된 건 하나도 없는 상태이다. 그래도 어떻게든 주장하고 표현해야만 한다. 그래서 발전5사에서 일하는 노조는 청와대 앞 1인 시위를 시작하게 됐다.

 

필수유지업무인데 생명·안전과는 관계가 없다?

현재 발전5사에서 간접고용된 5,000여 명의 노동자들이 하는 연료환경설비운전과 경상정비 업무는 정규직의 일이었다. 그러나 발전5사가 한전에서 자회사 형태로 나오고 한전산업개발이 민영화 되며 해당 업무는 경쟁입찰제의 간접고용 형태가 됐다. 이 과정에서 해당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이었다가 간접고용 비정규직 형태가 된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일어난 일’이라 표현했다고 한다.

연료환경설비운전 업무는 화력발전소 석탄을 사용한 후 미세먼지·탈황폐수 등을 처리하는 설비를 운영하는 것이고 경상정비 업무는 발전소에 있는 설비들을 정비하는 것이다. 해당 업무들은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상 그 업무가 정지되거나 폐지되는 경우 국민의 생명·건강 또는 신체의 안전 등을 현저히 위태롭게 하는 ‘필수유지업무’로 지정됐다. 이로 인해서 종사자들은 파업권을 행사할 수 없도록 제약받고 있다. 파업권을 행사할 수 없으면 노사 간의 힘의 균형이 무너져 노동 조건 악화 등 불이익을 당할 가능성이 크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 가이드라인에서 국민의 생명·안전과 직결되는 업무의 경우 직접고용을 해 정규직화할 것을 제시했었다. 그러나 사측은 이 업무가 생명·안전과는 관계가 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발전 비정규직 연대회의(이하 연대회의)에 따르면 한국남동발전 사장은 “발전소 연료환경설비운전과 경상정비 직종은 형식적으로 필수유지업무이지만 내용으로 보면 아니다”라며 “필수유지업무는 파업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이지 정규직 전환과는 무관하다”고 발언했었는데, 당시 자리에 있던 고용노동부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규직화 추진단장이 명확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고 했다. 이에 대해 연대회의는 사측이 궤변을 늘어놓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도 방관하고 있다고 비판한 바 있다.

필수유지업무가 도입될 당시, 노동부가 한국노동연구원에 의뢰한 용역보고서 ‘공익사업 실태 및 필수유지업무의 범위에 관한 연구’ 내용을 보면 “특히 추석과 같이 전력수요가 적어졌다가 생산을 증가시켜야 하는 기동을 해야 하는 경우 현재의 대체인력으로 힘들다고 봐야 한다. 자칫 black-out(정전)이 되면 전기 생산을 위해 최소한 15일 이상 걸린다. 즉, 이는 국가 멸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내용도 나온다. 그러나 사측은 이에 대해 직원들이 없으면 다른 발전소에서 전기를 보내면 되므로 생명·안전과 관련이 없으니 정규직 전환도 상관없다는 입장이다.

이뿐만 아니라 환경에 대한 문제도 있다. 화력발전소에서는 후처리로 미세먼지나 탈황폐수 등을 처리한다. 이 작업 또한 이들이 한다. 특히 연료환경설비운전은 수입연료인 유연탄 하역부터 저장(저탄),보일러에 공급과정을 담당하고 이 과정 중 비산먼지 처리가 필요하다. 환경을 강조하는 발전소들이 이렇게 국민의 생명·건강에 관계된 중요한 일을 외주로 맡긴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며 노조는 비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 지회장이 하는 정비 업무는 운전 업무와는 다르게 아직도 직접고용을 위한 그 어떤 협의체도 구성되지 않았다. 이런 답답한 상황에서, 고요한 1인 시위를 한다는 건 말 그대로 그저 속으로 삭히면서 견디고 버티는 일이 아닐까 생각됐다. 그러나 그는 1인 시위 등의 일련의 행위들이 자신만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한 일들을 겪는 모든 이들에게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있어 괜찮다는 듯 말했다.

“광화문에 가보니깐 제가 겪는 건 아무것도 아니더라구요. 정말 고생하시는 분들이 많아요. 제가 시위하고 투쟁하는 것도 분명 그분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청와대 1인 시위는 발전5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비슷한 처지에 놓인 모든 사람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기도 하다.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1인 시위한다고 정부가 뚝딱 사건을 해결해주지 않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의 시선에 노출된 곳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일마다 청와대 사랑채 앞으로 가 피켓을 든다.